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1일 토요일

[신라본기] 제5대 파사(婆娑) 이사금(尼師今) [재위 80~112]

[원년] 8009() : 파사이사금이 즉위하다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이 왕이 되었다. 유리왕(儒理王)의 둘째 아들이다. 혹은 유리의 아우인 나로(奈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왕비는 김씨 사성(史省) 부인으로, 허루(許婁) 갈문왕(葛文王)의 딸이다.
처음에 탈해(脫解)가 세상을 떠나자 신료들이 유리왕(儒理王)의 태자인 일성(逸聖)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으나, 혹자가 말하기를, “일성이 비록 적통을 이은 후사이기는 하지만, 위엄과 총명이 파사(婆娑)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여, 드디어 파사를 왕으로 세웠다. 파사는 절약하고 검소하며 씀씀이를 줄여 백성들을 사랑하였으므로, 국인(國人)들이 좋게 여겼다.
 
[2] 8102() : 시조묘에 제사 지내다
 
2(81) 2월에 시조묘(始祖廟)에 친히 제사를 지냈다.
 
[2] 8103() : 주군을 순행하고 구휼하다
 
2(81)3월에 주()와 군()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살피고, 창고를 열어 구제할 곡식을 나누어주었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살펴보고 2죄가 아니면 모두 사면해 주었다.
 
[3] 8201() : 농사를 권장하고 병장기를 수리하게 하다
 
3(82) 봄 정월에 영을 내려 말하기를, “지금 창고가 비었고 무기는 무뎌 있다. 만약 홍수나 가뭄의 재난이 있거나 변경 지역에서 경계할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마땅히 담당 관서로 하여금 농사와 양잠을 권하고 무기를 연마하여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하였다.
 
[5] 8402() : 관리를 임명하다
 
5(84) 2월에 명선(明宣)을 이찬(伊飡)으로 삼고, 윤량(允良)을 파진찬(波珍飡)으로 삼았다.
 
[5] 8405() : 고타군주가 푸른 소를 바치다
 
5(84)여름 5월에 고타군주(古陁郡主)가 푸른 소[靑牛]를 바쳤다.
 
[5] 8405() : 풍년이 들다
 
5(84)남신현(南新縣)에서 보리가 이어지면서 갈라졌다. 크게 풍년이 들었다. 길을 나선 사람들이 식량을 갖고 가지 않았다.
 
[6] 8501() : 백제가 침략하다
 
6(85) 봄 정월에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6] 8502() : 길원을 아찬으로 삼다
 
6(85)2월에 길원(吉元)을 아찬(阿飡)으로 삼았다.
 
[6] 8504() : 객성이 자미 자리에 들다
 
6(85)여름 4월에 객성(客星)이 자미(紫微) 자리에 들어갔다.
 
[8] 8707() : 성루를 수리하고 가소성과 마두성을 쌓다
 
8(87) 가을 7월에 영을 내려 말하기를, “()이 부덕함에도 이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데, 서쪽으로는 백제(百濟)와 이웃하고 남쪽으로는 가야(加耶)와 접해 있다. 덕은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없고, 위엄은 이웃 나라를 두렵게 하기에 부족하다. 마땅히 성벽과 보루를 잘 수리하여 침략에 대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 달에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의 두 성을 축조하였다.
 
[11] 9007() : 주주와 군주를 감찰하다
 
11(90) 가을 7월에 사자(使者) 10명을 나누어 파견하여 주주(州主)와 군주(郡主)를 감찰하게 하였다. 공사(公事)에 힘쓰지 않거나 농사지을 들판을 크게 황폐하게 만든 자들은 관직을 깎아내리거나 파면시켰다.
 
[14] 9301() : 관리를 임명하다
 
14(93) 봄 정월에 벼슬을 내려 윤량(允良)을 이찬(伊飡)으로 삼고, 계기(啓其)를 파진찬(波珍飡)으로 삼았다.
 
[14] 9302() : 고소부리군에 순행하다
 
14(93)2월에 고소부리군(古所夫里郡)을 순행하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친히 위문하고 곡식을 내려주었다.
 
[14] 9310() : 지진이 발생하다
 
14(93)겨울 10월에 경도(京都)에 지진이 일어났다.
 
[15] 9402() : 가야의 침략을 물리치다
 
15(94) 2월에 가야(加耶)의 적()이 마두성(馬頭城)을 포위하였다. 아찬(阿飡) 길원(吉元)을 보내 기병 1,000명을 이끌고 공격하게 하여 물리쳤다.
 
[15] 9408() : 알천에서 열병을 하다
 
15(94)가을 8월에 알천(閼川)에서 군사들을 사열하였다.
 
[17] 9607() : 금성 남쪽의 나무가 바람에 뽑히다
 
17(96) 가을 7월에 갑작스럽게 심한 바람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와 금성(金城)의 남쪽에 있는 큰 나무를 뽑아버렸다.
 
[17] 9609() : 가야의 침략을 물리치다
 
17(96)9월에 가야인(加耶人)들이 남쪽 변경을 습격하였다. 가성주(加城主) 장세(長世)를 보내 막게 하였으나, 적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왕이 분노하여 용맹한 병사 5,000명을 이끌고 전쟁에 나서 적들을 패배시켰는데, 사로잡은 자가 매우 많았다.
 
[18] 9701() : 가야왕이 화친을 요청하다
 
18(97) 봄 정월에 병사를 일으켜 가야(加耶)를 정벌하고자 하니, 그 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죄를 청하므로 그만두었다.
 
[19] 9804() : 가뭄이 들다
 
19(98) 여름 4월에 경도(京都)에 가뭄이 들었다.
 
[21] 10007() : 우박이 떨어지다
 
21(100) 가을 7월에 우박이 떨어져 날아가던 새가 맞아 죽었다.
 
[21] 10010() : 지진이 발생하다
 
21(100)겨울 10월에 경도(京都)에 지진이 일어나 백성들의 가옥이 쓰러져 죽은 자가 생겼다.
 
[22] 10102() : 월성을 쌓다
 
22(101) 2월에 성을 쌓고 월성(月城)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22] 10107() : 월성으로 거처를 옮기다
 
22(101)가을 7월에 왕이 월성(月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23] 10208() : 음즙벌국을 정벌하다
 
23(102) 가을 8월에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실직곡국(悉直谷國)이 영토를 놓고 다투다가 왕에게 와서 결정해 줄 것을 청하였다. 왕이 어렵게 여겨 이르기를, “금관국(金官國)의 수로왕(首露王)이 나이가 많아 지식이 많다.”라고 하며 불러서 물어보았다. 수로왕이 의견을 내어 다툼이 된 땅을 음즙벌국에 속하게 하였다. 이에 왕이 6(六部)에 명하여 수로왕을 만나 잔치를 베풀게 하였다. 다섯 부는 모두 이찬(伊飡)이 잔치의 주관자가 되었으나, 오직 한기부(漢祇部)만이 지위가 낮은 자를 주관자로 삼았다. 수로가 분노하여 자신의 노복(奴僕)인 탐하리(耽下里)에게 명하여 한기부의 주관자[] 보제(保齊)를 죽이게 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노복 탐하리는 음즙벌국의 왕 타추간(陁鄒干)의 집에 도망가서 의지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 노복을 붙잡게 하였는데, 타추가 보내주지 않았다. 왕이 분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음즙벌국을 정벌하니, 그 왕이 자신의 무리와 함께 스스로 항복하였다. 실직과 압독(押督) 두 나라 왕도 와서 항복하였다.
 
[23] 10210() : 겨울에 복사꽃과 오얏꽃이 피다
 
23(102)겨울 10월에 복사꽃과 오얏꽃이 피었다.
 
[25] 10401() : 운석이 떨어지다
 
25(104) 봄 정월에 운석들이 비와 같이 떨어졌으나 땅에는 닿지 않았다.
 
[25] 10407() : 실직의 반란을 평정하다
 
25(104)가을 7월에 실직(悉直)이 반란을 일으키니, 병사를 출동시켜 토벌하여 평정하고, 남은 무리들을 남쪽 변경으로 옮겼다.
 
[26] 10501() : 백제가 화친을 요청하다
 
26(105) 봄 정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26] 10502() : 경도에 큰 눈이 내리다
 
26(105)2월에 경도(京都)에 눈이 와서 3척이나 쌓였다.
 
[27] 10601() : 압독에 행차하여 구휼하다
 
27(106) 봄 정월에 압독(押督)에 행차하여 가난하고 곤궁한 자들을 구휼하였다.
 
[27] 10603() : 압독에서 돌아오다
 
27(106)3월에 압독(押督)으로부터 돌아왔다.
 
[27] 10608() : 가야를 정벌하다
 
27(106)가을 8월에 마두성주(馬頭城主)에게 명을 내려 가야(加耶)를 정벌하게 하였다.
 
[29] 10805() : 홍수가 나서 진휼을 하다
 
29(108) 여름 5월에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굶주렸다. 사자(使者)10개 방면[]으로 보내 창고를 열어 구제할 곡식을 나누어주게 하였다.
 
[29] 10805() : 주변 소국을 정벌하다
 
29(108) 여름 5병사를 보내어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을 정벌하여 병합하였다.
 
[30] 10907() : 누리가 발생하여 제사를 지내다
 
30(109) 가을 7월에 누리[]가 들어 곡식을 해쳤다. 왕이 산천에 두루 제사를 지내면서 물리칠 수 있기를 기원하니, 누리가 사라지고 풍년이 들었다.
 
[32] 11104() : 성문이 저절로 무너지다
 
32(111) 여름 4월에 성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32] 11105() :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다
 
32(111)5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33] 11210() : 파사이사금이 죽다
 
33(112) 겨울 10월에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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