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4일 목요일

아브넬(Abner) : 구약 성경 속 사울 왕의 사촌이자 장군

아브넬(Abner) : 구약 성경 속 사울 왕의 사촌이자 장군

 
  • 아브넬(히브리어: אַבְנֵר, 아브네르)
  • 부친 : 네르(사울의 부친인 기스와 형제이다, 삼상 14:15)
 
아브넬(Abner)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사울 왕(King Saul)의 사촌이자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이다.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비네르 벤 네르(אבינר בן נר), 나의 아버지는 네르 (Ner)이다라는 뜻의 아비네르(Abiner) 아들 네르라고도 불린다. 아브넬은 사울 왕에게 깊은 충성심을 가진 용맹한 전사였다.
 

1. 성경 속 아브넬의 이야기

 
사울 왕이 죽은 후에도 아브넬은 그의 아들 이스보셋(Ish-bosheth)을 지지하며 다윗(David)과 싸웠다. 성경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전쟁이 계속되었고, 다윗의 편이 계속 우세하였다. 그러나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Rizpah)와 동침했다고 비난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이는 왕위를 주장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 비난에 격분한 아브넬은 곧바로 다윗과 협상을 시작하였다. 다윗은 자신의 아내 미갈(Michal)을 돌려달라는 조건으로 아브넬을 환영하였고, 이 요구가 충족된 후 잔치를 통해 합의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요압(Joab)이 돌아와 헤브론(Hebron) 성문에서 아브넬을 살해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요압의 명분은 아사헬(Asahel)의 복수를 위함이었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표하며, 이 행위에 대한 자신과의 연루를 부인하였고, 비록 처벌은 하지 못했지만 요압의 행위를 비난하였다. 아브넬은 헤브론에 묻혔으며, 다윗 왕은 그의 무덤 앞에서 애통해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브넬의 죽음 이후, 이스보셋도 암살당하고 다윗은 통합된 왕국의 왕이 된다.
 

2. 랍비 문학에 나타난 아브넬

 

1) 뛰어난 전사 아브넬

 
미드라쉬 문헌들은 아브넬(Abner)이 엔도르의 마녀(Witch of En-dor)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하가다(Haggadah) 문학에서는 뛰어난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의 비범한 힘을 인식하고 만약 내가 땅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흔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이 말은 아르키메데스의 유명한 말인 내게 받침점만 있다면, 지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와 비슷하다. 미드라쉬에 따르면, 6야드 두께의 벽을 움직이는 것이 아브넬의 발 하나를 움직이는 것보다 쉬웠을 것이며, 그는 이스라엘 군대를 자신의 무릎 사이에 둘 수 있었다고 한다.
 

2) 아브넬의 죽음

 
하지만 때가 되자 요압(Joab)이 그를 죽였다. 그러나 아브넬은 죽음의 순간에도 실뭉치를 움켜쥐듯 적을 움켜쥐며 그를 부수려 위협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와서 요압의 목숨을 애원하며 그를 죽이면 우리는 고아가 될 것이고, 우리의 아내들과 모든 소유물은 블레셋 사람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브넬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나의 빛을 꺼뜨렸다(치명적으로 상처 입혔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의 대의를 진정한 재판관[하나님]에게 맡겨라라고 답했다. 그러자 아브넬은 요압을 놓아주고 땅에 쓰러져 죽었다.
 

3) 아브넬에 대한 평가

 
랍비들은 아브넬이 이러한 폭력적인 죽음을 받을 만했다고 동의하지만, 대체로 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지던 그에게 왜 그렇게 끔찍한 형벌이 가해졌는지에 대한 죄의 정확한 본질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일부는 그가 사울(Saul)이 놉(Nob)의 제사장들을 살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비난한다. 이는 그가 제사장들의 무죄함과 다윗 (David)에 대한 그들의 행동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의 지휘자로서 다윗이 우림과 둠밈(Urim and Thummim)을 사용할 특권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사무엘상 22:9-19). 사울의 제사장 살해 명령에 단순히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대신, 아브넬은 왕을 저지하려 노력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아브넬이 그러한 시도를 했지만 헛되었고, 그의 유일한 죄는 사울 사후 다윗과의 전투로 2년 반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다윗의 통치 시작을 지연시킨 데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이들은 아브넬의 이 행동을 변호하면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두 명의 왕이 나올 것이라는 창세기 49:27에 근거한 전통을 고려할 때, 그가 사울과 다윗 사이의 화해를 막은 것을 비난한다.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들고 사울의 의심이 얼마나 근거 없는지 보여주었을 때(사무엘상 24:11), 사울은 평화를 이루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아브넬은 다윗이 옷 조각을 아무데서나 발견했을 수 있다는(가시덤불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왕에게 제시하며 화해를 방해했다. 게다가 아브넬이 이스라엘 청년들이 재미로 서로를 죽이도록 허락한 것도 잘못이다(사무엘하 2:14-16). 그러나 아사헬 (Asahel)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브넬이 정당방위로 그를 죽였으므로 비난받지 않는다.
 

4) 율법의 사자

 
성경 이야기를 랍비적 관점으로 보는 것은 흥미로운데, 순수한 전사 아브넬이 율법의 사자라고 불리는 점이다. 또한 그와 도엑 사이에서 신명기 23:3에 명시된 법이 암몬(Ammonite)과 모압 (Moabite) 여인들도 유대 공동체에서 배제하는지 여부에 대한 할라카(halakic) 토론의 한 예시도 제시되어 있다. 도엑은 다윗이 모압 여인 룻(Ruth)의 후손이므로 왕이 될 자격이 없으며 심지어 진정한 이스라엘인으로도 간주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브넬은 이 법이 남성 혈통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도엑의 변증법이 아브넬보다 우세하자, 아브넬은 선지자 사무엘(Samuel)에게 갔고, 사무엘은 아브넬의 견해를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도엑의 주장을 완전히 반박했다.
1세기 중반 예루살렘의 가장 저명한 가문 중 하나인 찌찌트 하-케사트(Ẓiẓit ha-Kesat) 가문은 아브넬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Gen. R. xcviii.) .
 

3. 아브넬의 무덤

 
아브넬의 무덤은 헤브론에 있는 족장들의 동굴(Cave of the Patriarchs)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연중 방문객이 찾아온다. 12세기 여행가 투델라의 벤자민(Benjamin of Tudela)은 자신의 일지에서 헤브론의 서쪽에 아브넬의 무덤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스라엘 아브라함스(Israel Abrahams)1912년 저서에서 아브넬이 헤브론에 묻혔고, 그 무덤이 도시 내 큰 집 정원에 있다고 언급하였다.

아브넬의 무덤
아브넬의 무덤
 
수년간 방치되었던 이 무덤은 1994년부터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으나, 1996년부터 이스라엘 여성들이 재개방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기하였다. 이후 여러 요청 끝에 족장들의 동굴에 있는 이삭(Isaac) 홀이 개방되는 10일 동안 일반 대중에게 개방될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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