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이집트 제25왕조 : 누비아에서온 ‘쿠시 왕조’(기원전 754~656년경)
1. 이집트 제25왕조 개요
이집트 제25왕조(Dynasty XXV, 25th Dynasty, Dynasty 25)는 ‘누비아 왕조(Nubian Dynasty)’, ‘쿠시 제국(Kushite Empire)’, ‘블랙 파라오(Black Pharaohs)’, ‘나파타인(Napatans)’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수도 나파타(Napata)의 이름에서 따온 호칭이다. 쿠시인의 침입 이후 전개된 이집트 제3중간기의 마지막 왕조이다.
제25왕조는 오늘날 수단 북부와 상이집트에 해당하는 쿠시 왕국(Kingdom of Kush) 출신의 파라오 계열이다. 이 왕조의 다수 군주는 나파타를 영적 고향으로 여겼다. 재위 범위는 기원전 744–656년으로, 고대 이집트 전역의 일부 혹은 전부를 거의 한 세기 동안 지배했다.
2. 종교ㆍ예술ㆍ문학
제25왕조는 고도로 ‘이집트화’되어 이집트어와 이집트 문자를 기록 매체로 사용하고, 종교ㆍ예술ㆍ문학 전통에 비범한 헌신을 보였다. 초기의 일부 학자들은 이 왕조의 기원을 이집트인, 특히 이집트 아문(Amun) 사제 출신 이주민에서 찾기도 했다. 제3중간기 이집트 자극설은 여전히 유력 학자들에 의해 지지되는데, 그 근거로 나파타 국가 기원의 핵심 유적지인 엘‑쿠르(el‑Kurru) 묘역 발굴에서 제3중간기 동안 ‘갑작스러운 이집트인의 유입과 영향’이 관찰되며, 이집트화 과정과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이 제시된다.
3. 상ㆍ하이집트와 쿠시를 재통합
제25왕조는 하이집트ㆍ상이집트ㆍ쿠시를 재통합하여 신왕국 이래 최대의 이집트 제국을 재구성했다. 이들은 고대 이집트의 종교 전통, 신전, 예술 양식을 재확인함으로써 사회에 동화되는 한편, 쿠시 문화 고유의 요소 일부를 도입했다. 이 왕조 시기에 나일 계곡에서는 중왕국 이래 최초로 ‘광범위한 피라미드 건설’이 재개되었고, 그 상당수가 오늘날 수단 북부 지역에 세워졌다.
4. 아시리아의 침공
누비아 왕들이 근동에 교두보를 확보하려 한 시도는 사르곤 2세(Sargon II)와 산헤립(Sennacherib)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 뒤를 이은 에살핫돈(Esarhaddon)과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은 이집트를 침공하여 이 왕조를 격파했으며, 이를 ‘앗시리아의 이집트 정복’이라 한다. 제25왕조의 몰락은 고대 이집트 ‘후기왕국(Late Period)’의 시작을 의미한다. 제26왕조는 초기에는 앗시리아가 세운 괴뢰적 성격의 봉신 왕조였고,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의 침입 이전 이집트를 통치한 마지막 토착 왕조였다.
이 왕조를 ‘블랙 파라오’로 표상하는 전통은 학계 비판을 받아 왔다. 그 표현이 마치 다른 왕조들이 남부 기원을 공유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고대 이집트 인종 논쟁 참조)과, 고대 누비아인과 이집트인을 연결한 유전적 연속체를 간과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5. 제25왕조의 파라오들
1) 피예(Piye)
- 즉위명 : 우시마레(Usimare)
- 호루스명: 카나크트카엠네페트(Kanakhtkhaemnepet)
- 재위 : 기원전 약 747–714년 / 묘역: 엘 쿠르루 17번(Kurru 17)
- 배우자 : 타비리(Tabiry, Kurru 53), 아바르(Abar, Nuri 53?), 켄사(Khensa, Kurru 4), 펙사테르(Peksater, Kurru 54), 네프루케카슈타(Nefrukekashta, Kurru 52)
- 코멘트 : 카슈타(Kashta)를 왕조의 초대 파라오로 보는 견해도 있음.
2) 셰비토쿠(Shebitku)
- 즉위명 : 제드카레(Djedkare)
- 호루스명: 제드카우(Djedkhau)
- 재위 : 기원전 714–705년 / 묘역: 엘 쿠르루 18번(Kurru 18)
- 배우자 : 아르티(Arty, Kurru 6)
3) 샤바카(Shabaka)
- 즉위명 : 네페르카레(Neferkare)
- 호루스명: 세바크타위(Sebaqtawy)
- 재위 : 기원전 705–690년 / 묘역: 엘 쿠르루 15번(Kurru 15)
- 배우자 : 칼하타(Qalhata, Kurru 5), 메스바트(Mesbat), 타베케나문?(Tabekenamun?)
4) 타하르카(Taharqa)
- 즉위명 : 쿠네페르툼레(Khunefertumre)
- 호루스명: 카카우(Qakhau)
- 재위 : 기원전 690–664년 / 묘역: 누리 1번(Nuri 1)
- 배우자 : 타카하테나문(Takahatenamun, Nuri 21?), 아타케바스켄(Atakhebasken, Nuri 36), 나파라예(Naparaye, Kurru 3), 타베케나문?(Tabekenamun?)
5) 탄타마니(Tantamani)
- 즉위명 : 바카레(Bakare)
- 호루스명: 와흐메룻(Wahmerut)
- 재위 : 기원전 664–656년 / 묘역: 엘 쿠르루 16번(Kurru 16)
- 배우자 : 피앙카르티(Piankharty), [..]살카([..]salka), 말라카예?(Malaqaye?, Nuri 59)
6. 나파타 시대
카슈타(Kashta)로 시작해 말로나켄(Malonaqen)으로 끝나는 시기를 때때로 ‘나파타 시대(Napatan Period)’라고 부른다. 제25왕조 후기의 왕들은 나파타(Napata), 메로에(Meroe), 이집트를 함께 지배했다. 이 시기에는 나파타가 정궁과 정부의 소재지였고, 메로에는 지방 도시였다. 왕들과 여왕들은 엘‑쿠르루(El‑Kurru)와 누리(Nuri)에 묻혔다.
카슈타의 선왕이자 그의 선행자였던 알라라(Alara)는 재위 기간에 이집트 영역을 전혀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25왕조의 왕이 아니었다. 피예(Piye)를 제25왕조의 창건자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나, 일부 출판물은 이미 상이집트의 일부를 장악했던 카슈타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엘레판티네(Elephantine)에서 그의 석비가 발견되었고, 그는 테베(Thebes)를 실질적으로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자신의 딸 아메니르디스 1세(Amenirdis I)를 테베의 아문(Amun) 신전에서 ‘신의 애처(Divine Adoratrice of Amun)’의 차기 봉직자로 양자로 들일 만큼의 권위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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