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목요일

막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za, AD.c.270~313) : 로마 제국 제44대 공동황제(AD.310~313)

막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za, AD.c.270~313) : 로마 제국 제44대 공동황제(AD.310~313)

 

마지막 파라오, 막시미누스 다이아 황제

  •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누스(Galerius Valerius Maximinus)
  • Ancient Greek : Μαξιμίνος
  • 출생 : 기원후 270년경 1120
  • 사망 : 기원후 3137월경
  • 재위 :
    Caesar : 기원후 30551~ 310
    Augustus : 기원후 310~ 3137
  • Daza라는 이름은 고대 사료에서는 Daza 또는 Daia로 다양하게 기록된다.
    일부 라틴어 사본이나 그리스어 사료에서는 이 인물을 “Daia”로 표기했다(그리스어 사료에서는 Δαίας, Daias로 나타남). 따라서, “Daza=Daia”로 간주되어 다이아로 음역되고 있다.
    군인 황제 시대를 연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같은 막시미누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므로 거기에 연이어서 막시미누스 2세라고 하기도 한다

막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za, AD.c.270~313) : 로마 제국 제44대 공동황제(AD.310~313)
막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za, AD.c.270~313) : 로마 제국 제44대 공동황제(AD.310~313)
 

1. 격동의 시대, 혼돈의 황제

 
기원후 3세기의 로마 제국은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군인 황제들의 난립과 끊이지 않는 내전, 그리고 제국의 안팎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위협은 로마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 황제가 사두정치(Tetrarchy) 체제를 도입하며 제국을 안정화하려 노력했지만, 그의 퇴위 이후 이 체제는 다시 한번 격렬한 권력 투쟁의 장으로 변모했다. 이 시기, 독실한 이교도이자 잔혹한 기독교 박해자로 기록된 인물이 바로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누스(Galerius Valerius Maximinus), 즉 막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za, 270년경~313). 그는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로도 불린다.
 

2. 이름과 출신 : 미천함에서 시작된 황제의 길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2701120일경 일리리아(Illyria)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래 이름은 다자(Daza)’였다. 고대 일리리아어에서 다자구별됨과 같은 높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이름이었다. 기독교 작가 락탄티우스(Lactantius)는 그의 이름을 다이아(Daia)’로 표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오타로 여겨진다. 그는 황제 갈레리우스(Galerius, 260년경~311)의 누이의 아들, 즉 갈레리우스의 조카였다. 그는 군대에 입대하여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으며 고위직으로 빠르게 승진했다. 305, 그의 외삼촌인 갈레리우스가 동방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되면서, 갈레리우스의 요청으로 그는 막시미누스(Maximinus)’라는 이름을 얻었고, 갈레리우스의 양자가 되어 카이사르(Caesar)의 지위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로마 황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3. 카이사르이자 아우구스투스 : 제국 동방의 통치자

 
카이사르가 된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시리아(Syria)와 이집트(Egypt)를 포함한 동방의 넓은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는 이 지역의 행정과 군사를 책임졌으며, 로마 제국의 동방 국경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궁정은 주로 안티오키아(Antioch)에 있었다. 310, 갈레리우스가 그를 아우구스투스로 승격시키면서 그는 공식적으로 동방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이집트를 통치했던 그는 로마 황제 중 파라오칭호를 사용한 마지막 인물로 기록된다. 이집트의 신전 비문에서는 그의 이름이 이집트 상형문자로 파라오의 카르투슈 안에 새겨져 있다.
 

4. 광신적인 이교도와 기독교 박해의 재개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독실한 이교 신자였다. 그는 로마의 전통 신들을 열렬히 숭배했으며, 이를 제국의 통합과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보았다. 따라서 기독교를 제국의 안녕을 해치는 파괴적인 오류로 간주했다. 311, 그의 외삼촌 갈레리우스가 죽음 직전 관용 칙령(Edict of Toleration)’을 발표하며 기독교 박해를 공식적으로 종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자신의 통치 영역에서 박해를 재개했다.
 
그는 도시 당국이 기독교인들을 추방하고 박해하도록 부추겼다. 티레(Tyre) 주민들의 탄원에 대한 그의 회신 문서에는 신들의 친절한 보살핌 덕분에 좋은 수확과 건강, 평화로운 바다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히며, 기독교인들의 불경한 허영의 파괴적인 오류가 전 세계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또한, 리키아(Lycia)와 팜필리아(Pamphylia) 지역의 비문에 따르면, 그는 기독교 금지를 요청하는 도시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기독교인들을 끔찍한 병에서 구원받은자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5. 사두정치 체제의 붕괴와 권력 투쟁

 
갈레리우스의 죽음 이후, 사두정치 체제는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동방 제국에서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려 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카이사르였던 리키니우스(Licinius, 265년경~325)를 경계하며 서로 대립했다. 312, 서방에서는 막센티우스(Maxentius, ?~312)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I, 272년경~337) 사이에 밀비우스 다리 전투(Battle of Milvian Bridge)가 벌어졌고, 막센티우스가 패배하여 사망했다. 콘스탄티누스가 서방의 유일한 아우구스투스가 되자,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동방에서 리키니우스와 대립하면서도 콘스탄티누스를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겼다.
 
그는 콘스탄티누스의 적이었던 막센티우스와 은밀히 동맹을 맺기도 했다. 313년 초, 그는 리키니우스를 공격하기 위해 소아시아를 통해 진군했고, 비티니아(Bithynia)의 헤라클레아(Heraclea)를 점령했다.
 

6. 패배와 최후의 관용 칙령

 
313430, 리키니우스와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헤라클레아 근처에서 벌어진 캠푸스 세레니 전투(Battle of Campus Serenus)’에서 격돌했다. 병력에서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시미누스 다이아의 군대는 리키니우스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전투 후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도망쳤고, 티르수스(Tarsus)로 물러났다. 패배 직전, 그리고 타르수스에서 죽음을 앞두고,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마지막 관용 칙령을 발표하며 기독교인들에게 집회와 교회 건설의 권리를 허용하고 몰수된 재산을 반환할 것을 명령했다. 이는 자신이 추진했던 박해가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로마 제국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3137월경 타르수스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동방 제국에서 리키니우스에게 유일한 통치권자의 지위를 부여했으며, 이후 로마 제국은 리키니우스와 콘스탄티누스라는 두 명의 아우구스투스 체제로 재편되었다.
 

7. 막시미누스 다이아의 유산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3세기 말과 4세기 초 로마 제국의 격동기에 존재했던 여러 황제들 중 한 명으로, 그의 삶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권력 다툼과 종교적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실한 이교도로서 기독교를 극도로 탄압했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 종교적 관용을 선언해야만 했던 그의 모습은 로마 제국의 종교적 변화를 상징한다. 비록 그의 치세는 짧고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그는 사두정치 체제의 붕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콘스탄티누스 1세의 부상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로마 역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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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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