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2일 금요일

이규보 [동명왕편] 원문과 해석 (1)

 世多說東明王神異之事. 雖愚夫騃婦. 亦頗能說其事.

세상에는 동명왕의 신이한 일을 말하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비록 어리석은 남녀라 하더라도 또한 자못 능히 그 일을 이야기한다.

 

僕嘗開之. 笑曰. 先師仲尼. 不語怪力亂神. 此實荒唐奇詭之事. 非吾曺所設


내가 일찍이 그것을 듣고 웃으면 말하기를 ‘선사 중니께서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시고 이(동명왕의 이야기)는 실로 황당하고 기괴한 일이니 우리들이 이야기할 바가 아니다.’ 하셨다.

 

※譯註

1) 怪力亂神: ‘논어’의 述而篇에 나오는, “子不語怪力亂神”을 말한다. 怪는 요괴스러운 것, 力은 날래고 굳센 힘, 亂은 인륜에 어긋나는 것, 神은 귀신을 이르는 것으로 이들은 모두 인간의 심성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자는 이들에 대한 언급을 피해야 한다고 하였다.

2)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 不語라고 한 것은 (공자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3) 이규보는 또한 이 문장에서 공자를 자신의 선사라고 말하였으나 선사는 배움이 있었던 사람을 칭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적당한 표현이 아니며, 선사 다음에는 느닷없이 공자를 중니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 역시 무척 이상한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 글의 창작의도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부심을 나타내고자 했으므로, 이규보 또한 자신이 중국 최고의 학자라고 할 수 있는 공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음을 나타내고자 한 의도라고 볼 수도 있다.

 

及讀魏書通典. 亦載其事 然略而未詳. 豈詳內略外之意耶.


위서와 통전을 읽었더니 또한 그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생략되어 상세하지 않으니 (이는) 어찌 내부는 상세하고 외부는 생략한 뜻이 아니겠는가.

 

※譯註

1) 내부는 상세히 하고 외부는 생략하여 상세하지 않다는 뜻은, 중국은 압록강 이북의 땅은 중하게 여겼으나 이남의 땅은 하찮게 여겼으므로 위서와 통전에서도 그 사실을 하찮게 다루었음을 말하고 있다.

 

越癸丑四月. 得舊三國史. 見東明王本紀. 其神異之迹. 踰世之所說者. 然亦初不能信之. 意以踰鬼幻. 及三復耽味. 漸涉其源. 非幻也. 乃聖也. 非鬼也. 乃神也.


다음 해(越 다음에 年이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계축 사월(서기 1193년으로 이규보의 나이 25세 때임)에 구삼국사를 얻어서 동명왕본기를 보니 그 신이한 자취가 세상에서 말하는 것을 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것을 능히 믿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귀환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여기서는 여러 번 이라는 의미)을 다시 탐독하고 음미하여 점차 그 기원에 다가가니 환이 아니고 성이며 귀가 아니고 신이었다.

 

况國史直筆之書. 豈妄傳之哉. 金公富軾重撰國史. 頗略其事. 意者公以爲國史矯世之書. 不可以大異之事爲示於後世而略之耶.


하물며 국사는 직필하는(역사를 똑바로 적는) 책인데 어찌 그것을 망령되이 전하겠는가. 김공 부식이 국사를 중찬할 때 자못 그 일을 생략하였는데, (이는) 공이 생각컨데(意者-이규보의 생각을 말함) 국사는 세상을 바로잡는 책이며, 크게 이상한 일은 후세에 보일 것이 아니라고 하여 그것을 생략함이 아니겠는가.

 

※譯註

1) 이 문장에서 이규보는 역사서술의 기본이 직필이라고 말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세적인 가치관은 공자의 가르침을 좇아 동명왕의 이야기와 같은 것은 황당하기에 배척함이 마땅하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규보는 위와 같이 기존의 중세적 가치관과 김부식의 역사 서술에 대한 회의를 보이고 역사의 진실성을 문제삼는 개방적인 의식으로의 전환을 보였다. 특히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신이한 사실의 대부분을 생략했기 때문에 이규보는 이 국가창건의 신성한 업적이 후세에 전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이 글을 짓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按唐玄宗本紀. 楊貴妃傳. 並無方士升天入地之事. 唯詩人白樂天恐其事淪沒作歌以志之. 彼實荒淫奇誕之事. 猶且詠之以示于後. 矧東明之事. 非以變化神異眩惑衆目. 乃實創國之神迹則此而不述後將何觀. 是用作詩以記之. 欲使夫天下知我國本聖人之都耳.


당현종본기와 양귀비전을 살피건데(按), 둘 다 방사가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간 일은 없다. 무릇(唯) 시인 백낙천이 그 일이 사라질까 두려워 노래를 지어서 기록하였다. 저것은 실로 거칠고, 음란하고, 기괴하고 허탈한 일인데도 오히려 그것을 읊어서 후세에 보였다. 하물며 동명의 일은 변화 신이함으로 백성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고, 실로 나라를 개국한 신령스러운 자취이니 이를 기술하지 않으면 후세인들이 장차 어찌 볼 것인가. 이에 시를 지어서 그것을 기록하니 우리 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임을 천하에 알리고자 함이다.

 

海東解慕漱 眞是天之子 <<本記云 夫余王解夫婁老無子 祭山川求嗣所 御馬至鯤淵 見大石流淚 王怪之 使人轉其石 有小兒金色蛙形 王曰 此天錫(賜)我令㣧乎 乃收養之 名曰金蛙 立爲太子


해동의 해모수는 진실로 하늘의 아들이다. <본 기에 말하기를 부여왕 해부루가 늙어서도 자식이 없어 산천에 제를 지내 후사를 구하러 가는데 부리던 말이 곤 연에 이르러 큰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서 그 돌을 옮기니 금색의 개구리 모양의 작은아이가 있었다. 왕이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나에게 준(賜) 아들(㣧)이로구나.’ 하면서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라 하고 태자로 삼았다.

 

其相阿蘭弗曰 日者天降我曰 將使吾子孫 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有地 號迦葉原土宜五穀 可都也 阿蘭弗勸王移都 號東夫余 於舊都 解慕潄爲天帝子來都>>


그 나라의 재상 아란불이 말하기를 일전에(日者) 하늘이 나에게 감흥 하여(天降我) 말하기를, ‘장차 나의 자손을 시켜 이곳에 나라를 세울 것이니 너는 그것을 피하여라.’ 하였는데 동해 바닷가에 땅이 있어 가섭원이라 하는데 땅에 마땅히 오곡을 기르니(宜와 五사이에 育이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음) 도읍을 할 만 합니다. 아란불이 왕에게 권하여 도읍을 옮기고 동부여라 하였으며 옛적 도읍에는 해모수가 천제자가 되어 와서 도읍 하였다.

 

初從空中下 身乘五龍軌 從子百餘人 騎鵠紛襂襹 淸樂動鏘洋 彩雲浮旖旎


처음에 공중에서 내려오는데 몸소(身) 오룡궤를 타고 종자 백여인은 고니를 타고 날개를 너울거렸다(紛襂襹) 맑은 음악소리가 장양하게(鏘洋은 청악의 소리를 표현한 것) 울려 퍼지고, 오색구름(彩雲)은 너울거렸다(旖旎)

 

<<漢神雀三年壬戌歲 天帝遣太子降遊扶余王古都 號解募潄 從天而下. 乘五龍車. 從者百餘人. 皆騎白鵠. 彩雲浮於上. 音樂動雲中. 止熊心山. 經十餘日始下. 首戴烏羽之冠. 腰帶龍光之劒.>>


한나라 신작 삼년 임술해에 천제가 태자를 보내어 부여왕의 옛 도읍에 내려와 놀게 하였는데, (그를) 해모수라 불렀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오룡거를 타고 종자는 백여인이었으며 모두 흰 고니를 타고 있었다. 오색 구름이 위에 뜨고 음악이 구름 가운데 울려 퍼졌다(動). 웅심산에 머물며(止는 至留의 뜻임) 십여일을 보내다가 처음으로 내려왔다. 머리에는 깃털 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을 찼다.

 

自古受命君. 何是非天賜. 白日下靑冥. 從昔所未視. 朝居人世中. 暮反天宮裡. <<朝則聽事. 暮卽升天. 世謂之天王郞.>>


자고로 하늘의 명을 받은 임금이니 이는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대낮에 하늘(靑冥)에서 내려온 것은 옛적부터 보지 못한 것이다. 아침에는 인간 세상에 살고 저녁에는 천궁으로 돌아갔다(낮에는 인간세상의 일을 다스리고 밤에는 하늘로 돌아갔음을 말한다.)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에는 하늘로 오르니 천왕랑이라 불렀다.>>

 

※譯註

1) 이 문장에서 보이는 天降은 대낮에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며, 오히려 그 규모나 화려함 면에서 단군신화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吾聞於古人. 蒼穹之去地. 二億萬八千七百八十里. 梯棧躡難升. 羽翮飛9易悴 朝夕恣升降 此理復何爾


내가 옛 사람에게 들으니 하늘에서 땅까지의 거리(去)가 이억만 팔천 칠백 팔십리인데 사닥다리를 놓아도 오르기 어렵고 날개로 날아도 쉽게 지친다. 아침저녁으로 마음대로(恣) 오르내리니 그러한 이치가 어찌 다시 있겠는가(復와 何사이에 有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음.)

 

城北有靑河 <<靑河今鴨綠江也>> 河伯三女美 <<長曰柳花次曰萱 花季曰葦花>> 擘出鴨頭波 往遊熊心涘 <<自靑河出遊熊心淵上>> 鏘琅佩玉鳴 綽約顔花媚 <<神姿艶麗雜佩鏘洋與漢皐無異>>


성(현재 요령성 남쪽의 봉황 성으로 추측하고 있음)의 북쪽에 청하가 있어 <<청하는 지금의 압록강(현재 신의주 근처의 강으로 추정)이다.>> 하백의 세 딸이 아름다웠다. <<맏딸은 유화, 둘째는 훤화, 막내는 위화였다.>> 압록강의 파도(頭波)를 헤치고 나와 웅심의 물가에 가서 놀았다. <<청하에서 나와서 웅심연 위에서 놀았다.>> 옥소리가 울리고(鏘琅은 옥소리를 묘사한 것) 가냘프고 맵시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신령스러운 자태가 곱디 고왔으며 섞인 옥소리가 울려 퍼지니 한고(선녀들이 놀던 자리)와 다름이 없었다.

 

初疑漢皐濱 復想洛水沚 王因出獵見 目送頗留意 玆非悅紛華 誠 急生斷嗣 <<王謂左右曰 得而爲妃 可有後㣧>>


처음에는 한고의 물가인가 의심하고 다시 낙수의 물가를 생각하였다. 왕이 사냥을 나가서 보고

눈길에 자못 뜻을 담아 보내었다. 이는 곱고 아름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非와 悅 사이에 有意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음) 진실로 대를 잇는 것이 급함이었다. <<왕이 좌우에 말하기를 ‘얻어서 비를 삼으면 후사를 얻을 수 있겠다.>>하였다.

 

三女見君來. 入水尋相避. 擬將作宮殿. 潛候同來戱. 馬過一畫地. 銅室欻然峙. 錦席鋪絢明 .金罇置淳旨. 蹁躚果自入. 對酌還徑醉. <<基女見王卽入水. 左右曰. 大王何不作宮殿. 俟女入室. 當戶遮之. 王以爲然. 以馬鞭畫地. 銅室俄成壯麗. 於室中. 設三席置樽酒. 其女各坐其席. 相勸飮酒大醉云云>>.


세 여자가 왕이 오는 것을 보고 물속 깊이(尋) 들어가 서로 피하였다. 짐짓(擬將) 궁전을 지어 함께 와서 놀기를 몰래 기다리려 말채찍으로 땅을 한번 그으니 구리 집이 홀연히 솟았다. 비단을 펼친 것은 현란하고 금술 독에는 순한 술(淳旨-술맛이 순하다.)을 두었다. 과연 춤을 추며(蹁躚-여자들이 춤추는 모양) 스스로 들어와 대작하여 곧(徑) 취하였다. <<그 여자들이 왕을 보고 곧 물로 들어갔다. 좌우에서 말하기를 ‘대왕은 어찌하여 궁전을 지어서 여자가 방에 들어가기를 기다려 문을 막아버리지 않으십니까’ 하니 왕이 그렇게 여겨 말채찍으로 땅을 그으니 구리 집이 갑자기 이루어져 장려하였다. 집 가운데 세 자리를 베풀어 술자리를 두었다. 그 여자들이 각기 그 자리에 앉아 서로 권하여 술을 마시니 크게 취하였다.>>

 

君是上帝胤. 神變請可試 漣漪碧波中 河伯化作鯉 王尋變爲獺 立捕不待跬 又復生兩翼 翩然化爲雉 王又化神鷹 搏擊何大鷙 彼爲鹿而走 我爲豺而進


그대가 상제의 아들이라면 신이한 변화를 청하여 가시 시험하여보자. 잔물결(漣漪))이 물결치는 속에서 하백이 잉어가 되니 왕은 곧(尋-부사로 쓰였음) 수달로 변하여 반발 짝도 기다리지 않아 곧 잡아버렸다. 또다시 양날개가 생겨 꿩이 되어 날아가니 왕이 또한 신령스러운 매로 변하여 잡아 치니(搏擊) 어찌 그토록 사나운가. 저쪽이 사슴이 되어 달아나면 이쪽은 승냥이가 되어 쫓아갔다.

 

河伯知有神 置酒相燕喜 伺醉載革輿 幷置女於의<<車傍曰의>> 意令與其女 天上同騰轡 其車未出水. 酒醒忽驚起<<河伯之酒七日乃醒>> 取女黃金𨥁 剌革從竅出<<叶韻>> 獨乘赤霄上 寂寞不廻騎


하백은 신이함이 있음을 알고 술자리를 벌려 서로 기뻐하였다. 취한 틈을 엿보아 가죽수레에 싣고 딸도 수레 옆에 두었다.<<수레의 옆을 ‘의’라 한다.>> 속으로 생각컨데(意) 딸과 더불어 천상에 같이 오르게 하려 함이었다. 그 수레가 물 밖으로 나오기 전에 술이 깨어 홀연히 놀라 일어나 <<하백의 술은 칠일이 되어야 깬다.>> 여자의 황금 비녀를 가지고 가죽을 찟어 구멍으로부터 나와서<<出은 협운이다.>> 홀로 노을(赤霄) 위에 타고 올랐다. 고요하고 쓸쓸하며(하백의 딸이 느끼는 감정)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譯註

수레가 물 밖으로 나온다는 부분에서 혹 하백이 용왕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河伯曰 王是天宰之子 有何神異 王曰 唯在所試 於是 河伯於廷前水 化爲鯉隨浪而游 王化爲獺浦之 河伯又化爲鹿而走 王化爲豺逐之 河伯化爲雉 王化爲鷹擊之 河伯以爲誠是天宰之于 以禮成婚 恐王無將女之心 張樂置酒 勸王大醉 興女入於小革輿中 載以龍車 欲令升天 其車未出水 王卽酒醒 取女黃金𨥁剌革輿 從孔獨出升天>>


하백이 말하기를 ‘왕이 천제의 아들이라면 어찌 신이 함이 없겠는가’하니 왕이 말하기를 ‘오직 시험해보라’ 하였다. 이에 하백이 뜰 앞의 물에서 잉어로 변하여 물결을 따라 헤엄치니 왕이 수달로 변하여 그것을 잡았다. 하백이 또한 사슴으로 변하여 달아나니 왕은 승냥이로 변해 그것을 쫓았다. 하백이 꿩으로 변하니 왕은 매로 변하여 그것을 공격하였다. 하백이 진실로 천제의 아들이라 여겨서 예로써 혼인을 이루고 왕이 딸에 대한 마음이 없어질까 두려워 음악을 베풀고 술을 내어서 왕에게 권하니 왕은 크게 취하였다. 딸과 함께 작은 가죽수레 가운데 넣고 용거에 실으니 (이는) 하늘에 오르게 하려 함이었다. 그 수레가 물에서 나오기 전에 왕이 술이 깨어 여자의 왕금비녀로 가죽 수레를 찢고 구멍으로 홀로 나와서 승천하였다.

 

河伯責厥女. 挽吻三尺弛. 乃貶優渤中. 唯與婢僕二. <<河伯大怒 其女曰. 汝不從我訓. 終辱我門. 令左右絞挽女口 其脣吻長三尺 唯與奴婢二人 貶於優渤水中 優渤澤名 今在太伯山南>>


하백이 그 딸을 책망하여 입술을 당겨 삼척을 늘여 놓았다. 그리고는 우발수 가운데로 내쫓았는데 오직 비복 두 명만 주었다. <<하백이 크게 노하여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의 훈계를 따르지 않아 끝내는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였다.’ (그리고는) 좌우에 명하여 딸의 입을 당겨서 묶게 하고 그 입술을 삼척이 되게 하여 오직 노비 두명과 더불어 우발수 가운데로 내쫓았다. 우발은 연못 이름인데 지금 태백산의 앞(南-北은 뒤를 나타냄)에 있다.

 

漁師觀波中. 奇獸行비騃. 乃告王金蛙 鐵網投湀湀. 引得坐石女. 姿貌甚堪畏 脣長不能言 三裁乃啓齒.


어사가 물 속을 보니 기이한 짐승이 돌아다녔다. 이에 금와왕에게 고하여 쇠그물을 샘에 던졌다. 당겨서 얻으니 돌에 앉은 여자였다. 자태가 심히 무서워 견디기가 어려웠다. 입술이 길어 능히 말하지 못하므로 세 번 자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開의 의미로 ‘이를 보이게 하였다. 혹은 치아를 열었다라는 뜻임’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4왕조, ‘성스러운 왕’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 4 왕조 , ‘ 성스러운 왕 ’   스네프루는 고대 이집트의 제 4 왕조를 시작한 왕이다 . 그는 24 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남북 지역의 교류를 확대했으며 영토도 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