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1일 목요일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 BC.?~649) : 로마의 군사적 확장을 이끈 전투의 왕(BC.c.672~c.640)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 BC.?~649) : 로마의 군사적 확장을 이끈 전투의 왕(BC.c.672~c.640)

 
  •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
  • 출생 : 미상
  • 사망 : 기원전 640년경
  • 재위 : 기원전 672년경 ~ 기원전 640년경
  • 전임 :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
  • 후임 : 안쿠스 마르키우스(Ancus Marcius)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 라틴어: Tullus Hostilius, 기원전 672년경~기원전 640년경 재위)는 전설적인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Romulus)와 평화의 왕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에 이어 로마의 제3대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통치는 로마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에 따르면 약 32년간 지속되었다. 그는 선대 왕 누마의 평화적인 통치가 로마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믿었으며, 적극적으로 전쟁을 추구하여 로마의 군사적 기틀을 다지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의 이름은 라틴어로 적대적인’, ‘호전적인을 의미하는 ‘Hostilis’에서 유래하는데, 그의 성격과 통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기욤 루이예가 1553년에 제작한 『유명 인물 초상집』에서 발췌한 초상화
기욤 루이예가 1553년에 제작한 유명 인물 초상집에서 발췌한 초상화
 

1. 전임자 누마와의 대비 : 전쟁을 통한 강화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는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뒤를 이었다. 누마는 로마의 종교적, 법적 기초를 확립하고 43년간 평화로운 통치를 이어간 현명한 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툴루스는 누마의 평화주의적 통치 방식이 로마의 군사력을 약화시켰다고 판단했다. 그는 로마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수적이라고 믿었으며, 심지어 로마의 전설적인 건국자인 로물루스보다도 더 호전적인 인물로 묘사될 정도였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즉시 전쟁을 찾아 나섰다.
 

2. 호전적인 통치와 주요 군사 작전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는 재위 기간 내내 로마의 군사적 확장에 집중했다.
 
  • 알바 롱가(Alba Longa)와의 전쟁 :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알바 롱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알바 롱가는 로마의 모도시 격인 라틴 도시였으며, 이 전쟁은 두 도시 간의 패권을 결정짓는 중요한 싸움이었다. 이 전쟁은 호라티우스 삼형제와 쿠리아티우스 삼형제의 비극적인 일대일 대결로 유명한데, 이는 양측 군대가 아닌 소수의 영웅들 간의 전투로 승부를 가름하여 불필요한 인명 피해를 줄이려 했던 당시의 독특한 전쟁 양상을 보여준다. 리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의 호라티우스 형제가 승리함으로써 로마는 알바 롱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알바 롱가는 로마에 복종했으나, 이후 로마의 요구에 불응하여 툴루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주민들은 로마로 이주되었다.
  • 피데나이(Fidenae)와 베이(Veii)와의 전쟁 : 툴루스는 피데나이와 베이 등 이웃 도시들과도 전쟁을 벌였다. 이는 로마의 초기 영토 확장에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툴루스의 이러한 군사적 성공은 로마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로마 시민의 수는 두 배로 늘어났다고 전해진다. 이는 정복된 도시의 주민들을 로마로 이주시키고, 늘어난 인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로마 군대를 재조직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였다.
 

3. 종교적 소홀과 신들의 진노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는 군사적 재능에 비해 종교적 의례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그는 종교적인 일을 왕의 관심사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통치 말기, 로마는 일련의 불길한 징조들, 예를 들어 알반 산(Alban Mount)에 돌이 쏟아지는 현상이나 전염병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병에 걸려 몸져눕게 된 툴루스는 비로소 신들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뒤늦게 종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선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가 남긴 종교 주해서들을 뒤적이며 율리우스 주피터 신(Jupiter Elicius)에게 바치는 제례 의식을 행하려 했다. 그러나 툴루스는 이 신성한 의식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4.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의 죽음 : 전설과 기록의 충돌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전해진다. 이는 그의 생애가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요소가 뒤섞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 신화적 버전 : 리비우스가 묘사하는 가장 유명한 버전은 그가 신성한 의식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주피터 신의 진노를 샀다는 것이다. 주피터는 분노하여 벼락을 내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와 그의 집을 불태워 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 비신화적/다른 버전 : 다른 비신화적인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전염병으로 사망했다고도 한다. 혹은,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의 후임자가 된 안쿠스 마르키우스(Ancus Marcius)와 그의 추종자들이 옷 속에 칼을 숨기고 툴루스의 집에 침입하여 툴루스와 그의 가족, 하인들을 살해하고 재산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왕위 찬탈의 과정이 암살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는 총 32년간 로마를 통치했다고 전해진다.
 

5.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의 역사적 평가와 유산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에 대한 현대 역사가들의 평가는 복합적이다. 초기 로마의 왕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신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업적 또한 과장되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의 호전적인 성격이 평화로운 누마 폼필리우스와 대비되는 스테레오타입에 불과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로물루스와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사이에 양치기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피데나이와 베이와 전쟁을 벌였다, 시민의 수를 두 배로 늘렸다, 군대를 조직했다는 등 유사한 업적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이야기가 로물루스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수사적 중복(rhetorical doublet)’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라는 이름 자체가 고대 로마 문화에서 흔치 않은 툴루스(Tullus)’라는 프라이노멘(praenomen, 개인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적어도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일 가능성은 높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는 로마 건국 초기 로마의 군사적 기반을 확고히 하고, 이웃 국가들을 정복하며 로마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왕으로 기억된다. 비록 그의 종교적 소홀함이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남겼지만, 그는 로마의 정체성이 군사적 강인함에 뿌리내리게 한 중요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6. 대중문화 속의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의 이야기는 후대에 다양한 예술 작품과 미디어에 영감을 주었다.
 
  • 1961년 영화 <결투의 챔피언(Duel of Champions)>에서는 배우 로버트 키스(Robert Keith, 1900~1966)가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를 연기했다. 이 영화는 호라티우스 형제와 쿠리아티우스 형제의 대결을 중심으로 다룬다.
  • 베르길리우스(Virgil, 기원전 70~기원전 19)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에서도 툴루스 호스틸리우스가 간략하게 언급된다.
  • SF 소설가 필립 호세 파머(Philip José Farmer, 1918~2009)<강의 세계(Riverworld)>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인 <당신의 흩어진 몸으로(To Your Scattered Bodies Go)>에도 등장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 1893~1946)과 팀을 이뤄 노예 국가를 운영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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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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