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터 A. 아서(Chester A. Arthur, 1829~1886)
미국 제21대 대통령(1881~1885)
체스터 A. 아서는 본래 부통령으로 취임했으나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의 암살로 인해 1881년 9월 19일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는 선출 없이 권한을 이어받았음에도 예상과 달리 공무원 제도 개혁 등 주요 성과를 남기며 역사적으로 의외의 긍정적 평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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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A. 아서(Chester A. Arthur, 1829~1886) |
1. 초기 생애와 교육
아서가 1829년 10월 5일 버몬트 주 페어필드에서 목사인 아버지 윌리엄 아서와 어머니 몰비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자랐으며, 1845년 유니온 칼리지에 입학해 1848년 졸업했다. 그 후 교사와 법률 공부를 병행하여 1854년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2. 변호사 시절과 초기 정치 경력
법조계에서 아서는 인권 사건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Jennings v. Third Ave Railroad Co. 사건’에서 흑인 여성 승객의 권리를 대변하여 뉴욕시 전차의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로스코 콩클링이라는 뉴욕 공화당 실세의 수족으로 활동하며, 1871년부터 1878년까지 뉴욕 항구 세관장(Collector)을 지냈다. 이 시기 아서는 ‘스포일 시스템’의 배후에 있었으나 정작 부정부패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평판을 얻었다.
3. 부통령 취임과 대통령 승계
아서가 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1880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가필드 후보의 타협 카드였기 때문이다. 그는 1881년 3월 부통령에 취임했고, 같은 해 제임스 가필드가 암살되자 이튿날인 9월 20일 뉴욕 자택에서 비공식적으로 대통령 선서를 했으며, 9월 22일 워싱턴 D.C.에서 정식 취임 선서를 받았다.
4. 재임 기간 주요 성과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1883년 펜들턴 공무원법(Pendleton Civil Service Reform Act) 서명이 있다. 이 법은 공직 임용을 능력 중심으로 전환하며 연방 공무원제도를 근대화했다. 그는 자신의 정파였던 스탈워트(Stalwart)에 반대하는 모습도 보여주었고, 당내 지지 기반을 상실하면서 후속 경쟁에서 소외되었다. 또한 관세법(Tariff of 1883)을 통해 세율을 일부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고, 과도한 의회 예산 지출을 막기 위해 ‘Rivers and Harbors 법안’을 거부했다. 그는 해군 현대화 예산을 승인했으며, 법과 규제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5. 이민 정책과 민권 문제
중국인 이민금지법(Chinese Exclusion Act)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그는 이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강경한 반대를 표명하며 법안을 완화하는 타협을 이끌어냈다. 그는 또한 흑인 권리 보호와 인디언 교육, 토지권 증진 등 연방 차원의 사회 정책 제안을 했으나 입법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6. 공직에 대한 재정적 조심성과 이미지 변화
뉴욕 항구 세관장 시절 아서는 거대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정작 자신은 높은 윤리 기준을 유지했다. 대통령직에 오르면서 그는 본인을 벼락부자 정치인 이미지에서 탈피하려 했다. 그는 사생활과 패션 취향으로 ‘Elegant Arthur’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고급 와인과 화려한 의상을 즐겼다. 또한 그는 연방 예산 잉여금을 되돌려주는 정책으로 당내 보수층과도 마찰을 겪었다.
7. 퇴임 이후와 말년
아서는 1884년 재선 후보 지명을 받지 못한 뒤 뉴욕에서 변호사 업무를 재개했다. 그해부터 그는 신장 질환(Bright’s disease)을 비밀로 숨기고 있었다. 1886년 11월 16일 대부분의 문서를 소각하고 다음날 뇌혈관 질환으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향년 57세였다.
8. 역사적 평가
아서의 평가는 과거에는 낮았지만 현대에는 재평가되고 있다. 그는 개혁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시기에 당내 정치세력을 넘어 개혁을 이끌었고, 공직제도의 정착에 기여했다. 그는 해군 현대화와 통화 정책에서도 절제된 리더십을 보였다. 반면 중국인 배제법의 서명과 제한적인 민권 입법은 그의 유산에 그림자를 남겼다. 전체적으로는 정직성과 책임 있는 정치 태도를 보여준 대통령으로 인정된다.
체스터 A. 아서는 뜻밖의 대통령이었지만, 자신의 이전 정치적 배경에 갇히지 않고 개혁을 주도한 대통령이다. 그는 선출되지 않았지만 공무원 제도 개혁, 관세 조정, 민권 보호 노력, 해군 현대화 등을 실천했다. 그의 삶과 정책은 오늘날에도 정치적 통합과 책임 있는 행정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교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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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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