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 수요일

[간추린 교회사] 제4장. 중세의 절정기

4. 중세의 절정기

 

서방 교회는 근본적인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수도원 제도 안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나왔다.

 

마침내 개혁을 간절히 원했던 수도사들은 교황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그 결과 개혁적인 교황들이 잇달아 배출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세속 권위와 교회 권위, 특히 황제와 교황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이 때가 바로 1095년에 시작해서 수세기 동안 지속된 십자군 전쟁의 시기였다.

 

그리고 또한 스페인의 재정복”(Reconquista)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되었다.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상업이 번창했으며, 그 결과 도시들이 또한 발달했다. 왜냐하면 도시들은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일상 생활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졌던 화폐가 다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새로운 계급 즉 브루즈아”(도시 출신의 사람들)가 나타났다.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상업을, 나중에는 산업의 발달에 종사했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응로 몇 개의 새로운 수도사 단체가 나타났다. 그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란시스코회와 도미니크회였다. 이들은 구걸을 통해서 자신들을 유지하였으므로 탁발수도회라고 부른다. 이들은 선교 활동에 새로운 각성을 일으켰으며, 대학에도 또한 침투하였다.

 

또한 탁발수도회는 대학에 파급되어 이른바 스콜라 철학으로 불리는 그 당시 신학의 지도자가 되었다.

 

스콜라 철학은 프란시스코회의 보나벤추라와 도미니크회의 토마스 아퀴나스 때에 절정에 달했다.

 

도시들의 발달로 인해 거대한 성당들이 건축되었다. 이전 교회의 건축물에 지배적이었던 로마네스크양식 대신에 이제는 고딕양식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다.

 

끝으로, 이 시기에 특히 인노센트 3(1198-1216) 때 교황의 권위와 권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끝인 1303년에는 교황권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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