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4대 후폐제 조모(後廢帝 曹髦, AD. 241~260년) : 재위 AD. 254~260년
【기원후 241년】 출생
- 조모는 조비(조위 문제)의 손자로, 부친은 동해정왕(東海定王) 조림(曹霖)이고, 자는 언사(彦士)이다.
【기원후 244년】 고귀향공에 봉해졌다.
- 이는 제후왕의 아들 중 적장자가 아닌 자를 공으로 봉하는 위나라의 규정에 따른 조치이다.
【기원후 249년】 부친 조림 사망
- 부친 조림이 사망하였다. 이때 조모의 형 조기가 동해왕 작위를 계승했다. 같은 해 사마의가 정권을 장악하며 사마씨가 실권을 확고히 했다.
- 249년 이후 사마씨의 섭정 체제가 굳어졌고, 조모의 모든 시도는 이 구도를 전복하려는 성격을 띠었다. 문예적 재능과 정치적 의지의 간극이 사료 전반의 조모 평가를 형성한다.
【기원후 251년】
- 사마의가 사망하고, 장남 사마사가 섭정 권력을 승계하였다. 조위 조정의 실권은 계속 사마씨에게 있었다는 배경이다.
【기원후 254년】
- 11월 2일, 조방이 폐위된 뒤 황제로 즉위하였다. 태후가 종법ㆍ예제상 문제를 이유로 팽성왕 조거 대신 조모를 택해 옹립했고, 연호를 정원으로 개원했다. 즉위 당시 조모의 나이는 13세였다.
- 조모는 본래 황제 서열에서 멀었으나, 조방 폐위 국면에서 태후의 명분 조정과 사마씨 권력 구도가 맞물리며 어린 나이에 옹립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원후 255년】
- 변씨가 황후로 책립되었다. 변황후는 조모의 방계 친족(삼종) 계열로 기록된다.
【기원후 256년】
- 연호를 감로로 변경하였다. 즉위 초의 정원 연호가 끝나고 감로 연호가 시작되었다.
【재위 기간 중의 성향과 시도】
- 조모는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성품으로 묘사되며, 시문과 서화에도 재능을 보였다. 섭정 세력에게 빼앗긴 조정 권한을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주도권 회복을 도모했으나 번번이 좌절했다는 평가가 있다.
- 조정의 실권이 사마사에서 사마소로 넘어간 뒤, 조모는 ‘잠룡시’를 지어 현실을 풍자하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 작품이 사마소의 경계심을 자극했다는 서술이 전한다.
【기원후 260년】 쿠데타 결행과 시해 사건
- 5월 조모는 왕침ㆍ왕경ㆍ왕업 등과 의논 후 궁중 근위 병력을 소집해 사마소 토벌을 결행했으나, 남궐 아래에서 가충이 지휘한 병력과 마주쳤고, 성제가 찌른 창에 맞아 즉사했다. 만 20세 미만의 나이였다. 사건 직후 사마소는 책임을 성제에게 전가해 삼족을 멸하고, 새 황제로 조환을 옹립했다.
- 260년 6월 2일 : 조모의 사망일이다. 정사 기록의 간지 대비를 통해 양력 6월 2일로 비정된다. 장례는 한때 ‘민례’ 격으로 격하해 치르려 했으나, 반발로 왕례로 장사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사후 영향】
- 조모의 시해는 조정과 민심에 큰 충격을 주었고, 사마소는 정치적 부담을 만회하기 위한 대외전(촉한 정벌) 명분 축적에 나섰다는 평가가 있다. 후대 당 현종 대의 화가 조패가 조모의 후손으로 전하며, 그의 회화가 시단과 화단에서 찬미되었다.
【요약 정보】
- 이름 : 조모(曹髦, 241–260)
- 자(字) : 언사(彦士)
- 묘호 : 후폐제(後廢帝)로 불리며, 공식 묘호는 전하지 않음
- 시호 : 전하지 않음(재위 중 시해되어 공식 시호가 확정되지 않음)
- 출생 : 241년
- 출생지 : 명시 기록 없음
- 사망 : 260년 6월 2일
- 사망지 : 낙양(洛陽)
- 재위 : 254년 11월 2일 ~ 260년 6월 2일
- 전임 : 조방(曹芳)
- 후임 : 조환(曹奐)
- 부친 : 동해정왕(東海定王) 조림(曹霖)
- 배우자 : 卞황후(卞皇后) - 변륭(卞隆)의 딸, 255년 조모에 의해 황후로 책봉됨.
- 후손 : 曹霸(조패)
조모의 후손.
당 현종 시기 활약한 유명 화가로, 문학과 서화에 능함.
"文如植,武如操,字畫抵丕風流" 라는 평가를 받음.
관직: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
시인 두보가 그의 그림을 찬양한 시 《丹青引》, 《觀曹將軍畫馬圖》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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