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년 8월 9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물리치다
기원전 48년 8월 9일, 로마 내전의 향방을 가른 결정적 전투인 파르살루스 전투가 벌어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병력을 보유한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 원로원 파 연합군을 맞이해 싸웠다. 카이사르는 적의 기병대를 유인해 섬멸하는 탁월한 우회 전술을 발휘하여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이 패배로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도피했으나 암살당했고, 원로원 파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전투는 로마 공화정의 실질적인 종식을 알리고 카이사르 1인 독재 체제, 나아가 로마 제국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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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년 8월 9일,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와 로마 황제 발렌스의 전사
378년 8월 9일, 동로마 제국 황제 발렌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고트족 반란군과 격돌했다. 로마군은 적의 규모를 얕보고 성급히 공격에 나섰으나, 고트족 기병대의 강력한 포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 전투에서 발렌스 황제를 포함해 로마 정예병의 3분의 2가 전사하는 끔찍한 참패를 당했다. 무적을 자랑하던 로마 중장보병이 기병 중심의 게르만족에게 무참히 짓밟힌 이 사건은 로마군의 군사적 우위가 끝났음을 상징했다. 이는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예고하는 불길한 전조이자 멸망을 앞당긴 뼈아픈 역사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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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8월 9일, 포츠머스 강화조약 회담의 개시와 동아시아 판도를 바꾼 외교전
1905년 8월 9일, 러일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포츠머스 강화회의가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개막했다.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로 러시아 제국의 세르게이 비테와 일본 제국의 고무라 주타로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약 한 달간의 치열한 외교전 끝에 맺어진 이 조약으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조선의 운명이 열강들의 흥정 대상으로 전락한 비극적인 순간이었으며,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으로 발돋움하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쥐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회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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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9일,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6년 8월 9일, 식민지 조선의 청년 손기정이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한민족의 강인함을 전 세계에 알린 쾌거였으나, 나라 잃은 청년은 가슴에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달고 달려야만 했다. 시상대 최정상에 오른 그는 월계수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린 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함께 출전해 동메달을 딴 남승룡 역시 고개를 떨구었다. 이들의 우승은 조선 민중에게 큰 희망을 주었고, 훗날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이어지며 민족의식을 크게 고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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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8월 9일, 민족의 한을 스크린에 새긴 독립운동가이자 천재 영화인 나운규 서거
1937년 8월 9일, 한국 영화사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춘사 나운규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26년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과 주연까지 맡은 영화 '아리랑'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 민중의 억눌린 한과 비애를 스크린에 생생하게 투영했다. 이 영화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으며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되었다. 3·1 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짧은 생애 동안 20여 편의 영화를 남기며 예술을 통해 항일 정신을 불태운 불세출의 천재 영화인으로 역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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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8월 9일,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스페인 국가주석 취임과 독재 체제의 서막
1939년 8월 9일, 3년간의 참혹한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 진영을 이끌고 승리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국가주석(총통)에 취임했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인민전선 정부를 무너뜨린 그는, 이 취임을 기점으로 스페인 제2공화국을 해체하고 철저한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언론 검열, 반대파 숙청, 카탈루냐와 바스크 등의 소수 민족 언어 사용 금지 등 가혹한 억압 정책을 펼쳤다. 1975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36년간 이어진 그의 철권통치는 스페인 현대사에 깊고 어두운 상흔을 남긴 암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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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8월 9일, 아우슈비츠에서 스러진 진리의 순례자 에디트 슈타인
1942년 8월 9일, 유대인 출신의 철학자이자 가톨릭 수녀인 에디트 슈타인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에드문트 후설의 수제자로서 촉망받는 현상학자였던 그녀는 진리를 향한 깊은 탐구 끝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했다. 그러나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하지 못하고 네덜란드의 수도원에서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끔찍한 학살 속에서도 신앙과 인간애를 잃지 않았던 그녀는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되며 십자가의 테레사 베네딕타 성녀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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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8월 9일, 내면의 탐구자 헤르만 헤세 타계
1962년 8월 9일,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문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가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독일 출신인 그는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엄격한 신학교 교육과 전쟁의 광기 속에서 방황했던 그는 동양 사상에 심취하며 인간 내면의 근원적 갈등과 자아실현의 과정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개인의 고뇌와 성장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깊은 위로와 통찰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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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 9일, ‘The Voice’ 휘트니 휴스턴 출생
1963년 8월 9일,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휘트니 휴스턴이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났다. 가스펠 가수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폭발적인 가창력을 타고난 그녀는 1985년 데뷔 앨범부터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곡인 'I Will Always Love You'를 비롯해 수많은 메가 히트곡을 남기며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다. 'The Voice'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무후무한 보컬 능력으로 대중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그녀는, 2012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으나 여전히 전설적인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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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8월 9일, YH 사건의 발단과 유신 정권의 몰락을 부른 도화선
1979년 8월 9일, 폐업 위기에 처한 가발업체 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 정상화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은 8월 11일 새벽, 무장 경찰을 투입해 폭력적인 강제 진압을 자행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이 추락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무자비한 진압은 야당과 국민의 거센 분노를 촉발했다. 이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과 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10·26 사태를 불러오며 유신 체제가 붕괴하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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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9일, 황영조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
1992년 8월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 선수가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극적으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몬주익의 영웅'이라 불리게 된 그는 험난한 몬주익 언덕을 오르며 치열한 선두 경쟁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우승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딴 지 무려 56년 만에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이뤄낸 쾌거였다. 관중석에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던 손기정 옹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온 국민은 일제강점기의 한을 씻어내는 감격스러운 승리에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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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9일, 일본 ‘국기ㆍ국가법’ 참의원 본회의 가결
1999년 8월 9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일장기(히노마루)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공식 규정하는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이 가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법적 근거 없이 관습적으로 사용되던 일장기와 기미가요가 54년 만에 공식적인 법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상징물들이 과거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큰 논란을 빚었다. 이 법안의 통과는 일본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며, 한국 등 주변국들의 강한 반발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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