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목요일

콘스탄스(Constans, AD.c.323~350) : 로마 제국 제45대 황제(AD.337~350)

콘스탄스(Constans, AD.c.323~350) : 로마 제국 제45대 황제(AD.337~350)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비운의 막내, 콘스탄스 황제

  • 플라비우스 율리우스 콘스탄스(Flavius Julius Constans)
  • 콘스탄스 1(Constans I)
  • 부친 : 콘스탄티누스 1(Constantine I)
    모친 : 파우스타(Fausta)
  • 출생 : 기원후 322년 혹은 323
    사망 : 기원후 3501
  • 재위 :
    Caesar : 기원후 3331225~ 33799
    Augustus : 기원후 33799~ 3501

콘스탄스(Constans, AD.c.323~350) : 로마 제국 제45대 황제(AD.337~350)
콘스탄스(Constans, AD.c.323~350) : 로마 제국 제45대 황제(AD.337~350)
 

1. 혼돈의 로마, 새로운 황제들의 시대

 
기원후 3세기는 로마 제국에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극심한 혼란과 격변의 시기였다. 끊임없는 내전과 빈번한 황제 교체, 그리고 제국 안팎의 위협은 로마를 심각한 불안정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혼돈을 잠재우고 제국을 재통일하며 기독교를 공인한 위대한 황제 콘스탄티누스 1(Constantine I)의 두 번째 아내인 파우스타(Fausta)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중 막내로 태어나 로마 제국의 중부 지역을 통치했던 인물이 바로 플라비우스 율리우스 콘스탄스(Flavius Julius Constans), 즉 콘스탄스(Constans, 323년경~350) 황제다. 그는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 속에서 황제에 오르고 짧은 전성기를 누렸으나,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로마 제국의 격변기 속 혼돈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2. 젊은 황자의 탄생과 교육

 
콘스탄스는 322년 또는 323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와 그의 아내 파우스타(Faust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의 세 아들 중 막내였다. 티모시 반스(Timothy Barnes) 같은 일부 학자들은 주화 증거를 바탕으로 그가 죽었을 때 나이가 27세였다는 점을 들어 323년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콘스탄스는 어린 시절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le)에서 교육을 받았다. 시인 아이밀리우스 마그누스 아르보리우스(Aemilius Magnus Arborius)의 지도 아래 라틴어 교육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황제로서 갖추어야 할 지적 소양을 쌓는 과정이었다.
 
3331225, 콘스탄스는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카이사르(Caesar)’의 지위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로마 제국의 잠재적인 후계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통치 초기에는 프레토리안 프리펙투라(praetorian prefectures) 중 이탈리아(Italy), 일리리쿰(Illyricum), 아프리카(Africa) 지역의 행정권을 부여받았다.
 

3. 삼형제 분할 통치의 시작과 초기 승리

 
3375월 콘스탄티누스 1세가 사망하면서 로마 제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제국을 자신의 아들들에게 분할하여 통치하도록 계획했다. 3379, 콘스탄스는 두 형 콘스탄티누스 2(Constantine II)와 콘스탄티우스 2(Constantius II)와 함께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제국의 중부 지역인 이탈리아, 일리리쿰, 아프리카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황제로 즉위한 직후, 콘스탄스는 군사적 역량을 발휘하여 사르마티아족(Sarmatians)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는 그의 통치 초기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제국은 아직 불안정했고, 형제들 간의 잠재적 갈등은 이미 싹트고 있었다.
 

4. 형제와의 피할 수 없는 갈등 : 콘스탄티누스 2세와의 대결

 
삼형제는 제국을 분할 통치했지만, 권력에 대한 야망과 서열 의식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다. 장남인 콘스탄티누스 2세는 자신이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이어받을 정당한 상속자라고 생각했으며, 동생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막내인 콘스탄스에게 자신의 장자권(primogeniture)’을 강요하려 했으며,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340, 콘스탄티누스 2세는 군대를 이끌고 콘스탄스의 통치 영역인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그는 동생의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콘스탄스는 형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340, 아퀼레이아(Aquileia)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콘스탄스 군대는 콘스탄티누스 2세의 군대를 격파했고, 콘스탄티누스 2세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승리로 콘스탄스는 콘스탄티누스 2세가 통치하던 갈리아(Gaul) 지역의 프레토리안 프리펙투라까지 자신의 지배하에 넣으며 서방 제국의 광대한 지역을 통합했다. 이로써 콘스탄스와 콘스탄티우스 2세 두 명의 아우구스투스 체제로 로마 제국이 재편되었다.
 

5. 동생 황제와의 긴장과 종교 문제

 
콘스탄스와 콘스탄티우스 2세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했다. 특히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주교 문제로 두 황제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동방의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추방된 인물이었으나, 콘스탄스는 그를 지지했다. 343년 사르디카 공의회(Council of Sardica)에서 아타나시우스의 복권을 요구하며 압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타나시우스는 콘스탄스를 가장 경건한 아우구스투스... 복되고 영원히 기억될 분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콘스탄스는 또한 프랑크족(Franks)을 상대로 성공적인 군사 작전을 펼쳤다. 343년에는 로마 황제로는 드물게 브리타니아(Roman Britain)를 직접 방문했다. 이는 훗날 천 년이 지난 1400년에 마누엘 2(Manuel II Palaiologos)가 방문하기 전까지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브리타니아를 직접 방문한 마지막 사례였다.
 

6. 통치 후반의 불운과 비난, 그리고 몰락

 
콘스탄스는 통치 후반에 들어서며 점차 인기를 잃었다. 일부 문헌에 따르면, 그는 사악한 행동동성애혐의로 비난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은 마그넨티우스(Magnentius) 진영의 선전전의 영향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가 군대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엄격하고 가혹한 성격으로 인해 병사들의 불만을 샀다.
 
결국 3501, 서방의 고위 장군이었던 마그넨티우스가 갈리아에서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아우구스투스를 칭했다. 마르셀리누스(Marcellinus)의 지지를 얻은 마그넨티우스는 오토둥(Autun)에서 황제로 선포되었다. 마그넨티우스의 반란 소식에 콘스탄스는 도주했지만, 결국 그는 프랑스 남서부의 빅키아 헬레나(Vicus Helena, 오늘날 엘느 Elne) 근처에서 마그넨티우스의 추격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당시 콘스탄스가 반란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살해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로써 콘스탄스의 13년에 걸친 황제 통치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7. 역사적 평가와 남겨진 그림자

 
콘스탄스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형 콘스탄티누스 2세를 제거하고 서방을 통합하며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결국 자신의 인기 하락과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죽음은 콘스탄티우스 2세와 마그넨티우스 간의 새로운 내전의 서막을 열었으며, 로마 제국의 통일이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역사적으로 콘스탄스는 기독교를 지지하며 정통 신앙을 옹호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아타나시우스를 옹호하고 니케아 신조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한 비난과 군대와의 불화는 그의 통치를 취약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의 시대는 급변하는 로마 제국의 운명 속에서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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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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