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1일 목요일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 BC.?~c.535) : 로마의 기반을 혁신한 전설적인 왕(BC.c.578~c.535)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 BC.?~c.535) : 로마의 기반을 혁신한 전설적인 왕(BC.c.578~c.535)

 
  •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
  • 출생 : 미상
  • 사망 : 기원전 535년경
  • 부친 : 불확실
  • 모친 : 오크리시아(Ocrisia)
  • 배우자 :
    Tarquinia (리비, Livy)
    Gegania (플루타르코스, Plutarch)
  • 재위 : 기원전 578년경 ~ 기원전 535년경
  • 전임 :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Lucius Tarquinius Priscus)
  • 후임 :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Lucius Tarquinius Superbus)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는 고대 로마의 전설적인 제6대 왕이자 에트루리아(Etruscan) 왕조의 두 번째 통치자였다. 그는 약 43년간의 재위 기간 동안 로마의 사회, 군사, 정치 시스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로마인들은 그를 단순한 왕이 아니라, 인구 조사를 바탕으로 한 시민 계급 분류, 군대 재편성, 그리고 도시 확장을 포함하는 세르비우스 개혁(Servian reforms)’을 단행한 위대한 입법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이 났으며, 그는 종종 '마지막 자비로운 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욤 루이예가 1553년에 펴낸 『저명 인물 초상집』에 수록된 초상화
기욤 루이예가 1553년에 펴낸 저명 인물 초상집에 수록된 초상화
 

1. 전설적인 탄생과 베일에 싸인 기원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전승이 존재하며, 대부분 신화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의 탄생은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닌 특별한 운명을 타고났음을 암시한다.
 
  • 리비우스(Livy)의 전승 : 가장 널리 알려진 티투스 리비우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세르비우스는 노예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오크리시아(Ocrisia)는 로마가 정복한 라틴 부족 출신의 공주로, 포로가 되어 로마의 제5대 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Lucius Tarquinius Priscus, 기원전 616년경~기원전 579년경 재위)의 왕비 타나퀼(Tanaquil)의 시녀가 되었다. 어느 날, 잠든 어린 세르비우스의 머리 주변에서 불꽃의 고리가 나타나는 기적적인 징조가 보였다. 타나퀼은 이를 미래의 왕이 될 징조로 해석하고 그를 양육하게 했다. 그는 성장하여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딸과 결혼하게 된다.
  •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의 주장 :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 기원전 10~서기 54)는 세르비우스의 기원에 대해 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세르비우스는 원래 '마스타르나(Mastarna)'라는 이름의 에트루리아 출신 용병으로, 에트루리아의 군사 지도자 카엘리우스 비벤나(Caelius Vibenna)를 위해 싸웠다고 한다. 클라우디우스는 이 주장의 근거로 에트루리아 역사가 타쿠아레스(Tacuares)의 기록과 에트루리아 도시 볼시니이(Volsinii)의 프레스코화를 제시했다.
 
이러한 상반된 전승들은 세르비우스의 실제 기원이 불분명하며, 그의 낮은 신분과 신비로운 배경이 후대 로마인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노예' 출신이라는 신화적 기원은 그의 '개혁적이고 민중 친화적인' 통치와 연결 지어지곤 했다.
 

2. 왕위 계승 : 혁명적이고 논쟁적인 즉위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왕위 계승은 로마 초기 왕정 시대에서 전례 없는 방식이었다. 기존 왕들이 원로원(Senate)과 민중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다소 비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올랐다.
 
  • 타나퀼의 책략 :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전임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Ancus Marcius)의 아들들에게 암살당했다. 이때 타나퀼은 기지를 발휘하여 남편의 죽음을 즉시 공표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타르퀴니우스가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이며, 회복될 때까지 세르비우스에게 섭정을 맡겼다고 거짓으로 발표했다. 이는 왕위 계승 과정에서 혼란과 정변을 막고, 세르비우스를 합법적으로 권력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책략이었다.
  • 논쟁적인 즉위 방식 : 리비우스는 세르비우스가 '원로원에 의한 선출' 또는 '인기 있는 왕실 지지에 의한' 방식으로 즉위했다고 다양하게 설명하며, 그가 로마 왕정 역사상 최초로 원로원의 선출 없이 즉위했거나, 혹은 원로원에 의해서만 선출되었다는 논쟁적인 점을 시사한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에 따르면, 세르비우스는 타나퀼의 강력한 권유에 마지못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 노르만족과의 전쟁 : 세르비우스는 즉위 초기에 이웃한 도시 베이(Veii)와 에트루리아족과의 전쟁에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여 로마의 군사력을 입증했다. 그는 용맹함을 보였고 적군을 격파했다. 그의 이러한 성공은 로마에서 그의 입지를 굳히는 데 기여했다. 고대 로마 승전 목록인 파스티 트리움팔레스(Fasti Triumphales)에 따르면, 세르비우스는 에트루리아인들을 상대로 세 번의 개선식을 거행했는데, 기원전 5711125일과 기원전 567525일이 그 기록으로 남아있다.
 

3. 세르비우스 개혁 : 로마 사회의 재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가장 큰 업적은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세르비우스 개혁'이다. 이 개혁은 로마 사회의 구조와 시민들의 역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 개혁이 한 왕의 단독 업적이라기보다는, 그의 선임자인 안쿠스 마르키우스와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시대부터 후임자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Lucius Tarquinius Superbus) 시대까지 이어진 점진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의 총체적 결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들은 전통적으로 세르비우스에게 귀속되었다.
 
  • 인구 조사(Census)와 시민 분류 : 세르비우스는 로마 최초의 대규모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모든 시민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가족 구성, 지위를 등록해야 했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시민들은 재산 정도에 따라 다섯 개의 계급(classes)으로 분류되었다. 각 계급은 군사적 의무와 정치적 권한이 달랐다.
  • 백인대(Centuries) 제도 : 인구 조사를 통해 재산에 따라 분류된 시민들은 백인대라는 군사 단위로 재편되었다. 이는 병역과 투표권을 재산에 따라 부여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이었다. 백인대는 부유한 계급이 더 많은 백인대 수를 가지고 더 많은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로마 사회에서 부와 군사적 능력의 중요성을 강화했다.
  • 투표권 확대 : 이 개혁은 종전의 혈통이나 지위가 아닌, 재산 규모를 기준으로 특정 시민 계급(특히 평민과 소규모 토지 소유자)에게 투표권을 확대했다. 이는 로마의 시민 공동체를 넓히고 군사적 동원력을 증대하는 데 기여했다.
  • 도시 행정 개편 : 로마는 네 개의 도시 부족(tribus urbanae)과 여러 개의 농촌 부족(tribus rusticae)으로 나뉘었다. 이는 도시를 행정 구역으로 나누고, 인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또한 로마의 신성한 경계인 포메리움(pomerium)을 확장하고, 칠 언덕(Seven Hills)을 모두 포함하는 '세르비우스 성벽(Servian Wall)' 건설을 지시했다. 이는 확장된 로마를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인프라였다.
  • 비치(Vici, 이웃 지역) 설립 : 그는 또한 로마를 '비치'라는 이웃 지역 단위로 세분화했다. 이는 각 지역의 지역 사회 의식을 고취하고, 하층민과 노예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콤피탈리아(Compitalia) 축제를 개혁하는 기반이 되었다.
 

4. 종교와 신성한 연결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종교 개혁에도 기여했다.
 
  • 디아나 신전(Temple of Diana) 건설 : 그는 아벤티노 언덕(Aventine Hill)에 디아나 신전을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신전은 라틴 동맹(Latin League)의 중심 역할을 했으며, 로마가 라틴 부족들의 맹주임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 포르투나(Fortuna) 여신과의 관계 : 그는 행운과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겨졌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포르투나 여신이 그의 연인이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왕궁의 포르타 페네스텔라(Porta Fenestella, '창문 문')를 통해 타나퀼이 세르비우스의 섭정을 발표했고, 포르투나 여신이 같은 창문을 통해 세르비우스의 배우자가 되기 위해 지나갔다고 언급한다.
 

5. 비극적인 죽음 : 최후의 자비로운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오랜 통치는 비극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막을 내렸다. 리비우스의 이야기는 왕위 찬탈의 음모와 가정 내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 두 딸의 운명 :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툴리아 디 엘더(Tullia the Elder)''툴리아 디 영거(Tullia the Younger)'. 그는 이들을 전임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두 아들, 즉 훗날 '오만한 타르퀴니우스(Tarquinius Superbus)'로 불리는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Lucius Tarquinius)와 그의 동생 아룬스 타르퀴니우스(Arruns Tarquinius)와 결혼시켰다.
  • 암투와 살인 : 야심 많고 사악한 툴리아 디 영거는 남편 아룬스와 함께 자신의 언니이자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의 아내인 툴리아 디 엘더를 살해했다. 그리고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또한 자신의 형이자 툴리아 디 영거의 남편을 살해했다. 이 두 죄인은 서로의 배우자를 살해한 후 결혼하여 더욱 강력한 결속을 다졌다.
  • 왕위 찬탈과 부친 살해 : 툴리아 디 영거는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를 부추겨 자신의 아버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로부터 왕위를 찬탈하도록 했다.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는 무장한 사람들을 이끌고 원로원에 침입하여 세르비우스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세르비우스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나타나자, 타르퀴니우스는 그를 원로원 계단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세르비우스는 타르퀴니우스의 부하들에게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
  • 길 위의 만행 : 더욱 끔찍한 것은, 툴리아 디 영거가 아버지의 시신이 쓰러져 있는 길을 자신의 전차로 지나가면서 피를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거리는 이후 '비쿠스 스켈레라투스(Vicus Sceleratus, 수치스러운 길 또는 범죄의 길)'로 불리게 되었다.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는 이 사건으로 '수페르부스(Superbus)', '오만하거나 거만한'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리비우스는 세르비우스의 죽음을 '비극적인 범죄(tragicum scelus)'이자 로마 역사상 어두운 에피소드로 묘사하며, 이는 이후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되었다. 세르비우스는 로마의 '마지막 자비로운 왕'으로 기억된다. 그의 살해는 '존속 살해(parricide)', 당시 로마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로 간주되었다.
 

6.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유산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삶과 죽음은 로마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한다. 그는 로마를 단순한 도시를 넘어, 체계적인 사회 계급과 군사 시스템을 갖춘 강력한 국가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개혁은 로마 공화정 시대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로마 사회의 계층 구조와 시민의 의무를 명확히 정의했다.
 
비록 그의 이야기가 많은 신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의 이름은 로마의 행정적, 군사적 기반을 확립한 위대한 개혁가이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마지막 선한 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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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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