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 8대 소제 유불릉(昭帝 劉弗陵, BC. 94~74년) : 재위 BC. 87~74년
【기원전 94년】
- 유불릉(劉弗陵)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 전한 무제(武帝)와 구익부인(鉤弋夫人) 사이에서 태어난 가장 어린 아들이며, 무제가 62세의 나이에 얻은 아들이다. 출생지는 장안이다.
【기원전 87년】
- 무제는 유불릉의 나이가 너무 어려 어머니가 여태후(呂太后)처럼 권력을 장악할 것을 염려하여, 섭정을 맡을 곽광(霍光)의 건의를 받아들여 구익부인을 처형했다.
- 3월 30일, 아버지 무제의 뒤를 이어 8세의 나이로 전한의 8대 황제로 즉위했다.
- 섭정 체제 : 곽광(霍光)이 대사마 대장군(大司馬大將軍)으로서 최고 섭정을 맡았고, 김일제(金日磾), 상관걸(上官桀) 등이 공동 섭정으로 함께 국정을 이끌었다
【기원전 86년】
- 김일제가 사망하였다 .
- 재위 기간 첫 번째 연호는 시원(始元)이다(기원전 86년 ~ 기원전 80년).
- 상관씨 황후 책봉 : 곽광은 자신의 외손녀인 상관씨(上官氏)를 황후로 삼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했다. 그녀는 당시 6세의 어린 나이였다.
【기원전 80년】
- 상관걸은 처음에는 곽광의 동맹이었으나, 이후 권력 다툼으로 인해 곽광을 견제하려 했다.
- 상관걸은 소제의 누이인 액읍공주(鄂邑公主) 및 유서(劉胥) 등과 함께 곽광을 폐위시키고 권력을 장악하려 했으나, 소제의 현명한 판단과 곽광의 기지로 발각되어 진압되고, 상관걸을 비롯한 주요 반란 가담자들이 처형되었다.
- 이 사건 이후 곽광의 섭정권은 더욱 확고해졌다.
- 재위 기간 두 번째 연호는 원봉(元鳳)이다(기원전 80년 ~ 기원전 75년).
【기원전 77년】
- 한나라에 불순한 태도를 보인 서역의 누란왕 안귀(安歸)를 푸개자(傅介子)가 암살하고, 친한파 왕을 옹립하여 누란을 산산(鄯善)으로 개칭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소제가 직접적으로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불확실하다.
【기원전 74년】
- 재위 기간세 번째 연호이자 마지막 연호는 원평(元平)이다(기원전 74년).
- 기원전 74년 6월 5일, 21세의 나이로 아들이 없이 사망하였다.
- 그의 죽음은 후계자 문제를 야기했고, 창읍왕 유하(劉賀)가 잠시 즉위했다가 폐위되고, 무제의 증손자인 유병이(劉病已)가 옹립되어 선제(宣帝)가 되었다.
- 능은 장안 인근의 평릉(平陵)이다.
【요약 정보】
- 이름 : 유불릉(劉弗陵)
- 묘호 : 중종(中宗)
- 시호 : 효소황제(孝昭皇帝) : 소제(昭帝)는 줄임말
- 출생 : 기원전 94년 / 출생지 : 장안(長安)
- 사망 : 기원전 74년 6월 5일 (향년 21세, 만 20세) / 사망지 : 장안(長安)
- 부친 : 전한 무제(武帝) 유철(劉徹)
- 모친 : 구익부인(鉤弋夫人)
- 배우자 :
효소황후 상관씨(孝昭皇后 上官氏)
빈(妃嫔) 주양씨(周阳氏)
궁인 몽(宫人 蒙) : 유하(劉賀)는 몽 등 궁인들과 음란한 행위를 벌인 것으로 전해짐 - 자녀 : 아들 없이 사망했다.
- 재위 : 기원전 87년 ~ 기원전 74년 (13년간)
- 전임 : 전한 무제(武帝) 유철(劉徹)
- 후임 : 창읍왕 유하(劉賀) : 잠시 재위 후 폐위, 선제 즉위
- 평가 : 전한 소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평생을 곽광의 섭정 아래 있었지만, 그의 재위 기간 동안 한나라는 내정의 안정을 유지하고 국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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