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이승만, 미국에서 제3차 세계대전을 촉구하다 [1954년 7월]

정전협정 이후 19544월 26일 제네바에서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이 유엔측에서는 남아연방만 빠진 15개 참전국, 공산측에서는 북한ㆍ중공ㆍ소련 등 3개국이 참석했다. 남한 정부는 외무부장관 변영태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제네바 회담은 615일 아무런 성과없이 종결되었으며, ‘한국문제1959년 제14차 총회 때까지 매년 연례적으로 유엔에서 마지못해 토의되는 일종의 의식(儀式)이 되었다.
 

# 이승만, 원조를 받기 위해 최대한 허름하게 보이려고 애쓰다

 
19547월 하순 이승만은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공항에서 세계통신기자 지갑종이 이승만의 텁수룩한 머리 모습을 보고 각하 이발 좀 하고 가시지요라고 말하자, 이승만은 여보게 돈(원조) 얻으러 가는데 말끔하게 차리면 누가 주겠나. 허름하게 보이도록 해야지라고 답변했다.
 
그게 이승만의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돈을 얻기 위한 이승만의 방법은 너무 과격해 역효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승만은 728일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을 촉구하는 초강경 연설을 하였다.
 

# 미국 상하원 앞에서 제3차 세계대전을 촉구하다!

 
앞으로 시간적 여유는 특히 적습니다. 불과 수년 이내에 소련은 미국을 파괴할 여러 전쟁 수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당장 행동을 개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데서 행동을 개시할 수 있겠습니까? 극동이야말로 바로 우리들이 행동할 수 있는 곳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반 무장을 갖춘 20개 사단을 여러분에게 제공하였고 또 앞으로도 새로운 20개 사단을 구성할 수 있는 인원을 제공할 것입니다...... 중공 정권에 대한 반격전에 있어서 성공을 기하기 위하여서는 미국의 공군 및 해군의 힘이 필요한 것이지만, 미국의 보병은 단 1명도 필요치 아니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거듭 말씀...... (소련의 참전은) 그것이야말로 자유진영을 위하여 대단히 좋은 기회...... 왜나하면 소련이 수소탄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전에 미국 공군으로 하여금 소련의 생산 중심지를 파괴하는 것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중공 정권은 극히 취약한 발을 가진 괴물입니다. 미국이 중공 화물의 60%를 운반하는 해안을 봉쇄한다면 중공의 교통망은 일대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미국은 지상군을 투입 않고 해ㆍ공군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본토가 자유진영으로 환원하게 되면 한국과 인도지나(인도차이나) 전쟁은 자동적인 승리로 귀결된 것입니다.”
 

# 한국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이승만이 역점을 두고자 했던 것은 미국의 보병은 단 1명도 필요치 아니하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한국을 이용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이승만이 역설해온 것이었다. 이승만은 195458뉴욕타임스기고를 통해 한국이 인도차이나에 2개 사단을 파견할 뜻이 있다는 제안을 했었다는 걸 상기시키면서 그 제안은 제스처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처하지 않으면 아시아에는 미국과 자유라고 하는 대의를 도울 나라는 남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승만은 시카고에서도 중국과의 즉시 결전을 다시 강조하고 북진을 열원(熱願)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승만의 연설을 불행한 연설로 평가하면서 이승만의 시나리오대로 했다간 미국이 고립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세계는 핵전쟁으로 잿더미가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 이승만의 호전성이 가져온 역효과, 미군 철수 발표

 
이승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의 방미는 불행한 방문이 되고 말았다. 이승만의 귀국 직후 미국은 이승만의 호전성에 불안감을 느껴 주한 미군을 2개 사단만 남겨놓고 나머지 4개 사단을 수개월 내에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국회는 818일 야간에 국회를 소집하여 유엔군 일부 철수에 대한 반대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승만 정권하에서 일상적인 행사가된 관제 시위가 빠질 리 없었다. 일부 시위대는 북진통일과 미군 철수 반대를 외치면서 미국 대사관을 포위하기도 했다.
 

# 과격한 제안은 사실은 국내용(?)

 
이승만은 자신의 제안이 미국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렇진 않았을 것 같다. 그의 과격한 발언은 대통령 중임 제한 철폐를 위한 개헌과 무관치 않은 행보였을 것이다.
 
서중석은 이승만의 이런 강경 발언이 세계적으로 극우 반공투사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정국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승만 자신이 세계적인 반공투사로서 북진통일에 대해서 얼마나 결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과시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서 개헌안 통과의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세계적인 반공투사이자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국내에 부각시키는 것도 늘 세계열강들에게 동네북처럼 당하고만 살아온 한국 민중의 가슴 한구석에 어필하는 것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8월 하순, 이승만은 전국애국단체연합회가 주최한 방미 귀국환영대회에서 수만 군중을 앞에 두고 원자폭탄을 쓰는 것만이 공산주의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임을 다시금 역설하였다.
 

# 당장은 미군 철수를 막아라! : 학생들의 절규

 
그러나 우선 당장은 미군 철수를 막는 것이 급선무였을 게다. 이거야 전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일이니, 이승만의 방미가 불행한 방문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대 대학신문1954929일자에 실린 한국을 침략자에게 팔지 말라 : 철군 반대 본격화, 전학도의 비장한 시위 계속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절규하였다.
 
“‘미국은 한국을 공산 침략자에게 팔지 말라!’ 비장한 플래카드를 선두로 23일 조조부터 서울시내 수만의 젊은 학도들은 저물도록 전시가를 시위하며 목이 아프도록 미군 철수 반대를 외쳤다. 누구보다도 공산 침략의 잔인성을 체험하고 누구보다도 미군을 신뢰하며 자유진영 최첨단에서 10년간 시종일관 과감하게 투쟁해온 젊은 한국의 백만학도들은 하등의 대책 없이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키는 미국의 일방적 처사에 눈물을 머금고 교실에서 거리로 미군 철수는 625 다시 온다는 구호를 목메인 소리로 외치며 나섰다.”
 
이처럼 공산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전선에 나서느라 1950년대 대학생들에겐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제2, 19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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