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1일 목요일

마니슈투슈(Manishtushu, BC.?~c.2255) : 아카드 제국의 안정과 통합을 다진 왕(BC.c.2270~c.2255)

마니슈투슈(Manishtushu, BC.?~c.2255) : 아카드 제국의 안정과 통합을 다진 왕(BC.c.2270~c.2255)

 
  • 이름 : Manishtushu (Man-ištušu, 𒈠𒀭𒅖𒌅𒋢, Ma-an-ish-tu-su)
  • 출생 : 미상
  • 사망 : 기원전 2255년경
  • 부친 : 사르곤
  • 자녀 : 나람신(Naram-Sin), 메살림(Meshalim)
  • 재위 : 기원전 2270년경 ~ 2255년경
 
마니슈투슈(Manishtushu,)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제국(Akkadian Empire)의 제3대 왕이었다. 그는 아카드 제국의 창시자 사르곤(Sargon of Akkad)의 아들이자 리무시(Rimush)의 형제이다. 마니슈투슈는 15년 동안 재위하며(기원전 2270년경~기원전 2255년경) 전임 황제들의 치세에 발생했던 혼란과 반란을 수습하고 제국의 안정과 통합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이름인 마니슈투슈누가 그와 함께 있는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의 뒤는 아들 나람-(Naram-Sin)이 이었는데, 나람-신은 사후에 마니슈투슈를 신격화했다. 후대 우르 제3왕조(Ur III period) 시대의 기록에서도 신격화된 마니슈투슈에게 제물을 바쳤다는 내용이 나오며, 마니슈투슈 신전이 있는 도시의 이름 또한 ‘ᵈMa-an-iš-ti-su’로 불렸음이 확인된다.
 

1. 리무시의 뒤를 이은 왕위 계승

 
마니슈투슈는 아카드 제국의 창시자 사르곤의 아들로, 전임 왕인 동생 리무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리무시는 반란으로 얼룩진 격변기를 보냈고 결국 암살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마니슈투슈는 제국의 안정을 책임져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그의 아들 나람-신은 후에 그를 계승하여 아카드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할아버지 사르곤과 아버지 마니슈투슈를 사후에 신격화함으로써 아카드 왕실의 정통성과 신성성을 강화했다.
 

2. 마니슈투슈 오벨리스크 : 토지 개혁과 중앙집권화의 증거

 
마니슈투슈 재위 시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증거 중 하나는 바로 마니슈투슈 오벨리스크’(Manishtushu Obelisk)이다. 상단과 하단이 손상된 이 섬록암 오벨리스크는 1897년 자크 드 모르간(Jacques de Morgan)이 엘람(Elam)의 수사(Susa) 유적지에서 발견했다.
 
이 오벨리스크는 일종의 쿠두루(kudurru)’, 즉 토지 부여를 기록한 기념물로, 마니슈투슈가 8개 구획의 토지, 3430헥타르에 달하는 땅을 매입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가 대규모 토지 매입을 통해 중앙 권력을 강화하고 경제적 통제권을 확대하려 했음을 시사한다. 이 토지들은 바빌론(Babylon), 니푸르(Nippur), 키시(Kish) 등 유프라테스강(Euphrates River) 고대 물줄기 인근에 위치한 여러 도시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비문은 또한 '탤런트(talent)' 단위가 서면으로 처음 사용된 기록이기도 하다.
 
오벨리스크에 기록된 내용들은 아카드 제국이 수메르의 도시 국가들을 통합한 후, 지방의 토지 소유 구조를 중앙 권력이 통제하는 형태로 전환하려 했던 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는 사르곤과 리무시의 군사적 정복이 마니슈투슈의 행정적, 경제적 개혁으로 이어졌음을 의미한다. 오벨리스크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3. 마니슈투슈와 관련된 주요 유물 및 명문

 
마니슈투슈의 통치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당대 그의 위상과 후대에도 이어진 그의 숭배 흔적을 보여준다.
 
  • 승리 석비 :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SB 47 + SB 9099 파편은 마니슈투슈 석상으로, 12세기 투트록-나훈테(Shutruk-Nakhunte) 왕이 아카드에서 수사로 가져왔다는 엘람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
  • 마니슈투슈 오벨리스크 : 서술했듯이 중요한 토지 매입 기록이 담긴 대형 오벨리스크이다.
  • 봉헌 비문이 새겨진 유물들 :
    • 엘람 지역에서 발견된 타원형 도끼머리에는 “(위대한) 키시의 왕 마니슈투슈를 위하여, 전차병 마슘, 그의 종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 시파르(Sippar)에서 발견된 대리석 철퇴머리(BM 91018)에는 세상의 왕 마니슈투슈가 벨라트-아이아(Belat-Aia) 여신에게 (이 철퇴를) 봉헌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 이신(Isin)의 닌우르타(Ninurta) 신전에서 발견된 설화 석고 철퇴머리에는 세상의 왕 마니슈투슈가 닌이시나(Ninisina) 여신에게 (이 철퇴를) 봉헌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 수사에서 발견된 봉헌 석상에는 세상의 왕 마니슈투슈를 위하여, 에쉬품(Espum), 그의 종이 나룬테(Narunte) 여신에게 (이 석상을) 봉헌했다는 명문이 있다.
    • 아수르(Assur)에서 발견된 구리 창끝에는 세상의 왕 마니슈투슈를 위하여, 아주주(Azuzu), 그의 종이 베알-SI.SL 신에게 (이 창을) 봉헌했다는 명문이 있다.
  • 표준 비문 : “나는 사르곤의 아들 마니슈투슈다. 강한 왕, 키시의 왕, 아눔(Anum)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엔릴(Enlil)의 대리자, 아바(Aba)의 총독, 수많은 벽돌을 만든 자, 아이아(Aya) 신전 건축자, 신부여, 내 주인이시여. 나는 샤마시(Shamash)와 아이아, 내 주인을 위해 12버 길이의 수도원과 말을 지었다...”와 같은 내용의 표준 비문이 니푸르(Nippur), 시파르, 수사 등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마니슈투슈가 세상의 왕(King of the World)’, ‘키시의 왕(King of Kish)’과 같은 강력한 칭호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며, 그의 통치 시기에 아카드 제국의 권위가 광범위하게 인정받았음을 시사한다.
 
마니슈투슈 왕의 왕좌, 루브르 박물관
마니슈투슈 왕의 왕좌루브르 박물관
 

4. 죽음과 사후의 평가

 
마니슈투슈는 기원전 2255년경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가설이 존재하는데, 구 바빌로니아(Old Babylonian) 시대의 해몽서에 만약 심장이 양의 고환과 같다면, 그것은 궁정 사람들이 마니슈투슈를 죽였음을 알리는 징조이다라는 구절이 있어, 그가 자신의 궁정 구성원들에게 암살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전임 왕 리무시가 암살당한 것과 유사한 비극적인 최후이다.
 
그의 죽음 이후, 아들 나람-신이 왕위를 계승했다. 나람-신은 사후에 마니슈투슈를 신격화했으며, 우르 제3왕조 시대의 문헌에서도 신격화된 마니슈투슈에게 제사를 지낸 기록이 발견된다.
 

5. 마니슈투슈의 역사적 의의

 
마니슈투슈의 재위 기간은 아카드 제국이 군사적 정복을 넘어 행정적, 경제적 안정화를 꾀했던 중요한 시기였다. 그의 토지 매입 기록이 담긴 오벨리스크는 중앙 정부가 광활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려 했던 노력을 보여준다. 또한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그의 명문이 새겨진 유물들은 아카드 제국의 문화적, 종교적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증명한다.
 
비록 그의 죽음이 암살로 인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그는 사르곤이 건설한 제국의 기반을 닦고 아들 나람-신이 전성기를 이룰 수 있도록 안정적인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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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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