김춘배(金春培, 1900~1986) : 장로교 목사. 대한기독교서회 총무(1948~1967년)
【1900년】
-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1919년】
- 1919년 톰스(J. U. S. Thoms; 都瑞源)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 서울의 배영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4년】
- 1924년 당시 조선기독교서회에서 발간하는 초교파 신문인 〈기독신보〉의 편집기자로 재직했다.
【1929년】
- 기독신보 사장이었던 하아디(R. A. Hardie; 河鯉泳)의 추천으로 1929년 4월 일본에 유학하여 칸사이(關西)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였다.
- 그때 오오사카의 한인교회의 시긴지마의 서부교회와 니시나리꾸의 이마미야교회에서 시무했다.
【1933년】
- 귀국후 1933년 11월 경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그해 12월 함북 성진의 중앙교회에 부임하였다.
【1934년】
- 1934년 “장로교총회에 올리는 말씀”(1934년 8월 22일자, 기독신보)으로 여권 문제를 언급하였다.
【1935년】
- 여권문제에 대하여 장로교 총회의 압박으로 1935년 총회 연구위원회에 석명서(釋明書)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1937년】
- 1937년 1월 함흥의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목으로 전임하였다.
【1943년】
- 1943년 장희진 목사의 뒤를 이어 신암교회를 1948년까지 이끌었다.
【1948년】
- 1948년 4월 대한기독교서회 총무에 피택되어 이후 기독교문서운동의 핵심적인 역할과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1967년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근 20년간 기독교서회의 끊임없는 발전을 기도해왔다. 한편 성문학사(聖文學舍)라는 출판법인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저서는 물론 다른 동호인들의 저작도 출판하였다.
【1951년】
- 기독교인의 순교행적에 관심을 기울여 1951년 천주교인을 중심으로 한 《순교사화집》을 간행하였다.
【1953년】
- 해방 후 장로교의 분열시에는 기독교장로회에 참여하였다.
【1969년】
- 1969년 개신교 순교자가 중심이 된 《한국기독교 수난사화》를 간행하였다.
【1986년】
-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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