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0일 화요일

진간문제 사마욱(晉簡文帝 司馬昱, AD. 320~372년) : 동진 8대 황제(AD. 371~372년)

진간문제 사마욱(晉簡文帝 司馬昱, AD. 320~372) : 동진 8대 황제(AD. 371~372)

 
  • 진간문제 사마욱(晉簡文帝 司馬昱)
  • 출생 : 320
  • 사망 : 372912(51~52)
  • 묘지 고평릉 (高平陵)
  • 통치 기간 : 37216(음력 전해 11) ~ 912(250)
    • 전임 : 진 폐제 (晉廢帝)
    • 후임 : 진 효무제 (晉孝武帝)
  • 연호 :
    • 함안(咸安) : 37111~ 372
  • 시호 : 간문황제 (簡文皇帝)
  • 묘호 : 태종 (太宗)
 

기원후 320

  • 320년에 원제와 정아춘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도만(道萬)이다.
  • 간문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해서 원제의 사랑을 받았고 풍채가 좋았다. 몸가짐이 단정했고 학문에 관심을 보였으며 서예를 좋아했다.
 

기원후 322

  • 322314, 낭야왕이 되었다. 이는 진 원제가 황제가 되기 전 사용하던 작위로, 특별한 명예로 여겨졌다.
 

기원후 323

  • 3231, 진 원제가 사망했다.
 

기원후 325

  • 32510, 이복형인 진 명제가 세상을 떠났다.
 

기원후 326

326, 어머니 정아춘이 사망했지만, 법적으로 낭야왕 신분의 사마우는 어머니의 상을 치를 수 없었다. 이에 사마욱은 여섯 살의 나이에 다른 작위를 요청했고, 당시 어린 나이로 즉위한 조카 진 성제(晉成帝)는 이를 허락하여 그를 회계왕(會稽王)으로 봉하였다.
 

기원후 334

  • 염하 9(334)에는 우장군(右將軍)으로 전임하고, 시중(侍中)을 겸했다.
 

기원후 340

  • 염강 6(340)에는 부군장군(撫軍將軍)으로 진급하며 비서감(祕書監)을 겸했다.
 

기원후 343

  • 건원 원년(343)에는 태상(太常)을 추가로 맡았다.
 

기원후 345

  • 사마욱(司馬昱)의 또 다른 조카인 진강제(晉康帝, 진성제의 동생)가 사망하자, 그의 어린 아들인 진목제(晉穆帝)가 즉위하였다. 진목제의 어머니 저태후(褚太后)가 섭정이 되었으나, 국정은 주로 승상 하충(何充)의 조언에 따라 이루어졌다.
  • 당시 동진에서는 두 명의 승상을 두는 것이 관례였기에, 하충은 저태후의 부친인 저포(褚裒)를 공동 승상으로 추천했지만, 저포는 이를 사양하고 사마욱을 추천하였다. 이에 따라 사마욱과 하충이 함께 정무를 맡았다. 346년 하충이 사망한 후에는 채모(蔡謨)가 후임 승상이 되었다.
  • 그 무렵 형주(荊州) 자사 유익(庾翼)이 사망하며 그의 아들 유원(庾爰)을 후임으로 청했으나, 하충은 서주(徐州) 자사 환온(桓溫)의 등장을 선호했다. 사마욱이 신뢰하는 명사 유담(劉惔)은 환온이 능력은 있으나 야심이 크다며 그가 장강 상류의 요지를 차지하는 것을 경계했다. 유담은 사마욱이 직접 형주에 나가 통치하거나 자신이 자사가 되기를 권했으나, 사마욱은 이를 따르지 않아 환온이 형주 자사로 임명되어 권력을 쌓게 되었다.
 

기원후 346

  • 2, 황제 보좌에 참여했다.
  • 염화 2(346)에 하충이 사망하자, 좌광록대부 채모(蔡謨)가 사도를 겸임하며 상서 육조 문서 기록과 함께 사마욱과 공동 보정을 맡았다.
  • 347, 야심가인 장군 환온(桓溫)이 조정의 허가 없이 성한(成漢)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병탄하자, 조정은 환온이 군사적 성공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할까 우려하였다. 이에 사마욱은 유능하다고 평가받던 은호(殷浩)를 조정으로 불러들여 채모와 함께 국정을 담당하게 하여, 환온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고자 했다.
 

기원후 348

  • 348, 사마우의 황태자였던 사마도생(司馬道生)은 경솔하고 방탕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구체적인 혐의 없이 죄를 지은 것으로 몰려 폐위 및 투옥되었으며, 그 안에서 사망했다. 사마도생의 어머니이자 사마우의 아내인 왕간희(王簡姬)도 이 일로 고통을 겪다가 사망했다(일설에는 그녀도 투옥되었다고 함).
  • 그 외에도 사마우의 다른 아들들은 대부분 요절하였고, 새로운 후계자를 얻을 길이 막막해졌다. 이에 그는 점쟁이를 불러 후궁들 중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점치게 하였는데, 점쟁이는 아무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다가, 마침내 직조 일에 종사하던 검은 피부의 하녀 하나를 보고 이 여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외쳤다. 그녀는 말레이인이라며 멸시받던 존재였으며, 이름은 이릉용(李陵容)이었다.
  • 사마우는 이릉용을 후궁으로 삼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352년 사마요(司馬曜, 훗날 진 효무제)353년 사마도자(司馬道子)를 얻었다. 이후 사마요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기원후 350

  • 350, 채모가 황제로부터 내려온 예우를 여러 차례 사양하자, 은호는 이를 황실에 대한 불경죄로 몰아 그를 축출하고 스스로 더 많은 권력을 장악하였다.
 

기원후 352

  • 염화 8(352), 사마욱은 사도로 진급하려 했으나 사양했다.
  • 352년 초, 환온은 북벌을 요청했으나, 사마욱과 은호는 그의 권력 확대를 경계하여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격분한 환온은 군을 일으켜 수도를 위협하는 행동을 취했다. 은호는 크게 놀라 사직을 고려하거나 조우번(騶虞幡, 평화를 알리는 황실 깃발)을 보내 철군을 명할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왕표지(王彪之)의 조언에 따라, 사마욱이 환온에게 신중하고 절제된 내용의 편지를 보내 사태를 무마하였다.
  • 352년과 353, 은호가 스스로 북벌을 감행했지만 모두 실패하였고, 특히 353년의 실패는 큰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초래하였다.
 

기원후 354

  • 환온은 조정에 은호의 죄를 고발했고, 결국 354년 사마우는 은호를 해임하게 된다. 이후 사마욱은 단독으로 정무를 총괄하게 되었으나, 주요 사안에서는 환온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기원후 358

  • 358, 사마욱은 모든 권한을 황제인 진 목제에게 반환하겠다고 요청하였으나, 목제는 이를 거절하였다.
 

기원후 361

  • 361, 진 목제가 후사 없이 죽자, 저태후의 명령으로 조카인 사마비(司馬丕)가 진 애제(晉哀帝)로 즉위하였으며, 사마우는 계속해서 정무를 주관하였다.
 

기원후 363

  • 363, 진애제(晉哀帝)의 어머니인 주태비(周太妃)가 사망하자, 사마욱(司馬昱)은 전례에 따라 3개월간 섭정을 맡아 조정을 대신 다스렸다.
 

기원후 364

  • 364, 진 애제는 불로장생에 집착하였고, 도사들이 지어준 선약(仙藥)을 복용한 뒤 중독되어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저태후(褚太后)가 다시 섭정을 맡았으나, 실질적인 국정은 사마욱과 환온(桓溫)이 주도하였다.
 

기원후 365

  • 365, 전연(前燕)의 섭정 모용각(慕容恪)이 낙양(洛陽)을 포위하자, 사마욱과 환온은 이를 구원하기 위한 반격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봄에 진 애제가 사망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낙양은 곧 함락되었다.
  • 365년 말, 진폐제(晉廢帝)는 사마욱(司馬昱)에게 낭야왕(琅琊王) 작위를 올리려 했고, 그의 적자인 사마요(司馬曜)에게는 회계왕(會稽王) 작위를 내렸다. 그러나 사마욱는 아들의 입장을 대신해 낭야왕 작위를 거절했으며, 자신 역시 계속해서 회계왕이라 자처하였다. 진 폐제는 그의 뜻을 존중하여 더 높은 작위를 강요하지 않았다.
 

기원후 366

  • 36610월에는 승상이 되었다.
  • 승상(丞相), 녹상서사(錄尚書事)에 임명되었고, 조정에 참석할 때 걸음을 멈추지 않고 등장하는 등 높은 예우를 받았으나, 다시 사양했다.
 

기원후 369

  • 태화 4(369), 환온이 세 번째 북벌에서 전연(前燕)과 전진(前秦)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자, 예주(豫州) 자사 원진(袁真)은 억울함에 반란을 일으켰다. 사마욱은 도중(涂中)에서 환온과 만나 후속 대책을 논의하고, 환온의 아들 환희(桓熙)를 예주 자사로 임명했다.
  • 사마욱은 당시 동진 조정 내에서 막강한 실권자이자 보정의 중심 인물로서, 권력 내부의 긴장과 지역 권력 세력들의 역학 관계 속에서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369, 대장군 환온(桓溫)이 전연(前燕)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으나, 모용추(慕容垂)에게 크게 패배하였다. 환온은 정권 과시를 위한 다른 방법을 모색하였고, 결국 진 폐제를 폐위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는 진 폐제가 무능하고 아들이 사실 자신이 총애하던 남자들의 자식이라는 헛소문(동성애 관계를 암시하는)까지 퍼뜨렸다.
 

기원후 371

  • 桓溫(환온)37216(태화 611월 기유일)에 재위 중이던 진폐제(晉廢帝) 사마혁(司馬奕)을 폐위하고, 조정 신하들을 이끌고 회계왕(會稽王) 사마욱(司馬昱)의 왕부로 가서 그를 황제로 맞이하였다. 사마욱은 같은 날 즉위하여 진간문제(晉簡文帝)가 되었으며 연호를 함안(咸安)으로 고쳤다.
  • 사마욱의 형인 무릉왕 사마희(司馬晞)는 군사적 능력이 뛰어났으나 환온의 시기를 받았다.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환온은 사마희를 반역죄로 몰아 관직을 박탈한 뒤, 신채왕 사마황(司馬晃)에게 사마희, 유천(庾倩) 등과 모반했다고 자백하도록 강요하여 진군과 여씨 가문의 영향력을 제거하려 했다. 이어서 환온은 사마염(司馬恬)에게 사마희 처형을 청했으나, 사마욱은 이를 거절하고 다시 논의를 명했다. 환원이 거듭 강력히 청하기에 사마욱은 직접 손으로 쓴 조서에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조국이 오래가려면 네가 예전에 받은 명령을 따를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내가 물러나겠다는 뜻을 적었다. 환온은 땀을 흘리며 위축되어 더 이상 압박하지 못하고 사마희와 세 아들을 폐위하고 가족을 유배 보냈다.
 

기원후 372

  • 사마욱은 게자리(熒惑)가 태미원(太微垣)에 들어서는 천문 현상을 보고, 진폐제가 폐위될 때와 같은 불길한 징조로 매우 불안해했다. 자신을 지지하던 옛 부하 치초(郗超)에게 환온이 다시 폐위를 감행할지 묻기도 했다. 치초는 환온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 낙관했지만 사마욱은 여전히 근심하며 유천(庾闡)의 시 뜻 있는 자는 위태로운 조정을 걱정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주군의 욕됨을 애도한다를 읊조렸다. 이런 걱정과 스트레스로 병이 들어, 함안 27월 갑인일(37297) 병으로 급히 환온을 불러 국정을 돕게 하였다. 환온은 여러 차례 사양했으나, 사마욱은 912(기미일)에 아들 사마창명(司馬昌明)을 태자로 세웠다. 같은 날 동당에서 사망했으며 향년 53세였다.
  • 결국 3727월에 재위 8개월 만에 53세의 나이로 태극전 동당에서 죽었고 10월에 고평릉(高平陵)에 안장되었다.
 

가족 관계

 
  • 후비
    • 간문순황후(簡文順皇后) 왕간희(王簡姬) - 간문제 즉위 후에 황후로 추존.
    • 효무문황태후(孝武文皇太后) 이능용(李陵容, 351~ 400)
    • 숙의 호씨(淑儀 胡氏)
    • 숙의 왕씨(淑儀 王氏)
    • 귀인 서씨(貴人 徐氏)
  • 황자
    • 회계사세자(會稽思世子) 사마도생(司馬道生) - 간문순황후 소생.
    • 사마유생(司馬兪生) - 간문순황후 소생.
    • 임천헌왕(臨川獻王) 사마욱(司馬郁) - 숙의 호씨 소생.
    • 사마주생(司馬朱生) - 숙의 호씨 소생.
    • 사마천류(司馬天流) - 숙의 왕씨 소생.
    • 효무제 사마요(司馬曜) - 효무문태후 소생.
    • 회계문효왕(會稽文孝王) 사마도자(司馬道子, 364~ 403) - 효무문태후 소생.
  • 황녀
    • 파양공주(鄱陽公主) - 효무문태후 소생.
    • 파양공주=> 무제 유유 => 여흥장공주 유영남 + 왕씨 = 왕헌지
    • 신안민공주(新安愍公主) 사마도복(司馬道福) - 귀인 서씨 소생.
    • 무창공주(武昌公主)
    • 심양공주(尋陽公主)
  • 사마욱의 증손녀 왕씨(왕헌원) : 송나라 효무제 유준의 황후가 되었다. 유준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바로 유송의 폭군 전폐제 유자업이다. 왕헌원은 동진 간문제 사마욱의 딸 파양공주의 증 손녀이며 어머니는 송 무제 유유(劉裕)의 딸 여흥장공주 유영남이다. 오빠 왕조는 외숙부인 문제 유의륭(劉義隆)의 딸 유영애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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