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9일 월요일

[한국전쟁] 맥아더를 해임한 트루먼, 원자탄 사용을 주장한 이승만

1951314일 국군과 미군은 서울을 재탈환했다. 시가전 한번 없이 무혈입성했다. 서울이 워낙 파괴돼 있었기 때문에 공산군도 3월 상순부터 서울을 비워두었다. 백선엽은 한마디로 공동묘지를 탈환했다고 하는 것이 적합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휴전을 생각한 미국, 북진을 주장한 이승만

 
미국은 휴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용납할 이승만이 아니었다. 이승만은 1951324일 성명을 발표해 38선을 남겨둔 채 전쟁을 종결하려는 것은 한국이라는 것이 인위적인 국경선으로 말미암아 북한의 공업지대와 남한의 농업지대가 분리되어 가지고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유엔군은 반드시 북진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있는 한국과 만주 간의 자연적 국경선까지 진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휴전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맥아더

 
북진에 관한 한 이승만과 늘 배짱이 맞는 미국인은 맥아더였다. 미국 정부의 휴전 움직임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맥아더도 324일 북진 명령을 내렸다. 맥아더가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 조셉 마틴의 서신에 대해 답변한 320일자 서신이 45일에 공개됨에 따라 트루먼과 맥아더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맥아더는 그 서신에서 대만군의 투입과 아시아에서의 확전을 주장했다.
 
맥아더는 동경에서 다른 서방국가의 외교관들에게 수시로 트루먼의 전쟁 정책을 비판하는 말을 해대고 있었다. 사적인 발언이었지만, 이 발언들은 미 국가안보국에 의해 다 도청되어 트루먼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 트루먼의 결단, 맥아더 해임

 
결국 트루먼의 결단이 내려졌다. 411, 트루먼은 맥아더를 극동군 사령관 겸 유엔군 사령관의 직위에서 해임하였다.
 

# 맥아더 해임에 대한 영국, 유럽의 반응

 
맥아더의 해임 소식에 영국 하원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전쟁이 확대될 경우 영국은 자국에 있는 미국의 전략공군기지 때문에 소련 핵공격의 일차적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염려하고 있었다. 또 홍콩이 중국군에게 점령되는 것도 우려했다. 영국의 기쁨에 미치지는 못했을망정 유럽은 전반적으로 맥아더의 해임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환영했다.
 

# 맥아더 해임에 대한 미국의 여론

 
그러나 미국의 여론은 그렇지 않았다. 맥아더는 416일 도쿄를 떠나 19일 미 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고별 연설을 하였는데, 이때에 남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라는 말이 이후 인구에 회자되었다.
 

# 맥아더가 일부러 해임을 자초했다는 주장

 
맥아더가 해임을 일부러 자초했다는 주장도 있다. 해임 전 그가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은 맥아더의 불길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매튜 리지웨이의 지휘로 전세가 다시 역전되었고, 중공군 개입 예측 실패 등 이후 실패를 거듭해 온 그는 한국을 빠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초라하게 귀환하느니 차라리 트루먼에게 해임당함으로 명분을 얻고자 했다는 것이다.
 
맥아더의 해임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은 이승만이었다. 맥아더의 해임 소식에 이승만은 때마침 소장 진급 신고를 하러 간 백선엽에게 맥아더가 나의 심정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군인이었다며 아쉬움과 앞으로의 전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였다.
 

# 원자탄 사용을 주장한 이승만

 
정일권은 한국전쟁 때 이승만이 맥아더 비판론자들을 겨냥하여 분통을 터뜨리며 미국만이 갖고 있는 원자탄을 왜 사용하지 않으려는가. 악독한 일본 군벌도 원자탄 두 발로 깨끗이 끝장나지 않았던가라고 말한 것으로 회고했다.
 
비단 이승만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반공주의자들이 맥아더를 떠받들면서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은 걸 안타깝게 생각했다. 훗날 대통령 김영삼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 원자탄의 사용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홍구는 원자폭탄의 사용을 전제로 한 맥아더의 만주 폭격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이는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즉각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일이었다고 말한다.
 
더구나 맥아더는 합동참모본부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야 할 목표 지점으로 한두 곳이 아니라 무려 26곳을 선정하여 보고하면서 즉각적인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도 1차로! 이런 위험한 발상을 한 맥아더를 해임한 것은 한반도를 위해서나 세계 평화를 위해서나 천만다행한 조치였다. 맥아더가 이렇게 강력한 주장을 한 것은 전쟁 수행 과정에서의 자신의 판단 착오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는 끊임없는 정보 보고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공격 가능성을 무시했으며, 중국군의 개입 가능성을 묵살하고 38도선 이북으로의 북진을 단행했다. 더구나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중국군이 개입하자 미군은 미군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기억되는 장진호 패배를 당하는 등 중국군에 크게 밀렸다....”
 

# 맥아더의 후임 리지웨이, 한국군의 수준

 
195151일 맥아더의 뒤를 이어 극동군사령관이 된 리지웨이는 워싱턴 육군부로 1급 비밀 전문을 발송하였다. 이 전문에서 리지웨이는 이승만이 요청한 한국군 10개 사단 추가 무장건을 언급하면서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이유는 지휘력이 엉망이고 훈련 상태가 형편없는 현재의 한국군에게 무기와 장비를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미 합참의장 오마르 브래들리는 심지어 한국군 부대를 미군 장교들이 지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이승만은 미군측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한국군 집중 훈련이었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제1, 22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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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맥아더에 대한 환상은 거의 신앙화되어 있는 것 같다. 인천상륙작전 하나에 대한 강렬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북한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올 때 판단 착오로 스미스 부대가 궤멸되는 상황과,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무시하고 38선을 넘어 북진한 것 등에 대한 판단 미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인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중국이 압록강을 넘어온 후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전황을 반전시킨 것은 맥아더가 아니라 리지웨이였다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맥아더가 만주에 핵무기를 사용하자고 주장했었고, 이승만 등을 비롯한 반공주의에 철저한 정치인들이 주장했었다는 대목은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기에 그들의 주장이 씹혔다는 사실에 안도함을 느끼게 된다.
 
이승만은 당시에 미국만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미 소련은 49년에 핵실험에 성공해서 핵보유국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625전쟁이 시작된 이후 줄곧 실현불가능한 북진통일에 매달리는 이승만이 그 당시 대한민국의 수준으로 전 세계는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개나 줘버리고, 판단력 상실과 정보력 부재는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러움으로 느껴진다.
 
625 이후의 세대들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배울 때마다 (한국전쟁 부분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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