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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1989년 11월 27일】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 별세, 우리말 연구에 한평생을 바치다

19891127국어학자 이희승 선생 별세, 우리말 연구에 한평생을 바치다

 
19891127, 평생을 우리말 연구와 보전에 바쳐 온 국어학자 이희승(李熙昇, 1897~1989) 선생이 향년 93세로 별세하였다. 그의 서거는 일제강점기의 암흑기부터 해방과 한국전쟁의 혼란기를 거쳐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낸 우리 민족에게, 그리고 우리말 연구자들에게 커다란 아쉬움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일석(一石)이라는 아호로 더 잘 알려진 이희승 선생은 한국어의 표준을 세우고 그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거목이다. 그의 삶은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기 위한 헌신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이 글에서 이희승 선생의 삶과 학문적 업적, 그리고 그가 우리말과 민족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한다.
 

우리말을 사랑한 학자, 이희승은 누구인가?

 
이희승은 1897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일본 교토제국대학 문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언어 연구에 대한 기반을 다졌다. 당시 식민지 현실 속에서 한국인 학생이 일본의 고등 교육기관에서 학문을 연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학문적 소양을 충실히 쌓아나갔다.
 
졸업 후 귀국한 이희승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특히 그는 단순히 학문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민족의 언어인 우리말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어 사용이 강요되고 우리말 교육이 금지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조국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언어의 독립이 곧 민족의 독립이라는 신념을 굳건히 지켜나갔다. 이희승은 이 시대에 이미 우리말 연구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확고한 정신이 되었다.
 
그는 당시 조선어학회의 주요 인물들과 함께 활동하며 우리말 사전 편찬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단순히 학자로서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민족 문화를 계승하려는 애국적 실천의 일환이었다. 그는 개인의 안위보다는 민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아낌없이 바친 참다운 지식인이었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우리말 연구의 길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말은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어를 말살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대체하려는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암흑기 속에서 이희승 선생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의 핵심 멤버로서 우리말을 지키는 최전선에 섰다. 그는 최현배, 이극로, 이윤재 등 당대의 저명한 국어학자들과 함께 '조선어 표준어 사정', '외래어 표기법 제정', 그리고 '조선어 큰사전 편찬' 등 기념비적인 작업들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역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특히 조선어 큰사전 편찬은 이희승 선생의 학문적 열정과 인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제의 탄압과 자금난 속에서도 사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말의 어휘를 채집하고 정리하며, 어원과 용례를 탐구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쳤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훗날 국어대사전이라는 결실로 맺어지게 된다.
 
그러나 조선어학회 사건(1942)으로 이희승 선생은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언어에 대한 연구와 우리말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초대 학장 및 명예교수를 역임하며 대한민국 국어학계를 이끄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어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젊은 학자들이 우리말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헌신하였다. 그의 격동의 삶은 우리말 연구가 단순한 학문 활동을 넘어, 민족의 생존과 독립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국어대사전편찬과 학문적 업적

 
이희승 선생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가장 빛나는 것은 단연 국어대사전의 편찬이다. 이 사전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조선어 큰사전 편찬 작업의 결실로, 해방 후 한글학회에 의해 1957년에 완성되었다. 국어대사전은 단순히 많은 단어를 모아놓은 것을 넘어, 우리말 어휘의 정확한 의미와 용례, 어원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한국어의 표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 사전을 통해 우리말은 비로소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사전 편찬 외에도 한국어 문법 연구, 고전문학 연구, 외래어 표기법 정립 등 국어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저서 국어학개론은 현대 한국어학 연구의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으며, 수많은 후학들이 우리말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어려운 학문적 내용을 명료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으며, 이는 그가 대중에게 우리말의 소중함을 알리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이희승 선생은 한국어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고, 실천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말을 체계화하고 현대화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오늘날 한국어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시대를 넘어선 유산, 이희승 정신

 
19891127, 이희승 선생이 별세했을 때, 그의 삶과 업적은 전 국민에게 깊은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단순한 국어학자를 넘어, 암울했던 시기에 민족의 얼을 지키고 우리말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정신적 지주였다. 그의 일생은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한 지식인이 얼마나 굳건한 신념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증인이었다.
 
이희승 선생의 유산은 국어대사전과 같은 위대한 저작들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말을 사랑하고 아끼는 정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민족의 정체성을 언어 속에서 찾으려 했던 고귀한 신념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의 이러한 '이희승 정신'은 오늘날에도 우리말의 중요성을 깨닫고 바르게 사용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K-컬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가운데, 우리말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이처럼 우리말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희승 선생과 같은 선각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어 온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서거 36주기를 맞아, 우리는 이희승 선생이 보여준 우리말 사랑의 정신을 되새기고, 그가 남긴 학문적 업적과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말의 미래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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