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마지막 황금기 : 우르 제3왕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수많은 왕조와 문명의 흥망성쇠로 점철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기원전 22세기에서 21세기에 걸쳐 우르(Ur)를 기반으로 번성했던 우르 제3왕조(Third Dynasty of Ur, Ur III)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짧은 기간 동안 독보적인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종종 신(新)수메르 제국(Neo-Sumerian Empir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우르 제3왕조’라는 명칭은 이전의 우르 제1왕조(First Dynasty of Ur, 기원전 26-25세기)를 기준으로 부여된 것이며, 한때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던 우르 제2왕조는 사실상 기록되지 않은 허상에 가까웠다. 우르 제3왕조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패권을 차지했던 마지막 수메르 왕조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 구티 왕조와 우루크의 우투헹갈
우르 제3왕조의 등장은 이전 시대의 혼란 속에서 이루어졌다. 수세기 동안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던 아카드 제국(Akkadian Empire)이 멸망한 후, 구티 왕조(Gutian dynasty)의 지배와 독립적인 수메르 도시 국가들의 시대를 거치며 혼돈의 시기가 계속되었다. 마지막 구티 왕인 티리간(Tirigan)은 우루크의 우투헹갈(Utu‑hengal)에 의해 축출되었다.
우투헹갈의 통치 이후, 장군 출신이었던 우르남무가 우르 제3왕조를 세웠다. 하지만 그의 즉위 과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수메르 왕명록》에는 우투헹갈의 통치 기간이 7년(또는 426년, 26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유일한 연호는 즉위 연호뿐이어서 실제 통치 기간은 훨씬 짧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2. ‘우르-남무’, 우르 제3왕조를 건국하다
우르-남무(Ur-Nammu, 재위 기원전 2047년경 설립)가 기원전 2112년경 우르 제3왕조를 건국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우르-남무는 뛰어난 전사이자 통치자였다. 그는 전투에서 라가시(Lagash)의 통치자를 물리치고 직접 죽임으로써 강력한 지도력을 입증했다. 이 전투 이후 우르-남무는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king of Sumer and Akkad)’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우르의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그의 통치 하에 법률 체계도 발전했다. 유명한 우르-남무 법전(Code of Ur-Nammu)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우루카기나(Urukagina) 법전 이후 처음으로 제정된 법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전은 제국의 질서를 확립하고 통치 체제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르 제3왕조의 영향력은 당시 이신(Isin), 라르사(Larsa), 에슈눈나(Eshnunna) 등의 도시들을 아우렀으며, 북으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Upper Mesopotamia)까지 확장되었다. 우르 제3왕조의 지방들은 북쪽부터 남쪽까지 십파르(Sippar), 티웨(Tiwe), 우룸(Urum), 푸오(Puö), 구두아(Gudua), 바빌론(Babylon), 키스(Kis), 카잘루(Kazallu), 아피악(Apiak), 마라드(Marad), 니푸르(Nippur), 우루-사그리그(Uru-sagrig), 이신(Isin), 아다브(Adab), 슈루팍(Suruppak), 움마(Umma), 기르수(Girsu), 우루크(Uruk), 그리고 우르(Ur)에 이르렀다.
2. 슐기의 통치와 제국의 전성기
우르-남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슐기(Shulgi, 재위 48년)의 시대에 우르 제3왕조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슐기는 제국의 절차를 중앙집권화하고 표준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행정 절차, 문서 보관, 세금 제도, 그리고 국가 달력 등을 표준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슐기의 통치 기간 동안 제국은 영토 확장을 지속했다. 그는 수사(Susa)와 주변 지역을 점령하고 엘람(Elam)의 왕 쿠티크-인슈시낙(Kutik-Inshushinak)을 폐위시켰으며, 나머지 엘람 지역은 시마시크 왕조(Shimashki dynasty)의 지배하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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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연대 기준으로 기원전 2112년부터 2004년까지 존재한 우르 제3왕조 제국의 대략적인 확장 범위와, 기원전 2093년부터 2047년까지 슐기(Shulgi) 통치 기간 동안의 중심지/변방 체제. |
3 군사력과 정복 활동
기원전 3천년기 마지막 세기 동안 우르의 왕들은 왕국 국경 주변에서 여러 차례 군사적 충돌을 벌였다. 이러한 갈등은 아카드의 왕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왕들이 어떻게 군사력을 조직했는지에 대한 증거는 부족하지만, 왕국의 방어 병력이 중앙에 있었는지 혹은 외부에 배치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명확하지 않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제2대 통치자 슐기(Šulgi)는 상당한 확장과 정복을 달성했으며, 그의 세 후계자들도 정복 활동을 이어갔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복의 빈도는 줄어들었다.
우르의 지배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들은 남동부 아나톨리아(Anatolia, 현대 튀르키예)부터 페르시아만(Persian Gulf)의 이란 해안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다. 이는 우르 왕조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수많은 텍스트들은 우르 제3왕조의 군대가 여러 승리 후에 왕국으로 가져온 전리품과 보물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슐기의 원정은 왕국에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으며, 주로 우르의 왕과 신전이 전쟁의 전리품으로 혜택을 본 것으로 보인다.
4. 우르 제3왕조의 몰락
신(新)수메르의 힘은 점차 쇠퇴하고 있었다. 입비-신(Ibbi-Sin, 재위 24년)은 21세기(기원전)에 엘람을 향해 군사 작전을 개시했지만, 엘람 영토 깊숙이 침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기원전 2004년(중간 연대기 기준) 혹은 1940년(단축 연대기 기준), 엘람인들이 수사(Susa)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엘람의 시마시크 왕조(Shimashki dynasty) 왕 킨다투(Kindattu)의 지휘 아래 우르를 포위하여 함락시켰다. 이 승리 이후 엘람인들은 우르를 파괴하고 입비-신을 포로로 끌고 가면서 우르 제3왕조는 종말을 맞이했다. 이 사건은 ‘우르의 애가’(Lament for Ur)라는 문학 작품으로도 기념될 정도로 당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엘람인들은 이 승리 이후 21년 동안 군사 점령을 통해 우르 지역을 통치했다. 우르 제3왕조의 몰락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 문명이 지녔던 정치적, 군사적 지배력의 마지막을 의미했다.
5. 우르 제3왕조의 통치자들
6. 결론 : 고대 문명의 빛나는 유산
우르 제3왕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 문명이 다시 한번 번성했던 중요한 시기였다. 우르-남무에 의해 건국되어 슐기의 통치 아래 전성기를 맞이했던 이 제국은 중앙집권적인 행정 체계, 정교한 법률, 그리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비록 엘람의 침략으로 그 화려했던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우르 제3왕조는 메소포타미아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며 수메르 문화와 문명의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들의 유산은 고대 문명의 발전과 흥망성쇠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오늘날까지도 역사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메타 설명 (150자): 우르 제3왕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마지막 수메르 제국으로, 우르-남무가 건국하고 슐기가 통치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강력한 군사력과 중앙집권 체제로 번성했으나, 엘람의 침략으로 멸망하기까지의 역사적 흐름과 주요 인물들을 심층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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