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푸스 아라부스(Philip the Arab, AD.c.204~249) : 로마 제국 제29대 황제(AD.244~249)
필리푸스 아라부스(Philip the Arab), 3세기 격동기에 ‘안정’을 시도한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Philip the Arab, 약 204~249)는 244년부터 249년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한 황제이다. 그는 고르디아누스 3세 사후 프라이토리아누스 총관에서 즉위하여 불안정한 3세기 한복판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5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재위 말에는 로마 건국 천년제 기념을 주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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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푸스 아라부스(Philip the Arab, AD.c.204~249) : 로마 제국 제29대 황제(AD.244~249) |
아라비아 페트라에아 출신, 이름이 말해주는 정체성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본명은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이며, 출생지는 오늘날 시리아 샤흐바(당시 필리포폴리스)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공개적으로는 로마 전통 종교에 따랐고, 가계적으로 아라비아계 배경을 지닌 인물로 분류된다.
집권의 경위와 원로원 인준
244년 2월경 메소포타미아 전선에서 고르디아누스 3세가 사망한 뒤, 당시 프라이토리아누스 총관이던 필리푸스가 군과 궁정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는 즉시 사산 왕조와 평화를 체결해 동방 전선을 정리하고 로마로 귀환하여 원로원의 인준을 받으며 정통성을 공고히 하였다.
재위의 성격과 ‘안정’의 평가
필리푸스의 통치는 3세기 전반의 내란과 외침 속에서 드물게 안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5년 통치는 ‘혼란의 세기’에서 예외적으로 평온한 시기로 회고되며, 내정과 대외정세의 균형을 우선시한 실용적 통치로 기록된다.
로마 건국 천년제와 제국의 상징 정치
재위 말기인 248년, 그는 로마 건국 천년을 기념하는 대축제를 열어 제국의 연속성과 황제 권위를 상징적으로 재확인하였다. 주화와 공적 의례는 ‘천년의 로마’라는 메시지를 선전하며, 불안정한 시대에 제국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종교 문제와 ‘최초의 기독교 황제’ 논쟁
필리푸스가 기독교에 우호적이었고 심지어 기독교인이었다는 전승이 중세 문헌과 일부 교회사 전통에 남아 있으나, 현대 연구는 그 진위를 신중하게 본다. 그는 공식적으로 로마 국가종교를 따랐고, 비기독교 사가들의 기록에도 개종에 대한 확증은 보이지 않으며, 주화와 공적 행위도 전통 의례를 따랐다는 점에서 ‘최초의 기독교 황제’라는 주장에는 회의가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기독교 황제’로는 임종 직전 세례를 받은 콘스탄티누스가 지목되며, 필리푸스의 기독교적 성향은 그가 보인 관용과 우호적 태도의 반영으로 이해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가계와 공동 황제, 황실 질서의 재편
필리푸스는 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Marcia Otacilia Severa)와 혼인하였고, 아들 필리푸스 2세를 248년부터 공동 황제로 세워 계승 구도를 명확히 하였다. 이는 병영 정치의 변동성 속에서 황실의 연속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조치였다.
대외정책과 동방 전선의 봉합
즉위 직후 그는 사산 왕조와 신속한 강화에 합의하여 장기 소모전을 피하고 병참과 재정을 안정시키는 현실적 선택을 단행하였다. 이 선택은 전선의 겉모습을 조용하게 만들었으나, 제국 변방의 구조적 압력과 군 내부의 야심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하였다.
몰락과 베로나 전투, 데키우스의 부상
재위 말기 내외의 불안 요인이 증폭되는 가운데, 249년 9월 베로나 전투에서 트라야누스 데키우스가 반기를 들고 승리하면서 정국이 급변하였다. 필리푸스는 전장에서 혹은 직후 살해되었고, 원로원은 데키우스를 합법적 후계자로 승인하였다.
통치의 균형 평가
필리푸스는 전선의 현실을 인정하고 외교적 봉합과 의례적 상징으로 제국의 안정과 연속을 꾀한 군주였다. 그의 통치는 3세기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드문 안정 구간을 마련했으나, 군사적 정통성 경쟁과 변방 압력, 재정 부담이 결합되며 종국에는 무력의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간단 연표
- 약 204년경 : 아라비아 페트라에아의 필리포폴리스(현 샤흐바) 출생.
- 244년 2월경 : 고르디아누스 3세 사후 프라이토리아누스 총관에서 즉위하다.
- 244년 : 사산 왕조와 강화하고 로마로 귀환하여 원로원 인준을 받다.
- 248년 : 로마 건국 천년제를 주관하다.
- 248~249년 : 아들 필리푸스 2세를 공동 황제로 책봉하다.
- 249년 9월 : 베로나 전투 전후로 사망하고, 데키우스가 승계되다.
맺음말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5년은 ‘전쟁을 멈추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실용적 통치의 기록이었다. 그는 외교와 상징, 제도와 연속을 통해 위기의 세기를 완충했지만, 최종 국면에서는 군영 정치의 파고를 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통치는 3세기 로마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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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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