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Flavius Theodosius, AD.?~376) : 테오도시우스 1세의 아버지
1.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백작 : 로마 제국의 구원자이자 위대한 왕조의 시조
서기 4세기는 로마 제국이 심각한 안팎의 위기에 직면했던 격동의 시기였다. 북방의 야만족들은 국경을 끊임없이 위협했고, 제국 내부에서는 정치적 혼란과 찬탈이 빈번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제국의 존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위대한 장군의 면모를 보여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테오도시우스 백작(Count Theodosius)으로 알려진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Flavius Theodosius, ?–376)이다. 그는 훗날 로마 제국의 마지막 주요 왕조인 테오도시우스 왕조(Theodosian dynasty)를 일으킨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the Great, 347/346–395)의 아버지로서, 로마 역사에 지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2. 알려지지 않은 초기 경력과 뛰어난 능력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의 초기 생애와 군사 경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다만,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Ammianus Marcellinus)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360년대 후반 발렌티니아누스 1세(Valentinian I, 재위 364-375) 황제에 의해 중요한 지위에 임명된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전부터 그의 군사적 재능과 충성심이 황제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의 탁월한 군사적 능력은 앞으로 닥쳐올 거대한 도전들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코메스(comes)’라는 칭호는 ‘황제의 동반자’라는 의미의 ‘comes rei militari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후대 중세 유럽의 ‘백작(count)’ 칭호의 기원이 되었다. 이는 테오도시우스가 단순한 장군이 아닌 황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3. 브리타니아의 ‘대음모’ 진압 (367-368)
367년, 로마 브리타니아(Roman Britain)는 픽트족(Picts), 스코트족(Scots), 아타코티족(Attacotti), 색슨족(Saxons), 프랑크족(Franks) 등이 연합하여 일으킨 ‘대음모(Great Conspiracy)’라는 대규모 침입과 반란으로 혼란에 빠졌다. 제국의 가장 중요한 속주 중 하나였던 브리타니아의 질서가 무너지자,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는 테오도시우스 백작을 이 반란을 진압할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368년, 테오도시우스는 ‘브리타니아 군사 총사령관(comes rei militaris per Britannias)’의 직책으로 군대를 이끌고 브리타니아로 향했다. 그는 채널을 건너기 전 보노니아(Bononia, 현 불로뉴쉬르메르)에 대부분의 병력을 남겨두고, 자신은 소수의 병력과 함께 먼저 루투피아에(Rutupiae, 현 리치버러 성) 상륙하여 브리타니아 내부 상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는 로마군이 수적으로 우세한 적과 싸우기를 거부했거나, 혹은 침략이 시작될 때 휴가 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적군이 소규모 약탈대로 흩어져 자유롭게 약탈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정보 수집을 마친 그는 주력 부대를 이끌고 런디니움(Londinium, 현 런던)으로 진격하여 도시를 탈환하고 이를 거점으로 삼았다. 그는 군대를 여러 분대로 나누어 도시 주변의 약탈자들을 공격하게 했다. 로마군은 신속하게 적의 약탈대를 섬멸하고, 빼앗겼던 전리품, 보급품, 포로들을 되찾았다. 동시에 테오도시우스는 탈영병들에게 사면을 약속하고 런디니움으로 복귀할 것을 명령했으며, 이는 흐트러졌던 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사기를 진작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테오도시우스 백작의 이러한 뛰어난 전략과 실행력 덕분에 브리타니아는 불과 2년여 만에 로마의 통제 아래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업적으로 테오도시우스는 제국 내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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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경~400년의 North Britain |
4. 갈리아 및 다뉴브 전선에서의 활약 (370-372)
브리타니아에서의 성공적인 임무를 마친 테오도시우스 백작은 대륙으로 돌아와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곁에서 활약했다. 그는 370년 또는 371년, ‘마기스터 에퀴툼(magister equitum, 기병대장)’이라는 최고 군사 지위에 올라 알레마니족(Alemanni)과의 전투를 지휘했다 . 이 작전에서 그는 알레마니 영토를 성공적으로 침공하며 로마의 군사력을 과시했다.
이듬해인 372년에는 사르마티아족(Sarmatians)과의 전투에서도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하며 제국 동부 국경의 안정을 도모했다 . 테오도시우스 백작의 연이은 군사적 승리는 혼란스러운 국경 지대에서 로마의 권위를 재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5. 아프리카 반란 진압 (373-374)
372년, 마우레타니아(Mauretania)의 왕자 피르무스(Firmus)는 로마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켜 아프리카 관구(Diocese of Africa)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 반란은 아프리카 지역의 안정뿐 아니라 제국의 중요한 곡창 지대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다시 한번 테오도시우스 백작에게 이 반란을 진압할 임무를 맡겼다.
테오도시우스는 373년 봄, 군대를 이끌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는 마우레타니아 동부 지역에서 반군을 상대로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작전 시즌 후반, 마우레타니아 서부로 군을 이동했을 때는 큰 난관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374년에 다시 서부 마우레타니아를 침공했고, 이번에는 반군을 완전히 격파하고 피르무스를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아프리카의 반란은 완전히 진압되었고, 제국은 중요한 속주를 되찾았다.
이때 그의 아들 테오도시우스(훗날 테오도시우스 1세)는 모에시아 프리마(Moesia Prima)의 ‘둑스(dux, 국경 지휘관)’로 임명되어 그의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6. 비극적인 죽음과 그 배경 (376)
피르무스의 반란을 진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75년,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백작에게 체포 명령이 내려졌고, 그는 카르타고(Carthage)로 끌려가 376년 초에 처형되었다.
그의 죽음의 정확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발렌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서방 제국의 새로운 황제들인 그라티아누스(Gratian, 재위 367–383)와 발렌티니아누스 2세(Valentinian II, 재위 371–392)에게 위협으로 인식되었거나, 당시 이탈리아 내부의 격렬한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죽음을 차분히 받아들인 테오도시우스는 처형 직전에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평생 기독교인이었더라도 임종 직전 세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7.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시조로서의 유산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백작의 죽음은 비극적이었으나, 그의 유산은 로마 제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아들인 테오도시우스(훗날 테오도시우스 1세)는 아버지의 사망 후 한동안 히스파니아의 영지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군이 참패하고 발렌스(Valens) 동로마 황제가 전사하는 등 제국이 큰 위기에 처하자, 그는 다시 부름을 받았다. 378년에 ‘마기스터 에퀴툼(magister equitum)’으로 임명되어 고트족(Goths)을 상대로 성공을 거두었고, 결국 379년 1월 19일 시르미움(Sirmium)에서 그라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즉위했다 .
아들 테오도시우스 1세가 황제에 오른 후, 그의 아버지인 테오도시우스 백작은 사후에 신격화되어 '신성한 아버지 테오도시우스(Divus Theodosius Pater)'로 불리게 되었으며, 그의 조각상들도 세워졌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백작은 비록 직접 황제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로마 제국 황제들을 여럿 배출한 위대한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진정한 시조이자 족장이 되었다. 그의 탁월한 군사적 능력과 리더십은 로마가 쇠퇴하던 시기에 제국의 국경을 방어하고 안정을 되찾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의 삶은 로마 제국의 황혼기, 한 개인의 능력이 제국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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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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