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포에니 전쟁(Second Punic War) 말기 로마의 장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기원전 236-기원전 183)가 카르타고 본토인 북아프리카를 전격 침공하자, 이탈리아 반도에서 15년간 로마군을 괴롭히던 명장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 기원전 247-기원전 183/181)가 본국 방어를 위해 긴급 소환되었다.
기원전 202년 10월 19일 튀니지 서부 자마(Zama) 평원에서 격돌한 양군 가운데, 스키피오는 전투 코끼리의 돌진 통로를 열어 무력화한 뒤 마시니사(Masinissa, 기원전 238경-기원전 148)의 누미디아 기병대로 한니발 군의 배후를 강타하여 카르타고군을 완벽히 궤멸시켰다.
이 결정적 패배로 카르타고는 거액의 배상금과 군함 양도를 골자로 한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맺고 서지중해의 제해권을 영구히 상실하였으며, 로마 공화정이 지중해 세계 전체를 호령하는 패권 제국으로 비약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5세기(104-500년) 주요 사건
[439년 10월 19일] 가이세리크의 카르타고 기습 함락과 반달 왕국 건국
서로마 제국(Western Roman Empire) 말기 민족 대이동의 혼란 속에서 이베리아반도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건너간 게르만계 반달족은, 곡창 지대이자 해상 교통로의 중심지였던 아프리카 속주를 장악하고 제국의 수도 로마를 압박할 전략적 거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439년 10월 19일 반달족의 국왕 가이세리크(Gaiseric, 389경-477)는 서로마 제국과의 평화 조약을 파기하고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던 아프리카 최대 요충지 카르타고(Carthage)를 전격 기습하여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단숨에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제국 최대의 곡창 지대와 해군 기지를 상실한 서로마는 치명적인 재정적·군사적 타격을 입었으며, 가이세리크가 수립한 반달 왕국(Vandal Kingdom)이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한 뒤 455년 로마 약탈을 자행하는 등 서로마의 최종 몰락을 급속히 앞당겼다.
7세기(601-700년) 주요 사건
[615년 10월 19일] 교황 아데오다토 1세의 제68대 교황 즉위
제67대 교황 보니파시오 4세가 서거한 뒤 로마 교구는 비잔티움 제국 엑사르코스(총독부)의 간섭과 랑고바르드족의 침탈 위협 속에서, 전임 교황들의 친수도회 정책으로 소외되었던 전통 교구 사제단을 결집하고 교회의 질서를 쇄신할 정통 사제를 갈망했다.
615년 10월 19일 로마 출신으로 40여 년간 묵묵히 사목 활동을 펼쳐 온 보편 교회의 원로 사제 아데오다토 1세(Adeodatus I, 생몰년 미상)가 군중과 성직자들의 추대를 받아 제68대 로마 주교이자 교황으로 엄숙히 성품되어 즉위식을 거행했다.
그는 수도회 중심의 인사 관행을 혁파하여 교구 사제들의 지위를 복원하고 성직자 급여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교황 문서의 진위를 증명하는 납 인장인 '불라(Bulla)'를 공식 도입하여 현대 바티칸 교황청의 공식 문서 행정 기틀을 마련했다.
14세기(1301-1400년) 주요 사건
[1386년 10월 19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사상 첫 공식 강의 개시
팔츠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Ruprecht I, 1309-1390)가 서방교회 대분열로 프랑스 파리에서 추방된 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전날 공식 설립식을 마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신성 로마 제국 영내에 신학·철학·법학 연구의 독자적 중심지를 세우고자 즉각적인 학사 운영에 돌입했다.
1386년 10월 19일 네덜란드 출신의 저명한 명목론 철학자이자 초대 총장으로 임명된 마르실리우스 폰 잉엔(Marsilius von Inghen, 1340경-1396) 교수가 교수진과 학생들이 운집한 가운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Universität Heidelberg) 역사상 최초의 공식 학술 강의를 시작했다.
이 첫 강의를 기점으로 독일 연방공화국 영토 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정규 교과과정이 본격 가동되었으며, 중세 스콜라 철학의 요람을 넘어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근대 종교개혁 및 자연과학의 세계적 중심지로 융성하는 위대한 학문적 첫걸음이 되었다.
15세기(1401-1500년) 주요 사건
[1453년 10월 19일] 백년전쟁의 종결과 잉글랜드의 남프랑스 보르도 최종 상실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 말기 프랑스군이 가스코뉴 지방을 압박하던 중, 1453년 7월 카스티용 전투에서 영국의 명장 존 탤벗이 전사하고 영국 야전군이 궤멸되자 프랑스 남서부의 최후 거점이자 300년 플랜태저넷 왕조의 영지였던 보르도는 육상과 해상에서 완전히 고립되었다.
1453년 10월 19일 석 달간 프랑스 공성군의 맹렬한 대포 집중 공격과 해상 봉쇄에 저항하던 보르도(Bordeaux) 시 지도부는 마침내 샤를 7세(Charles VII, 1403-1461)에게 백기를 들고 성문을 활짝 열어 공식 항복 문서를 인도했다.
1152년 엘레오노르 다키텐의 결혼 이래 잉글랜드 왕실이 지배했던 아키텐 영토가 완전히 프랑스로 귀속되었으며, 칼레(Calais)를 제외한 전 대륙 영토를 잃은 잉글랜드가 왕위 쟁탈 내전인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으로 치닫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466년 10월 19일] 제2차 토룬 조약 체결과 13년 전쟁의 공식 종결
발트해 연안의 프로이센 연맹 도시들이 튜턴 기사단국의 가혹한 조세 수탈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반발하여 폴란드 왕국에 구원을 요청하자, 카지미에시 4세 국왕이 이를 수락하고 기사단과 발트해 패권을 둘러싼 13년간의 참혹한 소모전을 벌였다.
1466년 10월 19일 쿨름 주교 저택에서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4세 야기에우워(Kazimierz IV Jagiellończyk, 1427-1492)와 튜턴 기사단 총단장 루트비히 폰 에를리히스하우젠(Ludwig von Erlichshausen, 1410경-1467)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토룬 조약(Second Peace of Thorn)'이 공식 체결되었다.
기사단은 단치히와 마리엔부르크를 포함한 서프로이센 영토를 폴란드에 할양해 '왕령 프로이센'으로 편입시켰고 기사단장 본인도 폴란드 국왕의 신하로 복속함으로써, 발트해 남안의 패권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확고히 재편되는 역사적 분수령을 이루었다.
[1469년 10월 19일]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정략결혼과 스페인 통합의 초석
15세기 후반 이베리아반도는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으로 양분되어 극심한 왕위 계승 분쟁과 귀족들의 권력 투쟁이 이어졌으며, 카스티야의 이사벨 공주는 이복오빠 엔리케 4세의 정략결혼 강요를 피해 아라곤과의 동맹을 비밀리에 타진했다.
1469년 10월 19일 바야돌리드의 후안 드 비베로 궁전에서 아라곤의 왕세자 페르난도 2세(Fernando II de Aragón, 1452-1516)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권자 이사벨 1세(Isabel I de Castilla, 1451-1504)는 양측 귀족들이 입회한 가운데 극비리에 혼인 서약식을 거행했다.
이 결합은 훗날 양국이 하나의 연합 왕국인 통일 스페인(Spain)으로 발전하는 결정적 토대가 되었으며, 부부 공동 통치인 '가톨릭 군주(Reyes Católicos)' 시대를 열어 1492년 레콩키스타(Reconquista)의 완성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를 후원하는 제국적 도약대를 놓았다.
16세기(1501-1600년) 주요 사건
[1512년 10월 19일] 마르틴 루터의 비텐베르크 대학교 신학박사 학위 취득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하던 마르틴 루터는 구원과 죄의식에 관한 깊은 영적 고뇌에 시달리던 중, 멘토였던 요한 폰 슈타우피츠 총원장의 권유를 받아 신학 연구에 전념하며 작센 비텐베르크 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1512년 10월 19일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열린 장엄한 학위 수여식에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성경 신학의 정통성과 교리를 심층 변증한 끝에 최고 학위인 신학박사(Doctor of Theology) 학위를 정식으로 취득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정규 성서학 교수로 부임하여 성경을 권위 있게 강해할 자격을 얻었으며, 이는 5년 뒤인 1517년 부패한 교황청의 면벌부 판매를 정면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95 Theses)을 게시하고 종교개혁(Reformation)의 불씨를 지피는 결정적 학문적 기틀이 되었다.
[1579년 10월 19일]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의 성년 통치 선포와 에든버러 축제
생후 13개월 만에 폐위된 모친 메리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제임스 6세는 어린 시절 섭정들의 잦은 암살과 권력 투쟁 속에서 불안정한 치세를 겪었으나, 제4대 모턴 백작 제임스 더글러스 섭정의 실각을 계기로 친정 체제 수립을 서둘렀다.
1579년 10월 19일 당시 13세였던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James VI, 1566-1625)는 군중의 열렬한 환호 속에 에든버러(Edinburgh) 도심으로 장엄하게 입성하여 성대한 축제 행진을 벌이고 스스로 성년 군주로서 친정을 펼칠 것임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귀족들의 섭정 정치에서 벗어나 군주 중심의 권력 안정을 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성공적으로 스코틀랜드를 통치한 뒤 1603년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제임스 1세로 즉위함으로써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아우르는 동군연합(Union of the Crowns)을 출범시켰다.
[1596년 10월 19일] 스페인 무역선 산펠리페호의 도사 좌초와 화물 압류 사건
필리핀 마닐라를 출항해 멕시코 아카풀코로 향하던 스페인의 대형 갈레온 무역선 산펠리페호가 태평양에서 태풍을 만나 돛대가 부러지고 조난당한 끝에, 일본 열도의 시코쿠 도사국 우라도만에 표류하여 암초에 좌초되었다.
1596년 10월 19일(분로쿠 5년 음력 9월 28일) 좌초 현장에 급파된 도사국의 다이묘 조소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 1539-1599)는 스페인 선원들을 구조한 뒤, 풍신정권의 해안 표류물 법령에 의거해 선박에 실려 있던 막대한 은과 비단 등 전 화물을 몰수 처분했다.
몰수에 항의하던 스페인 항해사가 선교사를 통한 스페인의 영토 침략 야욕을 실언하자 격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금교령을 전면 강화하였으며, 이듬해 1597년 나가사키에서 26인의 가톨릭 신자를 십자가형에 처하는 대규모 기독교 박해(일본 26위 순교자)로 직행하는 비극적 도화선이 되었다.
17세기(1601-1700년) 주요 사건
[1649년 10월 19일] 아일랜드 뉴로스 공성전과 올리버 크롬웰 앞의 공식 항복
잉글랜드 내전에서 승리한 올리버 크롬웰이 왕당파와 결탁한 아일랜드 가톨릭 연맹을 토벌하기 위해 아일랜드 원정에 나서 드로이다와 웩스퍼드에서 무자비한 유혈 학살을 자행하자, 배로강 연안의 전략 요충지 뉴로스의 수비대는 극심한 공포와 결사항전의 기로에 섰다.
1649년 10월 19일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 이끄는 신형군(New Model Army)이 성벽 외곽에 포대를 구축하고 맹렬한 야포 사격을 퍼붓자, 수비대 사령관 루커스 타프(Lucas Taaffe, 생몰년 미상) 경은 병력의 안전한 철수와 시민들의 재산 보호를 조건으로 내걸고 공식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킬케니와 워터퍼드로 향하는 남부 내륙 진격로가 열리며 잉글랜드 의회군이 아일랜드 남부 평정의 결정적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이후 1652년 정착법 제정을 통한 대대적인 가톨릭 토지 몰수와 식민지화로 이어지는 아일랜드 현대사의 비극적 상흔을 남겼다.
[1662년 10월 19일] 영국 해군 준장 크리스토퍼 밍스의 산티아고데쿠바 기습 약탈
1655년 잉글랜드가 자메이카를 강제 점령한 이후 카리브해의 제해권을 둘러싸고 스페인 제국과의 긴장이 극에 달하자, 자메이카 총독 토머스 힉맨윈저(Thomas Hickman-Windsor, 1628-1687) 남작은 스페인의 보복 침공을 사전에 분쇄하고 경제적 전리품을 확보하기 위해 사략 해적 세력의 무력 원정을 승인했다.
1662년 10월 19일 영국 왕립 해군 준장 크리스토퍼 밍스(Christopher Myngs, 1625-1666)가 지휘하는 14척의 함대와 1,300여 명의 잉글랜드 버커니어(Buccaneer) 원정대는 산티아고데쿠바(Santiago de Cuba) 해안에 전격 상륙한 뒤, 도시를 점령하고 모로 요새를 폭파하며 대대적인 약탈을 감행했다.
스페인의 핵심 카리브해 보급 거점과 요새 방어망을 무력화하여 잉글랜드 사략선단의 군사적 우위를 각인시켰으며, 헨리 모건 등 후대 사략 해적들이 카리브해 전역의 스페인 항구 도시들을 초토화하는 버커니어 전성시대의 도화선이 되었다.
18세기(1701-1800년) 주요 사건
[1781년 10월 19일] 미국 독립 전쟁 요크타운 포위전의 종결과 영국군 공식 항복
미국 독립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 남부 전선에서 버지니아주 요크타운 반도에 집결했던 영국 육군 주력군은,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미 대륙군과 로샹보 백작의 프랑스 육군에 의해 육상이 포위되고 드 그라스 제독의 프랑스 함대에 해상 퇴로마저 철저히 봉쇄당했다.
1781년 10월 19일 오후 요크타운 외곽 평원에서 질병을 핑계로 불참한 영국군 총사령관 찰스 콘월리스(Charles Cornwallis, 1738-1805) 백작 대신 부사령관 찰스 오하라(Charles O'Hara, 1740-1802) 준장이 군악대의 연주 속에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장군의 대리인 벤저민 링컨(Benjamin Lincoln, 1733-1810) 소장에게 공식적으로 항복의 검을 인도했다.
7,000명이 넘는 영국 정예 군단 전체가 무장 해제되면서 북미 대륙 내 영국의 주력 야전군이 사실상 궤멸당하였으며, 영국 의회의 강력한 염전 여론과 프레더릭 노스 내각의 총사퇴를 촉발하여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한 미합중국의 완전한 주권 독립 승인을 확정 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789년 10월 19일] 존 제이의 초대 미국 연방대법원장 공식 취임 선서
1789년 미합중국 헌법이 공식 발효된 직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삼권분립의 핵심 축인 연방 사법부를 구축하기 위해 연방사법구역과 사법권을 정립한 '1789년 사법부법(Judiciary Act of 1789)'을 공포하고, 이를 이끌 탁월한 법률가 물색에 나섰다.
1789년 10월 19일 연방주의자 논총(Federalist Papers)의 공동 저자이자 뉴욕의 유력 법률가인 존 제이(John Jay, 1745-1829)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대통령과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시 수도 뉴욕에서 초대 연방대법원장(Chief Justice of the United States) 취임 선서를 공식 거행했다.
미합중국 역사상 최초로 최고 법원의 수장이 취임함으로써 연방 사법 체계의 실질적 사법권 행사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으며, 훗날 1794년 대영 외교 협상인 '제이 조약' 체결과 연방 차원의 사법적 정통성을 다지는 현대 미국 헌정사의 확고한 주춧돌이 되었다.
[1791년 10월 19일] 스웨덴과 러시아 간 드로트닝홀름 조약 체결
1788년부터 2년간 발트해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제3차 러시아-스웨덴 전쟁이 베렐레 조약으로 현상 유지 종결된 이후, 프랑스 대혁명의 확산으로 루이 16세 왕정이 위기에 처하자 북유럽 군주들은 공통된 군주정 수호의 위기감을 공유하게 되었다.
1791년 10월 19일 스톡홀름 근교 드로트닝홀름 궁전에서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Gustav III, 1746-1792)와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II, 1729-1796) 여제 정부는 상호 방위와 프랑스 혁명 세력 진압을 목표로 하는 8년 기한의 '드로트닝홀름 조약(Treaty of Drottningholm)'에 정식 서명했다.
오랜 숙적 관계였던 북유럽의 두 강국이 대프랑스 군사 동맹을 맺고 스웨덴이 러시아의 막대한 재정 보조금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이듬해 구스타프 3세가 반대파 귀족에게 암살당하면서 스웨덴 주도의 대규모 반혁명 십자군 파병 구상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19세기(1801-1900년) 주요 사건
1801-1810년 주요 사건
[1805년 10월 19일]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울름 전투와 오스트리아 카를 마크 장군의 항복
제3차 대프랑스 동맹(War of the Third Coalition)이 결성되자 오스트리아 제국은 미하일 쿠투조프의 러시아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성급히 바이에른으로 진격했으나, 나폴레옹 1세가 이끄는 프랑스 대육군(Grande Armée)의 기습적인 종심 기동전에 완전히 허를 찔렸다.
1805년 10월 19일 도나우강 유역 울름(Ulm) 요새에서 퇴로가 완전히 차단된 채 포위된 오스트리아 육군 중장 카를 마크 폰 라이베리히(Karl Mack von Leiberich, 1752-1828) 남작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 황제에게 항복 문서를 공식 전달하고 이튿날 2만 7천여 명의 병력과 함께 무기를 인도했다.
프랑스군은 사실상 단 한 번의 대규모 야전 없이 오스트리아 주력군을 궤멸시키는 경이로운 기동 포위 섬멸전을 완성하였으며,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을 무혈 점령하고 그해 12월 아우스터리츠 전투(Battle of Austerlitz)의 찬란한 대승으로 직행하는 결정적 군사적 발판을 마련했다.
1811-1820년 주요 사건
[1812년 10월 19일] 나폴레옹 1세의 모스크바 퇴각 개시와 러시아 원정의 파멸
1812년 6월 러시아의 대륙봉쇄령 탈퇴를 응징하기 위해 60만 대육군을 이끌고 침공한 나폴레옹은 보로디노 전투를 거쳐 모스크바에 입성했으나, 러시아군의 청야 전술과 모스크바 대화재로 폐허 속에서 차르 알렉산드르 1세(Alexander I, 1777-1825)의 평화 협상 거부에 직면해 보급 한계에 부딪혔다.
1812년 10월 19일 다가오는 러시아의 혹한과 식량 고갈을 견디지 못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는 10만여 명의 잔존 병력과 거대한 치중대 행렬을 이끌고 모스크바(Moscow)를 전격 포기하며 남서부 칼루가 방면으로의 공식 퇴각을 개시했다.
퇴각 과정에서 미하일 쿠투조프(Mikhail Kutuzov, 1745-1813) 원수가 지휘하는 러시아군과 코사크 기병대의 맹렬한 유격전, 영하 30도에 달하는 혹한으로 프랑스 대육군이 궤멸당하였으며, 유럽 전역에서 제6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어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파멸적 분수령이 되었다.
[1813년 10월 19일] 라이프치히 제민족 전투의 종결과 나폴레옹의 독일 전면 퇴각
러시아 원정 참패 이후 재건된 나폴레옹의 군대에 맞서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스웨덴이 결성한 제6차 대프랑스 동맹(War of the Sixth Coalition) 연합군은 작센 왕국의 라이프치히 일대에서 50만 대군을 집결시키며 유럽의 운명을 건 사상 최대의 결전을 벌였다.
1813년 10월 19일 나흘간의 격전 끝에 작센군 등 동맹국의 이탈과 수적 열세로 방어선이 무너지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는 엘스터강을 건너 서쪽으로 총퇴각을 명했으나, 프랑스군 공병의 조기 교량 폭파 실책으로 유제프 포냐토프스키(Józef Poniatowski, 1763-1813) 원수를 비롯한 수만 명의 후위 부대가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제민족 전투(Battle of the Nations)로 불린 이 결전에서 대패한 프랑스는 라인 동맹이 해체되고 독일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연합군이 라인강을 넘어 프랑스 본토로 진격하여 1814년 나폴레옹의 첫 퇴위와 엘바섬 유배를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41-1850년 주요 사건
[1847년 10월 19일]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 런던 초판 공식 출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는 엄격한 가부장제와 계급적 위계질서 속에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제한하였으며, 요크셔 하워스 사제관에서 글을 쓰던 샬럿 브론테는 여성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작품의 순수한 문학성으로 평가받기 위해 남성 필명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1847년 10월 19일 런던의 스미스 엘더 앤드 컴퍼니(Smith, Elder & Co.) 출판사는 '커러 벨(Currer Bell)'이라는 필명으로 제출된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 1816-1855)의 자전적 장편 소설 《제인 에어: 한 편의 자서전(Jane Eyre: An Autobiography)》 3권본을 세상에 공식 출간했다.
고아 출신의 가난한 가정교사가 도덕적 자율성과 주체적인 사랑을 쟁취해 나가는 강렬한 여성 서사를 선보여 문단에 거대한 충격과 찬사를 불러일으켰으며, 영문학사에서 근대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적 고전이자 빅토리아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1861-1870년 주요 사건
[1864년 10월 19일] 미국 남북전쟁 중 세인트올번스 기습 사건 발생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말기 연방군(북군)의 셰넌도어 계곡 장악과 셔먼 장군의 진격으로 남부연합의 패색이 짙어지자, 영국령 캐나다 몬트리올에 주둔하던 남부연합 비밀공작국은 북부 배후 지역을 교란하여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게릴라 기습을 기획했다.
1864년 10월 19일 남부연합 육군 중위 베넷 H. 영(Bennett H. Young, 1843-1919)이 지휘하는 21명의 남군 기습대원들은 사복 차림으로 국경을 넘어 버몬트주 세인트올번스(Saint Albans)에 침투한 뒤, 3개 은행을 동시 강탈하여 20만 달러를 탈취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발포해 사상자를 낸 후 캐나다로 도주했다.
남북전쟁 당시 발생한 가장 북쪽의 군사 작전으로 기록되어 북부 국경 지대에 극심한 안보 공포를 몰고 왔으며, 체포된 공작원들의 미국 인도를 캐나다 법원이 거부하면서 미국과 대영제국 간의 심각한 외교 분쟁을 유발함과 동시에 1867년 캐나다 연방 결성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64년 10월 19일] 시더크릭 전투와 셰넌도어 계곡의 연방군 최종 승리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말기 남부연합은 수도 리치먼드의 보급 창고 역할을 하던 버지니아주 셰넌도어 계곡을 탈환하고 워싱턴 D.C.를 위협하여 북부의 전쟁 지속 의지를 꺾으려 했다.
1864년 10월 19일 새벽 주벌 얼리(Jubal Early, 1816-1894) 중장이 이끄는 남군이 기습을 감행해 연방군 전열을 무너뜨렸으나, 뒤늦게 전장에 도착한 필립 셰리던(Philip Sheridan, 1831-1888) 소장이 패주하던 군대를 재집결시켜 파괴적인 역습으로 남군을 격퇴했다.
이 전투의 압승으로 남부연합은 셰넌도어 계곡을 영구히 상실하고 수도 워싱턴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완전히 소멸하였으며, 불과 몇 주 뒤 치러진 18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의 압도적 재선 승리를 견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66년 10월 19일] 오스트리아의 베네토 및 만토바 이양과 이탈리아 통일의 진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고 제3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을 치른 이탈리아 왕국은, 육전과 해전의 전술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의 결정적 승리 덕분에 빈 조약(Treaty of Vienna)을 통해 실지 회복의 기회를 얻었다.
1866년 10월 19일 베네치아의 호텔 에우로파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전권대사 카를 뫼링(Karl Möring, 1810-1870) 준장은 사보이와 니스의 프랑스 병합을 묵인받는 조건에 따라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 1808-1873)가 파견한 프랑스 사절 앙주 앙리 르브롱(Ange Henri Lebœuf, 1809-1888) 장군에게 베네토(Veneto)와 만토바(Mantua)의 주권을 공식 인도하였고, 프랑스는 이를 즉각 이탈리아 왕국 대표단에 인계했다.
이로써 수백 년간 이어진 합스부르크 가문의 북이탈리아 지배가 종식되고 이탈리아반도의 영토 통합이 비약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이후 로마 교황령 합병만을 남겨둔 통일 이탈리아의 국가적 정체성 확립에 거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1891-1900년 주요 사건
[1900년 10월 19일] 막스 플랑크의 흑체 복사 법칙 발견과 양자역학의 태동
19세기 말 고전물리학은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흑체의 복사 에너지 분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단파장 자외선 영역의 에너지가 무한대로 발산한다는 이른바 '자외선 파탄'이라는 치명적인 이론적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1900년 10월 19일 베를린의 독일 물리학회 회의 직전,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는 하인리히 루벤스(Heinrich Rubens, 1865-1922) 등의 정밀 실험 데이터를 빈의 변위 법칙 및 레일리-진스 법칙과 수학적으로 보간하여 복사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덩어리로 방출된다는 흑체 복사 공식(Planck's law)을 학계에 전격 발표했다.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특정 단위의 양자(Quantum)로 존재한다는 플랑크 상수($h$)의 도입은 고전물리학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으며, 20세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과 닐스 보어의 원자 모형을 거쳐 현대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라는 거대한 과학 혁명을 태동시킨 출발점이 되었다.
20세기(1901-2000년) 주요 사건
1911-1920년 주요 사건
[1912년 10월 19일]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종결과 이탈리아의 리비아 영유 확정
지중해 패권을 노리던 이탈리아 왕국은 쇠퇴해 가던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을 상대로 북아프리카의 마지막 거점인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를 침공하였으며, 발칸 동맹의 선전포고로 사면초가에 몰린 오스만 조정은 강화를 서둘렀다.
1912년 10월 18일 스위스 로잔 인근 우시 궁전에서 강화 조약이 체결된 데 이어, 10월 19일 술탄 메흐메트 5세(Mehmed V, 1844-1918)의 제국 칙령에 따라 군대를 공식 철수시키면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Vittorio Emanuele III, 1869-1947) 국왕 치하의 이탈리아는 오늘날의 리비아(Libya) 전역에 대한 군정 통치권을 정식 장악했다.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의 옛 영토를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식민 통치를 본격화했으나 오마르 알무크타르(Omar al-Mukhtar, 1858-1931)가 이끄는 토착 베두인 저항군의 격렬한 유격전에 직면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의 붕괴를 가속화하여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치닫는 연쇄적 지정학적 위기를 촉발했다.
[1914년 10월 19일]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이프르 전투 개막과 참호전 고착화
1914년 9월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의 진격이 저지된 후, 서부 전선의 연합군과 독일군은 북해 해안선으로 통하는 항구를 선점하고 적의 측면을 포위하기 위해 북서쪽으로 진격하는 '바다로의 경주(Race to the Sea)'를 필사적으로 전개했다.
1914년 10월 19일 벨기에 플랑드르의 전략 요충지인 이프르(Ypres) 일대에서 존 프렌치(John French, 1852-1925) 원수가 지휘하는 영국 원정군(BEF) 및 프랑스·벨기에 연합군과 알브레히트 폰 뷔르템베르크(Albrecht von Württemberg, 1865-1939) 공작의 독일 제4군·제6군이 정면 충돌하며 사상 초유의 대회전이 시작되었다.
수만 명의 학도 지원병이 희생된 '랑게마르크의 학살'을 낳은 채 연합군이 해안 교두보를 지켜내면서 독일군의 조기 종전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으며, 스위스 국경에서 북해까지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지옥 같은 철조망과 참호선이 구축되는 장기 소모전의 서막을 열었다.
1921-1930년 주요 사건
[1921년 10월 19일] 포르투갈 '피의 밤' 군사 쿠데타와 안토니우 그라니슈 총리 피살
제1공화국 출범 이후 극심한 정정 불안과 만성적 인플레이션, 잦은 정권 교체로 혼란을 겪던 포르투갈에서는, 공화국 수비대(GNR) 급진 장교단과 극우 급진주의자들이 온건파 민정 내각을 무력으로 타도하려는 불온한 기류가 팽배했다.
1921년 10월 19일 밤 마누엘 마리아 코엘류(Manuel Maria Coelho, 1857-1943) 등이 사주한 무장 군인과 선원들이 수도 리스본을 점거한 뒤, '죽음의 트럭(Camioneta Fantasma)'을 몰고 각료들의 자택을 급습하여 안토니우 그라니슈(António Granjo, 1881-1921) 현직 총리와 건국의 주역인 마샤두 산투스(Machado Santos, 1875-1921) 제독 등을 잔혹하게 총살했다.
이른바 '피의 밤(Noite Sangrenta)'으로 불리는 이 만행은 온건 공화파 엘리트 계층을 궤멸시켜 민주 헌정 체제의 도덕성과 정통성을 회복 불능 상태로 무너뜨렸으며, 대중의 군주제 복고 및 군부 독재 열망을 부추겨 1926년 5월 28일 군사 쿠데타와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 1889-1970)의 독재 체제인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로 직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22년 10월 19일] 영국 칼턴 클럽 회동과 자유당 연립정부 해체 결의
제1차 세계 대전 승리를 이끌었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1945) 자유당 총리의 연립내각은 차나크 위기(Chanak Crisis) 등 무리한 대외 정책과 잇단 부패 스캔들로 인해 연립 파트너였던 보수당 의원들의 거센 불만을 사고 있었다.
1922년 10월 19일 런던 칼턴 클럽(Carlton Club)에서 비공개로 열린 보수당 의원총회에서, 앤드루 보너 로(Andrew Bonar Law, 1858-1923)와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 1867-1947) 등 소장파 의원들이 연립 탈퇴를 강력히 역설한 끝에 찬성 187표 대 반대 87표로 자유당과의 연립정부 종식을 공식 결의했다.
결의 직후 로이드 조지 총리가 즉각 사임하면서 영국 헌정사상 마지막 자유당 출신 총리의 시대가 영구히 막을 내렸으며, 곧이어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단독 과반을 장악함과 동시에 자유당의 쇠락과 노동당(Labour Party)의 급부상을 초래하여 20세기 영국의 양당 정립 구도를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1931-1940년 주요 사건
[1935년 10월 19일] 국제연맹의 이탈리아 왕국 대규모 경제 제재 결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가 이끄는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을 품고 무방비 상태의 독립국인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자,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 I, 1892-1975) 황제는 국제연맹 헌장에 따른 침략국 징벌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1935년 10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소집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총회 52개 회원국 대표단은 집단안보 원칙에 의거하여 침략국 이탈리아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와 금융 대출 중단 및 주요 전략 원자재 수출을 전면 통제하는 포괄적 경제 제재 결의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제재 대상에서 이탈리아 전쟁 수행의 핵심인 석유 수출과 수에즈 운하 통행권이 영국과 프랑스의 유화책으로 제외되면서 침략을 막는 데 철저히 실패하였으며, 집단안보 체제의 무력함을 입증하여 국제연맹의 공신력을 붕괴시키고 아돌프 히틀러의 재무장 야욕을 노골화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1936년 10월 19일] 허버트 에킨스의 상업 항공기 세계 일주 경주 우승
1930년대 중반 대형 여객기와 비행정의 잇단 취항으로 민간 대륙 간 상업 항공망이 개척되자, 뉴욕의 주요 신문사들은 상업 항공기만을 이용해 누가 가장 빠르게 지구를 한 바퀴 도는지 겨루는 대대적인 취재 경주를 기획했다.
1936년 10월 19일 《뉴욕 월드 텔레그램》 소속의 종군 기자 허버트 에킨스(Herbert Ekins, 1901-1967)는 독일 체펠린 비행선 LZ 129 힌덴부르크호와 KLM, 팬암(Pan Am) 등 정규 상업 항공편만을 연계하여 갈아탄 끝에 18일 14시간 56분 만에 뉴욕에 무사히 착륙했다.
경쟁자였던 《뉴욕 이브닝 저널》의 도로시 킬갤런(Dorothy Kilgallen, 1913-1965)과 《뉴욕 타임스》의 리오 키런(Leo Kieran, 1899-1980)을 제치고 완벽한 1위를 차지하였으며, 인류가 특수 군용기나 탐험선 없이 순수 민간 대중교통망만으로 전 지구를 3주 이내에 주파할 수 있음을 증명하여 현대 글로벌 항공 여행 시대를 상징적으로 열어젖혔다.
1941-1950년 주요 사건
[1943년 10월 19일] 럿거스 대학교의 인류 최초 결핵 치료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 분리
20세기 중반까지 '백색 페스트'로 불리며 수억 명의 인명을 앗아간 결핵(Tuberculosis)은 기존 페니실린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그람 음성균 질환이었기에, 전 세계 의학계는 결핵균을 제어할 새로운 화학물질 탐색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1943년 10월 19일 미국 뉴저지주 럿거스 대학교(Rutgers University) 농업실험실에서 왁스먼 교수의 지도 아래 연구하던 대학원생 앨버트 샤츠(Albert Schatz, 1920-2005)는, 농장 흙 속 방선균 배양액에서 결핵균에 탁월한 살균력을 발휘하는 사상 최초의 아미노글리코사이드계 항생물질인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을 성공적으로 분리·추출했다.
이 물질은 동물 및 임상 시험을 거쳐 불치병이던 폐결핵 환자들을 기적적으로 완치시키며 전 세계 공중보건의 혁명적 전환을 이끌어냈고, 지도교수였던 셀먼 왁스먼(Selman Waksman, 1888-1973)이 195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는 위대한 의학사적 이정표가 되었다.
[1943년 10월 19일] 그리스 크레타섬 근해의 신프라호 침몰 참사
1943년 9월 이탈리아의 바돌리오 정권이 연합국에 항복하자, 나치 독일군은 크레타섬을 비롯한 그리스 주둔 이탈리아군을 강제 무장해제하고 독일 본토의 강제수용소로 압송하기 위해 민간 화물선들을 징발했다.
1943년 10월 19일 이탈리아군 포로 2,400여 명을 태우고 피레우스로 향하던 독일군 징발 수송선 신프라(Sinfra)호가 크레타섬 수다만 근해에서 영국 왕립 공군(RAF)과 미 육군 항공대의 기습 폭격을 받아 침몰하면서, 닫힌 선창에 갇혀 있던 이탈리아군 포로 2,098명이 수중에서 익사했다.
지중해 해상에서 발생한 제2차 세계 대전 최악의 해난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적성국 표식 없이 포로를 밀실에 가둔 채 호송한 독일군의 비인도적 처사와 연합군의 식별 실패가 결합한 전시 포로 수송의 참혹한 비극으로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44년 10월 19일] 과테말라 10월 혁명 발발과 폰세 바이데스 군정 타도 봉기
14년간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호르헤 우비코(Jorge Ubico, 1878-1946) 독재 정권이 민중 봉기로 무너진 후, 임시 대통령으로 권력을 잡은 후안 페데리코 폰세 바이데스(Juan Federico Ponce Vaides, 1889-1956)가 야당 지도자를 암살하고 의회를 탄압하자 군부 내 개혁파 장교단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1944년 10월 19일 밤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아라나(Francisco Javier Arana, 1905-1949) 소령과 하코보 아르벤스(Jacobo Árbenz, 1913-1971) 대위가 이끄는 청년 장교단이 무장 봉기를 일으키고 시민과 학생들에게 무기를 지급하며 총공격에 돌입했다.
폰세 바이데스 정권이 전격 붕괴하고 혁명평의회가 수립되면서 10년간 이어진 '과테말라 혁명(Guatemalan Revolution)'이 개막하였으며, 후안 호세 아레발로 정부의 민주 헌법 제정과 토지 개혁으로 이어지는 과테말라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눈부신 전기를 마련했다.
[1944년 10월 19일] 미군의 필리핀 레이테만 선발 상륙 개시
1942년 필리핀을 일본 제국에 빼앗기고 호주로 철수했던 연합군 남서태평양방면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원수는, 필리핀을 수복하여 연합국의 해상 보급로를 뚫고 고국에 "돌아오겠다"던 역사적 공언을 실천하기 위한 총반격을 준비했다.
1944년 10월 19일 체스터 니미츠(Chester W. Nimitz, 1885-1966) 제독의 미 제3함대가 가한 맹렬한 해상 함포 사격 속에, 월터 크루거(Walter Krueger, 1881-1967) 중장이 지휘하는 미 육군 제6군 소속 선발 정찰대와 공병대가 레이테만(Leyte Gulf) 해안 교두보 확보를 위한 예비 상륙을 단행했다.
이 작전은 이튿날 단행된 맥아더 원수의 본대 상륙과 사상 최대의 해전인 레이테만 해전(Battle of Leyte Gulf)으로 이어져 일본 연합함대를 궤멸시켰으며, 필리핀 전역 해방과 태평양 전쟁의 승리를 확정 짓는 결정적 군사적 분수령이 되었다.
[1948년 10월 1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국가에 바친 대통령들' 기념비 제막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는 19세기 영토 팽창과 연방 보존 및 전후 국가 재건을 이끌었던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1845), 제임스 K. 포크(James K. Polk, 1795-1849),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 1808-1875) 등 3인의 대통령을 배출한 역사적 자긍심을 기리고자 주청사 광장에 기념비 건립을 추진했다.
1948년 10월 19일 롤리의 노스캐롤라이나 주청사 광장에서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조각가 찰스 케크(Charles Keck, 1875-1951)가 제작한 세 대통령의 동상을 결합한 기념비 '국가에 바친 대통령들(Presidents North Carolina Gave the Nation)'의 성대한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1948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남부 민주당원들의 전통적 결속을 다지는 국가적 행사로 조명받았으며, 북미 대륙 팽창과 연방 통합에 기여한 주 출신 지도자들의 정치적 유산을 공공 공간에 새겨 후대에 전하는 대표적인 역사적 랜드마크로 보존되었다.
[1948년 10월 19일] 국군 제14연대의 여수·순천 10월 19일 사건 발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전남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는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李承晩, 1875-1965) 정부의 출동 명령을 받았으나, 군 내부 남조선로동당(南朝鮮勞動黨) 세포 조직원들과 장병들은 동족 상잔의 유혈 진압에 동원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1948년 10월 19일 밤 지창수(池昌洙, 생몰년 미상) 상사를 비롯한 하사관 40여 명이 무기고를 장악하며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김지회(金智會, 생몰년 미상) 중위 등이 합세한 2,000여 명의 봉기군은 순천까지 진격하여 시내 주요 관공서를 접수하고 인민위원회를 복설했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군을 투입해 도시를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이 제정되고 군 내부 좌익 숙군 작업이 대대적으로 단행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50년 10월 19일] 창두 전투 종결과 중국 인민해방군의 티베트 병합 개시
1949년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은 티베트를 중국의 분리할 수 없는 영토로 규정하고 평화적 병합을 종용했으나, 티베트 갈샤(Kashag) 정부가 달라이 라마 14세의 자주독립 주권을 고수하며 협상을 거부하자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은 무력을 통한 강제 편입을 최종 승인했다.
1950년 10월 19일 장궈화(張國華, 1914-1972) 사령관이 지휘하는 중국 인민해방군(中國人民解放軍) 제18군은 티베트 동부의 군사 관문 창두(昌都) 일대에서 티베트 수비대를 완전히 포위·격파하고, 총독 응가포 응가왕 지그메(Ngapoi Ngawang Jigme, 1910-2009)의 항복을 받아냈다.
티베트 군사력의 3분의 2 이상이 단기간에 와해되어 라싸로 향하는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이듬해 1951년 베이징에서 '십칠조협의(十七條協議)'가 강제 체결되어 티베트가 중국의 주권 아래 편입되는 비극적인 현대 티베트사의 서막을 열었다.
[1950년 10월 19일] 이란의 미국 포인트 포 프로그램 수락 협정 체결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중동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 행정부는 개발도상국에 농업, 보건, 교육 기술을 지원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는 대외 원조 구상인 '포인트 포 프로그램(Point Four Program)'을 마련했다.
1950년 10월 19일 테헤란에서 헨리 F. 그레이디(Henry F. Grady, 1882-1957) 주이란 미국 대사와 알리 라즈마라(Ali Razmara, 1901-1951) 이란 총리는, 농촌 보건 환경 개선과 농업 용수 개발을 지원하는 50만 달러 규모의 기술 협력 원조 협정에 전격 서명했다.
이란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 가운데 미국의 포인트 포 기술 지원을 수락한 최초의 국가로 기록되었으며,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Mohammad Reza Pahlavi, 1919-1980) 샤 정권의 친미 근대화 정책을 촉진하고 냉전기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 10월 19일] 유엔군의 평양 탈환과 중국 인민지원군의 압록강 은밀 도하
인천상륙작전 이후 38선 전역을 돌파해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 정권의 수도 평양을 탈환하기 위해 속도전을 펼쳤으며, 수세에 몰려 강계로 퇴각하던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은 중국 마오쩌둥 정권에 군사적 개입을 긴급 타전했다.
1950년 10월 19일 백선엽(白善燁, 1920-2020) 준장의 국군 제1사단과 호바트 게이(Hobart R. Gay, 1894-1983) 소장의 미 제1기병사단이 모란봉과 도심 관공서를 장악하며 평양을 전면 수복한 바로 그날 밤, 펑더화이(彭德懷, 1898-1974) 총사령관이 이끄는 중국 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願軍) 선발대가 압록강을 건너 은밀히 남하했다.
북한의 수도를 함락시키며 무력 통일의 기대가 최고조에 달했으나, 수십만 중국군의 전격적인 참전으로 인해 전세가 역전되어 장진호 전투와 1·4 후퇴로 직행하는 한반도 전쟁사의 가장 거대한 지정학적 전환점이 되었다.
1951-1960년 주요 사건
[1953년 10월 19일] 레이 브래드버리의 디스토피아 SF 소설 《화씨 451》 초판 출간
1950년대 미국 사회를 강타한 매카시즘(McCarthyism)의 광풍과 TV 수상기 보급에 따른 대중의 사유 포기를 목도한 미국의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국가 권력이 비판적 사고를 통제하고 지식을 말살하는 전체주의 디스토피아 미래에 대한 경고를 문학으로 구체화했다.
1953년 10월 19일 뉴욕의 발렌타인 북스(Ballantine Books) 출판사는 책을 소지하는 것이 불법화된 사회에서 책을 불태우는 임무를 맡았던 방화수 가이 몬태그의 정신적 각성을 다룬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1920-2012)의 장편 소설 《화씨 451(Fahrenheit 451)》을 세상에 공식 출간했다.
종이가 불타는 온도를 상징하는 이 작품은 출간 즉시 사상 통제와 문화 검열에 대한 가장 통렬한 문학적 저항으로 평가받았으며, 조지 오웰의 《1984》 및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20세기 디스토피아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1955년 10월 19일] 유럽방송연맹의 제1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개최 최종 승인
제2차 세계 대전의 비극을 딛고 문화적 화합과 유럽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던 유럽방송연맹(EBU)은, 당시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유럽 대륙 간 국경 초월 텔레비전 동시 생중계 전송망인 '유로비전(Eurovision)' 기술을 널리 홍보할 대규모 문화 프로그램을 모색했다.
1955년 10월 19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소집된 유럽방송연맹 총회에서 마르셀 베장송(Marcel Bezençon, 1907-1981) 총괄국장의 제안에 따라 회원국 방송사 대표단은, 이탈리아 산레모 음악제를 모델로 한 유럽 전역의 대중가요 경연 대회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의 창설을 만장일치로 공식 승인했다.
이듬해 스위스 루가노에서 역사적인 제1회 대회가 성공리에 개막하며 전 유럽인이 동시에 시청하는 통합 문화 축제의 장을 열었으며, ABBA와 셀린 디옹 등 세계적 스타를 배출하며 수억 명이 시청하는 세계 최장수 글로벌 음악 경연 프로그램으로 도약했다.
[1955년 10월 19일] 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무역 협정 체결
6·25 전쟁(한국전쟁) 정전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후 산업 시설 복구와 경제 개발 3개년 계획(1954-1956)을 완수하기 위해 사회주의 우방국인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포괄적 통상 및 경제 협력 강화가 절실했다.
1955년 10월 19일 평양에서 양국 무역 대표단이 공식 회담을 마친 뒤, 김일성(金日成, 1912-1994) 수상의 내각과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주석 정권 간의 상호 물자 교환 및 결제 조건을 규정한 '조중 무역 협정'에 공식 서명했다.
중국산 석탄·직물·곡물 등의 안정적 도입을 확보하여 북한의 전후 중공업 중심 경제 재건을 촉진하였으며, 전통적인 군사 연대를 경제적 결속으로 확장하여 냉전기 동북아 사회주의 블록 내 조중(朝中) 동맹을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56년 10월 19일] 소·일 공동선언 서명과 양국 간 전쟁 상태의 공식 종결
1945년 8월 소비에트 연방의 대일 참전 이후 양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소련이 서명을 거부함에 따라 10년 넘게 법적 전쟁 상태를 지속하였으며,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는 억류 일본인 포로 귀환과 국교 정상화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1956년 10월 19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 1883-1959) 일본 총리와 니콜라이 불가닌(Nikolai Bulganin, 1895-1975) 소련 각료평의회 의장은 외교 관계 복원과 전쟁 종결을 명시한 '소·일 공동선언(Soviet–Japanese Joint Declaration)'에 공식 서명했다.
평화조약 체결 후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섬을 반환하기로 합의하고 억류자 귀환을 실현하였으며, 소련의 거부권 철회로 같은 해 12월 일본이 국제연합(UN)에 공식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정상 국가로 복귀하는 역사적 분수령을 이루었다.
[1960년 10월 19일] 미국의 대쿠바 전면 무역 금수 조치 단행
1959년 쿠바 혁명 성공 이후 피델 카스트로 정권이 정유소 등 미국계 기업 자산을 전격 국유화하고 소련과의 군사·경제적 밀월을 본격화하자, 미국은 서반구에서의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강력한 경제적 응징을 결의했다.
1960년 10월 19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미국 대통령 행정부는 수출통제법에 의거하여 의약품과 비보조 식료품을 제외한 미국의 모든 대쿠바 상품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포괄적 무역 금수(Trade embargo)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쿠바 경제의 대미 무역 통로를 봉쇄하여 소련의 경제 원조에 전적으로 종속되게 만들었으며, 이듬해 1961년 피그스만 침공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이어지는 냉전기 카리브해의 극한 대치를 초래하며 60년 넘게 지속된 대쿠바 제재의 서막을 열었다.
1961-1970년 주요 사건
[1966년 10월 1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일본시리즈 2연패 및 통산 8번째 우승
1965년 일본 프로야구 정상을 탈환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나가시마 시게오와 오 사다하루로 이어지는 공포의 'ON포'를 앞세워, 쓰루오카 가즈토 감독이 이끄는 퍼시픽리그 패자 난카이 호크스와의 일본시리즈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며 우승을 눈앞에 두었다.
1966년 10월 19일 도쿄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일본시리즈(Japan Series) 제6차전에서 가와카미 데쓰하루(川上哲治, 1920-2013) 감독의 요미우리 자이언츠(読売ジャイアンツ)는, 선발 조노우치 구니오(城之内邦雄, 1940-)의 완벽한 9이닝 무실점 완봉 역투에 힘입어 난카이 호크스를 4대 0으로 완파했다.
시리즈 전적 4승 2패를 거두며 통산 8번째 우승과 함께 2년 연속 일본 제일(日本一)에 등극하였으며, 이후 1973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인 '일본시리즈 9연패(V9)'의 찬란한 절대 왕조를 완성해 나가는 강력한 디딤돌을 놓았다.
1971-1980년 주요 사건
[1973년 10월 19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테이프 제출 판결 거부
1972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도청으로 촉발된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가 백악관 집무실 내 비밀 녹음 테이프의 존재로 번지자,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대통령의 통신비밀 특권을 부인하며 테이프 제출을 명령한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의 결정을 받아냈다.
1973년 10월 19일 저녁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미국 대통령은 연방항소법원의 테이프 원본 제출 판결 수용을 정면 거부하고, 대신 민주당 존 C. 스테니스(John C. Stennis, 1901-1995) 상원의원의 검증을 거친 편집 요약본만을 제공하겠다는 타협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특별검사가 타협안을 즉각 거부하자 이튿날 닉슨이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토요일 밤의 학살'로 비화하였으며, 사법 방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촉발해 1974년 연방대법원의 테이프 전면 공개 명령과 닉슨의 치욕적인 대통령 자진 사임으로 직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74년 10월 19일] 니우에의 뉴질랜드 자유연합 자치정부 공식 출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연합(UN)의 탈식민지화 원칙에 따라 뉴질랜드의 속령으로 남아 있던 남태평양 산호섬 니우에는, 완전한 독립 대신 자치권과 뉴질랜드의 국방·외교 지원을 결합한 새로운 정치적 결속 방안을 모색했다.
1974년 10월 19일 주민투표를 통해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 '니우에 헌법(Niue Constitution Act)'이 공식 발효되면서, 초대 총리로 선출된 로버트 렉스(Robert Rex, 1909-1992)의 주도 아래 뉴질랜드와 자유연합(Free association) 관계를 맺는 자치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섬 주민들이 뉴질랜드 국적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입법과 행정 전반의 독자적 자치 주권을 획득하였으며, 영연방의 독특한 탈식민 모델로서 태평양 도서 국가의 자치 발전과 평화적 연합 체제 안착에 기여한 성공적인 헌정사적 모범 선례가 되었다.
[1977년 10월 19일]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통산 21번째 우승과 레지 잭슨의 3연타석 홈런
1962년 이후 15년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었던 뉴욕 양키스는, 억만장자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전폭적 투자 속에 아메리칸리그를 제패한 뒤 숙적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맞붙은 가을 야구에서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며 우승 트로피를 겨냥했다.
1977년 10월 18일(한국 시각 10월 19일 오전)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차전에서 빌리 마틴(Billy Martin, 1928-1989) 감독의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는, 4번 타자 레지 잭슨(Reggie Jackson, 1946-)이 세 명의 서로 다른 투수를 상대로 초구 3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는 괴력을 발휘해 다저스를 8대 4로 격파했다.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15년 만에 통산 21번째 월드시리즈 정상을 정복하였으며, 3연타석 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가을 명승부를 연출한 레지 잭슨이 '미스터 옥토버(Mr. October)'라는 불멸의 칭호를 얻으며 1970년대 후반 양키스 전성시대의 찬란한 부활을 알렸다.
1981-1990년 주요 사건
[1986년 10월 19일] 모잠비크 사모라 마셸 대통령의 레봄보산맥 항공기 추락 참사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 정권은, 백인 소수 정권이 지배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아프리카 최전선국가 정상회담을 주도하며 지역 안보 확립을 모색하고 있었다.
1986년 10월 19일 밤 잠비아 엠발라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수도 마푸투로 귀환하던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 1933-1986) 대통령 탑승 투폴레프 Tu-134 전용기가, 악천후 속 남아공 국경 부근 레봄보산맥(Lebombo Mountains) 경사면에 추락해 대통령을 비롯한 34명이 숨졌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가짜 전파 유도 장치로 비행기를 고의 유인해 추락시켰다는 암살 의혹이 제기되어 국제적 분노를 촉발하였으며, 건국 지도자의 비극적인 급서로 모잠비크 내전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으나 조아킹 치사누 후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 통합을 이루어냈다.
[1987년 10월 19일] 미국 뉴욕 증시 '블랙 먼데이'와 다우 지수 22.6% 사상 최대 폭락
1980년대 중반 세제 혜택과 저금리로 미국 증시가 유례없는 활황을 누렸으나, 막대한 쌍둥이 적자(재정·무역 적자)와 연준의 금리 인상 및 컴퓨터 기반 자동 매매 프로그램인 포트폴리오 인슈어런스가 보급되면서 구조적 거품 붕괴의 위험이 누적되었다.
1987년 10월 19일 뉴욕증권거래소(NYSE) 개장 직후 쏟아진 투매 주문에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는 단 하루 만에 무려 508포인트(22.6%) 폭락한 1,738.74로 마감하여 사상 최악의 시장 공황을 기록했다.
1929년 대공황 첫날 하락폭을 뛰어넘는 금융 충격이었으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1926-) 연준 의장의 신속한 유동성 공급으로 실물 경제 전이를 차단하였으며, 주가 급락 시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제도가 전 세계 증시에 전격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 10월 19일] 미 해군의 님블 아처 작전과 이란 해상 석유 플랫폼 파괴
이란-이라크 전쟁 중 페르시아만 유조선 공격전이 격화되던 가운데, 1987년 10월 16일 쿠웨이트 항구 인근에서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호위를 받던 유조선 시 아일 시티(Sea Isle City)호가 이란 혁명수비대의 실크웜 대함 미사일에 피격되어 선원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1987년 10월 19일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미국 대통령의 승인 아래 미 해군 수상 전투함 편대는 '님블 아처 작전(Operation Nimble Archer)'을 개시하여, 이란 해군이 고속정 통신 기지로 전용하던 로스탐 해상 석유 플랫폼 2곳을 1,000여 발의 함포 사격으로 완전히 초토화했다.
미국이 국제 공해상 상선 통행을 교란하는 이란에 대해 비례적 군사 보복 원칙을 실증한 최초의 직접 무력 충돌로 기록되었으며, 양국 간 해상 대치를 극단으로 끌어올려 이듬해 1988년 미 해군 최대의 현대 해전인 '프레잉 맨티스 작전(Operation Praying Mantis)'으로 직행하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1988년 10월 19일] 영국 정부의 북아일랜드 분쟁 단체 방송 검열령 시행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이 장기화되면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무장 테러가 빈발하자,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 내각은 테러 집단이 언론을 선전 도구로 악용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로 결의했다.
더글러스 허드(Douglas Hurd, 1930-) 내무장관은 방송법 권한을 발동하여 신페인당(Sinn Féin)을 비롯한 아일랜드 공화파 및 얼스터 충성파 11개 준군사조직 구성원의 육성이 방송에 직접 송출되는 것을 전면 금지하는 보도 제한 조치를 공식 발표했다.
이 조치로 영국 방송사들은 게리 애덤스(Gerry Adams, 1948-) 등 인터뷰 대상자의 육성 대신 전문 성우의 더빙을 입혀 보도하는 기형적 방식을 도입해야 했으며,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속에 1994년 평화 협상 국면 이전까지 6년간 지속되었다.
[1989년 10월 19일] 길퍼드 포 사건 유죄 판결 파기와 전원 석방
1974년 영국 길퍼드와 울위치의 군인 전용 주점 두 곳에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폭탄 테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자, 영국 서리주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망을 펼쳐 북아일랜드 출신 청년 4명을 체포한 뒤 가혹한 고문과 증거 조작을 통해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
15년간 억울하게 복역하던 제리 콘론(Gerry Conlon, 1954-2014)을 비롯한 4명의 피고인에 대해, 잉글랜드·웨일스 항소법원은 경찰의 광범위한 위증과 알리바이 은폐 정황을 인정하고 유죄 판결을 전격 파기하며 피고인 전원에 대한 즉각 석방을 선고했다.
영국 사법 역사상 최악의 오판 사건으로 공식 기록되었으며, 훗날 1993년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2005년 토니 블레어(Tony Blair, 1953-) 총리가 유가족에게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를 발표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1-2000년 주요 사건
[1991년 10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 참사
평소 시각 장애로 인한 사회적 소외감과 직장 해고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용제(金容濟, 1970-1997)는, 사소한 일상적 갈등으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사회에 복수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극단적인 대량 살상을 치밀하게 모의했다.
범인은 자신이 운전하던 프라이드 승용차를 몰고 주말을 맞아 수만 명의 인파가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여의도광장(汝矣島廣場)으로 돌진하여 200여 미터를 지그재그로 질주한 뒤 윤신(尹信, 1980-1991) 군 등 어린이 2명을 참혹하게 살해하고 21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도심 공공 휴식 공간에서 벌어진 사상 초유의 묻지마식 돌진 범죄로 전 국민적 충격을 안겼으며, 피고인은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이후 광장이 대규모 숲과 녹지를 갖춘 폐쇄형 '여의도공원'으로 전면 재조성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1세기(2001-2100년) 주요 사건
2001-2010년 주요 사건
[2001년 10월 19일] 난민선 SIEV X 침몰 참사와 353명 사망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란을 피해 호주로 망명을 시도하던 수백 명의 중동계 난민들은, 인도네시아 인신매매 밀항 조직에 거액을 지불하고 호주령 크리스마스섬(Christmas Island)을 향해 낡고 좁은 목조 어선에 몸을 실었다.
정원 4배가 넘는 400여 명을 태운 밀항 어선 'SIEV X(Suspected Illegal Entry Vessel X)'호는 자바섬 서남쪽 공해상에서 거센 폭풍우를 만나 선체가 전복되었고, 주변 해역을 초계하던 군경의 신속한 구조를 받지 못한 채 어린이 146명을 포함한 353명이 차가운 바다에서 익사했다.
호주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해양 난민 참사로 기록되었으며, 존 하워드(John Howard, 1939-) 연방 총리 정부의 강경한 국경 봉쇄 작전인 '태평양 해법(Pacific Solution)'의 윤리적 정당성을 둘러싼 국제적 인권 비판과 외교적 진상 규명 논쟁을 촉발했다.
[2003년 10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더 테레사 복자 시복
인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반세기 동안 버려진 환자와 고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했던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1910-1997) 수녀가 선종하자,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는 사후 5년 유예 규정을 면제하고 조기 시복을 추진해야 한다는 열망이 쇄도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30만 명이 넘는 순례자와 신도들이 운집한 가운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 1920-2005)의 주재로 장엄한 시복 미사가 봉헌되었으며, 교황은 마더 테레사를 공식적으로 가톨릭 공경 대상인 '복자(Beata)' 반열에 올렸다.
현대 종교사에서 유례없이 빠른 선종 6년 만의 초고속 시복으로 기록되어 전 세계 빈민 구호의 숭고한 도덕적 가치를 천명하였으며, 이후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마침내 성인(Saint)으로 공식 시성되는 결정적 발판을 놓았다.
[2003년 10월 19일] 경기도 포천시 및 양주시의 도농복합시 동시 승격
수도권 광역 교통망 확충과 택지 개발로 경기도 북부 지역의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전통적인 농촌 행정 구역이던 포천군과 양주군은 팽창하는 도시 행정 수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자족형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시(市) 승격을 적극 추진했다.
대한민국 국회가 제정한 '도농복합형태의 시설치 등에 관한 법률'이 공식 발효됨에 따라, 포천군(抱川郡)은 포천시(抱川市)로, 양주군(楊州郡)은 양주시(楊州市)로 각각 법적 행정 지위를 승격하고 종합 시청사 개청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읍·면 체제에서 동(洞) 체제로의 행정 조직 개편과 도시 계획 권한이 대폭 확대되었으며, 군사 보호 구역의 중첩 규제를 극복하고 경기 북부 거점 신도시 개발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가속화하는 현대 지방자치의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2004년 10월 19일] 코퍼레이트 항공 5966편 커크스빌 추락 참사
세인트루이스 램버트 공항을 이륙해 미주리주 커크스빌 지역공항으로 향하던 코퍼레이트 항공(Corporate Airlines) 5966편 제트스트림 32 쌍발 터보프롭 여객기는, 착륙을 목전에 두고 짙은 안개와 가랑비로 인해 시계가 1km 미만으로 급격히 제한되는 악천후에 직면했다.
킴 윌리엄(Kim William, 생몰년 미상) 기장과 부조종사는 규정된 최저 하강 고도를 무시한 채 계기판보다 육안 시계 확보에만 의존하며 무리하게 고도를 낮추다, 활주로 전방 6.4km 지점의 에어 카운티 울창한 숲속 나무들과 충돌한 뒤 야산에 추락해 탑승객과 승무원 15명 중 13명이 숨졌다.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조사 결과 조종사들의 기본 착륙 절차 미준수와 만성 피로에 따른 주의 분산이 원인으로 규명되었으며, 지역 소형 항공사 조종사들의 근무 교대 시간 제한과 지상근접경보장치(TAWS) 의무 장착 규정을 전면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 10월 19일] 대서양 허리케인 윌마의 역대 최저 기압 882mb 관측
카리브해 서부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해수면 온도로 인해 발달한 열대성 저기압은, 상층풍의 간섭이 없는 최적의 기상 조건 속에서 불과 24시간 만에 열대 폭풍에서 5등급 슈퍼 허리케인으로 폭발적인 '급속 강화'를 거듭했다.
미 국립허리케인센터(NHC)의 기상 정찰기가 허리케인 윌마(Hurricane Wilma)의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진입해 기압계를 투하한 결과, 대서양 기상 관측 사상 역대 최저 중심 기압인 882밀리바(hPa)와 시속 295km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최대 풍속이 공식 측정되었다.
1988년 허리케인 길버트가 세운 888mb 기록을 17년 만에 경신하며 대서양 분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으로 공인받았으며, 멕시코 칸쿤과 미국 플로리다주에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낸 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슈퍼 허리케인 위협을 경고하는 상징적 사례가 되었다.
[2005년 10월 19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바그다드 전범 재판 개정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체포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재임 중 자행한 수많은 반인도적 국가 범죄와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미군 점령 당국의 지원 아래 신설된 이라크 특별법원에 정식 회부되었다.
바그다드 그린존의 최고 보안 법정에서 라이드 주히(Raid Juhi, 1962-) 예심판사와 리즈가르 아민(Rizgar Amin, 1957-) 수석재판관의 주재 아래 열린 첫 공판에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2006)은 법원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나는 여전히 이라크의 합법적 대통령"이라고 고함을 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1982년 두자일 마을 주민 148명을 보복 학살한 혐의로 기소되어 1년간의 격렬한 법정 공방 끝에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중동 아랍권 역사상 최초로 독재자가 자국민 법정에 서서 단죄를 받은 기념비적인 국제형사사법의 선례로 남았다.
[2005년 10월 19일]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무패 4연승 완봉 우승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선동열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잠실과 대구 원정을 오가며 완벽한 마운드 운영과 타선의 파괴력을 앞세워 3차전까지 3연승을 질주하고 통합 챔피언 등극을 목전에 두었다.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0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orean Series) 제4차전에서 선동열(宣銅烈, 1963-)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Samsung Lions)는, 배영수(裵英洙, 1981-)의 쾌투와 장단 14안타를 몰아친 타선의 폭발로 김경문(金卿文, 1958-) 감독의 두산 베어스를 10대 1로 대파했다.
시리즈 4전 전승을 기록하며 2002년 이후 3년 만에 통산 3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을 정복하였으며, 선동열 감독은 부임 첫해에 팀을 무패 챔피언으로 이끌어 '지키는 야구'와 철벽 불펜 왕조의 새로운 서막을 KBO 역사에 화려하게 각인시켰다.
[2006년 10월 19일]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복제비 교체 및 제막
555년 신라 진흥왕(眞興王, 534-576)이 한강 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순수한 기념으로 북한산 비봉(碑峰)에 건립한 순수비는 조선 후기 김정희(金正喜, 1786-1856)에 의해 실체가 고증되었으나, 오랜 풍화와 훼손으로 인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된 뒤 현장에는 형태가 조악한 화강암 모조비가 세워져 있었다.
2006년 10월 19일 문화재청(文化財廳)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 중인 국보 원본의 형상과 비문 서체, 세월의 파손 흔적까지 3차원 입체 스캔 실측 기법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새로운 실물 크기 복제비를 북한산 비봉 원래 자리에 설치하고 공식 제막식을 거행했다.
34년간 원형과 동떨어진 채 방치되었던 국가 사적지의 역사적 진정성을 온전히 회복하고 북한산의 역사 문화 경관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마모 위기에 놓인 고대 금석문 원본의 안전한 실내 보존과 현장 유적지의 정밀 복원 모델을 조화롭게 결합한 문화재 관리의 대표적 선례로 평가받았다.
[2010년 10월 19일]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무패 우승 및 통산 3번째 제패
정규시즌 1위를 기록한 김성근(金星根, 1942-) 감독의 SK 와이번스는 두산 베어스를 꺾고 올라온 선동열(宣銅烈, 1963-)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탄탄한 불펜 투수진의 철벽 계투와 빈틈없는 조직력을 앞세워 인천 홈경기와 대구 원정에서 3연승을 달리며 통합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2010년 10월 1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orean Series) 제4차전에서 SK 와이번스(SK Wyverns)는 선발 전병두의 쾌투와 정근우(鄭根宇, 1982-)의 맹타, 9회말 에이스 김광현(金廣鉉, 1988-)의 삼진 세리머니를 앞세워 삼성을 4대 2로 격파했다.
시리즈 4전 전승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2008년 이후 2년 만에 통산 3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을 탈환하였으며, 2007년부터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3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린 'SK 왕조'의 전성기를 완성함과 동시에 데이터와 시스템 중심의 현대 한국 야구 전술 발전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
2011-2020년 주요 사건
[2011년 10월 19일] 걸그룹 소녀시대의 정규 3집 《The Boys》 발매
2009년 〈Gee〉와 〈소원을 말해봐〉로 아시아 전역을 강타하며 K-POP 한류 열풍의 최정상에 오른 SM엔터테인먼트(SM Entertainment) 소속 걸그룹 소녀시대(Girls' Generation)는, 기존의 청순하고 발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글로벌 팝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파격적인 음악적 변신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2011년 10월 19일 소녀시대는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테디 라일리(Teddy Riley, 1967-)가 작곡한 강렬한 드럼 비트의 힙합 팝 타이틀곡 〈더 보이즈(The Boys)〉를 포함하여 수영(崔秀榮, 1990-)이 작사에 참여한 트랙들이 담긴 정규 3집 앨범을 전 세계에 동시 공개했다.
음원 발매 직후 국내외 주요 차트를 휩쓸고 연말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음반 대상을 거머쥐었으며, 미국 메이저 레이블 인터스코프 레코즈(Interscope Records)를 통한 영문 싱글 발매와 현지 공중파 토크쇼 출연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의 글로벌 위상과 K-POP의 세계화를 크게 선도했다.
[2012년 10월 19일] 레바논 베이루트 폭탄 테러와 위삼 알하산 준장 피살
인접국 시리아 내전의 포화가 격화되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반군을 둘러싼 종파 갈등이 레바논 내부로 전이되던 중, 레바논 내무군(ISF) 정보국이 시리아 정보당국의 지령을 받아 폭탄 테러를 모의하던 친아사드계 전직 각료 미셸 사마하를 전격 체포하면서 양국 간의 정치적 긴장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2012년 10월 19일 오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동부 아슈라피예(Achrafieh) 기독교 주거 구역의 번화가에서 200kg에 달하는 고성능 폭탄을 실은 차량이 폭발하여, 친서방 반(反)시리아 진영의 핵심 안보 수장이었던 정보국장 위삼 알하산(Wissam al-Hassan, 1965-2012) 준장을 포함한 8명이 사망하고 11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배후로 시리아 정권과 헤즈볼라가 지목되면서 나지브 미카티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민 시위가 폭발하였고, 트리폴리와 베이루트 등지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유혈 총격전이 번져나가며 레바논의 취약한 종파 분점 정치 체제가 전면적인 내전 위기로 내몰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2013년 10월 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온세역 열차 충돌 사고
2012년 51명의 사망자를 낸 온세역 참사 이후에도 아르헨티나의 철도 교통망은 정부의 관리 부실과 민간 위탁 운영사의 이윤 추구 속에 노후 차량 방치, 제동 장치 결함, 신호 시스템 미비 등 심각한 안전 불감증을 전혀 개선하지 못한 채 취약한 상태로 운행을 지속하고 있었다.
2013년 10월 19일 오전 7시 25분경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부 온세역(Once Station) 2번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사르미엔토선(Sarmiento Line) 3619호 통근 전동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시속 20km로 선로 끝 차막이를 들이받았으며, 선로를 이탈해 객차가 찌그러지면서 탑승객 10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년도 채 되지 않아 동일한 역사에서 대형 충돌 사고가 재발하자 분노한 시민들이 역무실을 공격하는 소요 사태가 벌어졌으며,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Cristina Fernández, 1953-) 대통령 정부가 사르미엔토선 전면 국유화와 노후 전동차 교체 및 철도 안전 감독 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4년 10월 19일] 파주 군사분계선 인근 남북 총격전 발생
2014년 가을 탈북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둘러싸고 연천 지역에서 북한군의 고사총 사격과 국군의 대응 사격이 벌어지는 등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가운데, 북한군 수색 병력이 군사분계선(MDL) 표식물 인근으로 지속해서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2014년 10월 19일 오후 5시 40분경 경기도 파주시 육군 제1보병사단 관할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 순찰조 10여 명이 군사분계선으로 접근하자 대한민국 국군이 경고 방송 후 K-6 중기관총 등으로 경고 사격을 가했고, 이에 북한군이 아군 소초(GP)에 실탄 사격을 가하며 10여 분간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국군의 단호한 즉각 대응으로 북한군이 북상하면서 인명 피해 없이 교전이 마무리되었으나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지는 등 일촉즉발의 안보 위기를 낳았으며,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한으로 조성되었던 남북 대화 무드가 급랭하는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다.
[2019년 10월 19일] 영국 의회의 37년 만의 토요일 임시 본회의와 브렉시트 표결
2016년 국민투표 이후 정국을 극단적 분열로 몰아넣은 브렉시트(Brexit)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보리스 존슨 총리가 유럽연합(EU)과 극적으로 도출한 새로운 탈퇴 협정안을 10월 31일 탈퇴 시한 전에 승인받기 위해 영국 의회는 전례 없는 주말 비상 표결 일정을 확정했다.
2019년 10월 19일 영국 하원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발발 이후 37년 만에 토요일 임시 본회의를 소집하였으나, 보수당 출신 올리버 레트윈(Oliver Letwin, 1956-) 의원이 발의한 '이행 법률이 완전히 통과될 때까지 합의안 승인을 보류한다'는 수정안이 찬성 322표 대 반대 306표로 가결되었다.
합의안 통과를 낙관하던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1964-) 총리는 법률에 따라 유럽연합에 브렉시트 시한 연기를 요청해야 하는 굴욕적인 정치적 패배를 겪었으나, 이를 계기로 12월 조기 총선을 단행해 압승을 거둠으로써 2020년 1월 영국의 완전한 유럽연합 탈퇴를 확정 짓는 도약대를 마련했다.
2021-2030년 주요 사건
[2025년 10월 19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왕실 보석 도난 사건
프랑스 대혁명기 왕실 재산 몰수와 도난의 풍파를 거쳐 루브르 박물관 아폴론 갤러리에 보존되어 온 프랑스 왕관 보석(French Crown Jewels) 컬렉션은, 국보급 역사 유산이자 수천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산 가치로 인해 전 세계 암시장과 국제 조직범죄단의 끊임없는 표적이 되어 왔다.
2025년 10월 19일 새벽 정교한 전자 통신 방해 장비와 내부 침투 기술을 동원해 박물관 보안망을 무력화한 전문 절도 조직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에 잠입하여, 루이 15세의 역사적 대관식 왕관 등에 세팅되어 있던 값비싼 루비와 사파이어 및 다이아몬드 유물 일부를 탈취해 도주했다.
1911년 모나리자 도난 사건 이래 박물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보안 실패 참사로 기록되어 프랑스 사회와 전 세계 문화계에 거대한 경종을 울렸으며, 인터폴(Interpol)의 전 지구적 적색수배와 공조 수사를 촉발함과 동시에 전 세계 주요 국립 박물관의 물리적 보안 규정을 전면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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