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09] 자마 공방전(Siege of Zama) : 유구르타의 끈기와 로마의 좌절

 

고대 로마 공화국(Roman Republic)이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 패권을 공고히 하던 시기,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 왕국에서는 한 편의 길고 복잡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유구르타 전쟁(Jugurthine War)'이다. 기원전 109년, 로마군이 누미디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자마(Zama)를 포위하며 벌어진 자마 공방전은 이 전쟁의 중요한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전투는 서부 지중해 패권을 결정지은 제2차 포에니 전쟁(Second Punic War)의 최종 결전인 자마 전투와는 구별되는 별개의 사건으로, 유구르타 전쟁의 복잡성과 로마의 초기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가 이끄는 로마군과 누미디아의 왕 유구르타(Jugurtha)의 지휘 아래 벌어진 이 공방전은 결국 로마군의 실패와 철수로 끝났다. 이는 유구르타의 탁월한 지략과 누미디아군의 끈질긴 저항이 로마군에게 얼마나 큰 어려움을 주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1. 유구르타 전쟁의 서막 : 누미디아의 혼란과 로마의 개입

 

자마 공방전이 발발하기 이전, 누미디아 왕국은 격렬한 왕위 계승 분쟁에 휘말려 있었다. 이 분쟁은 로마 공화국과 누미디아 간의 장기적인 전쟁, 즉 유구르타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마시니사의 유산과 미키프사의 통치 : 누미디아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강력한 고대 왕국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의 중요한 동맹국으로 활약했다. 마시니사(Masinissa, 기원전 238년-기원전 148년) 왕은 로마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통치 아래 누미디아는 번영을 누렸다. 기원전 149년 마시니사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미키프사(Micipsa, 기원전 149년-기원전 118년 통치)가 왕위를 계승하여 약 30년간 누미디아를 다스렸다.

 

세 명의 상속자와 유구르타의 야심 : 미키프사에게는 두 명의 적자, 즉 아데르발(Adherbal, 생몰년 미상)과 힘살 1세(Hiempsal I, 생몰년 미상)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후계 구도에는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더 있었다. 바로 미키프사의 서자 조카인 유구르타(Jugurtha, 기원전 160년경-기원전 104년)였다. 유구르타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군사적 재능과 뛰어난 지략을 보여주었다. 그는 과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 기원전 185년-기원전 129년) 휘하에서 누만티아 공방전(Siege of Numantia)에 참전하여 로마의 군사 전술과 사회 구조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미키프사 왕은 유구르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야심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위협이 될 것을 염려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미키프사는 유구르타를 공식적으로 입양하고,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누미디아의 공동 상속자로 지명했다.

 

왕위 계승 분쟁의 격화 : 미키프사 왕이 사망하자, 세 명의 상속자 사이의 권력 다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왕국을 세 지역으로 분할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유구르타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시켜 가장 어리고 용감했던 힘살 1세(Hiempsal I)를 암살하며 왕위 다툼에 피비린내 나는 서막을 열었다. 힘살 1세가 제거되자 유구르타는 아데르발(Adherbal)에게 전면전을 선포했고, 아데르발은 위협을 느껴 로마 공화국에 망명하여 원로원(Roman Senate)에 도움을 호소했다.

 

로마 원로원은 누미디아의 왕위 계승 분쟁에 개입하여 조사를 진행했지만, 유구르타의 막대한 뇌물 공세로 인해 공정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러한 로마의 부패하고 미온적인 태도는 유구르타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다. 결국 유구르타는 기원전 113년에 아데르발의 영토를 침공했고, 수도 키르타(Cirta)까지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키르타 공방전(Siege of Cirta)에서 로마 시민들까지 살해되는 참극이 벌어졌음에도, 로마 원로원은 여전히 유구르타의 뇌물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키르타에서의 로마 시민 학살 소식이 로마 본토에 전해지자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고, 결국 로마 원로원은 대중의 압력에 못 이겨 유구르타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2. 메텔루스의 지휘와 전략 전환

 

유구르타 전쟁이 발발한 후, 로마군은 유구르타의 교활한 게릴라 전술과 뇌물 살포, 그리고 로마 지휘부 내의 갈등과 부패로 인해 연이은 실패를 겪었다. 이러한 상황은 로마 대중의 강한 비판을 불러왔고, 로마는 전쟁의 흐름을 바꿀 유능한 지휘관을 필요로 했다.

 

메텔루스의 임명과 군대 재정비 : 기원전 109년, 로마는 명망 높고 강직한 인물인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 기원전 160년경-기원전 91년)를 집정관(consul)으로 선출하고 아프리카 전역의 총사령관으로 파견했다. 메텔루스는 부패와 무능력으로 사기가 저하된 로마군을 재정비하는 데 전념했다. 그는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여 병사들의 기강을 확립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그 과정에서 메텔루스는 가이우스 마리우스(Gaius Marius, 기원전 157년-기원전 86년)와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Publius Rutilius Rufus, 기원전 158년-기원전 78년)와 같은 유능한 장교들을 발탁하여 자신의 지휘 아래 두었다.

 

무툴 전투와 유구르타의 전술 변화 : 기원전 109년 봄,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는 재정비된 군대를 이끌고 누미디아 깊숙이 진격했다. 무툴 강(Muthul River)에서 유구르타(Jugurtha)는 로마군을 상대로 매복 공격을 감행했다. 이 무툴 전투(Battle of the Muthul)는 비록 전술적으로는 무승부였지만, 로마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특히 가이우스 마리우스(Gaius Marius)의 탁월한 군사적 재능이 빛을 발한 전투였다. 무툴 전투 이후, 유구르타는 로마군과의 정면 대결을 완전히 피하고 게릴라 전술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변경했다. 그는 소규모 부대를 이용해 로마군의 보급선을 괴롭히고, 외딴 기지들을 급습하며 로마군을 끊임없이 지치게 만들었다.

 

자마 공방전의 목적 : 이러한 유구르타의 게릴라 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그는 유구르타(Jugurtha)를 개방된 지형으로 끌어내 결정적인 회전(pitched battle)을 유도하기 위해 누미디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를 포위하기로 결정했다. 그 목표로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가 선택한 곳이 바로 자마(Zama)였다. 자마 공방전의 주된 목적은 도시를 점령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구르타(Jugurtha)가 포위된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마로 돌아오게 하여 로마군과의 전면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마의 방어 준비 : 유구르타(Jugurtha)는 로마군의 계획을 미리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첩보망을 통해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방어 전략을 세웠다. 유구르타는 즉시 그의 가장 충성스러운 병사들로 구성된 지원군을 자마로 급파하여 도시 방어 태세를 강화했다. 이 병력은 유구르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배신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예 병력이었다. 유구르타는 자마 시민들에게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올 것이라고 약속하며 사기를 진작시킨 뒤, 잘 은폐된 곳으로 철수하여 때를 기다렸다. 그는 로마군이 자마를 포위하는 동안 외부에서 끊임없이 로마군을 교란할 계획이었다.

 

3. 공방전의 전개 : 이틀간의 치열한 공방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가 이끄는 로마군은 자마에 도착하여 포위 작전을 시작했다. 로마군은 도시를 에워싸고 공성 장비를 배치하는 등 공격 준비를 마쳤다.

 

1) 첫째 날 : 진영 공격과 로마의 혼란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는 각 부관들에게 공격할 특정 지점을 지시한 후, 공격 신호를 내렸다. 로마군 전체의 함성과 함께 자마 성벽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로마군이 도시 공격에 집중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유구르타(Jugurtha)는 그의 병력을 이끌고 로마 진영의 후방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로마군의 방어 병력은 이러한 기습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고, 진영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유구르타(Jugurtha)의 누미디아군은 신속하게 진영 내부로 침투하여 로마 병사들을 학살했다. 일부 로마 병사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고, 다른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고대 역사가 살루스티우스(Sallust, 기원전 86년-35년경)의 기록에 따르면, 단 40명의 로마 병사들만이 굳건히 버텨 작은 언덕을 점령하고 끝까지 저항하여 로마의 명예를 지켰다고 한다.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는 자마 성벽을 공격하는 도중에 후방 진영에서 들려오는 누미디아군의 함성을 듣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그는 급히 돌아보니 로마군 도망병들이 자신의 방향으로 달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메텔루스는 즉시 가이우스 마리우스(Gaius Marius)에게 모든 기병대와 동맹 코호트(cohorts)를 이끌고 진영으로 향하여 상황을 수습하도록 명령했다. 살루스티우스(Sallust)는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가 눈물까지 흘리며 마리우스에게 로마의 명예와 우정을 걸고 이 모욕적인 상황을 수습하고 적이 처벌받지 않고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간청했다고 기록했다. 마리우스(Gaius Marius)는 메텔루스의 명령에 따라 진영으로 진격하여 간신히 위기를 수습하고 유구르타의 병력을 물리쳤다.

 

유구르타(Jugurtha)는 로마 진영 깊숙이 침투하여 큰 피해를 입혔지만, 진영의 요새 안에 갇히는 상황은 피하려 했다. 그는 일부 기병을 팔리세이드(palisades)를 뛰어넘게 하고 다른 병사들을 좁은 통로로 비집고 나가게 하는 등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상당한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거점으로 무사히 철수했다. 유구르타의 이 기습 공격으로 로마군은 심각한 혼란을 겪었으며, 결국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는 날이 저물자 군대와 함께 진영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첫째 날의 공격은 로마의 실패로 끝났다.

 

2) 둘째 날 : 유구르타의 재매복과 로마의 큰 손실

 

다음 날,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는 전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자마 공격을 준비했다. 그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특히 전날 유구르타(Jugurtha)가 공격했던 진영 구역 앞에 모든 기병대를 편대 형태로 배치하여 방어를 강화했다. 병영 문과 적에게 가장 가까운 주둔지의 경비는 트리부누스(tribunes)들에게 분배하여 책임감을 높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는 다시 자마로 진격하여 공격을 재개했다.

 

그러나 유구르타(Jugurtha)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로마군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또 다른 매복 지점에서 나타나 로마군을 향해 돌격했다. 로마군 선두 병사들은 순간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지만, 전우들이 신속하게 지원에 나서면서 전열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누미디아군의 공격은 매우 거세었고, 로마군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누미디아 기병대는 기존의 게릴라식 공격처럼 돌격하고 물러나는 대신, 로마 보병 진영으로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과감하고 비정통적인 전술을 구사했다. 이로 인해 로마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누미디아군의 기발하고 대담한 전술에 로마군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3. 전투의 결과 : 로마의 실패와 철수

 

결국 자마(Zama)에서의 전투는 로마군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는 유구르타(Jugurtha)의 지속적인 교란 전술과 누미디아군의 끈질긴 방어에 막혀 자마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는 큰 인명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목표였던 유구르타와의 결정적인 회전(pitched battle)을 유도하는 데도 실패했다. 전투가 끝난 후, 메텔루스는 더 이상 자마를 포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로마에 복종한 누미디아 도시들에 수비대를 배치한 뒤, 그의 지친 군대와 함께 아프리카의 로마 속주로 철수했다. 이는 로마의 군사적 실패이자 유구르타의 전략적 승리였다.

 

4. 역사적 의의 : 유구르타의 끈기와 로마의 성장통

 

기원전 109년의 자마 공방전은 유구르타 전쟁의 전개 과정에서 로마군이 겪었던 여러 어려움 중 하나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 유구르타의 지략 재입증 : 이 전투는 유구르타(Jugurtha)가 단순한 게릴라 지도자가 아니라, 로마의 숙련된 장군들을 상대로도 함정을 파고, 기만 작전을 구사하며,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전술을 펼칠 줄 아는 탁월한 전략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의 끈질긴 저항은 로마군을 좌절시켰다.
• 로마의 과제 인식 : 자마에서의 실패는 로마군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강점인 정규전만으로는 유구르타의 전술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투를 통해 로마는 적의 기만과 매복에 대비하고, 누미디아의 환경과 적의 유연한 전술에 적응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 군사 개혁의 촉매제 : 유구르타 전쟁은 로마의 군사 시스템과 지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촉발시켰다. 자마 공방전과 같은 초기 패배들은 로마인들이 자만심을 버리고 더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도록 자극했으며, 이는 결국 가이우스 마리우스(Gaius Marius)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장군들이 부상하는 배경이 되었다. 메텔루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Numidicus)가 유구르타를 완전히 제압하는 데 실패했지만, 이 전투에서 얻은 교훈은 이후 로마가 유구르타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기원전 109년의 자마 공방전은 로마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험난한 전쟁의 한 부분이었지만, 이 실패를 통해 로마는 자신들의 약점을 인식하고 더 강력하고 유연한 군사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얻었다. 이는 로마 공화정의 성장통이자, 미래의 성공을 위한 값진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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