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3일 수요일

실반나쿠스(Silbannacus, AD.?~?) : 로마 제국 황제(아이밀리아누스와 발레리아누스 사이?)

실반나쿠스(Silbannacus, AD.?~?) : 로마 제국 황제(아이밀리아누스와 발레리아누스 사이?)

 

1. 알려지지 않은 황제, 실반나쿠스(Silbannacus) : 3세기 로마 제국의 미스터리

 
고대 로마의 역사는 수많은 황제와 권력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3세기 위기(Crisis of the Third Century)는 제국이 혼란에 빠졌던 시기로, 수많은 단명한 황제와 찬탈자들이 등장하며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실반나쿠스(Silbannacus)는 바로 이 시기, 기록의 안개 속에 감춰져 있던 인물이다. 그는 오랫동안 잊혔지만, 20세기에 두 개의 동전이 발견되면서 그의 존재가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현재까지 실반나쿠스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는 이 두 개의 동전뿐이며, 이 때문에 그의 통치 기간과 범위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실반나쿠스(Silbannacus, AD.?~?) : 로마 제국 황제(아이밀리아누스와 발레리아누스 사이?)
실반나쿠스(Silbannacus, AD.?~?) : 로마 제국 황제(아이밀리아누스와 발레리아누스 사이?)
 

2. 실반나쿠스라는 이름에 담긴 비밀

 
실반나쿠스의 이름은 임페라토르 마르. 실반나쿠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Mar. Silbannacus Augustus)로 동전에 새겨져 있다. 이 특이한 이름은 그의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독일의 역사학자 펠릭스 하르트만(Felix Hartmann)과 영국의 역사학자 맥스웰 크레이븐(Maxwell Craven)에 따르면, “아쿠스(-acus)”라는 접미사 때문에 그의 이름은 켈트족 기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는 실반나쿠스가 갈리아(Gaul) 또는 브리튼(Britain) 혈통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의 이름이 실바나쿠스(Silvannacus) 또는 실바니아쿠스(Silvaniacus)의 오타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름들은 로마 신화의 숲의 신 실바누스(Silvanus)에서 유래하며,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그는 에트루리아 신 셀반스(Selvans)와 연관될 수 있어 이탈리아 중부 출신일 수도 있다. 북부 이탈리아의 켈트-갈리아족 문화권 역시 아쿠스(-acus)” 접미사를 설명할 수 있는 대안적인 기원을 제공한다. 동전의 오타는 리키니우스(Licinius, 재위 308-324)의 동전에서 리킨니우스(Licinnius)”, 베트라니오(Vetranio, 재위 350)의 동전에서 베르타니오(Vertanio)”로 잘못 표기된 사례와 같이 로마 동전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그의 이름에 있는 마르.(Mar.)”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있다. 흔한 로마 이름인 마르쿠스(Marcus)”가 주로 사용되지만, 이 시기 동전에는 전형적으로 사용되지 않던 형태이다. 크레이븐은 마르키우스(Marcius) 또는 마리우스(Marius)가 더 유력한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독일의 역사학자 크리스티안 쾨르너(Christian Körner)는 마리누스(Marinus)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그의 이름이 마르키우스였다면, 그는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Philip the Arab, 재위 244-249)의 아내이자 황후인 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Marcia Otacilia Severa)와 친척 관계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3. 실반나쿠스에 대한 두 가지 주요 가설

 
실반나쿠스에 대한 기록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그가 언제, 어디서 통치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요 가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그가 필리푸스 아라부스(Philip the Arab, 재위 244-249) 재위 기간 중인 248년에서 250년 사이 갈리아(Gaul)에서 활동했던 찬탈자라는 오랜 가설이다. 두 번째는 1980년대에 발견된 두 번째 동전의 양식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가설로, 그가 아이밀리아누스(Aemilian, 재위 253) 황제의 사망과 발레리아누스(Valerian, 재위 253-260) 황제의 로마 입성 사이에 로마(Rome)를 잠시 통치했던 정당한 황제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 갈리아의 찬탈자 가설

 
1930년대에 발견된 첫 번째 실반나쿠스 동전의 양식을 토대로, 영국의 고전학자 해럴드 매팅리(Harold Mattingly)249년에서 250년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3세기 중반이라는 이 추정에 동의하며, 그를 주로 필리푸스 아라부스(Philip the Arab, 재위 244-249) 통치 시기의 찬탈자로 보았다. 역사가 맥스웰 크레이븐(Maxwell Craven)은 특히 248년을 가장 유력한 시기로 제안하며, 실반나쿠스의 반란이 이후 찬탈자들인 스폰시아누스(Sponsianus), 파카티아누스(Pacatian), 요타피아누스(Jotapian)의 봉기 직전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이 동전이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시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실반나쿠스를 데키우스(Decius, 재위 249-251) 황제의 통치 시기에 두거나, 심지어 갈리아 제국(Gallic Empire)을 세운 포스투무스(Postumus, 재위 260-269) 직전의 인물로 보기도 한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J. M. 두아앵(J. M. Doyen)1989년에 처음으로 이러한 생각을 제안했다.
 
갈리아에서 발견된 동전 외에도, 첫 번째 동전의 뒷면에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Victoria)를 든 메르쿠리우스(Mercury) 신이 묘사된 것이 실반나쿠스가 갈리아와 관련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메르쿠리우스는 갈리아에서 탁월한 신이었으며, 포스투무스의 동전에도 나중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르쿠리우스 신의 등장은 3세기 후반까지 동전에서 흔치 않아 정확한 연대 측정은 여전히 어렵다.
 

2) 로마의 정당한 황제 가설

 
1980년대에 발견된 두 번째 실반나쿠스 동전의 양식은 아이밀리아누스(Aemilian, 재위 253) 황제의 동전 디자인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실반나쿠스가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시기보다 늦게, 아이밀리아누스의 짧은 통치 시기쯤에 군림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동전에 묘사된 실반나쿠스의 흉상과 “MARTI PROPVGT”라는 문구는 아이밀리아누스의 동전과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유사성은 두 동전이 같은 조폐국에서 제작되었을 수 있음을 암시하며, 이는 실반나쿠스가 제국의 수도에 있는 조폐국을 잠시 장악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
 
253년은 로마 제국에 매우 혼란스러운 해였으며, 남아있는 자료 부족으로 많은 사건들이 불분명하다. 아이밀리아누스는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Trebonianus Gallus, 재위 251-253)의 뒤를 이어 황제로 선포되었지만, 발레리아누스(Valerian, 재위 253-260)의 반란으로 암살당했다. 두 번째 동전의 특징이 로마에서 주조된 동전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실반나쿠스가 갈리아의 찬탈자가 아니라 로마 수도를 잠시 통치했던 통치자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국의 역사학자 케빈 버처(Kevin Butcher)는 실반나쿠스가 아이밀리아누스의 부관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이밀리아누스 사망 직후 로마를 확보하고 발레리아누스에 대항하려 했지만 실패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이다. 실반나쿠스의 동전들이 모두 갈리아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로마 통치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제국 내에서 화폐는 유통되었으며, 수도에서 라인 국경으로의 동전 이동 경로가 추적 가능하기 때문이다. 로마를 통치했다면, 로마 원로원의 지지를 받아 짧지만 정당한 황제로 간주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동전을 공개한 에스티오(Estiot)와 독일의 역사학자 우도 하르트만(Udo Hartmann)을 포함한 일부 역사학자들은 실반나쿠스가 로마에서 통치했다는 가설을 가장 유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4. 끝나지 않은 역사적 미스터리

 
실반나쿠스는 3세기 로마의 혼란 속에서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두 개의 동전만이 그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 뿐, 자세한 기록은 전무한 상태이다. 그가 갈리아의 한 찬탈자였는지, 아니면 잠시나마 로마의 보좌에 앉았던 정당한 황제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이 실반나쿠스라는 인물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그의 이야기는 로마 제국 3세기 위기의 복잡성과, 사라진 역사 속에서 작은 흔적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려는 역사가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동전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역사적 비밀을 풀어내는 과정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실반나쿠스라는 미스터리는 앞으로도 새로운 발견과 연구를 통해 점차 그 베일을 벗겨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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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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