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4일 일요일

출발부터 ‘에큐메니즘’을 표방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

WCC와 에큐메니컬 운동의 오해에 대한 총회의 적극적 해명

 
1953년 조선신학교측(한국기독교장로회)과 결별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54, “WCC가 세계 개신교 모든 교파를 하나로 합쳐서 초대형 단일 교파를 만든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WCC의 근본정신은 각 교파의 신조 통일을 의미함이 아니요, 각자의 신조를 존중하면서... 각 교파의 친선과 사업협동을 도모함에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총회에서 대표를 파송하는 것은 우리가 고립주의를 택하지 않는 증거(이다)... 우리 총회의 기본노선은 신조 신경을 단일화시켜 교파를 초월하려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거부한다는 것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을 신조까지 단일화시키는 교회 통일운동으로 해석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들의 견해인 것이다.” - 장로교 총회의 정치부 담화문, 기독공보(1954.5.24.)

 

한경직 목사의 강조 : “한국 장로교회의 전통은 에큐메니즘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WCC(세계 개신교를) 단일 교파로 만들고, ()신학이며, 용공단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경직 목사는 한국 장로교회의 전통은 에큐메니즘이라고 선포하였다(한경직 설교집4, 112). 그는 그 전통이 내한 선교사들의 연합과 협조의 정신으로 형성되었고, 그 정신으로 전개된 연합 사업은 한글성경번역, 기독교신문 발간, 찬송가 발간, 학교와 병원 운영 등이라고 설명했다. 연합과 협조의 전통을 한국 교회가 반드시 계승해야 하는데, 이 전통이 (지금) 세계 교회 에큐메니컬 정신과 꼭 일치되는 것이다.” 그 정신은 우리의 신조를 그냥() 지키면서 다른 교파와도 연합할 수 있는 일에 함께 연합해서 일에 협조하는 것이고, 이것이 에큐메니컬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한경직은 더 나아가서 이 에큐메니컬 정신을 반대하고 세계 교회와의 관계를 끊자는 사람들의 태도는 한국 장로교회의 전통에 반대되는 것이고, 비성경적 태도이며, 고립주의를 선택하는 것이며, 독선적 배타주의이고, 선교사들에 대한 배은망덕한 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에큐메니컬 정신을 반대하는 사상이란 독선적 바리새주의라고 지적했다.
 
한경직이 에큐메니컬 정신을 강조한 또 다른 이유는 1950년대 그 당시 아시아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상황에서 아시아 교회들의 친목”(교제, 코이노니아)협조”(연합 사업)가 매우 기급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경직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시아 대륙의 교회들과 북미와 유럽 대륙의 교회들이 상호 대등하게 수평적으로 연합하고 협력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59, 예장통합의 결의 : WCC는 탈퇴하지만 에큐메니컬 운동은 포기할 수 없다!

 

“WCC에 대한 견해 차이로 총회가 분열하기까지 했고, 그렇게 분열된 총회의 화합을 위하여 (미국) 남 장로회 선교부가 탈퇴를 제안했으니, 그 제안을 받아들여 WCC에서 탈퇴하겠다. 그러나 승동측의 요구대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폐할 수는 없다. 만일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폐하게 되면 WCC에서의 탈퇴는 물론이고 국내에 있는 모든 연합 사업(대한성서공회,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교육협회, 기독교방송,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독학생회 등)을 중단해야 하며, 심지어는 내한 장로교회 선교부까지 거절해야 하므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전폐를) 수락할 수 없다(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44회 회의록(1959)). 


이 결의대로 예장통합 교단은 WCC에서 탈퇴했다. 그렇지만 국내 연합사업과 해외 교단/교파들과 교류 협력은 유지했다. 에큐메니즘 예장통합 교단이 출발했다.
 
가스펠투데이 편집부, 정통교회를 흔드는 실체 - 근본주의를 파헤친다, 가스펠투데이, 2023, 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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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예장(통합)의 존재 이유는 에큐메니즘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관점으로 예장(합동)과 분열하였으며, WCC를 탈퇴하더라도 에큐메니컬 운동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결의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경직 목사가 언급했듯이, WCC와 에큐메니컬 운동은 단일교회를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고 변화된 다양한 세계 속에서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교파를 뛰어넘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최근 특정한 사안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를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렇게 특정 사안별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참여 여부를 결정할만큼 세상이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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