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0일 토요일

촉한 2대 후주 유선(後主 劉禪, AD. 207~271년) : 재위 AD. 223~263년

촉한 2대 후주 유선(後主 劉禪, AD. 207~271) : 재위 AD. 223~263

 

기원후 207탄생

  • 유선(劉禪)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는 공사(公嗣)이다.
  • 아버지는 촉한의 초대 황제 소열제 유비(劉備)이며, 어머니는 감황후(甘皇后)이다.
  • 다른 기록에서는 정무 3(208)에 형주(荊州)에서 태어났다고 명시한다.
  • 유비의 망명 생활 중 태어났으며, 조운(趙雲)의 활약으로 목숨을 건지는 '장판파(長阪坡) 일화'로 유명하다.
 

기원후 212익주(益州) 진입

  • 유비가 익주를 정벌할 때, 제갈량(諸葛亮)과 장비(張飛)와 함께 익주로 들어갔다.
 

기원후 221황태자 책봉

  • 아버지 유비가 성도(成都)에서 황제에 즉위하자, 그 해 4월 황태자(皇太子)로 책봉되었다.
 

기원후 223황제 즉위

  • 5, 아버지 유비가 이릉대전(夷陵大戰) 패배의 후유증으로 백제성(白帝城)에서 붕어하자, 17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했다.
  • 유비는 유언으로 제갈량과 이엄(李嚴)에게 유선을 보좌할 것을 부탁하며 영안탁고(永安託孤)를 남겼다.
  • 이때부터 그의 재위 기간은 223년부터 263년까지 총 41년간 이어진다.
  • 재위 기간의 연호 :
    • 건흥(建興) : 223~ 237
    • 연희(延熙) : 238~ 257
    • 경요(景耀) : 258~ 262
    • 염흥(炎興) : 263
 

치세 초중반제갈량의 보좌와 북벌

  • 제갈량의 섭정 : 재위 초기에는 승상 제갈량의 섭정과 보좌를 받아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이 시기에는 제갈량이 사실상의 통치자였다.
  • 남만 정벌 : 225, 제갈량은 맹획(孟獲)을 비롯한 남만족을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전술로 정벌하여 남방 지역의 안정을 확립했다.
  • 북벌(北伐) : 228년부터 234년까지 제갈량은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5차례의 북벌을 감행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 234: 제갈량 사망 - 제갈량이 오장원(五丈原)에서 사망하자, 장완(蔣琬), 비의(費禕), 동윤(董允) 등 제갈량의 후계자들이 국정을 계승하여 유선을 보좌했다.
 

치세 중후반환관의 전횡과 국력 쇠퇴

  • 강유(姜維)의 북벌 : 제갈량의 뜻을 이어받은 강유는 잦은 북벌을 시도했으나, 이는 촉한의 국력을 소모시키고 백성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 환관 황호(黃皓)의 득세 : 강유가 자주 북벌을 떠난 사이, 환관 황호(黃皓)가 유선의 신임을 얻어 국정을 농단하기 시작했다. 황호는 뇌물을 받고 관직을 사고파는 등 부패를 저질렀으며, 강유를 견제하고 촉한의 국력을 더욱 쇠퇴시켰다.
 

기원후 263()나라의 침공과 촉한의 멸망

  • 위나라 황제 조환(曹奐)은 종회(鍾會)와 등애(鄧艾)에게 대규모 병력을 주어 촉한을 침공했다.
  • 등애는 촉한의 방비가 허술한 음평(陰平) 방면으로 기습 침투하여 성도(成都)를 위협했다.
  • 내부의 혼란과 국력의 약화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위기에 처하자, 유선은 황호의 말만 듣고 저항하려 했으나, 동굴(董厥), 초주(譙周) 등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결국 등애에게 항복했다.
  • 이로써 촉한은 건국 42년 만에 멸망했다.
 

기원후 263년 이후안락공(安樂公)으로서 낙양 생활

  • 위나라 황제 조환은 유선을 낙양(洛陽)으로 옮겨 살게 하고 안락공(安樂公)에 봉했다.
  • 진문왕(晉文王) 사마소(司馬昭)가 유선에게 ()이 그립지 않은가?” 하고 묻자, 유선은 이곳(낙양)이 즐거워 촉을 생각지 않습니다(此間樂不思蜀也)”라고 답하여 낙불사촉(樂不思蜀)’이라는 고사성어를 남겼다.
  • 이는 그가 바보 같다는 평가와 함께, 위나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현명한 처신이었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기원후 271사망

  • 낙양에서 향년 65세로 사망했다.
  • 사후 ()’라는 시호를 받아 안락사공(安樂思公)이라 불렸다.
  • 촉한의 마지막 황제였으며, 중국 역사상 비교적 평화로운 말년을 보낸 황제 중 한 명이다.
 

요약 정보

  • 이름 : 유선(劉禪)
  • () : 공사(公嗣)
  • 묘호 : (후대에 추증되지 않음)
  • 시호 : () (안락사공 安樂思公) - (촉한에서는 황제로 시호를 받지 못함)
  • 출생 : 207
  • 출생지 : (명확한 기록 없음, 아마 형주 일대)
  • 사망 : 271(향년 65)
  • 사망지 : 낙양(洛陽)
  • 재위 : 2235~ 26311(416개월)
  • 전임 : 촉한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
  • 후임 : (촉한은 멸망하고 위나라에 병합)
  • 유선은 촉한의 2대 황제로, 제갈량의 보좌 아래 안정된 초반 치세를 보냈으나, 제갈량 사후 점차 환관 황호의 전횡을 묵인하고 국력을 소모하며 결국 위나라의 침공에 항복하여 촉한의 멸망을 초래했다. 그의 마지막은 낙불사촉이라는 고사처럼 바보 같은 인상과 함께 혼란한 시대를 평화롭게 보낸 지혜로운 처신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유선 가계

 

1) 부모

  • 부친 : 열조 소열황제 유비(劉備)
  • 모친 : 감부인 감매(甘梅) 사후 추존: 소열황후(昭烈皇后)
 

2) 배우자

  • 경애황후 장씨(敬哀皇后 張氏) 장비(張飛) 장녀. 223년 황후 책립, 237년 사망.
  • 장황후(張皇后) 장비(張飛) 차녀. 238년 정월 황후 책립, 촉한 멸망 후 낙양 동행.
  • 왕귀인(王貴人) 유선(劉璿)의 생모. 본래 경애황후의 시녀.
  • 이소의(李昭儀) 촉한 멸망 시 자결.
 

3) 형제

  • 유영(劉永, 公壽) 향후(鄉侯).
  • 유리(劉理, 奉孝) 시호 도왕(悼王).
 

4) 아들

  • 유선(劉璿, 224264)
  • 유요(劉瑤, 생몰 미상)
  • 유종(劉琮, ?262)
  • 유찬(劉瓚, 생몰 미상)
  • 유신(劉諶, ?263)
  • 유순(劉恂, 생몰 미상)
  • 유구(劉璩, 생몰 미상)
  • 부연 : 유종은 망국 전 사망, 유선은 촉한 멸망 후 종회의 난 때 피살, 유신은 망국 당일 자살. 나머지는 항복 후 후주와 함께 낙양으로 이거. 영가의 난 이후 자손 단절 기록이 전한다.
 

5)

  • 공주 연희 6(243) 제갈첨(諸葛瞻)에게 하가.
  • 공주 비용(費恭, 비의 費祎의 차남)에게 하가. 비의 장녀 비씨는 유선(劉璿)의 태자비.
  • 공주 관통(關統, 관우 關羽의 손자·관흥 關興의 아들)에게 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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