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한국전쟁] 전쟁의 광기... 민간인 학살...

어느 쪽으로 갈지 가르쳐 주십시오.”
 
전쟁의 학살 광기를 나주 부대의 학살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도 없을 것이다. 인민군복을 입은 자기 농부에게 총을 겨누면서 공산당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살기 위해 좋아한다고 답해야지 어떡하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답하면 그 즉시 사살을 당했다.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공산당을 싫어한다고 답하지 않은 죄 때문이었다.
 
각기 상황과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망정 대부분의 민간인 학살이 그런 논리에 의해 자행되었다. 목숨을 걸고 그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쪽에 의해 죽고 저 쪽에 의해 죽는 비극이 전 한반도에 걸쳐 연출되었던 것이다.
 
황석영의 흐르지 않는 강총구를 마주 대하고 있는 농민이 총을 겨눈 자에게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지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기가 막힌 우문현답을 제시하고 있다. 비록 그런 우문현답은 학살의 현장에서 통하지 않았지만, 이는 학살의 단세포적 광기, 아니 그 비극의 희극성을 고발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개 부대의 병사들이었어. 그들이 어느 편인가는 어두워서 도무지 알 수 없었거든. 총부리만 보였어. 아마도 남이나 북의 경찰대였을 거야. 그들은 수로 안에서 기어 나온 피난민들을 밭고랑에다 일렬로 세워 놓고 물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은 나와. 아무도 안 나갔지. 김일성 장군을 지지하는 사람 나와. 그래도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어. , 이것들 봐라. 좋아 그러면 이쪽은 이승만 대통령, 저쪽은 김일성 장군이다. 빨리빨리 움직여. 제 자리에 남아 있는 놈들은 더 악질이니까 모두 쏴 죽인다. 노리쇠를 후진시켰다가 놓는 철거덕 하는 소리. 사람들은 저마다의 판단을 하면서 노름을 거는 심정으로 슬슬 움직였어. 수는 아버지에게 업혀 있었는데 그의 등판에 귀를 대고 있으려니까 아버지의 숨소리가 깊숙한 동굴의 밑바닥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았지. 그는 굳게 밭고랑을 딛고 있었거든. 너희들은 왜 안 나오나. 모두들 바위 같은 침묵. 이 새끼들, 모두 쏴 죽여 버려. 몇 사람이 움직이고, 아버지가 나지막히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식해서 정치는 잘 모르지만 세금은 꼬박꼬박 냅니다. 그저 난리를 피해서 집에서 나온 것뿐입니다. 어느 쪽으로 갈지 가르쳐 주십시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제2, 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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