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목요일

콘스탄티우스 2세(Constantius II, AD.317~361) : 로마 제국 제45대 황제(AD.337~361)

콘스탄티우스 2(Constantius II, AD.317~361) : 로마 제국 제45대 황제(AD.337~361)

 

로마 제국의 마지막 통일 황제, 콘스탄티우스 2

  • 플라비우스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Flavius Julius Constantius)
    콘스탄티우스 2(Constantius II)
    고대 그리스어 : Κωνστάντιος
  • 부친 :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
    모친 : 파우스타(Fausta)
  • 출생 : 기원후 31787
    사망 : 기원후 361113
  • 재위 :
    Caesar : 기원후 324118~ 33799
    Augustus : 기원후 33799~ 361113

공동 통치 :

  • 콘스탄티누스 2(Constantine II, 337~340) : 아우구스투스(정식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장남. 갈리아ㆍ브리타니아ㆍ히스파니아 통치. 동생 콘스탄스와의 내전 중 사망.
  • 콘스탄스 1(Constans I, 337~350) : 아우구스투스. 콘스탄티누스의 막내아들. 이탈리아ㆍ아프리카ㆍ일리리쿰 통치. 후에 형 콘스탄티누스 2세의 영토도 흡수. 나중에 마그넨티우스에게 살해당함.
  • 마그넨티우스(Magnentius, 350~353) : 찬탈자(Usurper). 콘스탄스 1세 사후, 스스로 황제 선언. 서방을 장악했지만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패배 후 자살.
  • 베트라니오(Vetranio, 350) : 자칭 황제 퇴위. 일리리쿰 군대에 의해 지지받아 황제로 추대됨.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평화적으로 퇴위함.
  • 네포티아누스(Nepotianus, 350) : 28, 찬탈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카. 로마에서 황제로 자칭했으나 곧 진압되어 살해됨.
  • 율리아누스(Julian, ‘the Apostate’, 360~361)카이사르 시절은 355~360. 자칭 아우구스투스(360) 정식 황제(361). 콘스탄티우스 2세의 사촌. 갈리아 방면에서 군사적 명성을 얻고 황제로 추대됨. 후에 단독 황제가 됨.

콘스탄티우스 2세(Constantius II, AD.317~361) : 로마 제국 제45대 황제(AD.337~361)
콘스탄티우스 2세(Constantius II, AD.317~361) : 로마 제국 제45대 황제(AD.337~361)
 

1. 혼돈 속 왕자의 탄생과 제국의 그림자

 
기원후 3세기는 로마 제국에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극심한 혼란과 변화의 시기였다. 끊임없는 내전과 빈번한 황제 교체, 그리고 제국 안팎의 위협은 로마를 뿌리째 흔들었다.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고 제국을 재통일하며 기독교를 공인한 위대한 황제 콘스탄티누스 1(Constantine I)에게는 두 번째 아내 파우스타에게서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첫 번째 아내의 아들 크리스푸스는 제국 통일 전에 죽음). 그중 둘째 아들이자 훗날 로마 제국 전체를 자신의 통치 아래 두게 되는 인물이 바로 플라비우스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Flavius Julius Constantius), 즉 콘스탄티우스 2(Constantius II, 31787~ 361113). 그의 통치 기간은 내전과 국경 방어, 그리고 종교적 갈등으로 얼룩진 격동의 시간이었다.
 

2. 권력의 계승 : 카이사르에서 아우구스투스까지

 
콘스탄티우스 2세는 31787일 판노니아(Pannonia)의 시르미움(Sirmium)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와 그의 두 번째 아내 파우스타(Faust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살아생전부터 권력의 맛을 보았다. 불과 7세였던 324118, 그는 아버지에 의해 카이사르(Caesar)’의 지위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로마 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후계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3375,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망하자 로마 제국은 다시 한번 권력 공백과 혼란에 직면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뜻에 따라 제국은 세 아들 콘스탄티우스 2, 콘스탄티누스 2(Constantine II), 콘스탄스(Constans)와 두 사촌인 달마티우스(Dalmatius), 한니발리아누스(Hannibalianus) 등에게 분할 통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콘스탄티우스 2세는 로마에 돌아와 제국의 통치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는 군부의 지지를 얻어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피의 숙청을 감행했다. 아버지의 친인척인 달마티우스, 한니발리아누스 등을 포함한 여러 친척들이 학살되었다. 이 사건은 권력에 대한 그의 냉혹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숙청 후, 33799, 콘스탄티우스 2세는 그의 두 형제 콘스탄티누스 2, 콘스탄스와 함께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선포되었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제국의 동방, 즉 그리스, 트라키아, 아시아 속주, 이집트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의 초기 재위 기간은 주로 사산 제국 페르시아와의 끊임없는 국경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이 전쟁은 수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결정적인 승리 없이 비용만 많이 드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3. 내전의 승리자 : 단일 제국의 황제

 
제국의 서방에서는 콘스탄티우스 2세의 형제들 간의 다툼이 계속되었다. 340, 장남 콘스탄티누스 2세는 막내 동생 콘스탄스의 통치 영역을 침공하다가 전사했다. 이로써 콘스탄스가 서방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두 형제, 콘스탄티우스 2세와 콘스탄스는 350년까지 불안한 평화를 유지했다.
 
하지만 350, 서방에서 고위 장군 마그넨티우스(Magnentius)가 반란을 일으켜 콘스탄스를 살해하고 스스로 황제를 자처했다. 마그넨티우스를 정통 황제로 인정할 수 없었던 콘스탄티우스 2세는 복수를 위해 곧바로 그와의 내전에 돌입했다. 이 전쟁은 당시 로마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내전 중 하나였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351년 무르사 마이오르 전투(Battle of Mursa Major)에서 마그넨티우스의 군대를 격파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353년 몬스 셀레우쿠스 전투(Battle of Mons Seleucus)에서 다시 마그넨티우스를 패배시켰다. 결국 마그넨티우스는 이 전투에서 패한 후 자살했다. 이로써 콘스탄티우스 2세는 로마 제국 전체의 유일한 아우구스투스가 되어 제국을 재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비견될 만한 위업이었다.
 

4. 내치와 대외 정책 : 신념과 전략

 
단일 황제가 된 후, 콘스탄티우스 2세는 제국의 안정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뛰어난 행정가이자 유능한 군사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 종교 정책 : 그는 기독교 내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으며, 니케아 신경을 따르는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을 탄압했다. 이교도들의 희생 제사를 금지하고, 유대인에 대한 법령을 발표하는 등 종교 문제에 깊이 개입했다. 이는 당시 제국 내 종교적 분열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 군사 캠페인 : 게르만족과의 전쟁에서도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354년에는 알라마니족(Alamanni)을 격파했으며, 357년에는 다뉴브 강을 건너 콰디족(Quadi)과 사르마티아족(Sarmatians)에 맞서 승리했다. 이는 제국 국경 방어를 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 친족 통치 : 제국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그는 351년 사촌인 콘스탄티우스 갈루스(Constantius Gallus)카이사르로 임명하여 동방을 다스리게 했다. 그러나 갈루스가 폭력적이고 부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후, 3년 뒤인 354년에 그를 처형했다. 그리고 355, 갈루스의 이복 동생이자 자신의 마지막 생존 사촌인 율리아누스(Julian)카이사르로 승격시켜 갈리아를 다스리게 했다. 이는 훗날 그에게 큰 위협이 된다.
 

5. 율리아누스와의 갈등, 그리고 마지막

 
359, 사산 제국과의 전쟁이 다시 격화되었고, 콘스탄티우스 2세는 360년 동방으로 이동하여 안정을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서방에 남겨두었던 율리아누스가 자신의 군대에 의해 아우구스투스로 선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율리아누스에게 물러날 것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두 황제 간의 전면적인 내전이 임박하게 되었다.
 
양측 군대가 서로를 향해 진군하는 가운데, 361113, 콘스탄티우스 2세는 갑작스럽게 열병에 걸려 모프수에스티아(Mopsuestia)에서 사망했다. 그는 죽기 직전 율리아누스를 자신의 정당한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피할 수 없는 대결은 막을 내렸고, 율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
 

6. 역사적 평가와 논란

 
콘스탄티우스 2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일부 역사가들은 그를 양심적이지만 허영심 많고 어리석은 인물로, 아첨꾼들에게 쉽게 넘어가는 나약한 통치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평가에서는 그가 동시대인들에게 존경받았으며, 뛰어난 충성심을 이끌어냈다고 본다. 특히 유세비우스(Eusebius)와 같은 정통 교회 인물들에게 그는 아리우스주의를 지지한 독선적인 인물로 비판받았고, 율리아누스는 그를 살인자이자 폭군으로 여겼다.
 
하지만 콘스탄티우스 2세는 분명 로마 제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3세기의 위기 이후 끊임없이 재발하던 내전을 종식시키고 한동안 로마 제국 전체를 통일하여 다스렸다. 그의 통치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변모하고, 동서로 분리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종교적 신념에 대한 확고함과 권력 유지에 대한 냉철함으로 얼룩진 그의 삶은 로마 제국의 격동적인 운명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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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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