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충(司馬衷, AD 259~307년) : 서진 제2대 황제(AD. 267~301, 301~307년)
- 사마충(司馬衷) : 서진 제2대 황제
- 시호 : 효혜황제(孝惠皇帝) - 줄여서 혜제(惠帝)
- 출생 : 259년
- 사망 : 307년 1월 8일 (향년 46~47세)
- 황태자 : 267년경 ~ 290년 5월 16일 사마염(무제) 재위 중
- 제1차 재위 : 290년 5월 16일 ~ 301년 2월 3일 무제 사후 즉위
- 태상황(太上皇) : 301년 2월 3일 ~ 301년 6월 1일 사마륜에게 양위
- 제2차 재위 : 301년 6월 1일 ~ 307년 1월 8일 사마륜 폐위 후 복위
【기원후 259년】
- 진무제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 그의 어머니는 진무제(晉武帝)의 황후인 양염(楊艷)이다.
【기원후 267년】
- 태시 3년(267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 그가 차남으로서 태자로 책봉된 것은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형인 비릉도왕 사마궤(毗陵悼王 司馬軌)가 서진(西晉) 건립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또한 진무제가 자신이 총애하는 총명한 손자 민회태자 사마이(愍懷太子 司馬遹)에게 장차 제위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으나, 가능성은 낮다. 사마이는 278년에야 태어났기 때문이다.
【기원후 272년】
- 272년 혜제는 무제의 명에 따라 가충(賈充)의 딸 가남풍(賈南風)을 태자비로 맞이했다.
【기원후 290년】
- 290년 무제가 세상을 떠나고 혜제가 즉위했다. 그는 계모 양지(楊芷, 양염의 당매)를 황태후로 존숭하고, 아내 가남풍을 황후로, 사마이를 태자로 삼았다.
- 혜제는 재위 중 그의 황후를 매우 신임했다. 이로 인해 가씨가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고, 심지어 혜제의 조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기원후 291년】
- 291년 가남풍은 태후의 아버지인 거기장군 양준(車騎將軍 楊駿)을 제거하고 태후를 폐위시켰으며, 이후 태재 사마량(太宰 司馬亮)과 같은 대신들도 살해했다.
- 291년 가후는 태후를 살해했다.
【기원후 294년】
- 294년 가후는 태자 이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기원후 296년】
- 296년 흉노(匈奴)와 다른 소수민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적인 제만년(氐人 齊萬年)이 제위를 칭했으며, 이 반란은 299년에 가서야 진압되었다.
【기원후 299년】
- 가후는 태자 이를 서인으로 폐위시켰다. 조왕 사마륜(趙王 司馬倫)은 제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부러 가후에게 태자를 죽이도록 교사했다.
【기원후 300년】
- 이듬해 가후는 태자를 살해했다. 이 행동은 가후의 전제 정치에 반대하는 많은 황족들이 행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마륜은 태자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조서를 위조하여 가후를 폐위하고 살해했으며, 사공 장화(司空 張華) 등의 대신들도 죽이고 자신이 상국(相國)의 지위를 차지했다.
- 태자가 폐위된 후, 회남왕 사마윤(淮南王 司馬允)은 가장 나이가 많은 생존한 황제의 형제로서 황태제(皇太弟)로 추천되었으나 실패했고, 사마륜과 서로 견제했다.
- 300년 8월, 사마윤은 군대를 일으켜 사마륜을 토벌했으나 패배하여 살해당했다. 사마륜은 원래 태자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고(故) 태자의 아들 사마장(司馬臧)을 황태손으로 책봉했다.
- 같은 해 12월, 익주자사 조렴(益州刺史 趙廞)은 중원에서 사천으로 도망친 유민들과 협력하여 성도(成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기원후 301년】
- 301년 사마륜(司馬倫)이 제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혜제(惠帝)는 태상황(太上皇)으로 바뀌고, 태손 사마장(司馬臧)은 폐위되어 살해당했다.
- 3월, 제왕 사마경(齊王 司馬冏)이 병사를 일으켜 사마륜에 반대했으며, 성도왕 사마영(成都王 司馬穎), 하간왕 사마옹(河間王 司馬顒), 상산왕 사마예(常山王 司馬乂) 등의 지지를 받았다.
- 사마륜은 싸움에서 패배했다. 회릉왕 사마최(淮陵王 司馬漼)는 사마륜의 당파를 죽이고 사마륜을 축출했으며, 혜제를 복위시켰다. 사마륜은 살해당했다.
- 5월, 양양왕 사마상(襄陽王 司馬尚)을 황태손으로 세우고, 양헌용(羊獻容)을 황후로 삼았다.
- 6월, 동래왕 사마유(東萊王 司馬蕤)는 사마경의 전횡을 타도할 계획을 세웠으나, 일이 누설되어 폐위되어 살해당했다.
- 12월, 이특(李特)이 사천(四川)에서 진(晉)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시작했으며, 이는 성한(成漢) 건국의 시초가 되었다.
【기원후 302년】
- 302년 초 황태손 사마상이 요절했고, 혜제의 조카인 청하왕 사마담(清河王 司馬覃)이 태자로 책봉되었다.
- 5월, 이특이 사천에서 사마옹이 그를 토벌하기 위해 보낸 군대를 격파하고, 광한태수 장미(廣漢太守 張微)를 죽인 후 스스로 대장군을 칭했다.
- 12월, 사마영, 사마옹, 신야왕 사마흠(新野王 司馬歆), 범양왕 사마효(范陽王 司馬虓)는 낙양(洛陽)에 모여 사마경의 전횡에 반대했으며, 사마예에게 사마경을 죽이라고 하는 격문을 보냈다. 또 일부러 사마경이 알게 하여, 사마예가 살해당하면 사마예의 원수를 갚는다고 선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마경은 과연 사마예에게 살해당했고, 사마예는 조정 내의 권신이 되었다.
【기원후 303년】
- 303년 3월 이특이 성도(成都)를 공격하던 중 살해되었으나, 4월 그의 아들 이웅(李雄)이 성도를 점령했다. 연말에는 이웅이 거의 사천 분지 전체를 점령했다.
- 5월 장창(張昌)과 구심(丘沈)이 반란을 일으켜 한(漢)을 건국하고 사마흠을 살해했다.
- 8월, 사마영과 사마옹이 사마예를 토벌했다.
- 10월, 사마옹의 군대가 수도 낙양을 공격했으며, 이후 약탈 과정에서 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후 양측 군대가 낙양성 밖에서 대치했으며, 13세 소년까지 징집되었다. 동시에 양측 군대는 흉노(匈奴) 등의 군대도 징모했다. 결국 사마예는 싸움에서 패배하여 살해당했다. 사마옹은 진나라에서 막강한 인물이 되었다.
【기원후 304년】
- 304년 초 혜제는 사마옹의 위협이 점점 커진다고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밀조를 내려 유심(劉沈)과 황보중(皇甫重)에게 사마옹을 공격하도록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사마옹의 군대는 낙양에서 대대적으로 약탈을 자행했다.
- 2월 황후 양씨를 폐위하고, 황태자 사마담을 폐위했으며, 사마영을 황태제로 세웠다. 사마영과 사마옹이 전횡을 일삼았으며, 사마영은 업성(鄴城)에 주둔했다. 그러나 6월 경성(京城)에서 다시 사마영에 반대하는 정변이 발생했으며, 양씨가 황후로 복위하고, 사마담이 태자로 복위했다.
- 7월, 혜제는 군사를 이끌고 사마영을 토벌했으며, 당음(蕩陰)에서 사마영의 군대에 패배했다. 혜제는 얼굴에 부상을 입고 세 발의 화살을 맞았으며, 사마영에게 포로로 잡혔다. 양씨와 사마담은 다시 폐위되었다.
- 8월, 사마영은 안북장군(安北將軍) 왕준(王浚)에게 패배했고, 혜제를 협박하여 낙양으로 도망쳤으며, 도중에 거친 곡물로 끼니를 때웠다.
- 11월, 혜제는 다시 사마옹의 장군 장방(張方)에게 납치되어 장안(長安)으로 끌려갔다. 장방의 군대는 황궁을 약탈하고 황궁 내 보물을 싹쓸이했다. 연말에 사마옹이 장안에서 다시 모든 권력을 장악했으며, 사마월(司馬越)이 태부(太傅)가 되었다. 사마옹은 사마영을 성도왕으로 폐위하고, 예장왕(豫章王) 사마치(司馬熾)를 황태제로 바꾸어 사마월 등의 비판을 잠재우려 했다.
- 같은 해 이웅이 성도에서 성도왕을 칭하며 성한을 건국했고, 유연(劉淵)이 한왕을 자칭하며 전조(前趙)를 건국했다.
【기원후 305년】
- 305년 사마옹과 장방의 군대, 사마영의 군대, 사마월의 군대, 범양왕 사마효의 군대가 중원(中原)에서 혼전했으며, 중앙정부는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진나라 변방 지역들은 연이어 독립했다.
- 305년 말, 사마월이 승리했으며, 사마옹은 장방을 살해하고 사마월에게 화해를 청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기원후 306년】
- 306년 사마월 수하의 선비(鮮卑) 군대가 장안으로 진격하여 대대적으로 약탈을 자행했으며, 2만여 명이 살해되었다. 9월, 사마영은 사마효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사마효가 사망하자 후환을 없애기 위해 그 또한 살해당했다.
- 영흥(永興) 3년 5월 기해일(6월 11일), 진혜제는 사마월의 장군 기홍(祁弘)을 따라 낙양으로 돌아갔다. 6월 병진일(6월 28일), 진혜제는 다시 장안으로 향했다.
【기원후 307년】
- 307년 광희(光熙) 원년 11월 경오일(307년 1월 8일), 혜제는 장안 현양전(顯陽殿)에서 떡을 먹고 중독되어 사망했으며, 사마월에게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 혜제 사후 태양릉(太陽陵)에 안장되었다.
【가족 관계】
- 조부/조모
- 조부 : 태조 문황제 사마소(太祖 文皇帝 司馬昭)
- 조모 : 문명황후 왕씨 왕원희(文明皇后 王氏 王元姫)
- 부/모
- 부황 : 세조 무황제 사마염(世祖 武皇帝 司馬炎)
- 모후 : 무원황후 양씨 양염(武元皇后 楊氏 楊艶)
- 계모 : 무도황후 양씨 양지(武悼皇后 楊氏 楊芷)
- 황후(정후) : 혜문황후 가씨 가남풍(惠文皇后 賈氏 賈南風)
- 제1황녀 : 하동공주(河東公主)
- 제2황녀 : 청하공주(淸河公主)
- 제3황녀 : 시평공주(始平公主)
- 제4황녀 : 애헌공주(哀献公主)
- 황후(계후) : 혜헌황후 양씨 양헌용(惠獻皇后 羊氏 羊献容)
- 빈 : 부인 사씨 사구(夫人 謝氏 謝玖)
- 제1황자 : 민회태자 사마휼(愍懐太子 司馬遹)
- 이복동생 : 예장왕(豫章王) 사마치(司馬熾) (서진 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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