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 수요일

[간추린 교회사] 제3장. 중세의 초기

3. 중세의 초기

 

로마 제국이 그 이전에 두 개의 영역(라틴어를 사용한 서로마 제국과 그리스어를 사용한 동로마 제국)으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야만인들의 침략은 모든 기독교 제국 내에 똑같은 방법으로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제국과 동방 교회보다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 교회에 더 깊은 영향을 미쳤다.

 

라틴계 서방 제국(오늘날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은 혼란의 시대였다. 이 제국은 몰락하고, 수많은 야만인 국가들이 차지하였다.

 

이 시대는 고통과 죽음과 무질서의 시기로서, 기독교 예배는 주님의 부활과 승리를 노래하기보다는 죽음과 죄악과 회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성만찬은 이전까지는 축제였지만 이제는 장례 의식이 되었다. 이 장례 의식에서 사람들은 주님의 승리보다는 자신의 죄악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고대 문화가 사라졌으며, 이것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보존한 유일한 곳은 교회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혼란 속에서도 수도원과 교황직이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교회는 더욱 강력해지고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한편 동방의 로마제국(지금은 비잔틴 제국으로도 불림)은 천년간 더 지속하였다. 이곳에서 국가는 교회보다 훨씬 더 힘이 있었으며, 종종 국가의 의지대로 교회를 움직이곤 하였다. 여기서는 또한 기독론의 이해를 돕는 중요한 신학 논쟁들이 있었다.

 

이러한 논쟁들의 결과로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많은 의견을 달리하는 혹은 독립 교회들이 나타났는데, 이 교회들을 보통 네스토리안”(Nestorian)단성론자들”(Monophysite)이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중기에 이르면서 이슬람이 교회에 대한 새로운 위협 세력으로 나타났다. 이슬람은 당시까지 교회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광대한 영토와 도시들(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등)을 정복하였다.

 

그 결과 기독교는 그전까지는 주로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동서의 축의 중심으로 존재해 왔지만, 이제는 프랑크 왕국에서 로마까지 즉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선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비록 이곳 서방에서 교회가 매우 강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교회는 주위의 혼란-그리고 어느 정도 교회 자체 내의 불일치가 이 혼란을 부채질했다-을 진정시키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이러한 혼란에 대한 대책으로 봉건제도”(feudalism)라는 새로운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 제도에서 각각의 봉건 영주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때때로 심지어는 약탈을 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추구하였다.

 

동방에서는 여전히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혔고 고대의 지식과 문학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의 옛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비잔틴 기독교의 가장 큰 성과로는 보통 988년으로 기록되는 러시아의 개종을 들 수 있다.

 

동방과 서방 교회의 관계는 1054년에 결정적으로 단절될 때까지 긴장이 계속 고조되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4왕조, ‘성스러운 왕’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 4 왕조 , ‘ 성스러운 왕 ’   스네프루는 고대 이집트의 제 4 왕조를 시작한 왕이다 . 그는 24 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남북 지역의 교류를 확대했으며 영토도 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