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 12대 성제 유오(成帝 劉驁, BC. 51~7년) : 재위 BC. 33~7년
【기원전 51년】
- 유오(劉驁)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자(字)는 태손(太孫)이다.
- 전한 원제(元帝) 유석(劉奭)과 효원황후 왕정군(王政君)의 맏아들이다.
- 출생지는 장안(長安)으로 추정된다.
【어린 시절】
- 아버지 원제가 황제로 즉위하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기원전 33년】
- 8월 4일 또는 29일(음력)에 아버지 원제의 뒤를 이어 전한의 12대 황제로 즉위했다.
- 그의 재위 기간은 기원전 33년부터 기원전 7년까지 총 26년간이다.
- 재위 기간의 연호 :
건시(建始) : 기원전 32년 ~ 기원전 28년
하평(河平) : 기원전 28년 ~ 기원전 24년
양삭(陽朔) : 기원전 24년 ~ 기원전 20년
홍가(鴻嘉) : 기원전 20년 ~ 기원전 16년
영시(永始) : 기원전 16년 ~ 기원전 12년
원연(元延) : 기원전 12년 ~ 기원전 8년
수화(綏和) : 기원전 8년 ~ 기원전 7년
【재위 초반】 외척 왕씨(王氏) 가문의 득세
- 어머니 왕정군(王政君)의 일족인 왕씨(王氏) 가문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 숙부 왕봉(王鳳)이 대사마(大司馬)로서 권력을 독점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했고, 이후 왕씨 가문의 왕음(王音), 왕상(王商), 왕근(王根), 왕망(王莽) 등이 계속해서 대사마 자리를 이어받으며 외척 세력이 한나라 조정을 장악했다.
- 성제는 이들의 권력 장악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태도를 보였다.
【재위 중반】 후궁 조비연(趙飛燕) 자매의 등장과 국정 혼란
- 총애하던 허황후(許皇后)가 폐위된 후, 궁녀였던 조비연과 그 여동생 조합덕(趙合德) 자매를 깊이 총애하게 되었다.
- 조씨 자매는 성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궁정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황태자의 자리를 두고 정치적 암투가 심화되었다.
- 성제는 재위 26년 동안 아들을 두지 못했는데, 이는 조씨 자매가 다른 후궁들이 낳은 아들을 의도적으로 죽였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두 명의 친아들이 조합덕의 명령에 따라 사망했고, 이에 성제가 묵인했다는 기록도 있다.
【재위 후반】 국가 기강 해이 및 민심 이반
- 황제의 무능함과 외척 및 후궁들의 전횡으로 인해 부패가 만연하고, 탐욕스러운 관리들이 기승을 부려 백성들의 고통이 심해졌다.
-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한나라의 국운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7년】
- 기원전 7년 4월 17일,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한서(漢書)》에는 그가 4월 계사일에 죽었으며, 원인 불명의 급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조합덕의 독살설도 제기되었으나, 성제 사후 조합덕이 자살하여 진실은 미궁에 빠졌다.
- 능은 장안 인근의 연릉(延陵)이다.
- 그는 아들 없이 사망했으며, 조카인 정도공왕(定陶恭王) 유강(劉康)의 아들인 유흔(劉欣)이 즉위하여 전한 애제(哀帝)가 되었다.
- 성제 사후에도 외척 왕망의 권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요약 정보】
- 이름 : 유오(劉驁)
- 자(字) : 태손(太孫)
- 묘호 : 통종(統宗) (이후 취소)
- 시호 : 효성황제(孝成皇帝) : 성제(成帝)는 줄임말
- 출생 : 기원전 51년
- 출생지 : 장안(長安)으로 추정
- 사망 : 기원전 7년 4월 17일 (향년 44세)
- 사망지 : 장안(長安)
- 부친 : 전한 원제(元帝) 유석(劉奭)
- 모친 : 효원황후 왕정군(王政君)
- 재위 : 기원전 33년 8월 4일 ~ 기원전 7년 4월 17일 (26년간)
- 전임 : 전한 원제(元帝) 유석(劉奭)
- 후임 : 전한 애제(哀帝) 유흔(劉欣)
- 전한 성제는 재위 기간 동안 외척 왕씨 가문의 권력 장악과 후궁 조씨 자매의 전횡을 막지 못하여 한나라 국력을 크게 쇠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무능한 통치는 결국 왕망의 전한 찬탈이라는 비극의 씨앗을 뿌린 시대로 기억된다.
【성제의 배우자들】
- 허황후(孝成许皇后) : 폐위된 후 자매를 통해 정릉후 순우장에게 뇌물을 주고 한원제 사망 후 다시 황후가 되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발각되어 기원전 8년에 한성제에게 독약을 받아 자살했음
- 조황후(赵皇后) : '비연(飞燕)'이라는 별명을 가짐, 흔히 조비연으로 알려짐
- 조소의(赵昭仪) : 야사에서는 조합덕(赵合德)이라고 불림, 조비연의 여동생
- 반접여(班婕妤) : 한성제의 총애를 받던 궁녀
- 위접여(卫婕妤) : 본명은 이평(李平), 반접여의 시녀였음
- 마접여(马婕妤) : 두 명이 있으며, 동한 명덕 마황후 조부의 자매
- 왕미인(王美人) : 임신 중에 허황후의 언니 허설에 의해 저주를 받음
- 장미인(张美人) : 왕풍 첩의 여동생으로, 이미 결혼했으나 "자녀를 낳기 좋다"는 명목으로 한성제의 비빈이 됨
- 허미인(许美人) : 아들을 낳았으나 살해당함
- 조궁(曹宫)
조비연의 비서로, 여성 동성애자였으며 신분이 신비로움
아들을 낳았으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불명확함
조궁과 그의 아들 모두 한성제에 의해 처형됨
이 사건은 서한 후기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침
조합덕과 한성제 모두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의심을 품었음
조궁만이 아이의 아버지가 한성제라고 주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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