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 수요일

[간추린 교회사] 제6장. 정복과 종교개혁

6. 정복과 종교개혁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두 가지의 중요한 사건들이 이 시기에 발생했다. 그 하나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정복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이다.

 

비록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정복을 교회사에서는 거의 취급하고 있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불과 백년 밖에 안되는 이 기간에 유럽은 세계의 많은 지역,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그 결과 자칭 기독교인들이 전례 없이 수적으로 많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서반구의 정복은 현재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교회는 오늘날까지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루터가 그의 유명한 95개조를 발표한 1517년을 보통 종교개혁을 시작한 연대로 잡는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이전에 오랫동안 개혁운동이 있어 왔지만, 개혁운동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 것은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을 반대한 사람들 모두가 루터와 그의 신학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곧 이어 또 다른 운동이 스위스에서 나타났다. 처음에는 쯔빙글리의 지도하에, 그 다음에는 칼빈의 지도하에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으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개혁교회장로교회가 탄생하였다.

 

이보다 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적들은 그들에게 재세례파”-다시 세례받는 사람이라는 뜻-라는 경멸적인 칭호를 부쳤다. 이 종교개혁파에서 메노파(Mennonites)와 몇몇의 다른 그룹들이 파생하였다.

 

영국에서는 다른 종류의 개혁이 나타났다. 이것은 개신교 신학(특히 칼빈 신학)을 따르면서 교회 정치와 예배에 관한 고대의 전통들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영국 국교회이며, 여기서 오늘날의 성공회감독파라는 이름의 교회들이 파생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종교개혁의 결과로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내부의 역동성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도 또한 이른 바 () 종교개혁으로 불리는 새로운 움직임을 겪었지만, 이 움직임은 종교개혁에 대한 단순한 반응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많은 갈등과 전쟁을 경험하면서도 개신교는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네덜란드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에서는 오랜 종교전쟁을 치른 후 일시적으로 타협을 한 결과, 왕은 가톨릭교도였지만 개신교 신자들을 인정하였다.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와 다른 나라들에서는 개신교를 무력으로 억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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