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피로 물든 격변의 시대 :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53/403~221)
전국 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53년 또는 기원전 403년~기원전 221년)는 중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역동적이었던 혼란의 시기이다. 주(周) 왕실의 권위가 완전히 붕괴되고 수많은 제후국들이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천하를 다투었던 이 시대는, 마침내 진(秦)나라에 의해 통일 제국이 탄생하며 마무리된다. 전국 시대는 사회, 경제, 문화, 사상 등 모든 면에서 거대한 변혁을 겪으며 후대 중국 문명의 초석을 다진 시기였다.
1. 춘추전국시대, 새로운 역사의 시작점
전국 시대는 주(周)나라가 동쪽의 낙읍(洛邑)으로 천도한 기원전 771년부터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까지를 이르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춘추 시대에는 주 왕실의 명목상의 권위가 남아있었고, 나라를 점령해도 완전히 멸망시키기보다는 존속시키는 경우가 많았으며, 멸망해도 부흥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전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弱肉強食)'의 냉혹한 세계에서, 한번 전쟁에 지는 것은 나라의 멸망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이 시기부터는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가 되었다.
전국 시대의 시작점은 학설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원전 453년 진(晉)나라가 조(趙)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 세 강대국으로 분열된 때를 전국 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세 나라는 훗날 '삼진(三晉)'으로 불리게 된다.
- 또 다른 견해는 기원전 403년 이 삼진이 주(周) 왕실로부터 정식 제후국으로 인정받은 때를 전국 시대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이 사건은 주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실질적인 국가 간의 경쟁 시대로 돌입했음을 상징한다.
2. 전국칠웅(戰國七雄) : 천하의 패권을 다투다
춘추 시대에 난립했던 수많은 제후국들은 점차 강력한 국가들에게 흡수되면서 전국 시대에는 단 7개의 대국만이 살아남아 천하의 패권을 다투게 된다. 이들을 '전국칠웅'이라 부르며, 흔히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년경~기원전 86년경)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육국연표(六國年表)의 8개 나라 중 천자국 주나라를 뺀 7개의 나라를 기준으로 한다.
![]() |
기원전 260년경 전국시대 |
- 진(秦) : 서쪽 변방에 위치하여 개혁을 통해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한다.
- 조(趙) : 삼진 중 하나로 북방 기마 민족의 전술을 받아들여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 위(魏) : 삼진 중 하나로 전국 시대 초반에는 가장 강력한 국가였으나, 이후 쇠퇴한다.
- 한(韓) : 삼진 중 하나로 가장 작은 나라이자 육국 중 가장 먼저 진나라에 멸망한다.
- 제(齊) : 동쪽에 위치한 강대국으로 뛰어난 상업 발전을 이루었다.
- 연(燕) : 북방에 위치한 국가로 조나라와 함께 진나라에 저항했다.
- 초(楚) : 남방의 대국으로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졌다.
3. 사회경제적 대변혁 : 생산력 증대와 신분 변화
전국 시대는 중국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 철기(鐵器)의 보급과 농업 발전 : 춘추 시대에 시작된 철기의 보급은 전국 시대에 이르러 눈부신 발전을 보여주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은 농업 생산력을 크게 증대시켰고, 이는 인구 증가와 국가의 재정 기반 확대로 이어졌다. 철기의 보급과 더불어 우경(牛耕)의 확산, 수리 시설의 확충도 농업 생산력 증진에 기여했다.
- 상공업의 발달과 대상인의 등장 : 농업 생산력의 증대는 상공업의 발달을 재촉했으며, 전국을 초월한 대상인의 활발한 교류는 커다란 변혁을 초래했다.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에 판로를 가진 대상인들은 사치품을 판매하여 큰돈을 벌었고, 서민의 필수품인 철기나 소금 등을 제조·판매하는 대상업 수공업자들의 재산은 때로는 왕후와 필적한다고 일컬어졌다. 이들은 통관세가 필요한 국경을 불합리하게 여겼으며, 이는 점차 국경이 없는 중원의 통일을 이면에서 추구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이는 각국이 서로 대립·항쟁하는 와중에도 문화, 경제 면에서는 이미 중원이 하나의 세계로 성립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 신분 질서의 재편 : 기존의 봉건적 신분 질서는 해체되고, 재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상현(尙賢)'의 풍조가 확산되었다.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 인물들도 능력을 인정받아 재상이나 장군이 되는 등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가 간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4. 사상적 번영 :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전국 시대의 혼란은 사상적인 대폭발을 가져왔다. 난세를 극복하고 부국강병을 이룰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저마다의 철학적 주장을 펼쳤는데, 이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부른다.
- 유가(儒家) :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의 인(仁)과 예(禮) 사상을 계승하여 맹자(孟子, 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는 성선설(性善說)과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순자(荀子, 기원전 3세기경)는 성악설(性惡說)과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주장했다. 유가는 후대 중국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되었다.
- 도가(道家) : 노자(老子, 기원전 6세기경~?)와 장자(莊子, 기원전 4세기경~?)에 의해 발전했으며,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며 인간의 인위적인 규범과 제도에서 벗어나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을 지향했다.
- 법가(法家) :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280년경~기원전 233년)와 이사(李斯, ?~기원전 208년)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강력한 법과 형벌, 그리고 중앙 집권적인 통치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으며, 진나라의 통일 정책에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 묵가(墨家) : 묵자(墨子, 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1년경)가 주장한 겸애(兼愛), 비공(非攻), 상현(尙賢) 등의 사상은 전쟁을 반대하고 실용적인 기술을 중시했다.
- 음양가(陰陽家), 병가(兵家), 종횡가(縱橫家) 등 다양한 학파들이 등장하며 각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사상적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사상적 번영은 혼란한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려는 지식인들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5. 진(秦)나라의 부상과 천하 통일
전국 시대의 최후의 승자는 서쪽 변방의 약소국이었던 진(秦)나라였다. 진나라는 효공(孝公, 기원전 381년~기원전 338년)과 재상 상앙(商鞅, 기원전 390년~기원전 338년)의 변법(變法)을 통해 농업 생산력과 군사력을 크게 증대시켰다. 강력한 법치와 중앙집권화를 통해 다른 제후국들을 압도하는 국력을 갖추게 되었다.
진시황(秦始皇, 기원전 259년~기원전 210년)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육국 통일의 대업을 완성한다. 그는 재상 이사(李斯, ?~기원전 208년)와 함께 "멀리 있는 나라와 교류하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한다(遠交近攻)"는 전략을 펼치며 각국을 차례로 격파했다.
- 기원전 230년, 한(韓)나라를 멸망시키며 통일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 기원전 228년,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조(趙)나라를 무너뜨렸다.
- 기원전 225년, 위(魏)나라를 정복했다.
- 기원전 223년, 가장 영토가 넓었던 초(楚)나라마저 항복시켰다.
- 기원전 222년, 자객 형가(荊軻, ?~기원전 227년)의 암살 시도가 실패한 연(燕)나라를 멸했다.
- 기원전 221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제(齊)나라의 항복을 받아내며 마침내 천하 통일을 이룩했다.
진시황은 통일 이후 '황제(皇帝)'라는 새로운 칭호를 사용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전국에 시행하여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또한 문자, 도량형, 화폐 등을 통일하고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축조하는 등 거대한 개혁을 단행하여 후대 중국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6. 전국 시대의 유산과 역사적 의의
전국 시대는 비록 오랜 전쟁과 혼란으로 얼룩진 시기였지만, 동시에 중국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성숙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시대에 구축된 철기 문화, 상공업 발전, 새로운 신분 질서, 그리고 제자백가 사상은 훗날 중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혼란과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새로운 질서와 이념을 탐색했던 전국 시대는 이후 수천 년간 지속될 중국 제국 시대를 여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억된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