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1-100년) 주요 사건
[33년 10월 18일] 대(大) 아그리피나의 판다테리아섬 유배 중 단식 사망
-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외손녀이자 게르마니쿠스 장군의 아내였던 대 아그리피나는, 티베리우스 황제 및 친위대장 세야누스의 정치적 박해로 두 아들 네로 카이사르와 드루수스 카이사르를 잃고 판다테리아섬에 강제 유배되었다.
- 33년 10월 18일 티베리우스(Tiberius, 기원전 42-서기 37) 황제의 가혹한 감금과 두 아들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한 절망 속에서 대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기원전 14-서기 33)는 간수들의 강제 급식을 끝내 거부하고 스스로 단식을 이어가다 숨을 거두었다.
-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Julio-Claudian dynasty) 내부의 참혹한 숙청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으며, 훗날 생존한 막내아들 칼리굴라(Caligula, 12-41)가 황제에 즉위한 뒤 어머니의 유해를 로마로 봉환하여 아우구스투스 영묘에 안장함으로써 명예를 복권했다.
4세기(301-400년) 주요 사건
[320년 10월 18일] 알렉산드리아의 파푸스의 일식 관측과 《알마게스트》 주석 집필
- 4세기 헬레니즘 후기 수리과학의 침체기 속에서 그리스의 수학자 파푸스는 고대 천문학의 집대성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설 이론 체계를 보존하고 수학적으로 엄밀히 해설하기 위한 학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 320년 10월 18일 알렉산드리아의 파푸스(Pappus of Alexandria, 290경-350경)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개기일식을 정밀하게 직접 관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 100경-170경)의 위대한 천문학 저작인 《알마게스트(Almagest)》에 대한 상세한 수학적 주석서를 완성했다.
- 고대 그리스 기하학과 구면천문학의 정밀한 계산법을 후대에 온전히 전달하는 핵심 사료가 되었으며,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 중세 과학계를 거쳐 서유럽 르네상스기 근대 천문학 및 삼각법 발전에 지대한 학문적 영향을 미쳤다.
7세기(601-700년) 주요 사건
[614년 10월 18일] 프랑크 국왕 클로타르 2세의 파리 칙령 반포
- 메로빙거 왕조(Merovingian dynasty)의 오랜 골육상쟁 내전을 종식시키고 프랑크 왕국을 재통합한 클로타르 2세는, 국가 통합을 돕고 왕권을 지지해 준 대귀족과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의 기득권 특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 614년 10월 18일 파리 공의회 직후 프랑크 국왕 클로타르 2세(Chlothar II, 584-629)는 '파리 칙령(Edict of Paris)'을 공식 반포하여 지역 귀족들의 토지와 사법 특권을 확약하는 한편, 유대인이 기독교인을 관할하는 관직이나 군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 군주의 자의적 권력을 제한하고 지방 귀족과 궁재(Major domus)의 자치를 확립하여 '프랑크족의 마그나 카르타'로 평가받았으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의 사회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박탈하는 법적 선례가 됨과 동시에 카롤링거 왕조의 궁재 부상을 예고했다.
[629년 10월 18일] 다고베르트 1세의 프랑크 국왕 대관식 거행
- 프랑크 왕국을 재통일했던 클로타르 2세가 서거하자, 이미 아우스트라시아 분봉왕으로서 풍부한 통치 경험을 쌓았던 그의 아들 다고베르트는 이복동생 카리베르트 2세의 영토 분할 요구를 외교적으로 조율하며 전 프랑크 왕국의 단독 군주 승계를 준비했다.
- 629년 10월 18일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603경-639)는 파리 교외 생드니 수도원에서 대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지지 속에 전 프랑크 왕국의 단독 국왕으로 엄숙히 대관식을 치르고 즉위를 대내외에 선포했다.
-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과 대외 원정을 통해 쇠퇴해가던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황금기를 열었으며, 프랑스 왕실의 영구 안식처가 된 생드니 대성당(Basilique Saint-Denis)을 확장 건립하는 등 중세 프랑스 군주정의 종교적·정치적 권위를 드높였다.
11세기(1001-1100년) 주요 사건
[1009년 10월 18일] 파티마 왕조 칼리파 알하킴의 예루살렘 성묘 교회 파괴
- 이집트 파티마 왕조(Fatimid Caliphate)의 제6대 칼리파 알하킴은 재위 중기부터 극단적인 종교적 광기에 사로잡혀 관내 기독교도와 유대인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전개하며 비이슬람 종교 건축물에 대한 무차별 파괴를 명령했다.
- 1009년 10월 18일 파티마 칼리파 알하킴 비암르 알라(Al-Hakim bi-Amr Allah, 985-1021)의 지시를 받은 이슬람 군대는 예루살렘의 기독교 최대 성지인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를 급습하여 예수의 무덤 동굴을 정으로 쪼아내며 건축물을 기초 암반까지 철저히 파괴했다.
- 서유럽 기독교 세계에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충격과 종교적 분노를 안겼으며, 비잔티움 제국과의 외교적 파탄을 초래함은 물론 서구 사회의 성지 탈환 열망을 극대화시켜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의 제1차 십자군 전쟁(First Crusade)을 촉발하는 핵심 도화선이 되었다.
[1016년 10월 18일] 아산둔 전투와 크누트 대왕의 잉글랜드 지배권 장악
- 바이킹 출신의 덴마크 왕자 크누트가 잉글랜드를 전면 침공하자, 앵글로색슨계 잉글랜드 국왕 에드먼드 2세는 왕권을 지키고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해 잉글랜드 전역에서 군대를 대거 징집하여 결사 항전에 나섰다.
- 1016년 10월 18일 에식스의 아산둔(Assandun) 평원에서 에드먼드 2세(Edmund Ironside, 990경-1016)의 잉글랜드군과 크누트 대왕(Cnut the Great, 995경-1035)의 덴마크군이 격돌하였으며, 머시아 백작 에아드릭의 기습 배신으로 잉글랜드 전열이 무너지며 덴마크군이 결정적 대승을 거두었다.
- 에드먼드 2세가 템스강 이북을 할양하는 평화 조약을 맺은 직후 의문사하면서 크누트가 잉글랜드 단독 국왕으로 등극하였고, 잉글랜드와 덴마크, 노르웨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강력한 북해 제국(North Sea Empire)이 탄생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1081년 10월 18일] 디라키온 전투와 노르만족의 비잔티움 제국군 격파
- 남이탈리아를 평정한 노르만족의 군주 로베르 기스카르는 발칸반도를 침공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품고, 아드리아해 연안의 핵심 군사 요충지인 디라키온(Dyrrhachium)을 포위 공격했다.
- 1081년 10월 18일 일리리아 연안에서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Alexios I Komnenos, 1048-1118)가 직접 이끄는 비잔티움 주력군 및 바랑기아 친위대와 로베르 기스카르(Robert Guiscard, 1015경-1085)의 노르만 중기병대가 격돌하였으며, 노르만군의 맹렬한 돌격으로 제국군이 참패했다.
- 비잔티움 제국은 서부 발칸 방어선이 붕괴되어 막대한 군사적 타격을 입었으며, 콤네노스 왕조가 노르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베네치아 공화국에 파격적인 해상 무역 특혜를 부여하는 금우교서를 반포하는 등 향후 제국의 경제적 예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2세기(1101-1200년) 주요 사건
[1166년 10월 18일] 대(大) 미카엘의 시리아 정교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서품
- 12세기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 세력의 팽창 속에서 시리아 정교회는 이민족 통치자들의 간섭과 내부 교단 분열로 인해 교회의 영적 질서를 바로잡고 교단사를 체계화할 강력한 영적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 1166년 10월 18일 아미다 인근의 모르 바르 사우마 수도원(Mor Bar Sauma Monastery)에서 뛰어난 신학자이자 역사가인 미카엘(Michael the Syrian, 1126-1199)이 주교단의 만장일치 추대를 받아 시리아 정교회의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미카엘 1세'로 엄숙히 서품되었다.
- 33년간 교회를 이끌며 방대한 세계 연대기인 《미카엘의 연대기》를 집필하여 고대부터 중세 중기까지의 중동 및 십자군 시대 역사를 보존하였으며, 시리아 기독교의 전례와 자치권을 수호하여 중세 오리엔트 정교회 르네상스의 초석을 놓았다.
13세기(1201-1300년) 주요 사건
[1281년 10월 18일] 교황 마르티노 4세의 아라곤 국왕 페드로 3세 파문
- 프랑스 출신의 교황 마르티노 4세는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앙주 가문의 샤를 1세를 전폭 지지하였으나, 시칠리아인들이 가혹한 프랑스 지배에 반발하여 일으킨 시칠리아 만종 사건에 아라곤 왕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자 격노했다.
- 1281년 10월 18일 교황 마르티노 4세(Martin IV, 1210경-1285)는 로마 교황청에서 칙서를 발표하여 시칠리아 왕권을 찬탈하고 교황령의 종주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아라곤 국왕 페드로 3세(Peter III of Aragon, 1239-1285)에게 공식 파문(Excommunication)을 선고했다.
- 교황청의 파문에도 불구하고 페드로 3세는 시칠리아 지배를 공고히 하였으며, 이는 프랑스와 아라곤 간의 대규모 군사 충돌인 아라곤 십자군 전쟁(Aragonese Crusade)으로 비화하여 중세 지중해 서부 패권이 아라곤 연합왕국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14세기(1301-1400년) 주요 사건
[1356년 10월 18일] 스위스 바젤 대지진 발생과 도시 궤멸 참사
- 알프스 조산대 북부의 라인 지구대(Rhine Graben) 단층선은 지각판의 지속적인 충돌 압력으로 인해 단층 파열 에너지를 축적해 왔으며, 스위스 북부와 신성 로마 제국 접경 지역은 중세 내내 잠재적인 강진 발생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 1356년 10월 18일 성 루카의 날 저녁 스위스 바젤(Basel) 일대 지하에서 모멘트 규모 6.5에서 7.1로 추정되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였고, 뒤이어 일어난 대화재로 바젤 대성당을 비롯한 도시 건축물의 90% 이상과 인근 수십 개의 고성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 알프스 이북 중부 유럽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지진 재해로 기록되어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 목조 구조를 지양하고 내진성을 고려한 견고한 석조 양식으로 도시를 전면 재건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유럽 고지진학 연구의 결정적 기준점이 되었다.
[1386년 10월 18일]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설립과 학문적 개교
- 서방교회 대분열(Western Schism)로 파리 대학교에서 축출된 독일인 교수와 학생들이 대거 유입되자, 팔츠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Ruprecht I, 1309-1390)는 영내에 신학 및 법학을 가르칠 최고 학문 기관을 세우고자 교황 우르바노 6세(Urban VI, 1318경-1389)로부터 설립 인가 칙서를 획득했다.
- 1386년 10월 18일 팔츠 선제후국의 수도 하이델베르크 성령 교회에서 초대 총장 마르실리우스 폰 잉엔(Marsilius von Inghen, 1340경-1396)의 주재 아래 장엄한 개교 축하 미사가 봉헌되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Heidelberg University)가 공식 출범했다.
- 신성 로마 제국 영내에서 프라하와 빈에 이어 세 번째이자 오늘날 독일 연방공화국 영토 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 및 근대 철학과 자연과학의 세계적 요람으로 수많은 석학을 배출하는 불멸의 학문적 초석을 놓았다.
16세기(1501-1600년) 주요 사건
[1540년 10월 18일] 에르난도 데 소토의 마빌라 기습 전투와 요새 파괴
- 북미 남동부 내륙 탐험 중 황금을 약탈하려던 스페인 원정대는 앨라배마강 유역을 통치하던 미시시피 문화권의 강력한 지배자 투스칼루사(Tuskaloosa, 생몰년 미상) 추장을 인질로 결박한 뒤, 식민지 보급품과 원주민 노예 징발을 강요하며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 1540년 10월 18일 요새 도시 마빌라(Mabila)에 진입한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 1495경-1542)의 스페인군은 매복해 있던 수천 명의 원주민 전사들에게 기습을 당했으나, 기병 돌격과 화승총 화력으로 성벽을 돌파한 뒤 목조 가옥 전체를 방화하여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 스페인군 역시 막대한 사상자와 장비 손실을 입어 북미 정복과 황금 탐색 작전이 사실상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었으며, 투스칼루사 추장의 결사 항전에도 불구하고 번영하던 미시시피 토착 문명이 유럽 전염병과 침략의 화마 속에 급격히 붕괴하는 비극적 서막이 되었다.
[1561년 10월 18일] 센고쿠 시대 제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와 치열한 격돌
- 시나노국 북부의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해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과 카이의 다케다 신겐은, 지쿠마강과 사이강이 합류하는 전략 요충지 카와나카지마(川中島) 평원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대규모 군사 충돌을 거듭하며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 1561년 10월 18일(에이로쿠 4년 음력 9월 10일) 짙은 안개 속에서 하치만바라로 은밀히 남하한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1530-1578)의 군세는 학익진을 펼친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1521-1573)의 본진을 차륜전법으로 맹타하며 지휘관 간의 단기접전까지 벌이는 처절한 혈전을 펼쳤다.
- 다케다군의 별동대가 배후를 기습하는 '딱따구리 전법'으로 우에스기군을 물러서게 하면서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무승부로 끝났으나, 양측 모두 수천 명의 정예 병력과 유력 무장들을 잃어 센고쿠 시대 최대의 유혈 격전이자 군사학적 전술의 고전적 사례로 역사에 남았다.
[1565년 10월 18일] 일본 규슈 후쿠다만 해전과 포르투갈 무역선 격퇴
- 히젠국의 다이묘 오무라 스미타다가 크리스트교로 개종하고 후쿠다항을 포르투갈 무역항으로 전격 개항하자, 남만 무역의 독점적 경제 이익을 상실한 인근 히라도의 영주 마쓰라 다카노부(松浦隆信, 1529-1599)는 거액의 은과 화물을 탈취하기 위해 무력 기습을 결의했다.
- 1565년 10월 18일(에이로쿠 8년 음력 9월 25일) 마쓰라 가문의 무사들이 탑승한 일본 소형 군선 60여 척이 후쿠다만에 정박 중이던 주앙 페레이라(João Pereira, 생몰년 미상) 사령관의 대형 포르투갈 카락 무역선 나우(Nau)를 포위 공격했으나, 포르투갈 함포의 집중 일제사격에 가로막혀 궤멸당했다.
- 서양 세력과 일본 무사 집단 간에 공식 기록된 사상 최초의 해상 전투로 기록되었으며, 서양 함포의 압도적인 해상 화력을 실감한 예수회 선교사들과 포르투갈 상인들이 방어에 더욱 유리한 천혜의 심수항 나가사키(長崎)를 새로운 영구 무역 거점으로 개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597년 10월 18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제3차 무적함대 출정 실패
- 1588년 아르마다 참패와 1596년 영국-네덜란드 연합군의 카디스 기습 약탈에 격노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펠리페 2세는, 아일랜드 가톨릭 반란 세력을 지원하고 잉글랜드 남부 팔머스 항구를 기습 점령하기 위해 세 번째 무적함대 편성을 강행했다.
- 1597년 10월 18일 마르틴 데 파디야(Martín de Padilla, 1540-1604) 백작이 지휘하는 140여 척의 스페인 대함대가 코루냐 항을 출항하여 잉글랜드 해협으로 진격했으나, 비스케이만 인근에서 불어닥친 파괴적인 대폭풍을 만나 기함이 좌초되고 함선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작전이 와해되었다.
- 잉글랜드 해안에 고립된 잔여 스페인 함선들이 나포되거나 격침되면서 펠리페 2세의 대영 침공 기도는 영구히 좌절되었으며, 연이은 원정 실패에 따른 막대한 전비 탕진으로 스페인 왕실 재정이 국가 파산을 선언하고 1604년 런던 조약을 통한 종전 협상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1599년 10월 18일] 셰림베르 전투 승리와 미하이 용감공의 루마니아 역사상 첫 통일
-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맞서 왈라키아 공국의 자주권을 지키려던 군주 미하이 2세는, 친폴란드 및 친오스만 노선으로 선회하며 기독교 신성 동맹을 배신하고 자신을 위협하던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안드라스 바토리 추기경 겸 대공을 타도하기 위해 카르파티아산맥을 넘어 진격했다.
- 1599년 10월 18일 시비우 인근 셰림베르(Șelimbăr) 평원에서 미하이 용감공(Mihai Viteazul, 1558-1601)이 이끄는 왈라키아-세케이 연합군은 안드라스 바토리(Andrew Báthory, 1563-1599)의 트란실바니아 군대를 격파하고 도주하던 적장을 살해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 미하이는 알바율리아에 무혈 입성하여 트란실바니아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이듬해 몰다비아까지 복속시킴으로써 왈라키아·트란실바니아·몰다비아를 하나로 묶는 루마니아 역사상 최초의 통합을 달성하였으며, 훗날 19세기 근대 루마니아 민족국가 탄생의 가장 위대한 정신적 표상이 되었다.
17세기(1601-1700년) 주요 사건
[1630년 10월 18일] 스코틀랜드 프렌드라우트성 의문의 전소 참사
- 스코틀랜드 북동부 애버딘셔에서 토지 소유권과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크라이튼 가문과 유력 귀족 고든 가문 사이의 유혈 분쟁이 격화되자, 사태를 중재하려던 로스마이어스 후작은 평화적 화해의 표시로 친족들을 프렌드라우트 영지로 파견했다.
- 1630년 10월 18일 밤 제임스 크라이튼(James Crichton of Frendraught, 1598경-1667)의 거처인 프렌드라우트성(Frendraught Castle) 구 탑에서 원인 불명의 급격한 화재가 발생하여, 상층부에 머물던 앱보인 자작 존 고든(John Gordon, 1610경-1630)을 비롯한 고든 가문 일행 6명이 굳게 잠긴 철문을 열지 못하고 전원 소사했다.
- 고든 가문이 영주의 고의 방화와 배신 음모를 주장하며 피비린내 나는 보복 약탈전을 감행해 북부 하이랜드 일대가 극심한 무법 혼란에 휩싸였으며, 국왕 찰스 1세의 조사에도 명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스코틀랜드 전통 민요와 문학에서 가장 비극적인 화재 미스터리로 남았다.
[1648년 10월 18일] 보스턴 제화공 조합 결성과 북미 최초 노동 단체 탄생
- 17세기 전반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미숙련 노동자들의 조악한 구두 유통으로 제품 품질 저하와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자, 보스턴의 숙련된 신발 제작 기술자들은 직업적 권익을 지키고 엄격한 품질 표준을 수호할 제도적 보호 장치를 식민지 의회에 청원했다.
- 1648년 10월 18일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총법원(General Court)은 보스턴과 찰스타운의 제화공들에게 3년간 자체 규정을 제정하고 불량 구두 유통을 단속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결사 설립 인가장을 공식 승인하여 교부했다.
- 이는 북미 영국 식민지 역사상 공권력의 합법적 승인을 받은 사상 최초의 노동 조직이자 직능 길드(Guild) 결성으로 기록되었으며, 초기 식민지 제조업의 품질 관리 체계를 정착시킴과 동시에 향후 19세기 미국 근대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체제 발전의 유서 깊은 제도적 첫 출발점이 되었다.
18세기(1701-1800년) 주요 사건
[1748년 10월 18일] 아헨 조약 체결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 합스부르크가의 카를 6세 사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황위 및 영토 계승권을 둘러싸고 프로이센, 프랑스, 스페인 연합군과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연합군이 유럽 본토와 북미 및 인도 식민지 전역에서 8년간에 걸친 참혹한 소모전을 지속했다.
- 1748년 10월 18일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도시 아헨(Aachen)에서 영국과 프랑스 및 네덜란드 대표단이 주도한 가운데,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1717-1780)의 왕위 계승 인정과 프로이센의 실레지아 영유를 공식 확약한 아헨 조약(Treaty of Aix-la-Chapelle)이 공식 체결되었다.
- 8년에 걸친 대규모 국제 전쟁이 공식 종식되고 오스트리아의 국본조칙이 국제적으로 공인받았으나, 실레지아를 둘러싼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영토 분쟁이 온전히 해소되지 않아 불과 8년 뒤 1756년 7년 전쟁(Seven Years' War)으로 재폭발하는 위태로운 미봉책으로 남았다.
[1775년 10월 18일]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시인 필리스 휘틀리의 노예 해방
- 서아프리카에서 보스턴으로 노예로 팔려왔던 필리스 휘틀리는 탁월한 문학적 천재성을 발휘하여 영시를 창작했으나, 아프리카계 흑인은 고도의 지적 능력을 지닐 수 없다는 인종차별적 편견으로 인해 북미 식민지에서는 저서 출판조차 완강히 거부당하고 있었다.
- 1775년 10월 18일 런던에서 시집 《다양한 종교적·도덕적 주제에 관한 시집》을 출간해 전 영국 지식인 사회의 열렬한 찬사를 받고 돌아온 필리스 휘틀리(Phillis Wheatley, 1753경-1784)는, 영국 후원자들의 강력한 여론 압박에 힘입어 보스턴의 주인 존 휘틀리 가문으로부터 법적인 공식 해방 증서를 교부받았다.
-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이자 여성 시인으로서 자유를 쟁취하여 흑인도 백인과 완전히 동등한 지적·예술적 영혼을 지녔음을 만천하에 입증하였으며, 조지 워싱턴의 찬사를 받는 등 초기 미국 노예제 폐지 운동의 가장 찬란한 도덕적 상징으로 우뚝 섰다.
[1775년 10월 18일] 미국 독립 전쟁 중 영국 해군의 팰머스 방화 사건
- 미국 독립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 초기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팰머스(Falmouth, 현 메인주 포틀랜드) 주민들이 영국군 군수품 징발을 거부하고 무장 저항을 펼치자, 영국 해군은 식민지 민병대의 기세를 꺾기 위한 본보기식 보복 타격을 계획했다.
- 1775년 10월 18일 오전 헨리 모왓(Henry Mowat, 1734-1798) 중위가 지휘하는 4척의 영국 군함이 팰머스 앞바다에서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 거주 구역을 향해 무차별 함포 사격을 퍼붓고 상륙 방화를 자행하여 도심 건물 400여 채를 전소시켰다.
- 잔혹한 민간 초토화 작전은 13개 식민지 민중의 반미 독립 여론을 급격히 결집시키는 역풍을 불렀으며,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장군의 요청에 따라 제2차 대륙회의(Second Continental Congress)가 정규 대륙 해군(Continental Navy) 창설을 공식 의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779년 10월 18일] 미국 독립 전쟁 서배너 포위전의 연합군 퇴각과 포위 해제
- 미국 독립 전쟁 중 영국군이 남부 전선을 장악하기 위해 조지아주 서배너(Savannah)를 점령하자, 벤저민 링컨(Benjamin Lincoln, 1733-1810) 소장의 미 대륙군과 프랑스 해군은 도시 탈환을 위한 합동 포위 공격을 감행했다.
- 1779년 10월 9일 총공격에서 미국 기병의 아버지로 불린 카지미에시 푸와스키(Kazimierz Pułaski, 1745-1779) 장군이 전사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자, 10월 18일 샤를 앙리 데스탱(Charles Henri d'Estaing, 1729-1794) 백작이 지휘하는 프랑스-미국 연합군은 포위를 전격 해제하고 철수를 단행했다.
- 연합군의 작전 실패로 서배너는 종전 직전까지 영국의 지배 아래 남게 되었으며, 영국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공격 등 남부 전역(Southern theater) 공세를 강화하는 전략적 발판이 됨과 동시에 대륙군이 지구전으로 군사 전략을 전환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19세기(1801-1900년) 주요 사건
1851-1860년 주요 사건
[1851년 10월 18일] 허먼 멜빌의 해양 소설 《고래(모비 딕)》 런던 초판 출간
- 19세기 중반 북미 포경 산업의 황금기 속에서 포경선 선원 경험을 쌓은 미국의 작가 허먼 멜빌은, 1820년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침몰한 에식스호 실화와 전설적인 백색 고래 모카 딕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의 실존적 투쟁을 다룬 대작 집필에 몰두했다.
- 1851년 10월 18일 영국 런던의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 1794-1871) 출판사는 에이해브 선장과 거대 백경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의 소설을 《고래(The Whale)》라는 제목의 3권본 양장본으로 공식 출간했다.
- 출간 당시에는 파격적인 서사 구조와 난해한 철학적 비유로 인해 상업적 실패와 혹평을 겪었으나, 1920년대 '멜빌 부흥(Melville Revival)'을 거치며 재평가되어 《모비 딕(Moby-Dick)》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 명작으로 영구히 자리매김했다.
[1860년 10월 18일] 베이징 조약 체결과 제2차 아편전쟁의 최종 종결
- 애로호 사건으로 촉발된 제2차 아편전쟁(Second Opium War) 중 청나라 조정이 톈진 조약 비준을 거부하자, 제임스 브루스 엘긴 백작이 지휘하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수도 베이징을 침공하여 황실 정원인 원명원(圓明園)을 철저히 방화·약탈했다.
- 1860년 10월 18일 베이징 예부아문에서 청나라 전권대신 공친왕 혁흔(恭親王 奕訢, 1833-1898)과 영국 전권대사 제임스 브루스 엘긴(James Bruce Elgin, 1811-1863) 백작은 톈진 조약 비준과 구룡반도 할양을 명시한 불평등 조약인 베이징 조약(Convention of Peking)에 최종 서명했다.
- 주룽반도 남부가 영국령 홍콩에 영구 병합되고 톈진 개항과 외국 공관 상주 및 기독교 포교의 자유가 강제 허용되었으며, 청조의 중화 질서가 완전히 붕괴되면서 서구 문물을 적극 수용하려는 양무운동(洋務運動)이 태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61-1870년 주요 사건
[1867년 10월 18일] 미국의 러시아령 알래스카 공식 영토 인수와 알래스카의 날
- 크림 전쟁 패전 이후 재정난에 직면한 러시아 제국이 영국에 알래스카를 빼앗길 것을 우려해 매각을 타진하자, 미국의 윌리엄 H. 수어드(William H. Seward, 1801-1872) 국무장관은 대륙 팽창과 태평양 진출을 위해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 매입 조약을 성사시켰다.
- 1867년 10월 18일 알래스카 싯카(Sitka)의 총독 관저 광장에서 러시아 제국 해군과 미 연방 육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러시아 국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게양되었으며, 러벨 루소(Lovell Rousseau, 1818-1869) 준장이 주권 이양을 공식 선포했다.
- 당시 '수어드의 얼음 상자'라는 의회의 비난을 받았으나 이후 대규모 금광과 유전 및 전략적 군사 요충지로서의 가치가 입증되었으며, 오늘날 알래스카주에서는 이날을 주 공식 공휴일인 '알래스카의 날(Alaska Day)'로 지정하여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1881-1890년 주요 사건
[1887년 10월 18일] 요하네스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 초연
-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 요하네스 브람스는 오랜 친구였던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의 가정사 갈등으로 인한 수년간의 절교를 청산하고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바이올린과 첼로가 협주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현악곡을 작곡했다.
- 1887년 10월 18일 독일 쾰른 귀르체니히 음악당에서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직접 지휘봉을 잡은 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과 첼리스트 로베르트 하우스만(Robert Hausmann, 1852-1909)의 협연으로 《이중 협주곡 가단조(Double Concerto)》가 세계 초연되었다.
- 바로크 시대 콘체르토 그로소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두 독주 악기의 고난도 기교와 관현악의 웅장함을 결합한 브람스의 마지막 관현악 걸작으로 남았으며, 요아힘과의 역사적인 예술적 우정을 극적으로 회복하는 음악사적 징검다리가 되었다.
1891-1900년 주요 사건
[1898년 10월 18일] 미국-스페인 전쟁 후 미국의 푸에르토리코 통치권 공식 인수
- 미국-스페인 전쟁(Spanish–American War) 발발 후 넬슨 마일스(Nelson A. Miles, 1839-1925) 장군이 이끄는 미군이 카리브해 요충지인 스페인령 푸에르토리코에 상륙해 점령 작전을 펴자, 패전한 스페인은 강화 의정서를 통해 섬의 통치권을 미국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 1898년 10월 18일 수도 산후안의 라 포르탈레사(La Fortaleza) 총독 관저에서 스페인 국기가 내려지고 미 육군 존 R. 브룩(John R. Brooke, 1838-1926) 소장이 이끄는 미군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성조기가 게양되며 미국의 군정 통치가 정식 개시되었다.
- 400여 년에 걸친 스페인의 식민 지배가 종식되고 같은 해 12월 파리 조약 체결을 통해 미국의 정식 영토로 귀속되었으며, 이후 1917년 존스-샤프로스 법 제정을 거쳐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이 미국 시민권을 부여받는 현대 헌정사의 중대한 출발점이 되었다.
[1900년 10월 18일] 베른하르트 폰 뷜로 백작의 독일 제국 제4대 총리 취임
- 빌헬름 2세 황제의 친정 체제 아래에서 고령의 클로트비히 추 호엔로에실링스퓌르스트 총리가 의회와의 갈등 및 건강 악화로 사의를 표명하자, 황제는 대외 팽창 노선인 '세계정책(Weltpolitik)'을 충실히 보좌할 관료를 물색했다.
- 1900년 10월 18일 빌헬름 2세(Wilhelm II, 1859-1941) 황제는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며 청나라 침략과 대규모 해군 군비 확장을 주도했던 외교관 베른하르트 폰 뷜로(Bernhard von Bülow, 1849-1929) 백작을 독일 제국 제4대 제국수상(총리) 겸 프로이센 총리로 전격 임명했다.
- 뷜로 총리는 대양함대 건설과 해외 식민지 확장을 강력히 추진하며 제국주의 정책을 가속화하였으나, 영국·프랑스·러시아를 자극하여 3국 협상(Triple Entente)의 결성을 부르고 독일을 고립시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치닫는 외교적 위기를 초래했다.
20세기(1901-2000년) 주요 사건
1911-1920년 주요 사건
[1912년 10월 18일] 세르비아 페타르 1세 국왕의 '세르비아 인민에게' 대국민 선언과 참전
- 오스만 제국의 쇠퇴 속에 발칸반도 내 슬라브 동포들의 해방과 코소보 등 옛 영토 회복을 목표로 불가리아·그리스·몬테네그로와 발칸 동맹(Balkan League)을 결성한 세르비아 왕국은, 동맹국들의 대오스만 선전포고에 발맞추어 전면전에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 1912년 10월 18일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 국왕 페타르 1세(Petar I, 1844-1921)는 '세르비아 인민에게(To the Serbian People)'라는 대국민 포고문을 발표하여 오스만 제국의 기독교인 억압을 규탄하고 민족 해방을 위한 거국적 성전을 선포했다.
- 세르비아군은 곧이어 쿠마노보 전투에서 오스만군을 대파하고 코소보와 마케도니아를 장악하여 영토를 두 배로 확장하였으나, 이 팽창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심각한 적대 갈등을 낳아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의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1914년 10월 18일] 요제프 켄테니히 신부의 가톨릭 쇤슈타트 사도 운동 창립
-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유럽 전역이 참혹한 살육의 전장으로 변하고 젊은 신학생들이 군대로 징집되자, 팔로티회 소속의 요제프 켄테니히 신부는 청년들이 전장의 혼란 속에서도 신앙의 순결과 사명을 지켜낼 수 있는 영적 쇄신 운동을 고심했다.
- 1914년 10월 18일 독일 라인란트 팔라티노 발렌다르 근교의 쇤슈타트(Schoenstatt) 소성당에서 지도신부 요제프 켄테니히(Josef Kentenich, 1885-1968)와 신학생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성당을 영적 안식처로 삼아줄 것을 서원하는 '사랑의 계약(Covenant of Love)'을 맺고 '쇤슈타트 사도 운동'을 공식 창립했다.
- 평신도의 내적 성화와 일상 속 복음 실천을 강조한 이 영성 운동은 나치 정권의 탄압과 켄테니히 신부의 다하우 강제수용소 투옥을 견뎌내며 전 세계 100여 개국으로 확산되었으며, 현대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국제 사도직 신심 단체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1921-1930년 주요 사건
[1921년 10월 18일] 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공식 수립
- 러시아 내전(Russian Civil War) 말기 표트르 브란겔 남작의 백군이 크림반도에서 패퇴하고 볼셰비키가 일대를 장악하자, 신생 소비에트 정권은 다민족으로 구성된 크림반도의 정치적 안정과 토착 크림 타타르인의 민족적 자결 요구를 수용할 자치 행정 체제를 모색했다.
- 1921년 10월 18일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와 인민위원회는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과 미하일 칼리닌(Mikhail Kalinin, 1875-1946)의 서명을 통해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RSFSR) 산하 '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Crimean ASSR)'을 공식 수립하는 법령을 전격 공포했다.
- 크림 타타르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지정되며 초기 민족 문화 진흥(코레니자치야) 정책이 추진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 정권의 대규모 타타르족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와 자치 공화국 폐지로 이어지는 크림반도 현대사의 참혹한 비극의 서막이 되었다.
[1922년 10월 18일] 영국 방송사(BBC) 컨소시엄 창립과 전국 공영 라디오망 태동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무선 전신 및 라디오 기술이 발전하면서 민간 무선기기 제조업체들 간의 난립으로 전파 혼신과 상업화 폐해가 우려되자, 영국 체신청(General Post Office)은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고 전국 단일 무선 방송망을 구축하기 위한 단일 연합체 구성을 유도했다.
- 1922년 10월 18일 마르코니 무선전신회사와 메트로폴리탄-비커스 등 6대 전기·통신 제조업체 대표들은 런던에서 연합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초대 총지배인 존 리스(John Reith, 1889-1971)의 지휘 아래 전국 단위의 방송 서비스를 제공할 '영국 방송사(British Broadcasting Company, 현 BBC)'를 공식 창립했다.
- 상업 광고를 배제하고 교육·정보·오락을 균형 있게 제공하는 세계 공영방송의 표준 모델을 확립하였으며, 1927년 국왕의 칙허장을 획득해 비영리 공영 법인인 영국방송공사(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로 재출범하여 오늘날 글로벌 방송 저널리즘의 중추로 발전하는 역사적 초석을 놓았다.
[1929년 10월 18일] 캐나다 에드워즈 대 캐나다 판결과 여성의 법적 '인간(Person)' 인정
- 캐나다 연방 헌법인 1867년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에 규정된 상원의원 자격 요건인 '적격자(Qualified Persons)' 문구를 두고, 캐나다 대법원은 전통적인 영국 보통법 판례를 내세워 여성이 법적으로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독립적 '인간(Person)'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 1929년 10월 18일 런던 추밀원 사법위원회(Judicial Committee of the Privy Council)는 에밀리 머피(Emily Murphy, 1868-1933) 등 '5인의 유명 여성(Famous Five)'이 제기한 상고를 받아들여 존 생키(John Sankey, 1866-1948) 대법관의 주도로 캐나다 대법원 판결을 전격 파기하고 여성이 법적 인간임을 선언했다.
- 헌법을 시대 변화에 맞추어 유기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살아있는 나무 원칙(Living tree doctrine)'을 영연방 헌정사에 확립하였으며, 이듬해 캐나다 역사상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이 임명되는 등 영연방 전역에서 여성의 참정권과 공직 진출 권리를 획기적으로 확장시킨 위대한 인권사적 이정표가 되었다.
1941-1950년 주요 사건
[1944년 10월 18일] 소련 붉은 군대의 체코슬로바키아 해방 작전 본격 돌입
- 1938년 뮌헨 협정과 1939년 나치 독일의 무력 침공으로 강제 해체되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가혹한 점령 통치에 신음하고 있었으며, 동부 전선에서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나치 중부집단군을 궤멸시킨 소련군은 카르파티아산맥을 넘어 동유럽 점령지 탈환에 총력을 기울였다.
- 1944년 10월 18일 이반 코네프(Ivan Konev, 1897-1973) 원수의 제1우크라이나전선군과 이반 페트로프(Ivan Petrov, 1896-1958) 대장의 제4우크라이나전선군은 두클라 고개(Dukla Pass)의 험준한 나치 방어선을 돌파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어 대대적인 해방 공세를 개시했다.
- 루드비크 스보보다(Ludvík Svoboda, 1895-1979)가 이끄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과 연대하여 슬로바키아 민족봉기를 지원하고 조국 영토 탈환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였으나, 전후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종속되면서 1948년 공산화 쿠데타로 직행하는 냉전의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1944년 10월 18일] 에르빈 롬멜 원수의 울름 국가장 거행과 진실 은폐
- 제2차 세계 대전 중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사막의 여우'로 명성을 떨친 에르빈 롬멜 원수는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아,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보낸 밀사들 앞에서 청산가리를 삼키고 강요된 자살을 택했다.
- 1944년 10월 18일 독일 남부 울름(Ulm) 시청에서 나치 당국은 패전 위기 속 군부 동요를 막기 위해 그의 죽음을 전방 공습 부상으로 인한 뇌출혈로 날조하고, 히틀러의 대리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Gerd von Rundstedt, 1875-1953) 원수를 파견하여 성대한 국가장(State funeral)을 엄수했다.
- 나치 선전 기구의 철저한 은폐 공작 아래 장례식 직후 시신은 화장되었으나 군 내부의 반히틀러 불신을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하였으며, 종전 후 비극적인 최후의 진실이 명백히 폭로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기 독일 국방군 고위 지휘관들의 맹종과 파멸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다.
[1945년 10월 18일] 베네수엘라 10월 군사 정변과 이사이야스 메디나 앙가리타 대통령 실각
- 193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인 민주화와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던 이사이야스 메디나 앙가리타 대통령 정권은 군부 소장파 장교들의 처우 불만과 보통선거권 도입을 요구하는 제1야당 민주행동당(AD)의 급진적 선거 제도 개혁 압박에 직면해 있었다.
- 1945년 10월 18일 카를로스 델가도 찰바우드(Carlos Delgado Chalbaud, 1909-1950),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Marcos Pérez Jiménez, 1914-2001), 마리오 바르가스(Mario Vargas, 1914-1949)가 이끄는 군사애국연합 장교단은 민주행동당과 결탁해 수도 카라카스에서 무장 쿠데타를 일으켜 당일 밤 메디나 대통령을 전격 축출했다.
- 로물로 베탕쿠르(Rómulo Betancourt, 1908-1981)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정부평의회가 수립되어 사상 첫 직접선거 헌법을 제정하는 '3개년 민주주의(Trienio Adeco)' 시대를 열었으나, 1948년 또다시 군부 반동 쿠데타가 발생하여 페레스 히메네스의 철권 군사독재로 회귀하는 격변을 낳았다.
[1945년 10월 18일] 후안 도밍고 페론과 에바 두아르테의 공식 혼인 서약
- 1945년 10월 17일 수십만 명의 노동자 군중 봉기(충성의 날) 덕분에 군부 보수파의 구금에서 극적으로 풀려난 후안 도밍고 페론 대령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곁을 헌신적으로 지킨 유명 라디오 드라마 배우 에바 두아르테와의 결속을 공고히 다지고자 했다.
- 1945년 10월 18일 부에노스아이레스주 후닌(Junín)의 등기소에서 후안 도밍고 페론(Juan Domingo Perón, 1895-1974)과 에바 두아르테(Eva Duarte, 1919-1952)는 소수의 최측근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적인 민사 결혼 등록을 마치고 법적 부부가 되었다.
- '에비타(Evita)'로 불리게 된 에바 페론은 노동자와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하며 남편의 대선 승리를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반자로 부상하였으며, 부부의 결합은 현대 아르헨티나의 대중 포퓰리즘 정치인 페론주의(Peronism)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권력 신화의 서막을 열었다.
[1945년 10월 18일] 클라우스 푹스의 미국 플루토늄 원폭 설계도 소련 밀반출
-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의 극비 핵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영국 대표단으로 참여했던 독일 출신 이론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는, 미국의 전후 핵 독점이 인류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될 것이라는 신념 아래 소련에 핵 기밀을 넘기기로 결심했다.
- 1945년 10월 18일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에 근무하던 클라우스 푹스(Klaus Fuchs, 1911-1988)는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 소련 첩보망 접선책 해리 골드(Harry Gold, 1910-1972)를 만나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던 팻 맨(Fat Man) 플루토늄 폭탄의 핵심 폭폭 내폭 렌즈 설계도를 전격 전달했다.
- 이 기밀문서는 이고리 쿠르차토프(Igor Kurchatov, 1903-1960)가 이끄는 소련 핵 개발 연구진에 직송되어 미국의 핵 독점을 무너뜨리고 1949년 소련 최초의 원폭 실험(RDS-1) 성공을 수년 앞당기는 결정적 계기가 됨으로써 냉전기 핵 군비 경쟁을 본격화했다.
1951-1960년 주요 사건
[1952년 10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일본시리즈 2연패 달성
- 센트럴리그를 2년 연속으로 제패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명장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의 지휘 아래, 쓰루오카 가즈토 감독이 이끄는 퍼시픽리그 챔피언 난카이 호크스를 상대로 일본시리즈 5차전까지 3승 2패의 팽팽한 리드를 잡고 홈구장 도쿄 고라쿠엔에서 최종 승부를 겨루었다.
- 1952년 10월 18일 도쿄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일본시리즈(Japan Series) 제6차전에서 미즈하라 시게루(水原茂, 1909-1982) 감독의 요미우리 자이언츠(読売ジャイアンツ)는, 선발 벳쇼 다케히코(別所毅彦, 1922-1999)의 9이닝 2실점 완투 역투와 중심 타선의 끈질긴 적시타에 힘입어 난카이 호크스를 3대 2로 제압했다.
-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1951년에 이어 일본 프로야구 일본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였으며, 간판타자 아오타 노보루(青田昇, 1924-1997) 등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이듬해 1953년 3연패로 이어지는 1950년대 요미우리 제1차 황금기의 철옹성 같은 독주 체제를 공고히 다졌다.
[1954년 10월 18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리젠시 TR-1 발표와 트랜지스터 라디오 상용화
- 1947년 벨 연구소의 트랜지스터 발명 이후 진공관을 대체할 고체 전자 소자의 대량 양산 기술이 모색되던 중,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실리콘 및 게르마늄 트랜지스터의 상업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휴대용 소비자 전자기기 개발을 야심 차게 추진했다.
- 1954년 10월 18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패트릭 해거티(Patrick E. Haggerty, 1914-1980) 부사장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사는, 인디애나폴리스의 IDEA사와 합작하여 4개의 게르마늄 트랜지스터를 탑재한 주머니 크기의 소형 라디오 '리젠시 TR-1(Regency TR-1)'의 출시를 공식 발표했다.
- 크고 무거운 진공관 라디오를 대체하여 개인이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는 모바일 오디오 시대를 열었으며, 청소년 중심의 로큰롤 음악 대중화를 촉발함과 동시에 훗날 일본 소니(Sony)의 부상과 실리콘밸리 반도체 산업 생태계 태동의 위대한 기폭제가 되었다.
1961-1970년 주요 사건
[1963년 10월 18일] 프랑스의 우주 고양이 펠리세트 탄생과 준궤도 우주 비행 성공
-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우주 경쟁 속에서 독자적인 항공우주 역량을 확보하려던 프랑스 항공의학연구센터(CERMA)는, 로켓 발사 충격과 극한의 무중력 환경이 포유류의 중추신경계와 전정기관에 미치는 생리학적 영향을 정밀 규명하기 위해 동물 탑재 비행 시험을 기획했다.
- 1963년 10월 18일 알제리 사하라 사막의 함마기르 미사일 발사장에서 뇌에 신경 전극을 이식받은 파리 출신의 암컷 길고양이 펠리세트(Félicette, 1960경-1964)를 태운 베로니크 AGI 47(Véronique AGI 47) 액체연료 로켓이 발사되어, 고도 157km의 준궤도까지 도달한 뒤 캡슐 낙하산을 통해 사막 지대에 안전하게 착륙 귀환했다.
- 인류 역사상 우주 공간으로 진출했다가 살아 돌아온 최초이자 유일한 고양이로 공인받으며 프랑스 우주 의학 연구에 귀중한 신경 생리학 데이터를 제공하였으나, 귀환 3개월 뒤 뇌 조직 검사를 위해 안락사되는 초기 우주 탐사사 속 동물 실험의 씁쓸한 이면을 남겼다.
[1967년 10월 18일] 소비에트 연방 베네라 4호의 금성 대기권 최초 진입 및 관측
- 1960년대 초 미·소 양국의 우주 개발 경쟁이 금성 탐사로 본격 확장되면서 지표면 기압과 온도, 대기 구성 성분이 베일에 싸여 있던 가운데, 소비에트 연방의 라보치킨 설계국은 극한의 고온·고압 환경을 견디며 행성 내부 데이터를 직접 수집할 하강 착륙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 1967년 10월 18일 4개월간의 행성 간 비행을 마친 소련의 무인 우주 탐사선 베네라 4호(Venera 4)가 금성 대기권에 성공적으로 돌입하였으며, 섭씨 260도가 넘는 열기와 22기압의 압력에 짓눌려 기체가 압괴되기 직전까지 낙하산을 펼친 채 96분 동안 대기 분석 데이터를 모스크바 통제국으로 실시간 송신했다.
- 인류 역사상 다른 행성의 대기 환경을 현장에서 직접 측정한 사상 최초의 탐사선으로 기록되었으며, 금성 대기의 90% 이상이 이산화탄소로 채워져 극단적인 온실효과가 발생하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여 후속 행성 탐사와 지구 환경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1-1980년 주요 사건
[1971년 10월 18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통산 4번째 우승
- 1971년 내셔널리그를 제패한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월드시리즈 원정 1·2차전을 연거푸 패하며 벼랑 끝에 몰렸으나, 슈퍼스타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맹타와 탄탄한 투수진의 역투를 바탕으로 6차전까지 3승 3패의 팽팽한 균형을 맞추며 최종 7차전에 돌입했다.
- 1971년 10월 17일(한국 시각 10월 18일 새벽) 볼티모어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7차전에서 대니 머토(Danny Murtaugh, 1917-1976) 감독의 피츠버그 파이리츠(Pittsburgh Pirates)는, 4회초 터진 로베르토 클레멘테(Roberto Clemente, 1934-1972)의 결승 솔로 홈런과 선발 스티브 블래스의 9이닝 1실점 완투 역투로 얼 위버(Earl Weaver, 1930-2013) 감독의 볼티모어를 2대 1로 꺾었다.
- 시리즈 전적 4승 3패를 기록하며 1960년 이후 11년 만에 통산 4번째 월드시리즈 정상을 탈환하였으며, 7경기 내내 4할 1푼 4리의 맹타를 휘두른 클레멘테가 라틴아메리카 출신 선수 최초로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에 불멸의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1974년 10월 18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3연패 달성
- 1972년과 1973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구단주 찰리 핀리와 선수단 간의 끊임없는 마찰 속에서도 정규시즌 지구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캘리포니아 라이벌인 내셔널리그 챔피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맞붙은 가을 야구에서 4차전까지 3승 1패로 압도적인 리드를 잡았다.
- 1974년 10월 17일(한국 시각 10월 18일 낮) 오클랜드-알라메다 카운티 콜리세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5차전에서 앨빈 드와크(Alvin Dark, 1922-2014) 감독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는, 조 루디(Joe Rudi, 1946-)의 7회말 결승 솔로 홈런과 마무리 투수 롤리 핑거스의 완벽한 무실점 구원투에 힘입어 월터 올스턴(Walter Alston, 1911-1984) 감독의 다저스를 3대 2로 제압했다.
-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통산 8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린 오클랜드는 뉴욕 양키스에 이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월드시리즈 3연패(Three-peat)'를 달성한 구단으로 공인받았으며, 1970년대 전반기를 호령한 강력한 녹색 군단 왕조의 찬란한 전성시대를 증명했다.
[1977년 10월 18일] 독일의 가을 사태 종결과 슈마이어 피살 및 적군파 수뇌부 사망
- 1977년 가을 서독의 극좌 테러 조직 적군파(RAF)가 서독경영자총협회 회장 한스 마르틴 슈마이어를 납치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과 연대해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극을 일으키자,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서독 정부는 무관용 강경 진압 방침을 고수하며 정면 승부에 나섰다.
- 1977년 10월 18일 새벽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서독 특수부대 GSG-9의 기습 작전으로 여객기 승객들이 전원 구출되자, 슈투트가르트 슈탐하임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안드레아스 바더(Andreas Baader, 1943-1977)와 구드룬 엔슬린 등 적군파 지도부 3인이 감방에서 권총과 교수형 형태로 의문의 집단 자살을 감행하였고, 이에 격분한 적군파 잔당은 억류 중이던 한스 마르틴 슈마이어(Hanns Martin Schleyer, 1915-1977)를 프랑스 국경 부근에서 잔혹하게 살해했다.
- 7주간 서독 전역을 극심한 공포와 국가적 위기로 몰아넣었던 '독일의 가을(German Autumn)' 유혈 사태가 종지부를 찍었으며, 민주 헌정 체제의 확고한 대테러 방호 역량을 입증함과 동시에 1970년대를 풍미한 유럽 극좌 도시 게릴라 무장 투쟁 세력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 계기가 되었다.
[1978년 10월 18일] 아르메니아 예레반 헨리크 이기탼 국립미학센터 공식 개관
- 1970년 소비에트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미술사학자 헨리크 이기탼과 그의 아내 자나 아가미랸이 세계 최초로 아동들의 순수 창작품만을 전시하는 어린이 미술관을 설립하자, 이를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통합 조형 예술 교육 요람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문화계의 열망이 고조되었다.
- 1978년 10월 18일 소비에트 연방 및 아르메니아 문화 당국의 전폭적인 승인 아래 설립자 헨리크 이기탼(Henrik Igityan, 1932-2009)의 주도로 예레반 도심에 미술 실기뿐 아니라 아동 연극, 전통 음악, 도예, 현대 무용을 아우르는 복합 예술 연구 기관인 '국립미학센터(National Centre for Aesthetics)'가 성대한 개관식을 열었다.
- 어린이와 청소년의 무한한 창의적 잠재력을 조기에 발굴하고 전인적인 미적 감수성을 키우는 세계 유일의 종합 미학 교육 센터로 자리매김하였으며, 냉전의 장벽을 넘어 유네스코(UNESCO) 등 국제사회의 깊은 찬사를 받으며 현대 아동 예술 교육학의 독보적인 모범 사례로 남았다.
[1978년 10월 18일]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2연패 및 통산 22번째 우승 달성
- 1978년 정규시즌 후반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14경기 반 차이를 뒤집고 지구 우승을 차지한 뉴욕 양키스는, 밥 레몬 감독 체제에서 월드시리즈 1·2차전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먼저 내주었으나 홈 3연전을 쓸어 담으며 4차전부터 역전극을 펼쳐 최종 6차전 원정에 나섰다.
- 1978년 10월 17일(한국 시각 10월 18일 낮)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6차전에서 밥 레몬(Bob Lemon, 1920-2000) 감독의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는, 레지 잭슨(Reggie Jackson, 1946-)의 7회초 쐐기 2점 홈런과 베테랑 투수 캣피시 헌터의 역투를 앞세워 톰 라소다(Tommy Lasorda, 1927-2021) 감독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7대 2로 완파했다.
-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1977년에 이어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며 통산 22번째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브롱크스 동물원(Bronx Zoo)'이라 불릴 만큼 극심했던 팀 내부의 불화와 갈등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잠재우고 가을 야구 최고의 명문 구단다운 저력을 과시했다.
[1979년 10월 18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가정용 위성 안테나 면허 규제 철폐
-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케이블 TV 채널 전송을 위한 통신위성 활용이 확대되자 방송 난시청 지대와 외곽 농촌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지름 수 미터에 달하는 대형 파라볼라 수신 안테나(TVRO)를 사유지에 설치해 전파를 직접 수신하려는 대중적 수요가 급증했다.
- 1979년 10월 18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는 찰스 D. 페리스(Charles D. Ferris, 1933-2024) 위원장의 주도 아래 일반 개인 및 가정이 복잡한 연방 정부의 사전 승인이나 무선국 면허(License) 없이도 위성 수신 안테나를 자유롭게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전면 해제했다.
- 고가의 특수 장비로 묶여 있던 위성 안테나 산업의 상업적 대량 양산과 가격 하락을 이끌어내 민간 위성 방송 시장의 대폭발을 촉발하였으며, 훗날 1990년대 소형 접시 안테나를 활용한 디지털 직접 위성 방송(DBS) 시대를 개막하는 통신 방송 융합 혁신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1979년 10월 18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월드시리즈 통산 5번째 우승과 '우리는 가족' 신화
- 1979년 디스코 히트곡 '우리는 가족(We Are Family)'을 테마송으로 내걸고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하던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정규시즌 102승을 거둔 아메리칸리그 최강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4차전까지 1승 3패의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끈질긴 반격으로 승부를 7차전까지 몰고 갔다.
- 1979년 10월 17일(한국 시각 10월 18일 오전) 볼티모어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7차전에서 척 태너(Chuck Tanner, 1928-2011) 감독의 피츠버그 파이리츠(Pittsburgh Pirates)는, 39세의 백전노장 윌리 스타젤(Willie Stargell, 1940-2001)이 6회초 터뜨린 결승 역전 투런 홈런에 힘입어 얼 위버(Earl Weaver, 1930-2013) 감독의 볼티모어를 4대 1로 격파했다.
-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1971년 이후 8년 만에 통산 5번째 정상에 오르며 1승 3패를 뒤집은 역전 드라마를 완성하였으며, 시리즈 내내 타율 4할과 3홈런을 기록하며 정규시즌·챔피언십시리즈·월드시리즈 MVP를 싹쓸이한 스타젤의 전설적인 캡틴 리더십을 야구 역사에 영원히 각인시켰다.
1981-1990년 주요 사건
[1985년 10월 18일] 서울 지하철 3호선 및 4호선 동시 개통과 수도권 X자형 지하철망 완성
- 1980년대 초 서울의 급격한 도시 팽창과 강남·북 간 극심한 교통 체증을 해결하고 다가오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의 대규모 국내외 수송 수요를 분담하기 위해, 서울특별시는 방사선 형태의 제1기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의 전면 완공을 최우선 국책 과제로 추진했다.
- 1985년 10월 18일 염보현(廉普鉉, 1932-2007) 서울특별시장과 전두환(全斗煥, 1931-2021)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강남구 양재역에서 열린 개통식과 함께, 지하철 3호선(독립문~양재)과 4호선(한성대입구~사당) 잔여 구간이 동시 개통되며 총연장 57km에 달하는 양대 간선 노선이 전면적인 영업 운행에 들어갔다.
- 기존 1·2호선과 교차하는 총연장 116.5km의 수도권 도심 관통 방사형 X자 철도 교통망을 완성하여 서울 전역을 30~40분 생활권으로 묶었으며, 서울을 세계 7대 지하철 보유 도시로 도약시킴과 동시에 한강 이남 신흥 부도심의 비약적인 도시 성장을 견인한 현대 도시 인프라의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1989년 10월 18일]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의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호 사출 발사
- 1986년 챌린저호 참사 이후 액체 수소 추진체 켄타우로스 사용이 안전 문제로 취소되면서 무기한 연기되었던 목성 탐사 계획을 재개하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은 고체 로켓 부스터를 활용해 행성 간 중력 도움을 받는 우회 궤도 비행 방식을 최종 채택했다.
- 1989년 10월 1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선장 도널드 윌리엄스(Donald E. Williams, 1942-2016)가 지휘하는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Space Shuttle Atlantis)가 STS-34 임무를 띠고 우주로 발사되었으며, 비행 6시간여 만에 화물칸에서 목성 무인 탐사선 갈릴레오호(Galileo)를 성공적으로 우주 공간에 사출했다.
- 금성과 지구의 중력 도움(스윙바이)을 받아 6년간 비행한 갈릴레오호는 1995년 목성 궤도에 안착한 뒤 위성 유로파의 지하 바다 존재 가능성과 이오의 화산 활동을 규명하는 등 태양계 행성 과학에 독보적인 관측 성과를 남겼다.
1991-2000년 주요 사건
[1991년 10월 18일] 아제르바이잔 최고 소비에트의 소비에트 연방 탈퇴 및 국가 독립 헌장 채택
- 1991년 8월 모스크바 보수파 쿠데타 실패 이후 소비에트 연방(USSR)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아르메니아와의 유혈 분쟁이 격화되자 아제르바이잔 내부에서는 주권 수호와 체제 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 1991년 10월 18일 엘미라 가파로바(Elmira Gafarova, 1934-1995) 의장이 주재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최고 소비에트 본회의에서, 의원들은 아제르바이잔이 1918년 건국되었던 민주공화국의 정통성을 계승함을 선언하고 연방 탈퇴를 규정한 '국가 독립 헌장(Constitutional Act on the State Independence)'을 만장일치로 공식 채택했다.
- 이로써 아제르바이잔은 71년에 걸친 공산 제국의 지배를 종식하고 완전한 주권 독립국으로 재탄생하였으며, 12월 전인민 투표로 확정된 뒤 카스피해 연안의 풍부한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근대 국가 건설과 국방력 구축을 본격화하는 역사적 분수령을 이루었다.
[1992년 10월 18일] 인도네시아 메르파티 누산타라 항공 5601편 파판다얀산 추락 참사
-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부의 험준한 산악 지형을 운항하던 지역 항공사들은 급변하는 몬순 기후와 짙은 안개 속에서 운항을 지속했으나, 당시 보급된 경비행기들은 최신 대지접근경보장치(GPWS) 등 산악 충돌 방지 시스템이 극히 미비한 상태였다.
- 1992년 10월 18일 스마랑을 떠나 반둥으로 향하던 메르파티 누산타라 항공(Merpati Nusantara Airlines) 5601편 인도네시아산 CN-235 터보프롭 여객기가 가루트 인근 파판다얀산(Mount Papandayan) 상공에서 시계가 악화되자 비행 경로를 이탈해 강하하던 중 해발 2,100m 암벽에 정면충돌하여 탑승자 31명 전원이 사망했다.
- 자국산 최신예 터보프롭 수송기의 첫 대형 추락 사고로 기록되어 국가적 충격을 안겼으며, 조사 결과 시계 비행 규정을 무시한 조종사의 과실(CFIT)로 드러남에 따라 인도네시아 교통 당국이 산악 항로 비행 절차를 전면 개정하고 조종사 안전 훈련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 10월 18일] 서울대학교 조교 성희롱 사건 민사소송 제기와 직장 내 성희롱 공론화
-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과 조교로 근무하던 피해자가 담당 교수로부터 지속적인 원치 않는 신체 접촉과 성적 굴욕감을 겪은 뒤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학내 기구를 통한 구제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사회적 사법 투쟁을 결의했다.
- 1993년 10월 18일 피해자 우 모 조교는 여성단체들의 연대 지원과 박원순(朴元淳, 1956-2020) 변호사를 비롯한 공동변호인단의 조력을 받아 가해 교수 신 모 씨와 서울대학교 총장 및 대한민국 정부를 공동 피고로 하여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공식 제기했다.
-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직장 내 성희롱(Sexual harassment)'을 불법 행위로 규정하여 법적 책임을 물은 최초의 소송으로 기록되었으며, 6년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하여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과 여성발전기본법 제정 등 제도적 방지책을 이끌어낸 중대한 인권사적 이정표가 되었다.
[1997년 10월 18일] 충북 지역 민영 방송 청주방송(CJB) TV 방송 공식 개국
- 정부의 전국 민영 방송 네트워크 구축 시책인 제2차 지역 민방 설립 정책에 따라 충청북도 지역 주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중앙 집중형 미디어 구조를 탈피하여 향토 문화 창달을 견인할 지역 방송사의 설립이 추진되었다.
- 1997년 10월 18일 이두영(李斗榮, 1951-) 대표이사를 비롯한 방송 관계자와 지역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우암산 송신소에서 호출부호 HLDR-TV(채널 28번) 전파를 공식 송출하며 충북권 첫 민영 상업 방송인 청주방송(CJB)의 텔레비전 개국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 서울 SBS와의 프로그램 제휴 네트워크 협정을 맺고 충북 전역에 다채로운 생활 밀착형 보도와 지역 시사 프로그램을 신속히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지역 여론의 다원화를 이끌고 훗날 2001년 Joy FM 라디오 개국으로 이어지는 충북 거점 종합 미디어 그룹의 든든한 초석을 놓았다.
21세기(2001-2100년) 주요 사건
2001-2010년 주요 사건
[2003년 10월 18일] 볼리비아 가스 분쟁과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의 사임 망명
-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고수한 정부가 국부인 천연가스를 태평양 연안의 칠레 항구를 거쳐 미국과 멕시코에 헐값으로 수출하려 하자, 만성적 빈곤에 시달리던 토착 인디오 광부와 노동자 계층이 거세게 반발하며 유혈 총파업과 도로 봉쇄 투쟁에 돌입했다.
- 군대의 강경 진압으로 60여 명의 시위대가 사망하여 정권 퇴진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자, 2003년 10월 17일 밤 사임서를 제출한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Gonzalo Sánchez de Lozada, 1930-) 대통령은 10월 18일 새벽 헬리콥터로 수도 라파스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 카를로스 메사 부통령이 정권을 승계한 뒤 가스 자원 수출 협정을 전면 백지화하였으며, 이 민중 승리는 원주민 노동운동 지도자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1959-)가 이끄는 사회주의운동당(MAS)의 집권과 2006년 천연가스 국유화 조치로 이어지는 남미 좌파 연쇄 집권(핑크 타이드)의 거대한 기폭제가 되었다.
[2005년 10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문양~사월 구간 개통과 동서 관통 교통망 구축
- 대구광역시의 극심한 동서 축 도로 교통난을 해소하고 달성군 다사읍부터 수성구 시지 지구를 직통으로 연결하기 위해, 1996년 착공된 대구 지하철 2호선은 2003년 1호선 중앙로역 화재 참사 이후 전면적인 불연재 개조와 안전 설비 보강을 거치며 완공에 박차를 가했다.
- 2005년 10월 18일 조해녕(曺海寧, 1943-) 대구광역시장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두류역 지하 대합실에서 종합 준공 개통식을 가졌으며, 달성군 문양역(汶陽驛)부터 수성구 사월역(沙月驛)까지 총연장 29km 구간의 26개 역사가 일제히 정규 영업 운행을 공식 개시했다.
- 기존 1호선과의 환승 거점인 반월당역(半月堂驛)을 중심으로 대구 도심을 열십자(+)로 관통하는 광역 도시철도 네트워크를 완성하여 동서 이동 시간을 40분대로 단축시켰으며, 수성구 학군과 서부 부도심 상권의 비약적 발전을 견인한 현대 대구 교통 인프라의 중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2005년 10월 18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강정구 교수 사건 규탄 및 구국운동 선언
- 동국대학교 강정구 교수의 '6·25 전쟁은 북한의 통일 내전' 칼럼 기고에 대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에게 불구속 수사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여야 간의 이념 갈등이 전면적인 정쟁으로 폭발했다.
- 2005년 10월 1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 제1야당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1952-) 대표는, 노무현(盧武鉉, 1946-2009) 정권이 헌법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친북 세력을 비호하고 있다고 맹비난하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범국민적 '구국운동(救國運動)'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 보수 진영의 지지층을 결집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선점하였으며, 당내 확고한 대권 주자로서 박근혜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다짐과 동시에 참여정부 후반기 여야 간의 극심한 안보·이념 대립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10월 18일] 파키스탄 카라치 베나지르 부토 귀국 차량 행렬 자살폭탄 테러
- 페르베즈 무샤라프 군부 정권과의 권력 분점 타협과 사면 합의에 따라 8년간의 해외 망명 생활을 청산한 전 파키스탄 총리 베나지르 부토는, 민주주의 회복과 총선 승리를 목표로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고국 땅을 밟았다.
- 2007년 10월 18일 밤 카라치 진나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던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 1953-2007)의 방탄 트럭 행렬을 향해 파키스탄 탈레반(TTP) 및 알카에다 연계 조직원이 수류탄을 투척한 뒤 군중 속에서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려 139명이 사망하고 45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 부토 전 총리는 장갑 차량 내부의 안전 격벽 덕분에 기적적으로 화를 면했으나 파키스탄 헌정사상 최악의 테러 참사로 기록되었으며, 불과 두 달 뒤인 12월 라왈핀디에서 끝내 유혈 암살을 당하면서 파키스탄 민주주의 정정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직행하는 비극적 서막이 되었다.
[2007년 10월 18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토종 통신 기술 와이브로 3G 국제표준 공식 승인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무선 광대역 인터넷 기술 와이브로(WiBro, 모바일 와이맥스)는 이동 중에도 초고속 무선 데이터 통신이 가능했으나,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유엔 산하 기구의 공인 표준 획득이 필수적이었다.
- 2007년 10월 18일 스위스 제네바 국제회의센터(CICG)에서 개최된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파총회(Radio Assembly) 본회의에서 각국 정부 대표단은 표결을 통해, 대한민국 기술진이 주도한 와이브로(OFDMA TDD WMAN)를 'IMT-2000' 3세대 이동통신(3G)의 6번째 국제 표준 규격으로 만장일치 공식 승인했다.
- 외국 기술에 로열티를 지불하던 통신 수입국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역사상 최초로 독자 통신 기술을 세계 표준화 기구에 등재시키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핵심 특허 확보를 통해 향후 4세대 이동통신 LTE 및 5G 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강력한 기술적 발판을 마련했다.
[2007년 10월 18일] 록 밴드 엑스 재팬의 10년 만의 공식 재결성 선언
- 1997년 보컬 토시의 탈퇴와 해체 콘서트에 이어 이듬해 핵심 기타리스트 히데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비운의 종말을 고했던 전설적인 비주얼 록 밴드 엑스 재팬은, 기나긴 침묵을 깨고 리더 요시키와 토시가 극적인 개인적 화해를 이루며 밴드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 2007년 10월 18일 엑스 재팬(X JAPAN)은 공식 성명을 통해 해체 10년 만의 팀 재결성을 전격 발표하였으며, 고인이 된 히데(hide, 松本秀人, 1964-1998)의 미발표 기타 트랙을 활용하여 영화 《쏘우 4》의 엔딩 테마곡으로 쓰일 신곡 '아이뷔(I.V.)'를 제작 중임을 공식화했다.
- 도쿄 오다이바 아쿠아시티 옥상에서 대규모 공개 뮤직비디오 촬영을 감행하며 글로벌 팬덤의 폭발적인 환호를 이끌어냈고, 이듬해 도쿄돔 부활 콘서트를 성공시키며 전 세계 투어를 재개하는 등 아시아 비주얼 록의 신화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2008년 10월 18일] 이란 사법부의 미성년 범죄자 사형 집행 금지 발표
- 이란은 국제연합 아동권리협약(UN CRC) 비준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샤리아 율법에 의거해 18세 미만 소년범에게 교수형 등 법정 최고형을 지속적으로 선고하여, 국제 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인권단체들로부터 아동 인권 침해국이라는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 2008년 10월 18일 아야톨라 마무드 하셰미 샤흐루디(Mahmoud Hashemi Shahroudi, 1948-2018) 사법부 수장의 승인을 받은 호세인 자비히(Hossein Zabihi, 생몰년 미상) 검찰차장은, 마약 밀매 등 특정 범죄를 저지른 18세 미만 청소년에 대한 사형 선고와 집행을 전면 금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을 완화하고 소년 사법 제도의 인도주의적 개선을 대외에 천명하였으나, 살인죄 등에 적용되는 키사스(동해보복형) 원칙에 따른 미성년 사형 집행의 허점이 온전히 사라지지 않아 근본적인 율법 개혁의 한계를 동시에 노출했다.
[2008년 10월 18일] 러시아 정부의 아이슬란드 구제금융 세부 제안서 공식 요청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아이슬란드 3대 상업은행이 연쇄 파산하고 크로네화 가치가 폭락하여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자, 서방 동맹국들의 지원이 지체되는 가운데 게이르 하르데(Geir Haarde, 1951-) 총리의 아이슬란드 정부는 러시아에 40억 유로 규모의 긴급 차관을 공식 타진했다.
- 2008년 10월 18일 러시아 연방 재무부는 드미트리 팡킨(Dmitry Pankin, 1957-) 차관의 발표를 통해, 모스크바에서 진행될 차관 실무 협상에 앞서 아이슬란드 당국이 경제 회생 전략과 구체적인 대러시아 금융 지원 요구안을 명시한 공식 문서를 서면으로 제출할 것을 정식 요청했다.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안보 경쟁국인 러시아에 직접 손을 벌린 전례 없는 금융 외교 사태로 비화하였으며, 결국 차관 성사 대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패키지를 수용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아이슬란드 금융 위기 극복의 복잡한 역학을 드러냈다.
2011-2020년 주요 사건
[2011년 10월 18일] 산악인 박영석 대장 원정대의 안나푸르나 남벽 실종
-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와 7대륙 최고봉 및 지구 3극점을 모두 정복하여 '산악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던 박영석 대장은, 난공불락으로 꼽히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Annapurna) 남벽에 새로운 등반로인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결사 원정에 나섰다.
- 2011년 10월 18일 오후 4시경 해발 6,500m 부근을 등반하던 원정대장 박영석(朴英碩, 1963-2011)은 "기상 악화와 잦은 낙석으로 전진이 어려워 하산하겠다"는 마지막 무전을 남긴 뒤, 신동민(申東旼, 1974-2011), 강기석(姜基錫, 1978-2011) 대원과 함께 연락이 두절되었다.
- 헬기와 정예 수색대를 급파한 수차례의 필사적 수색에도 끝내 흔적을 찾지 못하고 끝내 영면하였으며,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한국 산악계를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던 거목의 비극적인 순직은 온 국민과 전 세계 산악인들의 깊은 애도와 추모를 자아냈다.
[2013년 10월 18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8.1의 전 세계 공식 일반 출시
- 마이크로소프트가 야심 차게 선보였던 윈도우 8이 전통적인 데스크톱 시작 버튼을 일방적으로 삭제하고 모바일 중심의 타일 인터페이스만을 고집하여 기업과 일반 소비자들로부터 거센 비판과 외면을 받자, 사측은 사용자 환경을 복원하기 위한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긴급히 추진했다.
- 2013년 10월 18일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 1956-) 최고경영자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는 화면 좌측 하단에 시작 단추를 부활시키고 부팅 시 데스크톱 바로 가기를 지원하는 차세대 운영체제 '윈도우 8.1(Windows 8.1)'의 전 세계 일반 판매 및 패키지 출시를 공식 단행했다.
- 마우스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개선하고 최신 웹 표준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11을 기본 탑재하여 사용자 이탈을 방어하였으며, 윈도우 8의 구조적 과도기 혼란을 수습하고 향후 완성형 운영체제인 윈도우 10으로 생태계를 안착시키는 중요한 기술적 가교 역할을 완수했다.
[2014년 10월 18일]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아 경기대회 개막식 거행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의 열기를 이어받아 아시아 41개국 4,500여 명의 선수단이 한계와 편견을 뛰어넘어 인간의 존엄과 화합을 다투기 위해, 대한민국 인천광역시는 아시아장애인올림픽위원회(APC)와 손잡고 사상 최대 규모의 장애인 스포츠 축전 개최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 2014년 10월 18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정홍원(鄭烘原, 1944-) 국무총리와 김성일(金聖一, 1948-) 조직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정의 물결, 이제 시작이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아 경기대회(2014 Asian Para Games)'의 성대한 개막식이 거행되었다.
- 23개 전 종목에 걸친 7일간의 열전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적 통합과 스포츠 복지의 중요성을 널리 확산시켰으며, 대한민국 선수단이 종합 2위의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며 국제 장애인 체육의 위상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찬란한 이정표를 세웠다.
[2019년 10월 18일] NASA 역사상 사상 최초의 여성 전원 우주유영 완수
- 1965년 인류 역사상 첫 우주유영이 시작된 이래 반세기 동안 진행된 수백 차례의 선외 활동은 모두 남성 우주비행사나 남녀 혼성팀으로만 구성되어 진행되었으며, 이에 미 항공우주국(NASA)은 성별 편견을 깨고 우주 장비 규격을 정비해 여성 비행사 단독 임무를 추진했다.
- 2019년 10월 18일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미 항공우주국 소속 비행사 크리스티나 코크(Christina Koch, 1979-)와 제시카 메이어(Jessica Meir, 1977-)는 7시간 17분에 걸쳐 에어록 밖으로 나가 고장 난 대형 배터리 충·방전 전력 제어 장치(BCDU)를 완벽히 교체했다.
- 남성 지원 인력 없이 순수 여성 우주비행사들만으로 이루어진 인류 사상 최초의 우주유영(All-female spacewalk)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여성의 과학기술 및 항공우주 분야 진출을 가로막던 유리천장을 통쾌하게 깨부수고 아르테미스 달 탐사 프로그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19년 10월 18일] 칠레 산티아고 민중 항쟁 격화와 15일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 칠레 정부가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을 30페소 인상하자 학생들의 무임승차 불복종 운동으로 시작된 시위는, 피노체트 군정 이래 수십 년간 누적되어 온 극단적인 사회적 양극화와 민영화된 연금·교육·의료 제도의 불평등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결합하며 전국적 항쟁으로 비화했다.
- 2019년 10월 18일 시위 군중이 164개에 달하는 산티아고 메트로 역사 대부분과 시내 건물을 공격하고 방화하여 지하철 전 노선이 전면 운행 중단에 들어가자,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án Piñera, 1949-2024) 대통령은 수도 일대에 15일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했다.
- 1990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탱크와 무장 군인이 도심에 배치되는 유혈 사태를 낳았으나 100만 평화 대행진으로 확산되었으며, 결국 요금 인상 철회는 물론 피노체트 독재 시절 제정되었던 1980년 구 헌법을 폐기하고 새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이끌어내는 대변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