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2월 8일】 조국의 말과 글을 지키다 – 한글학자 한뫼 이윤재 선생, 함흥형무소에서 옥사
1943년 12월 8일,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우리 민족사에 한 줄기 등불과도 같았던 한글학자 한뫼 이윤재(李允宰, 1888~1943) 선생이 54세의 나이로 함경남도 함흥부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그는 당시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을 통해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민족의 얼을 짓밟으려 할 때, 오직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선구적인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일제의 모진 고문과 탄압 속에서 숨을 거둔 이윤재 선생의 순국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우리 민족의 언어 독립과 주권 수호를 위한 치열한 저항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1943년 12월 8일은 조국 광복을 염원하며 끝까지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그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날이다.
선비의 정신으로, 우리말을 탐구하다
한뫼 이윤재 선생은 1888년 12월 24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경남 김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계성학교와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며 근대 교육을 이수했다. 학업을 마친 후 교사 생활을 하면서 그는 민족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특히 우리말 교육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며 한국어 교육을 탄압하고 있었기에, 우리말 연구와 교육은 독립운동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이윤재 선생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민족의 말과 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뜻을 두었다. 그는 단순한 어문 연구에 그치지 않고, 우리말이 곧 민족의 정신이자 독립의 초석이라는 신념으로 연구에 매진하였다. 국어학자이자 역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그는 흩어져 있던 우리말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조선어학회의 중추, 한글사전 편찬에 헌신하다
이윤재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글 연구와 보급의 최전선에 있었던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의 핵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대부터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조선말 큰 사전』 편찬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의 상징적인 사업이었다.
이윤재 선생은 이 방대한 사전 편찬 사업의 실무를 담당하며 원고 정리, 자료 수집, 표제어 선정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우리말 어휘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며, 사라져가는 우리말과 지역 방언들을 찾아 기록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조선말 큰 사전』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어의 기틀을 마련하고 우리말의 보고 역할을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조선어학회와 『조선말 큰 사전』 편찬은 단순한 언어학적 작업이 아니라,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맞서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지키기 위한 비폭력 독립 운동의 하나였다.
조선어학회 사건과 순국
그러나 일제는 우리말을 지키려는 민족의 노력을 가만두지 않았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독립운동을 꾀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대거 체포하여 모진 탄압을 가했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朝鮮語學會事件)'이었다.
이윤재 선생 역시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홍원 경찰서에 끌려가 온갖 잔혹한 고문을 당한 후 함흥형무소에 이감되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영양실조, 그리고 차가운 감옥의 악조건은 그의 건강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그는 끝까지 독립에 대한 의지와 우리말을 지키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1943년 12월 8일, 이윤재 선생은 모진 추위와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함흥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향년 54세였다. 그의 죽음은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많은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일제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사전 원고를 압수하고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계속 탄압했다.
이윤재 선생이 남긴 영원한 유산
한뫼 이윤재 선생의 숭고한 희생은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기, 민족의 정신적 기둥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한글 사전 편찬의 주역: 『조선말 큰 사전』 편찬에 헌신하여 오늘날 우리말의 기틀을 마련하고 우리말 어휘를 집대성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 민족의 얼을 지킨 순국선열: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끝까지 우리말을 지키려다 옥사하며 민족 주권 수호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순국은 단순한 언어학자의 죽음을 넘어 민족 혼을 지키려 한 독립운동이었다.
- 어두운 시대의 등불: 그의 희생은 우리말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당시 억압받던 민족에게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윤재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윤재 선생을 비롯한 조선어학회 선열들의 희생 덕분에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마음껏 쓰고 읽을 수 있다. 1943년 12월 8일, 그날의 비극은 우리말의 소중함과 민족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할 소중한 교훈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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