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1일 목요일

안쿠스 마르키우스(Ancus Marcius, BC.?~c.616) : 로마의 종교와 정복을 겸비한 네 번째 왕(BC.c.640~c.616)

안쿠스 마르키우스(Ancus Marcius, BC.?~c.616) : 로마의 종교와 정복을 겸비한 네 번째 왕(BC.c.640~c.616)

 
안쿠스 마르키우스(Ancus Marcius)는 고대 로마의 전설적인 네 번째 왕이다. 그는 전임자들의 특징을 절묘하게 결합한 통치자로 평가받는다.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와 같은 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안쿠스는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Romulus)처럼 전쟁을 벌이는 동시에 평화의 왕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처럼 종교를 장려하는 균형 잡힌 모습을 보였다. 그의 통치는 약 24년간 지속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기간 동안 로마는 군사적으로 확장하고 중요한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하며 더욱 강력한 도시 국가로 발돋움했다. 후대에 유력한 평민 귀족 가문인 마르키아 가문(Marcia gens)은 자신들의 조상이 안쿠스 마르키우스라고 주장하며 그와의 혈연적 관계를 강조했다.
 
기원전 57년에 주조된 데나리우스 은화에 묘사된 안쿠스 마르키우스
기원전 57년에 주조된 데나리우스 은화에 묘사된 안쿠스 마르키우스
 

1. 가계와 배경 : 평화의 왕 누마의 후예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평화와 종교를 로마에 확립한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손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마르키우스(Marcius)였고, 어머니는 누마의 딸 폼필리아(Pompilia)였다. 따라서 안쿠스는 혈통적으로 사비니족(Sabines) 출신이었다. 고대 로마 학자 페스투스(Festus)에 따르면, 그의 이름에 붙은 안쿠스(Ancus)’구부러진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그가 구부러진 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누마의 후계자였던 호전적인 제3대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가 사망한 후, 원로원의 임시 섭정(interrex)에 의해 선출되었고, 민중 의회의 투표를 통해 로마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다. 그의 즉위는 툴루스 시대에 소홀히 되었던 종교적 의례를 다시 중요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왕으로서의 첫 행보 : 종교적 회복

 
안쿠스 마르키우스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선대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에 의해 무시되었던 종교 의례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리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안쿠스는 대제사장(Pontifex Maximus)에게 누마 폼필리우스의 주해서에 기록된 공공 종교 의식에 관한 모든 텍스트를 복사하여 대중에 공개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종교 의례가 더 이상 소홀히 다뤄지거나 부적절하게 수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조치는 안쿠스가 누마로부터 물려받은 평화롭고 종교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동시에, 로마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회복하려는 그의 의지를 나타냈다.
 

3. 전쟁과 정복 : 로마의 영토 확장

 
평화를 지향했던 누마와는 달리,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로마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적극적인 군사 활동을 펼쳤다.
 
  • 라틴인과의 전쟁 : 안쿠스가 왕이 되자 라틴족은 그가 누마처럼 평화로운 통치를 이어갈 것이라고 오판하고 로마 영토를 침범했다. 이에 안쿠스는 라틴족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이 전쟁은 로마 역사상 최초로 페티알레스(fetials)라는 신성한 사제 집단에 의해 공식적인 선전포고 의례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기록된다. 안쿠스는 새로 징집된 군대를 이끌고 라틴 도시 폴리토리움(Politorium)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그는 폴리토리움 주민들을 로마의 아벤티노 언덕(Aventine Hill)으로 이주시켰고, 이들은 로마의 새로운 시민이 되었다. 나중에 다른 라틴인들이 다시 폴리토리움을 점령하자, 안쿠스는 도시를 재점령하고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이 외에도 라틴족 마을인 텔레나이(Tellenae)와 피카나(Ficana)도 약탈하고 파괴했다.
  • 메둘리아(Medullia) 공성 : 그는 또한 메둘리아라는 요새화된 라틴 도시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했고, 이곳에서 얻은 막대한 전리품과 주민들을 로마로 데려왔다. 메둘리아 주민들 또한 로마 시민이 되어 아벤티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 근처에 정착했다.
  • 사비니족과 베이엔테스(Veientes) 정복 : 안쿠스는 사비니족과 베이엔테스에 대한 원정에서도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러한 군사적 성공을 기념하여 유피테르 페레트리우스 신전(Temple of Jupiter Feretrius)을 확장했다. 그는 사비니족과 베이엔테스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개선식(triumph)을 거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복 전쟁들은 로마의 영토를 확장하고 시민의 수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안쿠스는 누마의 평화주의와는 달리, 로물루스의 강력한 군사적 리더십을 계승한 왕이었다.
 

4. 로마의 성장과 인프라 확충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군사적 확장 외에도 로마 도시의 발전과 인프라 확충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 야니쿨룸 언덕(Janiculum) 통합 및 요새화 : 그는 테베레 강(Tiber River) 서쪽에 위치한 야니쿨룸 언덕을 로마 시에 통합하고 요새화했다. 이는 로마 서쪽 방어선을 강화하는 중요한 조치였다.
  • 폰스 수블리키우스(Pons Sublicius) 건설 : 야니쿨룸 언덕과 로마 시를 연결하기 위해 테베레 강 위에 로마 최초의 목조 다리인 폰스 수블리키우스를 건설했다. 이 다리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야니쿨룸 쪽 끝이 요새화되었다.
  • 포사 퀴리티움(Fossa Quiritium) 건설 : 육상 국경 방어를 위해 도시에 인접하여 '포사 퀴리티움'이라는 해자 요새를 건설했다.
  • 마메르티네 감옥(Mamertine Prison) 건설 : 그는 로마 최초의 감옥인 마메르티네 감옥을 건설했다.
  • 오스티아(Ostia) 항구 건설 : 테베레 강 하구에 로마 최초의 항구인 오스티아를 건설했다. 이 항구는 로마의 해상 무역을 촉진하고 도시의 경제적 번영에 기여했으며, 항구 주변에는 소금 공장(salt-works)도 설립했다.
  • 실바 마이시아(Silva Maesia) 확보 : 테베레 강 북쪽 해안 숲 지역인 실바 마이시아를 베이엔테스족으로부터 빼앗아 확보했다.
 
이러한 건설 프로젝트와 영토 확장은 안쿠스가 로마를 단순한 도시를 넘어, 강력하고 번영하는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5. 죽음과 계승 : 왕좌를 둘러싼 암투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약 24년간의 통치를 마친 후 자연사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왕위를 계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그의 궁정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Lucius Tarquinius Priscus)가 왕위 계승에 개입했다. 프리스쿠스는 안쿠스의 아들들이 로마를 비우게 만든 후, 로마 민중의 지지를 얻어 왕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왕위를 빼앗긴 안쿠스의 아들들은 이에 불만을 품었다. 훗날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안쿠스의 아들들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이러한 사건은 로마 초기 왕정 시대의 권력 승계가 항상 순조롭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6. 안쿠스 마르키우스의 유산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로마의 종교적 기반을 재확립하고 군사적으로 로마의 영토를 확장하며, 도시의 필수적인 인프라를 구축한 다재다능한 통치자였다. 그는 로물루스의 강력한 군사적 리더십과 누마의 종교적 지혜를 계승하고 결합하여 로마를 더욱 견고한 도시 국가로 만들었다. 비록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있었던 여러 전승들이 신화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는 로마의 발전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 중요한 왕으로 로마인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다. 그의 업적은 로마가 이후 공화정과 제정 시대로 발전할 수 있는 굳건한 기반이 되었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 BC.?~c.535) : 로마의 기반을 혁신한 전설적인 왕(BC.c.578~c.535)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Servius Tullius, BC.?~c.535) : 로마의 기반을 혁신한 전설적인 왕 (BC.c.578~c.535)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Servius Tullius) 출생 : 미상 사망 : 기원전 535 년경 부친 :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