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아누스 3세(Gordian III, AD.225~244) : 로마 제국 제28대 황제(AD.238~244)
고르디아누스 3세, 13세에 단독 통치에 오른 최연소 황제의 명암
고르디아누스 3세(Gordian III, 225~244)는 238년부터 244년까지 로마 제국을 다스린 황제이다. 13세에 단독 황제로 등극한 그는 통일 로마 제국의 최연소 단독 군주로 기록되며, 선임 공동 황제 푸피에누스(Pupienus, 약 164~238)ㆍ발비누스(Balbinus, 약 178~238) 이후 제위를 이었고, 사후에는 필리푸스 아라브스(Philip the Arab, ?~249)가 뒤를 이었다. 로마 태생으로 알려진 그는 짧은 생애와 통치 속에서도 왕조 연속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
고르디아누스 3세(Gordian III, AD.225~244) : 로마 제국 제28대 황제(AD.238~244) |
출생과 가계의 윤곽
고르디아누스 3세는 225년 1월 20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마이키아 파우스티나(Maecia Faustina, 생몰년 미상)로 전하며, 부친은 유니우스 발부스(Junius Balbus, 생몰년 미상)로 전하나 이들 명칭은 신뢰성이 낮은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의존한다. 모계로는 고르디아누스 1세(Gordian I, 약 158~238)의 손자이자 고르디아누스 2세(Gordian II, 약 192~238)의 생질로 연결되는 전승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여섯 황제의 해’와 권력 상승
238년의 격변 속에서 고르디아누스 3세는 5~8월경 ‘카이사르’로 선포되었고, 곧 황제 자리에 올랐다. 직접적인 선임자는 공동 황제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로, 그들의 통치가 막을 내린 뒤 고르디아누스 3세가 제위를 계승하였다. 즉위 시기의 세부 연대는 논쟁이 있으나, 대체로 238년 8월경 즉위로 정리되며, 그는 즉위 이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라는 정식 군주명을 사용하였다.
최연소 단독 황제의 의미
그는 통일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13세에 단독 통치에 오른 최연소 황제로 전한다. 이전의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08~235)는 14세, 네로(Nero, 37~68)는 16세에 제위에 올랐으나, 이들보다도 어린 나이에 단독 황제로 선포된 사례가 고르디아누스 3세였다. 후대 서로마ㆍ동로마에서 더 어린 황제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분할 제국의 일부를 통치한 경우로 구분된다.
연대기적 쟁점과 사료 문제
그의 즉위 시점은 파피루스ㆍ비문ㆍ법령 자료 간 불일치로 인해 학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파피루스 기준으로는 9월 중ㆍ하순에 즉위 소식이 도착한 정황이 확인되지만, 시리아 샤카(샤카) 지역의 3월자 그리스 비문은 훼손된 황제명을 둘러싸고 다른 해석을 낳는다. 또한 생년·나이에 대해서도 4세기 연대기와 헤로디아노스의 진술이 상충하는 대목이 있어, ‘13세 전후’라는 합리적 범위를 두고 읽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통치의 외피와 왕실 관계
그의 배우자는 트란퀼리나(Tranquillina, 생몰년 미상)로 전한다. 즉위 이전에는 카이사르로서, 즉위 후에는 아우구스투스로서 연호와 칭호를 사용하였고, 선임 공동 황제 푸피에누스ㆍ발비누스가 도입한 권력 안정 장치를 계승하였다. 짧은 통치에도 불구하고 왕조적 명칭과 의전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최후와 계승의 경로
고르디아누스 3세는 244년 2월 무렵 자이타(Zaitha)에서 약 19세로 사망하였다. 사망 직전과 직후의 세부 정황은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듬해 3월 14일자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의 법률을 통해 필리푸스 아라브스가 이미 권력을 장악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집트 비문은 2월 말에 고르디아누스 3세의 최종 기록을, 3월 중ㆍ하순 로마 법률은 후계의 공식화를 보여주며, 여행ㆍ전령 소요 시간을 고려할 때 1월 말~2월 초 사망설이 가장 개연적으로 제시된다.
사료와 해석의 주의점
고르디아누스 3세의 가계ㆍ어린 시절ㆍ통치 전반을 다루는 기록 가운데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선정적 서술과 오류로 신뢰도가 낮은 자료로 분류된다. 반면 동시대 사가 헤로디아노스의 진술, 354년 연대기, 파피루스ㆍ비문ㆍ법령 등은 상호 참조를 통해 보다 견실한 윤곽을 제공한다. 따라서 전승의 빈틈을 과도하게 메우기보다, 확증 가능한 최소 사실에 기초해 통치를 재구성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연표로 보는 고르디아누스 3세
- 225년 1월 20일 : 로마 출생.
- 238년 5월~8월 : 카이사르로 선포되다.
- 238년 8월경 : 황제로 즉위하다(세부 연대는 논쟁 중이다).
- 244년 2월경 : 자이타에서 사망하다.
- 선임자ㆍ후임자: 선임자는 푸피에누스ㆍ발비누스, 후임자는 필리푸스 아라브스이다.
맺음말
고르디아누스 3세는 ‘여섯 황제의 해’의 종결선에서 등장해 왕조 질서를 재정렬한 세대였다. 최연소 단독 황제로 기록된 그의 통치는 사료의 빈약함 탓에 많은 질문을 남겼지만, 선임 공동 통치의 유산을 이어받아 제국의 명목상 연속성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사망과 승계의 연쇄는 법령ㆍ비문 증거로 보강되며, 그가 남긴 가장 분명한 유산은 ‘격변 속 연속’이라는 짧고 선명한 표제어이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