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에서 모두 외면당한 김원봉의 죽음

김원봉은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 귀국합니다. 그러나 해방된 지 6개월도 안되어 찬탁-반탁으로 국론이 분열되면서 김원봉은 절망합니다. 통일된 독립국가 건설을 열망하며 ‘민주주의민족전선’ 공동의장이 되었지만 악질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돼 모욕과 고문을 당합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아나키즘, 사회주의를 한때 이용했을 뿐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극우 친일세력이 지배하는 해방된 남쪽에서 목숨을 보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승만은 친일세력과 극우 반공세력을 제외하곤 전부 정치적 반대자로 탄압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사회민주주의자, 진보적 민족주의자, 심지어 우파 민족주의자들조차 목숨을 보존할 공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1947년 여름 몽양 여운형이 선생이 피살되고 약산 김원봉은 암살 위협에 직면합니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김원봉의 부친은 연금당한 채 굶어죽었고, 약산 김원봉의 형제들인 김용봉, 김덕봉, 김구봉, 김봉기 4명과 사촌 형제들 5명은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총살당합니다.

 

약산 김원봉의 막내 여동생 김학봉은 김원봉 월북 당시 경남여고 학생 신분으로 경찰에 끌려가 여러 시간 물고문을 당했습니다. 전쟁 기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지만 수년간 옥살이를 했고 그녀의 남편은 거름더미에 숨어 지내다 병을 얻어 죽습니다. 김학봉의 시아주버니는 남편 대신 처형당하는 등 김원봉의 직계 가족과 사촌 형제, 심지어 사돈 집안까지 총살당하는 참화를 겪습니다.

 

약산 김원봉은 1948년 4월 남북협상 때 북에 잔류하면서 북쪽 사회에서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을 역임합니다. 그러나 ‘한반도 중립국화’를 주장하며 김일성 정권을 비판한 결과, 1958년 김일성에 의해 투옥되고 숙청됩니다. 북한 정권은 김원봉의 시신을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모시질 않았습니다. 대단히 옹졸하고 비열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약산(산처럼) 김원봉의 절친한 친구 약수(물처럼) 김두전, 여성(벌처럼) 이명건 역시 반혁명분자로 숙청됩니다. 일제 강점기 가장 거액의 현상금이 붙었던 조선독립운동의 영웅, 약산 김원봉!

 

우리들 머릿속에 기억되는 독립운동가를 꼽으라면 대개 김구, 유관순, 안창호, 이승만, 윤봉길, 이봉창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보수신문은 월북했던 김원봉에 비해 유관순에 대한 교과서 서술이 미약하다고 강변합니다. 나아가 이승만, 서재필에 대한 기술은 부실하고 김원봉에 대한 서술에 치우쳤다며 이념적으로 편향된 시각이라고 주장합니다.

 

더구나 박근혜 정권에서는 한국사 교과서를 검인정에서 국정교과서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 와중에 김원봉에 대한 서술조차 한국사 교과서에서 없앤다는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김구에게 내걸었던 현상금이 60만 원인 데 비해 김원봉에게 내건 현상금은 무려 100만원이었습니다. 오늘날 200~30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최고의 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월북하여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단히 옹졸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남북 정권 모두 외면한 비운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이제는 대한민국이 먼저 서훈 신청을 받아서 독립유공자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입니다.

 

하성환, 『진실과 거짓, 인물 한국사』, 216-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