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 혜제 유영(劉盈, Liu Ying, 기원전 210~188년) : 재위 195~188년
【기원전 210년 경】
- 유영(劉盈)이 진나라 시기에 태어난 해이다. 그는 전한 고조 유방(劉邦)과 고황후(高皇后) 여치(呂雉)의 장남이다.
【기원전 205년】
- 어린 시절(초한전쟁 기간) : 유영과 그의 누나 노원공주(魯元公主), 그리고 어머니 여치는 초한전쟁(楚漢戰爭) 중인 여러 차례에 걸쳐 아버지 유방에 의해 항우(項羽)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버려질 위기를 겪었으며, 고조가 탈출할 때 수레에서 두 번이나 그들을 던지려 했다. 기원전 205년에는 여치와 자녀들이 항우에게 포로로 잡혀 2년간 억류되기도 했다.
【태자 시절】
- 유영은 유방의 황후인 여치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황위에 오르기 전에는 태자(太子) 신분이었다. 그의 성품은 개인적으로 친절하고 선량하며, 단순하고 소심하고 마음이 여리고 관대했다.
【태자 교체 위기】
- 고조 유방은 유영 대신 척부인(戚夫人)의 아들인 조왕(趙王) 유여의(劉如意)를 태자로 삼으려 하였으나, 주창(周昌) 등 신하들과 장량(張良)의 강력한 반대, 그리고 여후가 부른 ‘상산사호(商山四皓)’의 지지 덕분에 태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기원전 195년】
- 유영이 부친인 전한 고조 유방의 뒤를 이어 16세의 나이로 제2대 황제로 즉위한 해이다.
- 그의 재위 기간은 기원전 195년부터 기원전 188년까지이다.
【기원전 195년】
- 혜제가 황위에 오른 직후, 그의 모후인 여후(呂后)는 고조의 첩이었던 척부인(戚夫人)의 아들 조왕 유여의(劉如意)를 독살했으며, 유영은 그를 보호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여후는 척부인을 잔인하게 ‘인체(人彘)’로 만들고 유영에게 보여주었으며, 유영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아 심신이 지치고 황제로서의 의지를 잃어버렸으며 술과 여자에 빠지기 시작했다.
【기원전 194년】
- 12월 경 : 유영은 자신의 이복형제인 제왕(齊王) 유비(劉肥)를 독살하려던 여후의 시도를 막으려 했다. 유영이 독이 든 술잔을 마시려 하자 여후가 이를 막아 유비가 살 수 있었으며, 유비는 이후 자신의 봉토 일부를 노원공주에게 바쳐 화를 면했다.
【재위 기간 : 기원전 195~188년】
- 혜제는 재위 기간 동안 온화하고 돈후한 성품으로 황로학설(黃老學說)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국가의 휴양생식(休養生息)과 무위이치(無為而治)를 강조했으며, 문화 전제 정책을 해제하고 수도 장안성(長安城)을 축조했다. 그는 아버지 고조의 사당을 전국 각지에 세워 한 왕조의 권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또한,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 중 하나인 분서갱유(焚書坑儒)와 같은 법들을 폐지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서한 정권을 공고히 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며 경제와 문화 발전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
- 그는 부상당한 공신들의 딸들을 출궁시켜 결혼시켰으며, 전한 고조 때 맺어진 ‘봉고서’를 폐지하고 고령의 병사들에게 토지와 작위를 하사하는 등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고 안정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 그러나 혜제는 재위 기간 내내 어머니 여후의 강압적인 간섭을 받았으며, 여후가 사실상의 통치자였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혜제 본기(本紀)가 없는 대신 『여후 본기』가 실린 것은 이를 반영한다.
- 여후는 자신의 외손녀인 장씨(張氏), 즉 혜제의 친누나 노원공주(魯元公主)의 딸을 혜제의 황후(장황후, 張皇后)로 삼았으며, 이 결혼은 여후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루어졌고 자식은 없었다. 장황후가 혜제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자, 여후는 다른 궁녀가 낳은 아기를 강제로 황후의 자식으로 삼게 했다.
- 혜제에게는 홍유(弘孺)라는 이름의 환관 정부(情人)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 환관이 매우 총애를 받아 많은 관리들이 그의 옷차림을 모방하며 황제의 관심을 끌려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 후대에 혜제는 사료의 제한과 한문제(汉文帝)의 위상을 높이려는 역사 서술의 영향으로 ‘인약(仁弱)’한 군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수 학자들이 그가 여후와 협력하여 황로지도를 통해 백성들이 휴식할 수 있도록 한 점을 들어 재평가하기도 한다.
【기원전 188년】
- 가을 : 전한 혜제가 장안현(長安縣) 미앙궁(未央宮)에서 불특정한 질병으로 사망한 해이다. 향년 23세(혹은 22세)로, 짧은 생을 살았다. 혜제의 시호는 효혜황제(孝惠皇帝)이다.
- 그의 사후, 여후는 그의 아들들로 알려진 유공(劉恭)과 유홍(劉弘)을 차례로 황위에 앉혔으나, 이들은 모두 여후가 자신의 일족을 키우기 위해 양자로 들인 아이들이었다. 이후 ‘여씨 멸망(誅滅諸呂)’ 시기에 대신들에 의해 이들 모두 제거되었고, 혜제의 이복동생인 유항(劉恒)이 한문제(文帝)로 옹립되었다.
- 혜제는 비록 짧은 기간 황위에 있었지만,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권력은 모후인 여후에게 집중되었으며, 이는 그의 통치 방식과 이후 역사적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부드럽고 관대한 성품으로 민생 안정에 기여하려 했으나, 가족 내 비극과 모후의 강권정치에 가려진 비운의 황제이기도 하다.
【요약】
- 출생 : 진(秦)나라 시대(구체적인 연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아버지 유방이 한왕이 될 때 5살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기원전 210년경으로 추정된다)
출생지 : 구체적으로 언급된 내용은 없다. - 사망 : 기원전 188년 가을, 원인 불명의 질병으로 사망했다 .
사망지 : (자료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보통 황궁인) 장안(長安)으로 추정. - 부모
부 : 한 태조 고황제 유방(漢太祖高皇帝 劉邦)
모 : 한 고황후 여치(漢高皇后 呂雉) - 형제자매
장형 : 제도혜왕 유비(齊悼惠王 劉肥)
셋째 동생 : 조은왕 유여의(趙隱王 劉如意)
넷째 동생 : 한 문제 유항(漢文帝 劉恆)
다섯째 동생 : 조공왕 유회(趙共王 劉恢)
여섯째 동생 : 조유왕 유우(趙幽王 劉友)
일곱째 동생 : 회남려왕 유장(淮南厲王 劉長)
여덟째 동생 : 연령왕 유건(燕靈王 劉建)
이복 누나 겸 장모 : 노원공주(魯元公主) - 후비 및 아내
황태자비(이름 미상) : 유방 재위 중 맞이한 황태자의 아내. 유영(혜제)이 즉위한 뒤에는 황후로 책봉되지 않았고, 즉위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황후 : 효혜황후 장씨(孝惠皇后 張氏), 기원전 192년 11월 10일, 여태후가 외손녀를 아들에게 시집보냄. 유영(효혜제)의 황후이자, 루원공주와 선평후 장오의 딸. 즉, 유영의 외조카가 황후가 됨. 여태후는 외손녀에게 아들을 낳게 하려 했으나, 결국 자식을 얻지 못함.
미인 모씨 : 서한 전소제의 생모. 효혜황후가 아들이 없자, 이 미인이 낳은 아이를 자신의 자식이라 속이고 태자로 세움. 여치가 아이의 생모를 살해함.
기원전 168년: 효문제 유항이 혜제의 후궁들을 개가시키도록 명령. 이때는 혜제가 사망한 지 약 20년이 지난 시점. - 자녀들
1. 태자(이름 미상, 추정: 유공 劉恭) : 기원전 188년 10월 19일 즉위(전소제). 여태후에게 감금되어 후에 살해됨.
2. 유강(劉彊) : 기원전 187년 6월 6일, 회양왕으로 봉해짐. 기원전 183년 8~9월 사망. 시호는 ‘회’ → 회양회왕(淮陽懷王).
3. 유불의(劉不疑) : 기원전 210~188년 사이 출생, 기원전 186년 사망. 생모 불명. 기원전 187년, 항산왕으로 봉해짐. 기원전 186년 사망, 시호: 애 → 항산애왕(恒山哀王), 훗날 그의 동생 유의가 항산왕으로 봉해짐. 훗날 이들 형제가 여후가 입양한 비황족이라는 주장 등장.
4. 유산(劉山) → 개명 후 유의(劉義) → 즉위 후 유홍(劉弘) : 기원전 187년 회양후로 봉해짐 → 기원전 184년 항산왕 → 기원전 183년 즉위 → 유홍으로 개명. 기원전 180년, 여태후 사망 후 제후들과 중신들이 여씨 외척을 제거(주여 사건). 기원전 180년 11월 14일, 혜제의 자식이 아님이 드러나면서 유의와 형제들 모두 살해됨. 보통 “후소제”(後少帝)로 불림.
5. 유조(劉朝) : 생몰 불명, 기원전 180년 11월 14일 살해됨. 기원전 187년 지후(轵侯) → 기원전 184년 항산왕. 후에 후소제와 함께 처형.
6. 유무(劉武) : 기원전 187년 호관후 → 기원전 183년 회양왕 → 기원전 180년 처형.
7. 유태(劉太) : 기원전 184년 3월 창평후 → 기원전 181년 제천왕 → 기원전 180년 10월 양왕(梁王), 기원전 180년 11월 14일 처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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