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이집트 제24왕조 : 짧지만 선명한 등장(기원전 732~720년경)
1. 이집트 제24왕조 개요
제24왕조는 제3중간기의 네 번째 왕조로 분류된다. 수도는 서델타의 사이스(Sais)이다. 재위 범위는 대체로 기원전 732–720년 전후로 짧지만, 서델타를 기반으로 급부상해 이집트 북부의 판도를 흔들었다. 바로 앞선 제23왕조의 분권 상황과 뒤이은 쿠시계 제25왕조의 북상이 맞물리며 단기간에 격변이 일어났다.
2. 정치적 배경과 성립 맥락
제3중간기는 타니스ㆍ부바스티스 계통의 리비아계 군사 엘리트가 각 지역 권력을 나눠 가진 분권 체제이다. 델타 서부의 상업·해상 네트워크를 장악한 사이스의 유력자들은 제23왕조 핵심이 동델타에 치우친 틈을 타 독자적 권위를 강화했다. 이 흐름이 제24왕조의 짧지만 선명한 등장을 가능케 했다.
3. 주요 파라오와 연표
1) 테프나크트 1세(Tefnakht I)
재위 기원전 732–725년. 즉위명은 셉세스레(Shepsesre)이다. 사이스를 거점으로 델타 서부를 통제하며 세력을 확대했다. 원정과 연합을 통해 하이집트의 일부 도시까지 영향력을 뻗은 것으로 요약된다. 그의 치세가 제24왕조 체제의 실질적 개막을 이룬다.
테프나크트 1세는 사이스의 총재ㆍ지방 군사령 성격을 띤 엘리트 망의 정점으로 등장한다. 델타 서부 도시에 대한 실효 지배를 넓히고, 협상·동맹·군사 행동을 병행해 정치 지형을 재편했다. 전통적 이집트 왕권의 상징 자원을 선별적으로 채택하면서도, 실질은 상업ㆍ용병 동원력에 기대는 실용주의가 강했다.
2) 바켄라네프(Bakenranef)
재위 기원전 725–720년. 즉위명은 와카레(Wahkare)이다. 사이스 왕권을 계승해 델타의 패권을 다졌으나, 재위 말에 밀려나며 왕조의 단절로 이어졌다. 그는 짧은 통치에도 불구하고 사이스 왕권의 제도화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바켄라네프는 행정과 재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사이스 중심 체제가 델타 전체를 안정적으로 아우르기에는 시간과 기반이 부족했다. 남쪽 쿠시계의 압박과 동델타 계열의 저항 속에서 그의 통치는 5년 남짓에 그쳤고, 그는 폐위되며 왕조가 종결된다.
바켄라네프의 폐위(기원전 720년)는 제24왕조의 종말을 뜻한다. 그럼에도 사이스의 제도적 기반과 엘리트 네트워크는 사라지지 않았고, 한 세대 뒤 제26왕조가 사이스에서 재출발해 ‘사이테 르네상스’로 불리는 부흥을 이끈다. 제24왕조는 이 전환의 전초로서 의미가 있다.
4. 제24왕조의 통치
1) 사이스의 지정학과 경제 기반
사이스는 나일 서델타의 수로망과 지중해 연안 항로를 잇는 관문이다. 곡물·아마포·목재·수공품의 집산이 활발했고, 서방(리비아·지중해 동부)과의 교역 루트에 가까웠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은 용병 조달과 재정 축적을 가능케 하여, 짧은 시간에 군사·외교력을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사이스 왕권은 전통 신격과 왕호 체계를 수용해 합법성을 주장했다. 동시에 사이스 지역 신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봉헌과 축제를 통해 지역적 지지를 공고히 했다. 이는 남쪽 테베의 아문 사제권과 구별되는 독자적 종교 정치 기반을 형성했다.
2) 제23ㆍ제25왕조와의 힘의 삼각구도
제24왕조 성립 당시 동델타와 테베권에는 제23왕조 계열의 병행 왕통이 여전히 존재했다. 서델타의 사이스 세력은 델타 서부를 결속하고 동부ㆍ중부로 진출하는 전략을 취했다. 동시에 남쪽에서는 쿠시계 제25왕조가 테베의 종교 권위를 흡수하며 북상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북서(사이스), 북동(타니스ㆍ부바스티스계), 남(쿠시)의 삼각 긴장이 제24왕조의 짧은 존속과 빠른 종결을 규정했다.
3) 왕조의 행정과 군사
행정은 항만·수로 거점에 집중되었고, 수입 기반은 관세·교역 과세·토지 수익이 혼합된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군사는 고용병과 지역 민병의 혼성 구조를 띠었다. 선박을 활용한 기동력과 수로 교통로의 장악은 델타 지리에서 결정적 우위를 제공했다.
종교와 정당성
4) 국제관계의 맥락
제24왕조는 지중해 동부의 변동과 근동 강대국의 압력 속에 놓여 있었다. 델타의 해상 관문을 쥔 사이스는 바다·수로를 통한 외교 경로를 활용하며 생존 공간을 넓히려 했다. 그러나 남북로부터의 압력 증대는 단기간에 균형점을 붕괴시켰다.
5. 제24왕조의 의의
1) 왕조의 전후 계승
제24왕조는 제23왕조 이후의 분권 질서 위에서 등장했고, 종말 직후에는 쿠시계 제25왕조가 이집트 전역을 재통합하는 국면으로 이행한다. 더 뒤의 제26왕조는 사이스를 수도로 삼아 장기간의 안정과 대외 교류를 회복한다. 이 흐름 속에서 제24왕조는 ‘짧지만 중요한 연결 고리’로 자리한다.
2) 사료와 연구상의 유의점
제24왕조의 연대·행위 주체에 관한 정보는 비교적 제한적이다. 주요 근거는 비문·스텔레·왕명 목록과 후대 편년표이며, 발굴·문헌 교차 검증으로 보완된다. 주류 편년은 테프나크트 1세와 바켄라네프의 2왕 통치로 본다. 세부 사건 해석에는 여전히 학술적 조정의 여지가 존재한다.
제24왕조는 델타 서부의 상업·수로 네트워크를 배경으로 한 ‘사이스 모델’의 첫 구현이다. 짧은 존속에도 불구하고, 분권 질서 속 지역 왕권의 잠재력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이후 제26왕조의 도약은 이 짧은 실험에서 축적된 행정·경제적 자산의 연속 위에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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