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2세(Leo II, AD.c.467~474) : 동로마 제국 제56대 황제(AD.474)
- 레오 2세(Leo II the Younger)
- Ancient Greek : Λέων, Leōn
- 출생 : 기원후 467년경
- 사망 : 기원후 474년 11월 / 콘스탄티노플
- 부친 : 제논(Zeno)
- 모친 : 아리아드네(Ariadne)
- 재위 :
Caesar : 472년 10월 ~ 473년 11월
Augustus : 473년 11월 ~ 47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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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2세(Leo II, AD.c.467~474) : 동로마 제국 제56대 황제(AD.474) |
비운의 어린 황제 : 동로마 레오 2세의 짧은 치세 (473-474)
5세기 로마 제국은 끊임없는 혼란과 변화의 시대였다. 서로마 제국이 서서히 멸망의 길을 걷고 있던 이때, 동로마 제국 또한 내부의 권력 암투와 복잡한 황위 계승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불과 일곱 살의 나이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에 올라 짧은 기간 동안 제국을 통치했던 비운의 인물이 바로 레오 2세(Leo II, 467경 – 474)이다. ‘어린이 황제’ 또는 ‘작은 자(the Younger, the Small)’라는 별명으로도 불린 그의 통치는 로마 제국의 불안정한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1. 어린 황제의 탄생 : 레오 1세 왕조의 후계자
레오 2세는 서기 467년경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사우리아(Isauria) 출신의 유능한 군 지휘관이자 훗날 황제가 되는 제논(Zeno, 425–491)이었고, 어머니는 당시 동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레오 1세(Leo I, 401–474) 황제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 ?–515)였다. 즉, 레오 2세는 당시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레오 1세의 외손자이자, 레오 1세와 황후 베리나(Verina, ?–484)의 외손자였다.
레오 2세는 제논의 유일한 아들이었고, 외할아버지 레오 1세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왕조 이후 처음으로 제위 계승 가능성이 가장 큰, 황실의 명백한 후계자였다. 레오 1세는 병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자신이 사망할 경우 제위가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했다. 또한, 사위 제논이 유능한 장군이었으나 그의 이사우리아 출신 배경 때문에 콘스탄티노폴리스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오 1세는 자신의 혈육인 레오 2세를 후계자로 세우는 것이 제국의 안정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2. 급부상 : 카이사르에서 아우구스투스까지 (472-473)
레오 1세는 472년 10월경 어린 외손자 레오 2세를 로마 제국의 후계자인 ‘카이사르(Caesar)’로 임명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473년 11월, 레오 1세는 레오 2세를 자신의 공동 황제, 즉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승격시켰다. 이는 단일 황제의 죽음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고 제위 승계를 미리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
레오 2세의 즉위식은 473년 11월 17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히포드롬(Hippodrome of Constantinople)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아카키우스(Acacius)가 즉위식을 주재했으며, 10세기에 작성된 『의례의 서(De Ceremoniis)』에는 그의 아우구스투스 즉위식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레오 2세는 이 시기에 474년의 유일한 집정관(consul)으로도 임명되었다. 이는 그가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제국의 명목상 최고 지도자로서 모든 권위를 부여받았음을 의미했다.
3. 짧은 단독 통치와 제논의 부상 (474년 초)
474년 1월 18일, 외할아버지 레오 1세가 이질(dysentery)로 사망하면서 어린 레오 2세는 동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단독 통치 기간은 매우 짧았다. 불과 열흘 뒤인 474년 1월 29일, 동로마 제국 원로원은 그의 아버지 제논을 레오 2세의 공동 황제로 임명했다.
아버지 제논은 이미 유능한 군사 지휘관으로서 군대 내에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황후 아리아드네는 물론 원로원과 민중 역시 제논이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실질적인 통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레오 2세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 제논이 황실을 안정시키고 제국의 국정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레오 2세와 제논은 짧은 기간 동안 공동 황제로서 동로마 제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4. 비극적인 죽음 : 로마 역사 속 미스터리 (474년 말)
공동 황제로 재위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474년 11월, 어린 황제 레오 2세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불과 7살이었다. 그의 죽음은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로마 역사상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제기된다.
- 자연사 : 첫 번째는 자연사, 즉 병으로 사망했다는 설이다. 외할아버지 레오 1세가 이질로 사망했음을 고려할 때, 레오 2세 역시 이질이나 다른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린 나이의 아이는 면역력이 약해 전염병에 취약했을 수 있다.
- 독살 : 두 번째는 아버지 제논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다. 제논이 단독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제거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제논 입장에서는 레오 2세가 살아 있다면 항상 자신의 황권에 대한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었다. 레오 2세는 명목상 황제였을 뿐, 실질적인 통치권을 가진 제논이 이사우리아 출신이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어린 아들의 황제 칭호가 필요했던 것이고, 아들이 성장하기 전에 제거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어떤 설도 명확한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고대 사료들 역시 그의 죽음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으며, 단지 그가 사망했다고 기록할 뿐이다. 레오 2세의 시신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사도 교회(Church of the Holy Apostles)에 안치되었다 .
5. 레오 2세의 치세가 남긴 것 : 짧은 통치의 긴 여운
레오 2세의 치세는 1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그가 직접적으로 제국에 남긴 업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너무 어려 제국을 다스릴 능력도,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짧고 비극적인 생애와 죽음은 로마 제국의 역사에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 제논의 단독 황제 즉위 : 레오 2세의 죽음은 아버지 제논이 동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가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는 제논이 자신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 이사우리아 세력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이사우리아 왕조(Isaurian dynasty)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 권력의 불안정성 : 어린 황제의 즉위와 비극적인 죽음은 5세기 로마 제국의 권력 승계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유아 황제의 존재는 제국의 권력이 실질적인 힘을 가진 소수의 인물들에게 휘둘릴 수 있음을 드러냈다.
- 비잔티움 정체성의 형성 : 레오 2세의 재위 기간은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동로마 제국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체성, 즉 비잔티움 제국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였다. 그의 시대는 황권이 교권의 축복을 받는다는 중요한 즉위 전통이 확립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레오 2세는 로마 제국의 격동기에 짧은 순간 반짝였다 사라진 비운의 황제이다. 그의 이야기는 로마 권력의 잔인함과 황좌를 둘러싼 끊임없는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단면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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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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