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8일 월요일

로마노스 2세(Romanos II, AD.938~963) : 동로마 제국 제93대 황제(AD.959~963)

로마노스 2(Romanos II, AD.938~963) : 동로마 제국 제93대 황제(AD.959~963)

 
  • 로마노스 2(Romanos II)
  • [Greek : Ῥωμανός / romanized : Rōmanos]
  • 출생 : 938
  • 사망 : 963315
  • 부친 : 콘스탄티노스 7(Constantine VII)
  • 모친 : 헬레나 레카페네(Helena Lekapene)
  • 배우자 : Bertha-Eudokia, Theophano
  • 자녀 : Helena, Basil II, Constantine VIII, Anna Porphyrogenita
  • 재위 : 959119~ 963315
  • 대관식(공동황제) : 94546
  • 공동황제 :
    콘스탄티노스 7(Constantine VII) : 945~959
    바실리우스 2(Basil II) : 960~963
    콘스탄티노스 8(Constantine VIII) : 962~963
 
로마노스 상아 부조에 새겨진 이상화된 어린 로마노스 2세의 초상
로마노스 상아 부조에 새겨진 이상화된 어린 로마노스 2세의 초상 (당시 나이 7세에서 11서기 945949년경)
 

1. 로마노스 2세 황제 : 의문스러운 죽음과 짧았던 황실의 그림자

 
로마노스 2(Romanos II, 938963315)959년부터 963년까지 비잔틴 제국을 통치했던 황제였다. 그는 스물한 살의 나이에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7(Constantine VII, 905959)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지만, 4년 만에 갑작스럽고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통치기는 짧았지만, 복잡한 궁정 정치와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비잔틴 역사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주제이다.
 

2. 출생과 황실의 기대주

 
로마노스 2세는 938년에 콘스탄티노스 7세 황제와 헬레나 레카페네(Helena Lekapene)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조부는 로마노스 1세 레카페노스(Romanos I Lekapenos), 로마노스라는 이름 또한 외조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황실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제국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94546(부활절), 그는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7세에 의해 공동 황제(co-emperor)로 책봉되었다. 이는 황실의 후계 구도를 공고히 하고, 로마노스가 차기 황제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절차였다.
 

3. 두 번의 결혼 : 정치적 동맹과 사랑

 
로마노스 2세는 일생 동안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결혼은 그의 유년기에 이루어진 정치적 동맹의 산물이었다.
 
  • 베르타-에우도키아(Bertha-Eudokia, 생몰년 미상) : 이탈리아 왕 우고(Hugh of Italy)의 서녀인 베르타와 어릴 적 혼인했다. 베르타는 결혼 후 에우도키아로 개명했다. 그러나 949년에 그녀가 요절하면서 이 동맹 관계는 해소되었다. 이 결혼은 당시 이탈리아와 비잔틴 제국 간의 복잡한 정치적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테오파노(Theophano, 생몰년 미상) : 첫 부인의 사망 이후, 로마노스는 956년에 아나스타소(Anastaso)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그녀는 후에 '테오파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미천한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노스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궁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4. 황위 계승과 논란

 
95911, 로마노스 2세는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7세의 뒤를 이어 단독 황제로 즉위했다. 하지만 그의 즉위에는 불길한 소문이 뒤따랐다. 일각에서는 로마노스 2, 혹은 그의 아내 테오파노가 콘스탄티노스 7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은 로마노스 2세의 재위 기간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으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맞물려 더욱 증폭되었다.
 
황제 즉위 후, 로마노스 2세는 즉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 궁정 숙청 : 그는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7세의 궁정 신하들을 숙청하고 자신의 친구들로 대체했다. 이는 새로운 황제가 자신의 친위 세력을 구축하고 기존 권력자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였다.
  • 황후 테오파노의 영향력 : 테오파노는 황궁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녀의 뜻에 따라 로마노스 2세는 자신의 어머니인 황태후 헬레나를 궁정에서 멀리했으며, 다섯 명의 누이들을 강제로 수녀원에 보내기도 했다. 이는 황후 테오파노의 야심과 권력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 능력 있는 인물들의 등용 :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노스 2세가 임명한 인사들 중에는 유능한 인물들이 많았다. 특히 환관 요세프 브링가스(Joseph Bringas, 생몰년 미상)는 그의 수석 고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5. 짧은 통치와 의문스러운 죽음

 
로마노스 2세의 재위 기간은 959년부터 963년까지 불과 4년이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제국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정책이나 군사적 업적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의 통치기에 이슬람 세력에 대한 군사적 승리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는 주로 그의 후계자인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Nikephoros II Phokas)와 관련된 맥락에서 언급된다.
 
963315, 로마노스 2세는 24세 또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매우 의문스러웠고, 당시에도 많은 이들에게 독살설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황후 테오파노가 재차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로마노스 2세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제국의 권력 구도에 큰 혼란을 가져왔으며, 황실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로마노스 2세가 사망했을 때, 그의 어린 두 아들인 바실리우스(Basil II, 9581025)와 콘스탄티노스(Constantine VIII, 9601028)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그들의 어머니 테오파노는 이 어린 아들들이 궁극적으로 제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976년까지 섭정으로서 권력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6. 유산과 역사적 평가

 
로마노스 2세의 짧은 재위와 의문스러운 죽음은 그 자체로 비잔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의 삶은 권력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궁정 내 권력 다툼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다. 비록 그의 이름으로 직접적인 업적이 많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가 재위하는 동안 제국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으며, 그의 사망 이후 테오파노가 그의 어린 두 아들을 보호하고 결국 비잔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 명인 바실리우스 2세로 키워냈다는 점은 그의 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의 미스터리는 오늘날까지도 역사가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콘스탄티노스 8세(Constantine VIII, AD.690~1028) : 동로마 제국 제97대 황제(AD.962~1028/1025~1028)

콘스탄티노스 8 세 (Constantine VIII, AD.690~1028) : 동로마 제국 제 97 대 황제 (AD.962~1028/1025~1028)   콘스탄티노스 8 세 (Constantine VIII) [Greek : Κωνσταντ ῖ ν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