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루스(Carus, AD.c.222~283) : 로마 제국 제41대 황제(AD.283)
도나우에서 승리하고 동방에서 번개에 쓰러진 황제
카루스는 282년 9월경부터 283년 7~8월경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한 황제이다. 그는 전임 프로부스(Probus, 230/235~282)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고, 단명했으나 도나우 전선에서 게르만과 사르마티아 세력을 격파하고 동방에서는 사산 왕조 원정으로 대승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남겼다. 사망 정황은 ‘번개에 맞아 죽었다’는 보고가 널리 전해지며, 그 여파로 장남 카리누스와 차남 누메리안이 공동으로 제위를 계승하는 단기 왕조가 성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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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스(Carus, AD.c.222~283) : 로마 제국 제41대 황제(AD.283) |
출생과 이름, 출신지의 윤곽
카루스의 출생은 대략 222년으로 추정되며 출신지는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의 나르보(Narbo)로 전하는 전승이 널리 회자된다. 즉위명은 Imperator Caesar Marcus Aurelius Carus Augustus로 정리되며, 주화ㆍ개요 표에서 통일적으로 확인된다. 재위는 282년 9월경에 시작하여 283년 7~8월경 동방 원정 중 종결되었다.
즉위의 경위와 정통성
프로부스 치세 말 군영의 소란과 권력 공백 속에서 카루스가 황제로 선포되었다. 즉위 직후 그는 장남 카리누스를 ‘카이사르’로, 곧이어 ‘아우구스투스’로 격상하여 서방을 맡기고, 자신은 동방으로 진군하는 분담 통치 구조를 마련하였다. 이 조치는 단기적 질서 회복과 승계의 연속성을 동시에 겨냥한 결정이었다.
도나우 전선에서의 초기 승리
카루스는 즉위 직후 도나우 국경에서 게르만 부족과 사르마티아 세력을 상대로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는 국경 압력을 완화하고 동방 원정을 위한 전략적 여지를 확보하는 선행 단추였다. 요약 표제와 본문 개요는 그가 도나우 전선에서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정리한다.
사산 왕조 원정과 크테시폰 접근
사산 왕조의 내분과 바흐람 2세의 제약을 기회로 삼아 카루스는 메소포타미아로 신속히 전진하였다. 사산 측은 내부 문제로 연합 방어를 꾸리기 어려웠고, 로마군은 티그리스를 넘어 사산의 심장부로 접근하였다. 동시대와 현대 개요는 카루스가 크테시폰을 함락했을 가능성을 열어 두며, 어쨌든 동방에서의 일련 승리로 그는 ‘페르시쿠스 막시무스(Persicus Maximus)’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추가 정복의 희망은 그의 급사로 좌절되었다.
사망의 정황, ‘번개설’과 대안 가설
카루스는 283년 여름 사산 영토 내 야영지에서 돌연 사망하였다. 널리 알려진 보고는 ‘번개에 맞아 사망’이라는 진술이며, 그가 사망 직전까지 승리를 이어가던 상황 때문에 암살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다만 ‘질병설’이나 권력 다툼과 연루된 독살설도 후대 전승에 남아 있어, 확정적으로 단정하기보다 번개설이 당대 진영에서 널리 수용되었다는 점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원로원과의 관계, ‘거리 두기’의 인상
카루스는 원로원의 비준을 겸손히 기다리기보다 ‘사실 통보’에 가까운 방식으로 즉위를 알렸다는 평가가 남아 있으며, 이는 원로원 권위를 일정 부분 억누르는 신호로 해석된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와 고전 사가 전승은 그의 ‘오만한 통지’가 평판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기록한다. 그럼에도 단명 치세의 현실 정치에서는 군사적 성과가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단명 왕조의 성립, 카리누스와 누메리안
카루스의 사망 직후 장남 카리누스가 서방, 차남 누메리안이 동방을 이어받으며 공동 통치가 시작되었다. 이는 짧았지만 제국의 연속성을 유지한 과도기적 왕조로 평가되며, 카루스가 생전에 구상한 권력 분담 구조가 실제 승계로 이어진 사례이다.
평가와 유산, ‘기회 포착과 불운의 교차’
카루스의 유산은 기동전으로 기회를 포착한 동방 승전과, 그 연속을 막아 선 갑작스런 죽음이라는 대비로 요약된다. 군영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번개설’은 장병들의 미신적 경외와 함께 즉각적인 철수를 촉발했고, 그의 아들들은 곧 제위에 올랐으나 장기 안정으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원로원과의 거리 두기는 이후 도미나투스의 방향성과도 맞물려 해석된다.
핵심 연표
- 약 222년 :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의 나르보 출생으로 전한다.
- 282년 9월경 : 프로부스 사후 황제로 즉위하다.
- 282~283년 초 : 도나우 전선에서 게르만ㆍ사르마티아를 격파하다.
- 283년 : 사산 원정에서 연승하고 ‘페르시쿠스 막시무스’ 칭호를 받다.
- 283년 7~8월경 : 사산 영토에서 번개에 맞아 사망했다는 보고가 널리 퍼지다.
- 후계 : 카리누스ㆍ누메리안이 공동 통치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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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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