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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3일 일요일

【2011년 11월 23일】 문화재 환수의 어머니 – 박병선 박사,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다

20111123문화재 환수의 어머니 박병선 박사,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다

 

문화재 환수의 영웅, 박병선 박사, 영원한 안식에 들다

 
20111123, 대한민국은 한 위대한 학자이자 문화재 환수 운동의 선구자를 잃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며 외규장각 의궤(外奎章閣 儀軌)와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이하 직지)을 세상에 알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박병선(朴炳善, 1928~2011) 박사가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고 83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녀의 생애는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오직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고 되찾으려 했던 고독하고도 헌신적인 투쟁의 연속이었다.
 

프랑스로 건너간 청년 학자, 박병선

 
박병선 박사는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일찍이 우리 역사의 귀중한 유산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그녀는 1955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홀로 해외 유학을 떠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파리 소르본 대학과 파리 국립 동양어 학교에서 공부하며 동양학 분야에서 깊이를 더해갔고, 이후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BnF)에서 동양학 분야 사서로 채용되면서 그녀의 운명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하 서고에 묻혀 있던 수많은 동양 고서들 속에서 숨겨진 우리 문화재를 찾아내기 위한 기나긴 탐색을 시작한 것이다.
 

'직지'의 위대한 발견: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을 밝히다

 
박병선 박사의 첫 번째 위대한 발견은 바로 '직지'였다. 196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동양 장서 목록을 정리하던 중, 그녀는 서양 학자였던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이 작성한 한국 서지의 내용을 토대로 고문헌 분류 목록에서 직지심체요절이라는 한자 표기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 책이 서양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냈다.
 
그녀의 끈질긴 연구와 고증 덕분에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 국제 도서 전시회에 '직지'가 전시되었고, 전 세계 학계에 '직지'의 존재와 가치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한국 인쇄술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외규장각 의궤의 발견과 20년간의 고독한 투쟁

 
'직지'에 이어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에 강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 나섰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 해군이 약탈해 간 조선 왕실 의궤는 그 존재조차 잊히고 있었다. 박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면서 직감적으로 의궤가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1975, 그녀는 베르사유 별관 지하 서고에서 180년간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된 비공개 자료실에서 '조선 왕조 의궤'라는 한글 제목이 붙어 있는 책들을 마침내 발견하였다. 그것이 바로 외규장각 의궤였다.
 
그러나 발견은 시작에 불과했다. 프랑스 당국은 문화재 반환에 부정적이었고, 심지어 그녀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사유로 계약을 해지하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박 박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20여 년간 자비로 의궤를 연구하고 목록을 정리하며 그 가치를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녀는 의궤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해 한국에 알리고, 학회 발표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의궤 반환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그녀의 끈질긴 노력은 결국 프랑스 정부를 움직였고, 한국 정부와 시민 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결합되어 외규장각 의궤는 2011년 고국으로 돌아오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숨겨진 문화재 발굴의 한평생

 
박병선 박사는 '직지''외규장각 의궤' 외에도 수많은 우리 문화재를 찾아내고 그 가치를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그녀는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탐험가처럼, 프랑스 전역을 돌며 박물관, 도서관, 고서점 등을 샅샅이 뒤졌다. 때로는 차가운 시선과 외로운 싸움을 견뎌야 했지만, 우리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학자적 사명감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파리의 기메 미술관과 생트로페 바카레즈 박물관에서 조선시대의 중요 유물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등, 한국 문화유산의 수호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영원히 기억될 문화재 지킴이의 헌신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으로 돌아온 지 불과 몇 달 만에 박병선 박사는 오랜 투병 끝에 영면에 들었다. 그녀는 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녀의 사망은 우리 문화재계에 큰 슬픔을 안겼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은 매우 크다. 한 개인의 끈질긴 집념과 학자적 양심이 어떻게 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박병선 박사의 헌신은 한국 사회에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문화재 환수 운동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평생을 타국에서 보내면서도 단 한 순간도 고국을 잊지 않았으며,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진정한 애국자였다.
 

오늘의 역사가 기억하는 박병선 박사의 정신

 
20111123일은 박병선 박사가 우리의 곁을 떠난 날이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에게 문화유산이 단순히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가 담긴 살아있는 기록임을 일깨워주었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되찾고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숭고한 가치를 지니는지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박병선 박사의 삶을 기억하며, 우리 주변에 산재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미래 세대에 올바르게 전달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그녀의 헌신은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영원한 영감과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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