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5일 금요일

요안네스(Joannes, AD.?~425) : 서로마 제국의 황제 찬탈자(AD.423~425)

요안네스(Joannes, AD.?~425) : 서로마 제국의 황제 찬탈자(AD.423~425)

 
  • 요안네스(Joannes / John)
  • Latin : Iohannes
  • 출생 : 미상
  • 사망 : 기원후 4255월경 / 아퀼레이아(Aquileia)
 
요안네스(Joannes, AD.?~425) : 서로마 제국의 황제 찬탈자(AD.423~425)
요안네스(Joannes, AD.?~425) : 서로마 제국의 황제 찬탈자(AD.423~425)

서방 로마 제국의 단명한 황제

 
로마 제국의 5세기는 끊임없는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강력했던 서로마 제국은 야만족의 침입과 내부 분열로 서서히 붕괴의 길을 걷고 있었고, 황제의 자리는 늘 불안정했다. 요안네스(Joannes)는 바로 이 시기, 불과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서방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동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다.
 

1. 고위 관료에서 황제 자리에 오르다

 
요안네스는 황제로 등극하기 전, 프리미케리우스 노타리오룸(primicerius notariorum), 즉 고위 민간 관리였다. 이는 그가 로마 행정 시스템 내에서 상당한 경험과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의미한다. 역사가 프로코피우스(Procopius)는 그를 온화하고 지혜로우며 용감한 행동에도 능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423, 서방 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Honorius)가 사망하면서 로마는 정치적 공백 상태에 빠졌다. 동방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Theodosius II)는 호노리우스의 후계자를 즉시 발표하지 않았다. 이 인테르레그눔(interregnum), 즉 황제 부재 기간 동안 귀족 카스티누스(Castinus)는 요안네스를 서방 로마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추대했다. 이는 당시 서로마 제국에서 군부와 강력한 귀족들이 황제 옹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 동방 로마 제국의 거부와 내전

 
그러나 요안네스의 즉위는 동방 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요안네스의 황제 옹립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는 서방과 동방 로마 제국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동방 로마 제국은 호노리우스의 조카이자 황족인 발렌티니아누스 3(Valentinian III)를 정통 후계자로 내세웠고, 요안네스는 찬탈자로 간주되었다.
 
결국 테오도시우스 2세는 군대를 파견하여 요안네스를 폐위시키기 위한 내전을 감행했다. 요안네스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지만, 결국 425년에 사망하며 그의 짧은 통치도 막을 내렸다. 그의 죽음 이후 서로마 제국은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3. 역사적 의미

 
요안네스의 짧은 재위 기간은 5세기 초 서로마 제국이 겪었던 극심한 혼란과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앙 정부의 약화와 군부, 그리고 귀족들의 강력한 영향력은 황제의 자리를 안정적이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결국 제국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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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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