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Crusades)의 혼란 속에서 시리아 북부의 핵심 무역 도시 알레포(Aleppo)는 사해 변환단층(Dead Sea Transform) 상에 위치하여 거대한 지각 변동의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었다.
1138년 10월 11일 알레포 인근 지하에서 규모 7.0 이상의 파괴적인 연쇄 강진이 발생하여 이마드 앗 딘 장기(Imad al-Din Zengi, 1085경-1146) 아타베그의 수도 요새 성벽과 주요 주거지가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약 23만 명에 달하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도시 경제가 장기간 마비되며 십자군과 이슬람 세력 간의 군사적 대치 구도에도 심대한 지각변동을 안겼다.
[1142년 10월 11일] 송-금 소흥화의 최종 조인과 남북 분립 체제 고착
정강의 변(靖康之變) 이후 금(金)나라의 남침에 맞서 악비(岳飛, 1103-1142) 등이 맹렬히 항전했으나, 남송(南宋) 조정의 재상 진회(秦檜, 1090-1155)는 전비 부담과 정권 안정을 위해 강화 협상을 집요하게 추진하였다.
1142년 10월 11일 고종(高宗, 1107-1187)의 윤허 아래 남송은 금나라 희종(熙宗, 1119-1150)의 사절단과 회맹하여 회하(淮河)와 대산관(大散關)을 국경으로 확정하고 신하의 예를 취하는 소흥화의(紹興和議)를 최종 조인하였다.
악비가 옥사하는 비극 속에서 맺어진 이 굴욕적 조약으로 남송은 매년 은과 비단을 바치는 대신 강남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며, 화북의 여진족 제국과 강남의 한족 왕조가 대치하는 남북 분립 체제가 확고히 고착되었다.
13세기(1201-1300년) 주요 사건
[1251년 10월 11일] 고려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완성 경찬회 거행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관 중이던 초조대장경(初照大藏經) 목판이 소실되자, 고려 무신정권의 지도자 최우(崔瑀, ?~1249)와 조정은 불력(佛力)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대장경 재조성을 결의하였다.
고려 고종(高宗, 1192-1259)과 대장도감(大藏都監) 학승들은 16년에 걸친 각고의 판각 작업을 마친 뒤, 1251년 10월 11일(음력 9월 25일) 강화도 서문 밖 대장당(大藏堂)에서 8만 1,258장의 경판 완성을 기념하는 성대한 경찬회(慶讚會)를 거행하였다.
오탈자가 거의 없는 정밀한 고증과 완벽한 목판 인쇄 기술을 과시한 한국 불교 문화의 정수로 평가받았으며, 조선 시대 합천 해인사(海印寺)로 이운되어 보존된 끝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불멸의 민족 유산이 되었다.
14세기(1301-1400년) 주요 사건
[1311년 10월 11일] 잉글랜드 1311년 조례 공포와 왕권 제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Edward II, 1284-1327)가 총신 피어스 개버스턴(Piers Gaveston, 1284경-1312)에게 권력을 몰아주고 국정을 파탄 내자, 분노한 대귀족(Lords Ordainers)과 고위 성직자들은 왕권을 견제할 헌정 개혁안을 작성하였다.
1311년 10월 11일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앞마당에서 랭커스터 백작 토머스(Thomas, 2nd Earl of Lancaster, 1278경-1322) 등 귀족 세력은 국왕의 독단적 과세권과 전쟁 선포권을 박탈하고 의회의 사전 승인을 의무화하는 '1311년 조례(Ordinances of 1311)'를 정식 공포하였다.
대헌장(Magna Carta)의 정신을 계승하여 군주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제약하고 귀족 과두정을 수립하려 했던 시도였으며, 향후 국왕파와의 내전을 격화시키며 영국 의회주의와 입헌군주제의 제도적 진화에 중대한 선례를 남겼다.
17세기(1601-1700년) 주요 사건
[1614년 10월 11일] 신네덜란드 회사의 북미 독점 무역권 청원 및 인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헨리 허드슨이 오늘날 뉴욕 일대의 허드슨강을 탐험한 이래, 암스테르담의 상인들은 북미 원주민과의 모피 무역을 독점하고 식민 정착촌을 개척하기 위해 사설 무역 연합체를 결성하였다.
1614년 10월 11일 헤이그에서 아드리안 블록(Adriaen Block, 1567경-1627)을 비롯한 네덜란드 상인 대표단은 연방의회인 스타텐 헤네랄(States General)에 북위 40도에서 45도 사이 지역에 대한 독점 무역 특허를 청원하여 3년간의 독점권을 공식 인가받았다.
정부 공인을 획득한 '신네덜란드 회사(New Netherland Company)'는 포트 나소 요새를 건설하며 영구 식민 지배의 교두보를 놓았으며, 이후 네덜란드 서인도회사(WIC) 설립과 뉴암스테르담(현 뉴욕) 건설로 이어지는 북미 무역사의 거대한 시발점이 되었다.
[1634년 10월 11일] 부르카르디 홍수와 북프리지아 해안 초토화 참사
17세기 덴마크와 독일 북부 바덴해 연안의 북프리지아(North Friesland) 지역은 무분별한 토탄 채굴과 제방 관리 소홀로 인해 지반이 침하되어, 북해의 강력한 폭풍 해일(Storm surge)에 지극히 취약한 지형적 위기에 놓여 있었다.
1634년 10월 11일 밤 성 부르카르트 축일 전야에 들이닥친 시속 수십 미터의 허리케인급 폭풍우로 인해 거대한 방조제가 수십 군데 붕괴하였고, 바닷물이 연안 마을들을 덮쳐 노르트스트란트섬 등지에서 주민 1만 5천여 명이 익사하였다.
번영하던 농경지 3분의 2가 영구히 바닷속으로 수몰되고 거대한 단일 섬이 여러 작은 암초성 섬들로 조각나는 지형 변동을 겪었으며, 북유럽 해안 공학계가 근대적 경사형 석재 제방 축조와 배수 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뼈아픈 계기가 되었다.
[1649년 10월 11일] 올리버 크롬웰의 웩스퍼드 함락과 아일랜드 민간인 학살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에서 승리한 의회파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은 찰스 1세를 처형한 뒤, 가톨릭과 왕당파가 연합하여 저항하던 아일랜드 맹방(Irish Confederation)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기 위한 정복 원정에 나섰다.
1649년 10월 11일 아일랜드 남동부 항구 요새 웩스퍼드(Wexford)에서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 이끄는 신모범군(New Model Army)은 성문이 배신으로 열리자 시내로 난입하여 무장 해제된 아일랜드 수비대 2천여 명과 무고한 민간인 1,500여 명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드로이다 학살에 이어 자행된 이 유혈 참극으로 아일랜드 내 가톨릭 저항 세력의 방어선이 와해되었으며, 잉글랜드 청교도 정권에 의한 토지 몰수와 신교도 식민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수백 년간 이어질 영국-아일랜드 간 민족적·종교적 원한의 깊은 흉터를 남겼다.
18세기(1701-1800년) 주요 사건
[1776년 10월 11일] 밸커섬 전투와 베네딕트 아널드의 챔플레인호 저지전
미국 독립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 중 대영제국 육군은 허드슨강 계곡을 따라 남하하여 뉴잉글랜드를 고립시키려 하였고, 미국 대륙군은 북쪽 진입로인 챔플레인호(Lake Champlain)에서 영국군 함대의 수로 진격을 반드시 저지해야 했다.
1776년 10월 11일 밸커섬(Valcour Island) 인근 수역에서 베네딕트 아널드(Benedict Arnold, 1741-1801) 준장이 지휘하는 급조된 미군 함대 15척은 가이 칼턴(Guy Carleton, 1724-1808) 경의 압도적인 영국 정규 전함 25척을 맞아 결사적인 함포 난타전을 벌였다.
비록 미군 함정 대부분이 침몰하거나 소각되는 전술적 패배를 당했으나 영국군의 진격을 1777년 봄까지 지연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며, 전열을 가다듬은 미국이 이듬해 새러토가 전투에서 결정적인 전략적 대승을 거두는 핵심적 발판을 마련하였다.
[1797년 10월 11일] 캠퍼다운 해전과 영국 해군의 바타비아 함대 궤멸
프랑스 혁명 전쟁(French Revolutionary Wars) 당시 프랑스의 위성국가였던 바타비아 공화국(Batavian Republic) 해군은 프랑스군과 연합하여 영국 본토 침공과 아일랜드 반란군 지원을 위한 대규모 수송 함대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1797년 10월 11일 네덜란드 북부 해안 캠퍼다운(Camperdown) 앞바다에서 애덤 던컨(Adam Duncan, 1731-1804) 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해군 북해 함대는 얀 빌럼 더 빈테르(Jan Willem de Winter, 1761-1812) 중장의 네덜란드 함대 열을 양분 돌파하며 맹포격을 가해 적 함선 11척을 나포하였다.
바타비아 해군의 주력이 일거에 궤멸되면서 프랑스와 동맹국의 브리튼 제도 침공 기도가 완전히 분쇄되었으며, 수병 반란의 여파로 침체되어 있던 영국 해군의 사기를 극적으로 회복시켜 대서양 제해권을 굳건히 지탱하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1801-1900년) 주요 사건
1811-1820년 주요 사건
[1811년 10월 11일] 증기 페리선 줄리아나호의 뉴욕항 첫 상업 운항
19세기 초 뉴욕 맨해튼과 뉴저지주 호보컨 사이를 오가던 나룻배는 노를 젓거나 돛과 말을 이용한 방식에 머물러 있어, 악천후와 거센 조류가 발생할 때마다 허드슨강 통행이 장시간 마비되는 수송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1811년 10월 11일 미국의 발명가이자 공학자인 존 스티븐스(John Stevens, 1749-1838)는 자신이 설계·건조한 목조 증기 페리선 '줄리아나(Juliana)'호를 허드슨강에 띄우고, 세계 최초로 증기 동력을 이용한 정기 여객선 운항을 공식 개시하였다.
로버트 풀턴과의 독점권 분쟁으로 운항이 일시 중단되는 역경을 겪었으나 수로 교통의 정시성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으며, 증기선 기술이 대중적 수상 대량 수송 수단으로 보편화되어 미국 산업혁명의 인프라 확장을 견인하는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831-1840년 주요 사건
[1840년 10월 11일] 레바논 에미르 바시르 시하브 2세의 항복과 몰타 유배
제2차 오스만-이집트 전쟁(Second Turko-Egyptian War) 중 이집트 총독 무함마드 알리의 편에 서서 레바논 산지를 통치하던 마론파 에미르 바시르 시하브 2세는, 종주권을 회복하려는 오스만 제국과 이를 지원하는 영국·오스트리아 연합군의 전방위 군사 공세에 직면하여 고립무원의 위기에 처했다.
1840년 10월 11일 연합군의 맹렬한 베이루트 해상 포격과 내부 산악 민병대의 연쇄 무장 봉기로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자, 바시르 시하브 2세(Bashir Shihab II, 1767-1850)는 영국 해군 전함에 올라 공식 항복을 선언하고 영국령 몰타로 추방되는 유배길에 올랐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시하브 가문의 레바논 세습 통치가 공식 종식되면서 레바논 수장령은 사실상 와해되었으며, 오스만 제국이 기독교 마론파와 이슬람 드루즈파로 분할 통치하는 이중 대관구 체제를 도입함에 따라 향후 종파 간 유혈 갈등의 비극적 씨앗을 남겼다.
1851-1860년 주요 사건
[1852년 10월 11일] 호주 최고(最古) 시드니 대학교의 공식 개교
19세기 중엽 골드러시와 함께 호주 식민지의 인구가 급증하고 자치 헌정 수립이 가시화되자, 종교와 계급의 장벽을 허물고 식민지 사회를 자율적으로 이끌어갈 근대적 전문 지식인을 독자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고등 교육 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852년 10월 11일 윌리엄 웬트워스(William Wentworth, 1790-1872) 등 정계 지도자들의 주도 아래 시드니 도심 빅토리아 파크 캠퍼스에서 식민지 총독 찰스 피츠로이(Charles FitzRoy, 1796-1858) 경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호주 최초의 근대 대학인 시드니 대학교(University of Sydney)의 공식 개교식이 거행되었다.
호주 대륙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 모든 종교 교파에 개방된 세속 학풍을 확립하였으며, 이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모델을 계승한 명문 종합 연구 대학으로 성장하여 수많은 연방 총리와 대법관 및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남반구 학문의 핵심 전당으로 안착했다.
1861-1870년 주요 사건
[1862년 10월 11일] 남군 J.E.B. 스튜어트 기병대의 체임버스버그 기습
앤티텀 전투 이후 미국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동부 전선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남합중국 육군의 총사령관 로버트 E. 리(Robert E. Lee, 1807-1870) 장군은 북군의 보급선과 군사 배치 현황을 정밀 탐색하고 전선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적 후방 깊숙한 기습 정찰을 지시했다.
1862년 10월 11일 1,800명의 정예 기병대를 이끌고 포토맥강을 도하한 J.E.B. 스튜어트(J.E.B. Stuart, 1833-1864) 소장은 펜실베이니아주 체임버스버그(Chambersburg)를 전격 점령한 뒤, 연방군의 대규모 군용 창고와 철도 시설을 소각하고 1,200두에 달하는 군마를 노획했다.
조지 B. 매클렐런(George B. McClellan, 1826-1885) 소장이 지휘하는 북군의 삼엄한 포위망을 완벽히 따돌리고 유유히 본대로 귀환함으로써 북군 지휘부에 심각한 군사적 굴욕을 안겼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우유부단했던 매클렐런 사령관을 전격 해임하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1865년 10월 11일] 자메이카 모란트베이 반란 발발과 흑인 민중 봉기
1834년 노예제 공식 폐지 이후에도 영국령 카리브해 식민지 자메이카의 흑인 해방민들은 과중한 인두세와 극심한 가뭄, 그리고 백인 플랜테이션 지주 중심의 치안 판사들이 자행하는 편파적인 사법 억압으로 인해 생존권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있었다.
1865년 10월 11일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 폴 보글(Paul Bogle, 1820-1865)의 영도 아래 수백 명의 흑인 남녀 농민들이 행진하여 세인트토머스 교구의 모란트베이(Morant Bay) 법원 청사를 포위하고 정의로운 재판과 토지 분배를 요구하며 지방 민병대와 격렬한 유혈 충돌을 벌였다.
에드워드 존 에어(Edward John Eyre, 1815-1901) 식민지 총독의 무자비한 계엄령 군사 진압으로 보글을 비롯한 400여 명이 즉결 처형당했으나 영국 본토에서 거센 비판 여론이 폭발하였고, 자메이카 의회가 해산되어 국왕 직할령(Crown colony)으로 전환되는 헌정사적 대변혁을 맞았다.
1881-1890년 주요 사건
[1890년 10월 11일] 미국혁명딸들회(DAR) 창립과 역사 보존 운동
19세기 후반 미국 건국 100주년 기념 열기와 함께 독립 전쟁의 애국 유산을 기리는 사회적 운동이 확산되었으나, 기존의 남성 중심 독립 유공자 후손 단체들이 여성의 정회원 가입을 완강히 거부하자 이에 맞선 여성 주도의 독자적 조직 결성이 추진되었다.
1890년 10월 11일 워싱턴 D.C. 스트래스모어 암스 호텔에서 유지니아 워싱턴(Eugenia Washington, 1840-1900), 메리 데시(Mary Desha, 1850-1911) 등 여성 선각자 18명이 회합을 갖고, 독립 전쟁 참전 용사의 여성 후손들을 결집하는 '미국혁명딸들회(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를 공식 창립했다.
현직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의 영부인 캐롤라인 해리슨(Caroline Harrison, 1832-1892)을 초대 총재로 추대한 이 단체는 미국 전역의 역사 사적지 보존과 유물 발굴 및 애국 교육을 주도하였으며, 19세기 말 미국 여성들의 공공 영역 참여와 시민사회 조직화를 견인하는 강력한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1899년 10월 11일] 남아프리카 제2차 보어 전쟁 발발
트란스발 공화국의 비트바테르스란트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금광이 발견되자 대영제국은 자원 통제권 확보와 아프리카 종단 정책 완성을 위해 압박을 강화했고, 보어인 공화국들은 주권 수호를 위해 영국군의 국경 철수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전달하며 전운이 감돌았다.
1899년 10월 11일 오후 5시 영국의 거부로 통첩 시한이 만료되자 파울 크뤼거(Paul Kruger, 1825-1904)의 트란스발과 마르티뉘스 스테인(Martinus Steyn, 1857-1916)의 오렌지 자유국은 영국령 케이프 식민지와 나탈을 향해 선제 진격을 개시하며 '제2차 보어 전쟁(Second Boer War)'에 돌입했다.
보어인 특유의 코만도 게릴라전에 맞서 허버트 키치너(Herbert Kitchener, 1850-1916) 장군의 영국군이 잔혹한 초토화 작전과 민간인 강제수용소를 동원한 끝에 승리했으나 영국의 제국주의적 위신에 치명상을 입혔으며,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Union of South Africa) 탄생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역사적 기틀로 이어졌다.
20세기(1901-2000년) 주요 사건
1901-1910년 주요 사건
[1906년 10월 11일]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의 일본인 학생 격리령과 미일 외교 위기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이후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배타적 백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인종적 반감과 배일(排日) 여론이 급속히 고조되자, 지방 선거를 앞둔 현지 정치인들은 공립학교 내 일본계 학생 축출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했다.
1906년 10월 11일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는 백인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보호한다는 인종차별적 명분을 내세워, 시내 모든 일반 공립학교에 재학 중인 일본계 학생 93명 전원을 강제 분리하여 차이나타운의 전용 동양인 학교(Oriental School)로 전학시키도록 공식 명령했다.
러일전쟁 승리로 군사 강국으로 부상했던 일본 제국 정부가 국가적 모욕이라며 거세게 항의하여 양국 간 전쟁 위기설까지 대두되었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 미국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격리령을 철회시키는 대신 일본인의 대미 노동 이민을 엄격히 제한하는 1907년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1910년 10월 11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역사상 최초 비행기 탑승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 성공 이후 인류의 항공 기술이 실험 단계를 넘어 실용화로 나아가던 시기, 평소 강인한 모험 정신을 중시하던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퇴임 후에도 첨단 비행 기술의 문명사적 가능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10년 10월 11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킨록 비행장에서 라이트 형제 비행팀 소속 조종사 아치 혹시(Arch Hoxsey, 1884-1910)가 조종하는 라이트 B형 복엽기(Wright Model B)에 탑승한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는, 3분 20초간 고도 100피트 상공에서 3마일을 선회 비행했다.
전·현직을 통틀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비행기에 탑승한 기념비적 순간으로 기록되었으며, 추락 위험으로 불신받던 초기 항공기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획기적으로 제고하여 미국의 항공 과학 발전과 군사적 공군력 도입 논의를 촉진하는 상징적 계기가 되었다.
1911-1920년 주요 사건
[1912년 10월 11일] 제1차 발칸 전쟁 중 그리스군의 코자니 탈환
발칸 동맹국들의 대오스만 제국 선전포고로 제1차 발칸 전쟁(First Balkan War)이 폭발한 가운데, 콘스탄티노스 왕세자가 이끄는 그리스 테살리아 야전군은 마케도니아 남부 내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험준한 자연 방어선인 사란타포로 협곡을 강행 돌파하는 총공세를 단행했다.
1912년 10월 10일 사란타포로 전투에서 하산 타흐신 파샤(Hasan Tahsin Pasha, 1845-1918)의 오스만 수비대를 궤멸시킨 콘스탄티노스 1세(Constantine I, 1868-1923) 왕세자의 그리스군은, 이튿날인 10월 11일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서마케도니아의 전략 요충지인 코자니(Kozani)로 무혈 입성하며 도시를 공식 해방했다.
오스만 제국의 테살리아 방어선이 완전히 와해되면서 그리스군은 북진하여 마케도니아의 핵심 항구 도시인 테살로니키를 불가리아군보다 먼저 선제 장악할 수 있는 결정적 발판을 확보하였으며, 근대 그리스 국가 영토를 대폭 확장하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했다.
[1918년 10월 11일] 푸에르토리코 산페르민 대지진과 쓰나미 참사
카리브해 모나 해협(Mona Passage)의 지각 단층대에 위치한 미국령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는 환대서양 판구조 경계의 응력 축적으로 인해 대규모 해저 지진과 쓰나미의 잠재적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었다.
1918년 10월 11일 오전 10시 14분경 북서부 아과디야 해역에서 모멘트 규모 7.1의 강력한 해저 지진이 발생한 직후 최고 6m에 달하는 거대한 쓰나미가 서부 해안 마을들을 덮쳐 아서 예거(Arthur Yager, 1858-1941) 총독 체하에서 116명이 사망하고 막대한 가옥이 침수 파괴되었다.
이는 푸에르토리코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카리브해 일대의 지진 및 지진해일 조기 경보 관측망 구축과 목조 및 석조 주거지의 내진 강화 규정을 도입하는 중대한 방재사적 계기가 되었다.
1921-1930년 주요 사건
[1924년 10월 11일] 워싱턴 세네터스의 월드시리즈 창단 23년 만의 첫 우승
1924년 창단 이래 23년간 만년 하위권에 머물던 워싱턴 세네터스(Washington Senators)는 명투수 월터 존슨의 분전 속에 창단 첫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존 맥그로 감독이 이끄는 내셔널리그 최강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와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었다.
1924년 10월 11일(현지시각 10월 10일) 워싱턴 그리피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최종 7차전에서 버키 해리스(Bucky Harris, 1896-1977) 감독의 세네터스는, 구원 등판한 노장 월터 존슨(Walter Johnson, 1887-1946)의 4이닝 무실점 역투와 연장 12회말 얼 맥닐리의 끝내기 타점에 힘입어 4대 3 승리를 거두었다.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창단 23년 만에 사상 첫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으며, 당시 캘빈 쿨리지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도 워싱턴 D.C. 시민들에게 열광적인 감격을 안겨주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7차전 연장 명승부로 영구히 남았다.
1931-1940년 주요 사건
[1937년 10월 11일] 윈저 공작 부부의 나치 독일 12일 순방 개시
월리스 심슨과의 결혼을 위해 1936년 영국 국왕 자리에서 스스로 퇴위한 에드워드 8세, 즉 윈저 공작 에드워드는 영국 왕실 및 네빌 체임벌린 내각과의 갈등 속에서 독자적인 국제적 위상을 모색하고 있었다.
1937년 10월 11일 윈저 공작 에드워드(Prince Edward, Duke of Windsor, 1894-1972)와 부인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 1896-1986)은 베를린에 도착하여 로베르트 레이 등 나치 수뇌부의 환대를 받으며 12일간의 나치 독일 공식 순방 일정을 전격 시작하였다.
순방 기간 나치식 경례를 하고 아돌프 히틀러를 접견한 이 행보는 나치 정권의 평화 선전에 악용되어 국제적 지탄을 받았으며, 윈저 공작의 친나치 성향 논란을 촉발하여 영국 왕실의 위신에 치명상을 입히고 전후 공직에서 영구 배제되는 계기가 되었다.
[1937년 10월 11일] 뉴욕 양키스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통산 6번째 우승 및 2연패
1937년 정규시즌 102승을 거두며 아메리칸리그를 압도적으로 평정한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는 멜 오트와 칼 허벨이 분전한 내셔널리그 우승팀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를 맞아 2년 연속 지하철 시리즈(Subway Series)를 펼쳤다.
1937년 10월 11일 뉴욕 폴로그라운즈(Polo Grounds)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5차전에서 조 매카시(Joe McCarthy, 1887-1978) 감독의 양키스는, 선발 레프티 고메즈(Lefty Gomez, 1908-1989)의 완투와 조 디마지오의 솔로 홈런을 앞세워 자이언츠를 4대 2로 제압했다.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전년도에 이어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며 통산 6번째 우승을 완성하였으며, 루 게릭과 조 디마지오로 이어지는 전설적인 타선의 파괴력을 과시하며 1930년대 후반 양키스 4연패 대왕조의 기틀을 공고히 다졌다.
1940-1950년 주요 사건
[1941년 10월 11일] 마케도니아 민족해방전쟁의 개막과 반파시스트 무장 봉기
제2차 세계 대전 중 추축국이 유고슬라비아를 분할 점령하자 마케도니아 지역은 파시스트 불가리아 왕국과 이탈리아령 알바니아에 의해 강제 병합되어 가혹한 동화 정책과 경제적 수탈에 직면해 있었다.
1941년 10월 11일 프리леп(Prilep)에서 미르체 아체프(Mirče Acev, 1915-1943) 등이 결성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파르티잔 분견대는 불가리아 점령군 경찰서와 통신 시설을 기습 타격하며 대대적인 반파시스트 무장 봉기를 개시하였다.
이날의 총성은 마케도니아 민족해방전쟁(National Liberation War of Macedonia)의 공식 시발점이 되었으며, 전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내에서 독자적인 공화국 지위를 획득하고 현대 북마케도니아 국가 형성의 초석을 놓았다.
[1942년 10월 11일] 에스페란스곶 해전과 미 해군의 과달카날 야간 승리
과달카날 전역(Guadalcanal Campaign)에서 헨더슨 비행장을 둘러싼 치열한 육상전이 전개되는 가운데, 일본 제국 해군은 야간 수송선단인 '도쿄 익스프레스'를 호위하고 비행장을 함포 사격하기 위해 중순양함 전대를 파견하였다.
1942년 10월 11일 밤 과달카날 서북쪽 에스페란스곶(Cape Esperance) 해역에서 노먼 스콧(Norman Scott, 1889-1942) 소장이 지휘하는 미 해군 제64기동부대는 레이더로 적을 선제 포착하고 정두 T자 진형을 형성하여 고토 아리토모(五藤存知, 1888-1942) 소장의 일본 함대를 기습 맹포격했다.
일본 기함 후루타카호와 후부키호를 격침하고 고토 소장을 전사시키는 전과를 올렸으며, 미 해군이 태평양 전쟁 개전 이래 최초로 일본 해군을 야간 함대 결전에서 격파함으로써 과달카날 해역의 제해권 균형을 되찾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1944년 10월 11일] 투바 인민공화국의 소비에트 연방 공식 병합
청나라 붕괴 후 독립을 선언했던 중앙아시아의 탄누 투바(Tannu Tuva)는 1921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으로 투바 인민공화국(Tuvan People's Republic)을 수립했으나, 외교와 군사 전반에서 사실상 소련의 위성국가로 종속되어 있었다.
1944년 10월 11일 투바 소후랄(소의회)의 간청을 승인하는 형식으로 소비에트 연방 최고소비에트 상임위원회는 미하일 칼리닌(Mikhail Kalinin, 1875-1946) 주석의 서명 아래 투바의 소련 영토 공식 편입 선언령을 발포하였다.
명목상의 독립국 지위를 상실한 투바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RSFSR) 산하의 자치주로 격하 편입되었으며, 오늘날 러시아 연방의 전략적 남부 국경을 이루는 투바 공화국(Tuva Republic)으로 재편되는 역사적 귀결을 낳았다.
[1945년 10월 1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월드시리즈 통산 2번째 우승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치러진 1945년 월드시리즈에서 행크 그린버그가 복귀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Detroit Tigers)는, 이른바 '염소의 저주' 파문이 일어났던 내셔널리그 챔피언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와 6차전까지 3승 3패의 팽팽한 호각세를 이뤘다.
1945년 10월 11일 시카고 리글리 필드(Wrigley Field)에서 거행된 월드시리즈 제7차전에서 스티브 오닐(Steve O'Neill, 1891-1962) 감독의 타이거스는, 1회초 5득점 빅이닝과 에이스 할 뉴하우저(Hal Newhouser, 1921-1998)의 완투승에 힘입어 컵스를 9대 3으로 대파했다.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1935년 이후 10년 만에 통산 2번째 월드시리즈 정상을 정복하였으며, 패배한 시카고 컵스는 이후 2016년 기적의 우승을 거둘 때까지 무려 71년 동안 월드시리즈 무대에 다시 오르지 못하는 기나긴 징크스에 갇히게 되었다.
[1950년 10월 11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CBS 컬러 TV 방송 방식 최초 승인
흑백 텔레비전의 대중적 보급이 가속화되던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천연색 컬러 방송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기계식 회전 필터를 적용한 CBS 방식과 전자식 전광 방식을 고안한 RCA 방식이 치열한 기술 표준 경쟁을 벌였다.
1950년 10월 11일 웨인 코이(Wayne Coy, 1903-1957) 위원장이 이끄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피터 골드마크(Peter Goldmark, 1906-1977) 박사가 개발한 CBS의 '필드 순차 컬러 텔레비전 시스템(Field-sequential color system)'을 역사상 최초의 공식 상업 방송 표준으로 인가하였다.
그러나 기존 흑백 수상기와 호환되지 않는 치명적 기술 한계로 대중적 반발에 부딪혀 1953년 RCA 주도의 호환 가능한 NTSC 컬러 표준에 밀려 퇴출당했으나, 인류 텔레비전 방송 기술이 흑백에서 컬러로 도약하는 중대한 정책적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1951년 10월 11일] 뉴욕 양키스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통산 14번째 우승 및 3연패
1951년 내셔널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바비 톰슨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진출한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는, 케이시 스텡걸 감독의 아메리칸리그 맹주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 패권을 놓고 격돌하였다.
1951년 10월 11일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6차전에서 케이시 스텡걸(Casey Stengel, 1890-1975) 감독의 양키스는, 6회말 행크 바우어의 3타점 3루타와 빅 라스키의 역투에 힘입어 몬테 어빈이 분전한 자이언츠를 4대 3으로 꺾었다.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1949년과 1950년에 이어 월드시리즈 3연패의 금자탑을 쌓으며 통산 14번째 우승을 달성하였고, 조 디마지오의 은퇴 무대이자 신인 미키 맨틀과 윌리 메이스의 역사적 맞대결로 양키스 전설의 세대교체를 알린 명승부로 기록되었다.
[1953년 10월 11일] 대한민국 최초의 자체 제작 경비행기 부활호 제작 완료
6·25 전쟁 휴전 직후 국토가 피폐해진 상황에서 대한민국 공군은 외세 군사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한계를 절감하고, 자주국방의 기술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조국 영공을 수호할 국산 경비행기의 독자 설계 및 제작을 서둘렀다.
1953년 10월 11일 경상남도 사천 공군기술학교에서 이원복(李元馥, 1926-2022) 소령을 주축으로 한 정예 기술 장병들이 2인승 연락·훈련용 경비행기 조립을 완료하였으며,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대통령으로부터 민족 부흥의 염원을 담은 '부활(復活)'이라는 친필 휘호를 명명받았다.
초등 비행 훈련과 연락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며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항공 공학의 자생적 출발을 만천하에 알렸으며, 오늘날 한국이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과 차세대 전투기 KF-21을 독자 개발하는 세계적 항공 방위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역사적 초석이 되었다.
[1954년 10월 11일] 제네바 협정에 따른 프랑스군의 베트남 북부 완전 철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First Indochina War)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보응우옌잡 장군의 베트민 군대에 참패한 프랑스는, 전비 부담과 거센 국내외 반전 여론에 밀려 제네바 회담(1954 Geneva Conference)에서 휴전 조약을 맺고 베트남 전선 철수를 약속했다.
1954년 10월 11일 협정에 규정된 80일간의 철수 시한에 맞춰 르네 코티(René Coty, 1882-1962) 프랑스 대통령 치하의 프랑스 원정군 주력 부대는 하노이(Hanoi)의 모든 군사·행정 시설을 인계하고 북위 17도선 이남으로 철수를 최종 완료했다.
70여 년에 걸친 프랑스의 식민 지배가 북부에서 공식 종식되고 호찌민(Hồ Chí Minh, 1890-1969) 주석의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하노이에 입성하였으며,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 분단이 고착되어 훗날 미국이 참전하는 베트남 전쟁(Vietnam War)으로 치닫는 비극적 도화선이 되었다.
[1956년 10월 11일] 뉴욕 양키스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통산 17번째 우승
1955년 월드시리즈에서 창단 첫 우승을 내주었던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는 숙적 브루클린 다저스(Brooklyn Dodgers)를 상대로 돈 라센의 5차전 퍼펙트게임에 힘입어 기세를 올렸으나, 6차전을 내주며 시리즈 최종 7차전 벼랑 끝 승부에 돌입했다.
1956년 10월 10일(현지 시각) 브루클린 에베츠 필드(Ebbets Field)에서 열린 제7차전에서 케이시 스텡걸(Casey Stengel, 1890-1975) 감독의 양키스는 요기 베라(Yogi Berra, 1925-2015)의 연타석 홈런과 선발 조니 크릭스의 완봉 역투에 힘입어 다저스를 9대 0으로 완벽히 대파했다.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1953년 이후 3년 만에 통산 17번째 월드시리즈 챔피언 트로피를 탈환하였으며, 다저스의 로스앤젤레스 연고 이전 직전 펼쳐진 마지막 역사적 '지하철 시리즈(Subway Series)'를 완벽한 승리로 장식하며 1950년대 양키스 전성기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
[1957년 10월 11일]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월드시리즈 통산 2번째 우승
1953년 보스턴에서 위스콘신주 밀워키로 연고지를 옮긴 브레이브스는 간판타자 행크 애런(Hank Aaron, 1934-2021)의 활약으로 내셔널리그를 제패한 뒤, 전년도 챔피언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6차전까지 3승 3패로 팽팽히 맞서며 최종 결전을 치렀다.
1957년 10월 10일(현지 시각)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7차전에서 프레드 헤이니(Fred Haney, 1898-1977) 감독의 밀워키 브레이브스(Milwaukee Braves)는 선발 루 버뎃(Lew Burdette, 1926-2007)의 완봉 역투를 앞세워 양키스를 5대 0으로 완파했다.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1914년 보스턴 시절 이후 43년 만에 통산 2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며, 단일 시리즈 3완투승을 달성한 버뎃의 투혼과 함께 신흥 연고지 밀워키 시민들에게 감격적인 첫 승리를 선사하며 연고 이전 구단의 성공적 정착을 알리는 스포츠사적 쾌거를 남겼다.
[1958년 10월 1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최초 심우주 탐사선 파이오니어 1호 발사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충격 이후 미국 정부는 우주 경쟁의 열세를 극복하고 체계적인 민간 우주 탐사를 총괄하기 위해 1958년 10월 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공식 출범시킨 뒤 첫 심우주 탐사선 발사를 서둘렀다.
1958년 10월 11일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토르-에이블(Thor-Able) 로켓에 탑재된 NASA의 사상 첫 공식 우주 탐사선 파이오니어 1호(Pioneer 1)가 달 궤도 진입을 목표로 우주 공간을 향해 성공적으로 점화·발사되었다.
상단 로켓의 가속 밸브 이상으로 43시간 만에 11만 3,850km 고도까지 도달한 뒤 대기권으로 재진입해 소멸했으나, 밴 앨런 복사대(Van Allen radiation belt)의 외곽 경계와 지구 자기장 데이터를 최초로 관측하여 향후 달 탐사 및 심우주 프로그램의 귀중한 과학적 자산을 남겼다.
1961-1970년 주요 사건
[1962년 10월 11일] 교황 요한 23세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선포
급변하는 20세기 현대 사회의 세속화와 냉전 갈등 속에서 가톨릭교회는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92년간 닫혀 있던 교회의 쇄신(Aggiornamento)을 통해 현대 세계와 능동적으로 소통하고 복음의 보편적 의미를 재정립해야 할 시대적 전환점에 섰다.
1962년 10월 11일 교황 요한 23세(Pope John XXIII, 1881-1963)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전 세계 2,500여 명의 주교단과 타 종파 옵서버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Second Vatican Council)'의 역사적 개막을 공식 선포했다.
라틴어 중심의 전례를 각국 모국어로 전환하고 타 종교와의 평화적 대화 및 종교 자유를 인정하는 혁신적 교령들을 채택하여 중세적 폐쇄성을 벗어던졌으며, 가톨릭교회가 현대 사회의 인권과 평화를 옹호하는 열린 보편 교회로 탈바꿈하는 문명사적 전기를 마련했다.
[1968년 10월 1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7호 유인 우주비행 발사
1967년 1월 아폴로 1호의 지상 시험 도중 발생한 사령선 화재 참사로 우주비행사 3명이 순직하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유인 달 탐사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사령선 선실의 가연성 자재 제거와 비상 탈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면 재설계했다.
1968년 10월 11일 월터 시라(Walter Schirra, 1923-2007) 선장과 돈 아이슬(Donn Eisele, 1930-1987), 월터 커닝햄(Walter Cunningham, 1932-2023)을 태운 새턴 IB 로켓이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발사되며 아폴로 계획 첫 유인 비행선 아폴로 7호(Apollo 7)가 우주로 날아올랐다.
11일간 지구 궤도를 163회 선회하며 사령선 성능을 완벽히 검증하고 우주선 내 최초의 실시간 텔레비전 생중계를 선보였으며,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같은 해 12월 아폴로 8호의 달 궤도 비행과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으로 직행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1968년 10월 1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월드시리즈 통산 3번째 우승
1967년 디트로이트 인종 폭동의 깊은 상흔 속에서 시작된 1968년 메이저리그에서, 정규시즌 31승 에이스를 보유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밥 깁슨이 버티는 내셔널리그 최강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1승 3패로 몰리며 패배의 위기에 봉착했다.
1968년 10월 10일(현지 시각) 세인트루이스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7차전에서 마요 스미스(Mayo Smith, 1915-1977) 감독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Detroit Tigers)는 미키 롤리치(Mickey Lolich, 1940-)의 1실점 완투 역투와 7회초 결승타에 힘입어 카디널스를 4대 1로 제압했다.
시리즈 1승 3패의 절대적 열세를 뒤집고 3연승을 거두며 1945년 이후 23년 만에 구단 통산 3번째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혼자서 3번의 완투승을 일궈낸 롤리치의 역투와 함께 흑백 갈등으로 상처받았던 디트로이트 도시 공동체를 스포츠로 치유하고 결속시킨 전설적 승리로 남았다.
[1969년 10월 11일] 소비에트 연방의 유인 우주선 소유스 6호 발사
1969년 7월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하자, 체제 경쟁에서 일격을 당한 소비에트 연방은 지구 저궤도 유인 우주정거장 건설 기술의 독점 확보와 다중 궤도 비행 능력 과시로 우주 개발의 전략적 목표를 신속히 전환했다.
1969년 10월 11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게오르기 쇼닌(Georgi Shonin, 1935-1997) 사령관과 발레리 쿠바소프(Valeri Kubasov, 1935-2014) 비행엔지니어를 태운 유인 우주선 소유스 6호(Soyuz 6)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예정된 궤도에 안착했다.
선내에서 사상 최초로 진공·무중력 상태의 전자빔 금속 용접 실험인 '불칸(Vulkan)' 테스트를 완벽히 수행하고 이튿날 연이어 발사된 7호 및 8호와 사상 최초 '3자 편대 비행'을 조율함으로써, 향후 살류트(Salyut)와 미르(Mir) 우주정거장 건조의 핵심 기술적 기틀을 확립했다.
1971-1980년 주요 사건
[1973년 10월 11일] 대한민국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공식 개원
1970년대 초 박정희 정부가 민족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순수 예술 창작 지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화하기 위해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함에 따라, 민간 예술 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고 문예진흥기금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전문 총괄 기관의 신설이 추진되었다.
1973년 10월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청사에서 윤주영(尹胄榮, 1928-2024) 문화공보부 장관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초대 원장으로 문학평론가 백철(白鐵, 1908-1985) 교수가 취임하며 한국문화예술진흥원(韓國文化藝術振興院)의 공식 개원식을 거행했다.
문예진흥기금 조성을 통해 척박했던 순수 문학, 미술, 연극, 전통 국악인들의 창작 기반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중추적 거점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2005년 민간 자율 중심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로 개편되어 대한민국 현대 문화융성과 문화 복지 실현의 산실이 되었다.
[1976년 10월 11일]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합중국 대원수 사후 추서
미국 건국 200주년(United States Bicentennial)을 맞아,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전쟁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의 군사적 지위가 존 퍼싱 대원수나 제2차 세계 대전기 5성 장군들보다 법적으로 낮은 중장 계급에 머물러 있는 역사적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는 국가적 여론이 비등했다.
1976년 10월 11일 제럴드 포드(Gerald Ford, 1913-2006) 미국 대통령은 의회가 초당적으로 가결한 합동 결의안에 최종 서명하여,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을 미합중국 군사 계급상 최고위직인 '합중국 대원수(General of the Armies of the United States)'로 사후 전격 추서했다.
법률 조항을 통해 조지 워싱턴의 군사적 위계가 미합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장교보다 항상 상위에 위치하도록 영구 명문화함으로써 군 통수권의 상징적 정통성을 확고히 세웠으며, 건국 영웅에 대한 국가적 예우와 군인정신의 최고 모범을 불멸의 헌정 질서로 확립했다.
1981-1990년 주요 사건
[1984년 10월 11일] 캐스린 설리번의 미국 여성 우주비행사 사상 최초 우주 유영 성공
1984년 7월 소비에트 연방의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가 여성 최초로 우주 유영을 달성하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Space Shuttle program)을 통해 여성 과학자의 심우주 탐사 참여 역량과 궤도선 외곽의 위성 수리 기술을 전 세계에 입증하고자 했다.
1984년 10월 11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Space Shuttle Challenger, STS-41-G) 임무에 참여한 지질학자 출신 비행선원 캐스린 D. 설리번(Kathryn D. Sullivan, 1951-)은 동료 데이비드 리스트마(David Leestma, 1949-)와 함께 3시간 29분간 선외 활동(EVA)을 펼치며 인공위성 급유 연결 시험을 완벽히 완수했다.
설리번은 미국 여성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우주 유영을 성공시킨 역사적 개척자로 기록되었으며, 남성 전유물로 여겨지던 우주 비행 및 극한 선외 공학 분야에 여성 진출의 지평을 넓히고 향후 허블 우주망원경 유지보수 매뉴얼을 수립하는 데 귀중한 과학적 자산을 남겼다.
[1984년 10월 11일] 소련 옴스크 공항 아에로플로트 3352편 착륙 참사
1984년 가을 짙은 안개와 비로 활주로 시정이 극도로 불량했던 시베리아 옴스크 중앙공항(Omsk Tsentralny Airport)에서는 제설 및 노면 건조용 특수 청소 차량들이 활주로에 진입해 있었으나, 관제탑의 기강 해이와 활주로 점유 경고 시스템 부재로 위험이 임계점에 달해 있었다.
1984년 10월 11일 새벽 승객 174명을 태우고 착륙을 시도하던 아에로플로트(Aeroflot) 3352편 투폴레프 Tu-154 여객기는, 당직 관제사가 졸음에 빠져 무단 점유 사실을 알리지 못한 탓에 활주로 상의 청소 차량 3대와 유조차를 시속 250km로 들이받아 대폭발을 일으키며 178명이 몰살당했다.
소비에트 연방 민간 항공 사상 최악의 지상 충돌 참사로 기록되어 관제 책임자들에 대한 가혹한 형사 처벌이 내려졌으며, 소련 민항공부가 공항 지상 차량의 위치 추적 장비 장착과 활주로 점유 자동 경보 시스템 도입을 법제화하는 등 공항 안전 관제 기준을 전면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6년 10월 11일]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 개막
1980년대 중반 미·소 군비 경쟁의 과열과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추진으로 핵전쟁의 공포가 극에 달하자, 만성적 경제난을 타개하려는 소비에트 연방의 페레스트로이카 노선과 서방 세계의 안보 안정이 맞물리며 유럽 내 중거리 핵미사일 감축을 위한 최고위급 담판이 성사되었다.
1986년 10월 11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Reykjavik)의 회프디(Høfði) 하우스에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2022) 공산당 서기장은 단독 회담을 열고, 모든 전략 탄도미사일의 전면 철폐를 아우르는 파격적인 군축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미사일 방어 체계 폐기를 둘러싼 이견으로 공식 공동성명 채택에는 실패했으나 양국 정상이 사상 최초로 '핵무기 없는 세상'의 구체적 청사진을 진지하게 논의하였으며, 이는 이듬해 1987년 역사적인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Treaty) 체결과 냉전 종식으로 직행하는 결정적 도약대가 되었다.
[1987년 10월 11일] 인도 평화유지군의 스리랑카 파완 작전 개시
1987년 7월 인도-스리랑카 평화협정에 따라 분쟁 종식을 명분으로 스리랑카 북부에 진주한 인도 평화유지군(IPKF)은, 소수 민족 분리주의 무장 조직인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가 무장 해제 약속을 전면 거부하고 정규군과의 적대 행위를 재개하자 강제 무력 진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987년 10월 11일 하르키랏 싱(Harkirat Singh, 1936-2020) 소장이 통솔하는 인도 정규 육군은 반군의 정치·군사적 심장부였던 자프나(Jaffna) 반도를 무력 탈환하고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 등 반군 지도부를 섬멸하기 위한 대규모 공세 작전인 '파완 작전(Operation Pawan)'의 총공격을 단행했다.
시가전과 유격전의 수렁에 빠진 인도군은 수천 명의 민간인과 반군 사상자를 내고 자국 군인 1천여 명이 전사하는 참담한 군사적 수모를 겪은 끝에 1990년 불명예 철수하였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91년 라지브 간디(Rajiv Gandhi, 1944-1991) 전 인도 총리가 자살폭탄 테러로 피살되는 비극을 초래했다.
[1987년 10월 11일] 워싱턴 내셔널 몰의 에이즈 추모 퀼트 역사적 첫 전시
1980년대 후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대유행 속에서 보수 사회의 편견과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방관으로 수많은 환자가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며 사망하자, 샌프란시스코의 인권 운동가 클리브 존스는 떠나간 희생자들의 존엄을 회복하고 침묵의 장벽을 부술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착안했다.
1987년 10월 11일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제2차 전국 워싱턴 행진'에 맞춰 클리브 존스(Cleve Jones, 1954-)와 네임스 프로젝트 재단(NAMES Project Foundation)은 백악관 인근 내셔널 몰(National Mall) 잔디광장에 희생자들의 유품과 천 조각을 엮은 1,920장의 대형 '에이즈 추모 퀼트(AIDS Memorial Quilt)'를 최초로 공개했다.
축구장 크기를 뒤덮은 거대한 색채의 추모물은 사망자들의 구체적인 삶을 대중에게 증언하며 미국 사회 전체에 깊은 슬픔과 도덕적 각성을 불러일으켰으며, 연방정부의 치료제 연구 예산 확충과 환자 인권 보장을 촉진한 현대 시민사회 운동 및 공공 기념 예술의 독보적 기념비가 되었다.
[1989년 10월 11일] 대한민국 한국항공우주연구소(KARI) 공식 발족
제6공화국 정부는 첨단 과학기술의 독자적 역량을 구축하고 국가 안보와 미래 항공우주 산업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산학연으로 분산되어 있던 항공기 설계 및 위성 개발 역량을 국가 차원에서 종합·연계할 전문 연구 기관의 설립을 강력히 추진했다.
1989년 10월 11일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정부 및 과학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우식(鄭禹湜, 1928-2007) 초대 소장이 취임하며,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기관으로서 국산 항공기 개발과 인공위성 및 발사체 연구를 총괄할 '한국항공우주연구소(韓國航空宇宙硏究所, 현 항공우주연구원)'가 공식 출범했다.
항공우주 기술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체계적인 항공기 체계 종합 및 우주 탐사 기반을 확립하였으며, 이후 1999년 독립 법인 승격을 거쳐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호,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독자 기술 발사체 누리호(KSLV-II)의 성공을 견인하며 한국을 세계 7대 우주 강국으로 이끈 핵심 모태가 되었다.
[1990년 10월 11일] 평양 5·1경기장의 제1차 남북통일축구경기 역사적 개최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당시 남북 체육계 수뇌부의 전격적인 합의와 남북 고위급 회담의 진전에 힘입어, 분단 45년 만에 스포츠 교류를 통해 냉전적 불신을 해소하고 민족 화해와 평화 통일의 사회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축구 친선경기가 성사되었다.
1990년 10월 11일 15만 관중이 가득 들어찬 평양 릉라도 5·1경기장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은 단일 한반도기를 게양하고 아리랑을 국가로 합창하는 가운데 사상 첫 '남북통일축구경기(南北統一蹴球競技)' 1차전을 펼쳤으며, 북측이 페널티킥 결승골로 남측에 2대 1 승리를 거두었다.
승패를 떠나 남북 선수들이 한데 엉켜 얼싸안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감격적인 장면이 안방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어 온 겨레에 깊은 평화 통일의 염원을 심어주었으며, 서울 2차전으로 이어져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Korea) 구성을 성사시킨 역사적 마중물이 되었다.
1991-2000년 주요 사건
[1991년 10월 11일] 아니타 힐 교수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후보 성희롱 폭로 청문회 증언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진보 거두 서굿 마셜 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 흑인 판사 클래런스 토머스를 지명하자 인준 표결을 앞두고 있었으나, 과거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 재직 시절 그의 상습적 성희롱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며 미 연방 상원 법사위의 긴급 공개 청문회가 열렸다.
1991년 10월 11일 오클라호마 대학교 법대 교수 아니타 힐(Anita Hill, 1956-)은 상원 증언대에 출석하여,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 1948-) 후보자가 과거 직속상관으로서 자신에게 가했던 적나라하고 집요한 성적 언동과 권력형 괴롭힘 실태를 전 국민 생중계 방송을 통해 차분하고 결연하게 증언했다.
백인 남성 일색이던 상원의 고압적 태도 속에 인준안은 근소한 차로 통과되었으나 미국 사회 전역에 직장 내 성희롱의 심각성을 최초로 각인시켰으며, 이에 분노한 유권자들의 투표로 이듬해 사상 최다 여성 의원이 상·하원에 입성하는 '여성의 해(Year of the Woman)'를 촉발한 현대 인권사의 거대한 분수령이 되었다.
[1994년 10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 단군릉 복원 및 개건 공사 완료
1993년 북한 사회과학원이 평양 강동군 대박산에서 단군의 유골과 연대를 발굴·입증했다고 공식 발표함에 따라, 생전의 김일성(金日成, 1912-1994) 주석은 민족 시조의 묘역 조성을 통해 대내외적인 체제 결속을 다지고 평양이 한민족사의 정통 중심지임을 과시하기 위해 대규모 단군릉 개건 사업을 직접 지시했다.
김일성 사망 직후 정권을 장악한 김정일(金正日, 1941-2011) 국방위원장의 지도 아래, 1994년 10월 11일 평양 강동군 현장에서 당·정·군 고위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강암 1,994개를 9단계로 쌓아 올린 높이 22m의 초대형 피라미드형 석조 단군릉(壇君陵) 완공 및 개건 기념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북한 당국은 이를 계기로 대동강 유역이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대동강문화론(大同江文化論)'을 교조화하여 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립하는 사상적 도구로 활용하였으며, 단군 설화를 실존 역사로 전면 편입시켜 남북 민족 동질성을 선전하는 동시에 김씨 일가 세습 권력의 신성화에 악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10월 11일] 대한민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번째 회원국 가입
김영삼(金泳三, 1927-2015) 문민정부는 '세계화'를 최우선 국정 지표로 내세우며, 이른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대한민국 경제 외교의 핵심 과제로 강력히 추진하였다.
1996년 10월 11일 프랑스 파리 OECD 본부에서 도널드 존스턴(Donald Johnston, 1936-2022) 사무총장이 주재한 이사회는, 까다로운 가입 심사를 거친 대한민국의 29번째 정회원국 가입을 만장일치로 공식 승인하였다.
이는 한국 경제가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 경제권으로 도약했음을 국제사회로부터 공인받은 기념비적 성과였으나, 이듬해 성급한 자본 시장 개방의 여파로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게 되는 양면적 결과를 낳았다.
[1996년 10월 11일] 마이클 잭슨 첫 내한 공연 개최
세계적인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2009)의 대규모 월드 투어인 '히스토리 투어(HIStory World Tour)'가 기획되자, 한국 공연 기획사들은 천문학적인 개런티를 지불하며 그의 사상 첫 내한을 성사시켰다.
1996년 10월 11일 저녁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마이클 잭슨은 화려한 특수효과와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타워크레인 탑승과 탱크 등장 등 압도적인 무대 연출로 4만여 명의 관중을 열광시켰다.
보수적 시민단체들의 극렬한 반대 시위와 공연 취소 운동에도 불구하고 치러진 이 무대는, 대한민국 대중문화 개방과 대형 글로벌 팝 아티스트 내한 공연 산업의 비약적인 확장을 이끄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1996년 10월 11일] 서울 지하철 7호선 장암~건대입구 구간 개통
1990년대 초 서울 동북부의 상계동, 중계동 등 대규모 택지 개발 지구에 인구가 급증하자, 도심으로 향하는 극심한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제2기 지하철 계획의 핵심인 서울 지하철 7호선(Seoul Subway Line 7) 건설이 강력히 추진되었다.
1996년 10월 11일 조순(趙淳, 1928-2022) 서울특별시장과 시민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암 차량기지에서 개통식이 열렸으며, 장암역에서 건대입구역에 이르는 19km 구간의 19개 역이 공식적인 영업 운행을 전격 개시하였다.
지하철 교통 소외 지역이었던 강북 동북부 일대의 대중교통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으며, 이후 2000년 강남 구간이 완전 개통됨에 따라 서울의 강남북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핵심 간선 철도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1997년 10월 11일] 인천방송(iTV) 텔레비전 방송 개국
1990년대 중반 지역 민영 방송 설립 정책에 따라 수도권 서부 지역의 독자적인 방송권 확보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인천광역시를 거점으로 하는 새로운 독립 지역 민영 방송국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997년 10월 11일 동양제철화학(현 OCI)을 대주주로 한 인천방송(iTV)이 정식으로 개국 전파를 발사하였으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선수의 야구 경기 독점 중계를 전면에 내세워 폭발적인 시청률 돌풍을 일으켰다.
기존 지상파 3사의 독과점 구도를 위협하며 참신한 오락 프로그램으로 혁신을 주도했으나, 무리한 권역 확대 시도와 경영 악화가 겹치며 2004년 방송위원회로부터 사상 초유의 재허가 추천 거부를 받고 정파되는 비운을 겪었다.
[1999년 10월 11일] 에어 보츠와나 조종사의 ATR 42 여객기 자살 추락 참사
에어 보츠와나(Air Botswana) 소속 조종사 크리스 파츠웨(Chris Phatswe, 생몰년 미상)는 건강상의 이유로 조종사 자격을 박탈당하자, 소속 항공사와 정부 당국에 극심한 앙심을 품고 파괴적인 보복 범죄를 치밀하게 계획하였다.
1999년 10월 11일 새벽 가보로네의 세레체 카마 경 국제공항(Sir Seretse Khama International Airport)에 몰래 침입한 파츠웨는 ATR 42 여객기를 무단 탈취해 이륙한 뒤, 무전으로 자살 의사를 통보하고 주기장에 세워져 있던 2대의 동형 여객기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파츠웨 본인은 현장에서 즉사하였으며 여객기 3대가 연쇄 폭발로 완전히 소실됨으로써, 당시 단 4대의 여객기만을 보유했던 국영 항공사 에어 보츠와나의 운항 역량이 일거에 마비되고 전 세계 항공업계에 내부자 보안 통제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2000년 10월 11일] 미국 우주왕복선 통산 100번째 임무 STS-92 발사
1981년 컬럼비아호 발사로 시작된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Space Shuttle program)은 인류의 우주 접근성을 혁신적으로 높였으며,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본격적인 골조 조립을 위한 정밀 궤도 공학 임무가 지속적으로 요구되었다.
2000년 10월 11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브라이언 더피(Brian Duffy, 1953-) 선장이 지휘하는 디스커버리호(Space Shuttle Discovery)가 우주왕복선 역사상 통산 100번째 공식 임무인 STS-92를 띠고 지구 궤도를 향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ISS의 핵심 뼈대인 Z1 트러스(Z1 Truss)와 가압 결합 어댑터를 무사히 장착하여 우주정거장의 통신 및 궤도 제어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으며, 우주왕복선 시스템이 이룩한 100회의 유인 우주비행이라는 역사적 금자탑을 전 세계에 과시하였다.
21세기(2001-2100년) 주요 사건
2001-2010년 주요 사건
[2001년 10월 11일] 폴라로이드 코퍼레이션 파산 보호 공식 신청
즉석카메라의 대명사로 20세기 시각 문화 혁명을 주도했던 폴라로이드(Polaroid Corporation)는, 디지털 카메라의 급격한 대중화와 필름 시장의 쇠퇴 속에서도 전통적인 아날로그 수익 모델에 집착하다 극심한 유동성 위기와 부채의 늪에 빠졌다.
2001년 10월 11일 개리 디카밀로(Gary DiCamillo, 1950-) 최고경영자가 이끄는 폴라로이드 이사회는 1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 상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델라웨어주 연방 파산법원에 챕터 11(Chapter 11) 파산 보호를 전격 신청하였다.
한때 미국 기술 혁신 기업의 상징이었던 폴라로이드의 몰락은 시대의 기술적 흐름을 읽지 못한 기업의 필연적 도태를 보여주는 현대 경영학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이후 브랜드 판권이 조각조각 매각되며 오리지널 회사는 역사 속으로 해체되었다.
[2002년 10월 11일] 핀란드 반타 뮈르만니 쇼핑몰 폭탄 테러 사건
핀란드 헬싱키 인근의 반타(Vantaa) 지역은 평화로운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화학과 폭발물 제조에 심취해 있던 19세의 대학생 페트리 게르트(Petri Gerdt, 1983-2002)가 인터넷 사제 폭탄 포럼에서 지식을 얻어 치명적인 폭발물을 은밀히 제조하였다.
2002년 10월 11일 저녁 인파로 붐비던 반타의 뮈르만니(Myyrmanni) 쇼핑몰 중앙 광장에서 게르트가 배낭에 숨겨온 2~3kg 위력의 수제 파이프 폭탄이 강력하게 폭발하여, 범인 본인을 포함해 어린이 등 총 7명이 사망하고 16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범죄 청정국으로 여겨지던 핀란드 사회에 거대한 정신적 충격을 안겼으며, 유럽 내 익명 인터넷을 통한 폭발물 제조 정보 공유의 심각한 위험성이 대두되면서 사이버 상의 유해 정보 규제 및 테러 방지망을 전면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10월 11일] 대한민국 제5차 부동산 종합대책 공식 발표
2000년대 초반 김대중(金大中, 1924-2009) 정부 말기 저금리 기조와 가계 대출 급증으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고 투기 수요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고강도의 징벌적 투기 억제책을 긴급히 마련하였다.
2002년 10월 11일 전윤철(田允喆, 1939-)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임인택(林寅澤, 1940-2020) 건설교통부 장관은 투기과열지구 내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과 1세대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를 골자로 한 '5차 부동산 종합대책'을 합동 발표하였다.
기준시가 대신 실제 거래액을 바탕으로 양도세를 중과하는 획기적인 조세 제도가 전격 도입되어 다주택 단기 투기 세력에 제동을 걸었으며, 이후 참여정부의 더욱 강력한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 및 종합부동산세 신설로 이어지는 정책적 징검다리가 되었다.
[2002년 10월 11일] 한국어 위키백과 프로젝트 공식 개설 및 출범
2001년 지미 웨일스(Jimmy Wales, 1966-)가 창립한 집단 지성 기반의 자유 백과사전 위키백과(Wikipedia)가 영어권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다국어 버전 확장을 추진하자, 한국의 인터넷 전문가들도 자국어 백과사전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였다.
2002년 10월 11일 구(舊) 미디어위키 소프트웨어 기반 아래 최초의 한국어 위키백과(Korean Wikipedia) 프로젝트 도메인이 정식으로 개설되었으며, 초창기 익명의 사용자들이 기술적 테스트와 기초 문서 작성을 시도하며 지식 공유의 역사적 첫발을 내디뎠다.
초기에는 한글 인코딩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3년 유니코드 도입 이후 급격히 성장하였으며,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와 편집을 통해 수십만 개의 문서를 축적하며 대한민국 최대의 오픈소스 온라인 백과사전이자 지식 플랫폼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2003년 10월 11일] 최일구 앵커의 주말 《MBC 뉴스데스크》 첫 방송
2000년대 초반 지상파 메인 뉴스들의 경직되고 권위적인 보도 방식에서 탈피하여,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고 현장감 넘치며 촌철살인의 풍자와 직설적 화법을 전달하는 새로운 주말 뉴스 포맷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2003년 10월 11일 주말 저녁 9시 문화방송(MBC) 스튜디오에서 사회부 차장 출신의 최일구(崔日九, 1963-) 앵커가 박혜진(朴惠珍, 1978-) 아나운서와 함께 《MBC 뉴스데스크(MBC Newsdesk)》의 주말 메인 앵커로서 역사적인 첫 방송을 개시했다.
"주말 뉴스데스크는 친절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파격적인 클로징 멘트와 현장 밀착형 어록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권위주의적이었던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문법을 허물고 앵커 개성과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보도 패러다임을 확립했다.
[2004년 10월 11일] 이한택 주교의 천주교 의정부교구 초대 교구장 착좌
경기 북부 지역의 인구 유입과 신도시 개발로 가톨릭 신자 수가 급증하자, 천주교 서울대교구(Archdiocese of Seoul)의 과밀을 해소하고 접경 지역 복음화를 위해 2004년 6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의정부교구(Diocese of Uijeongbu)가 신설되었다.
2004년 10월 1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백석동에서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Emil Paul Tscherrig, 1947-) 대주교와 정진석(鄭鎭奭, 1931-2021) 대주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초대 교구장 이한택(李漢澤, 1934-) 주교의 역사적인 착좌식 미사가 거행되었다.
서울대교구에서 분리 독립한 의정부교구는 경기 북부 8개 시·군을 관할하는 독자적 사목 체제를 확립하였으며, DMZ 접경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살려 민족화해와 평화 통일 기원 사목 및 외국인 이주노동자 사목을 선도하는 중추적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10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콜금리 3.50% 전격 인상
2000년대 중반 저금리 장기화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속 금리 인상으로 한미 금리 역전이 심화되자, 한국은행은 부동산 투기 억제와 자본 유출 방지를 위해 긴축 통화정책으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2005년 10월 11일 박승(朴昇, 1936-) 총재가 주재한 한국은행(Bank of Korea) 금융통화위원회는 정례 본회의를 열고, 금융기관 간 초단기 대차 금리인 콜금리(Call rate) 목표치를 종전 연 3.25%에서 3.50%로 0.25%포인트 전격 인상하기로 공식 의결했다.
2002년 5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단행된 통화 긴축 신호탄으로서 초저금리 기조를 공식 마감하였으며, 시중 은행들의 대출 금리 인상을 유도해 과열된 부동산 투기 심리를 억제하고 거시경제의 건전성을 제고하는 중요한 정책적 분수령이 되었다.
[2007년 10월 11일]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 신정아의 동시 구속 수감
동국대학교 조교수 임용과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신정아 전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의 학력 위조 파문은, 청와대 최고위 관료와의 권력형 유착 비리 의혹으로 비화하며 참여정부 국정 운영에 치명타를 입혔다.
2007년 10월 1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변양균(卞良均, 1949-)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사문서 위조 및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신정아(申貞娥, 1972-)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였고, 두 사람은 영등포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학력 위조와 권력형 비리가 얽힌 이 사건은 사회 지도층의 가짜 학위 실태를 폭로하여 전 국가적인 학벌 검증 열풍을 일으켰으며,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가해 연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정권 교체 흐름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7년 10월 11일]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
20세기 영문학의 거장 도리스 레싱은 아프리카 식민지 현실과 여성의 내면을 날카롭게 해부한 대표작 《황금 노트북(The Golden Notebook)》을 통해 페미니즘과 반식민주의 문학의 새 지평을 열며 세계적인 문학적 찬사를 받아왔다.
2007년 10월 11일 스웨덴 아카데미(Swedish Academy)의 호레이스 엥달(Horace Engdahl, 1948-) 상임비서는 "분열된 문명을 회의주의와 열정으로 응시한 서사시인"이라 평하며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1919-2013)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공식 발표했다.
당시 87세로 역대 최고령 노벨 문학상 수상 기록을 세우며 영국 여성 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재확인시켰으며, 이데올로기와 성별의 굴레를 거부하고 개인의 실존적 자유를 치열하게 탐구한 그녀의 작품 세계는 현대 문학 비평계의 영구한 나침반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10월 11일] 미국 정부의 북한 테러지원국 명단 공식 해제
제2차 북핵 위기 이후 6자회담을 통해 영변 핵시설 불능화가 추진되자,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촉진하고 외교적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핵심 상응 조치로 검토했다.
2008년 10월 11일 숀 매코맥(Sean McCormack, 1964-)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 검증에 합의함에 따라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1946-)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20년 만에 미국의 '테러지원국(State Sponsors of Terrorism)' 명단에서 공식 제외했다고 발표했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이후 부과되었던 미국의 무역 제재가 일부 완화되어 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었으나, 북한의 추가 사찰 거부와 2009년 제2차 핵실험으로 합의가 무산되며 2017년 테러지원국에 재지정되는 곡절을 겪었다.
2011-2020년 주요 사건
[2012년 10월 11일] 중국 작가 모옌의 201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
중국 현대문학은 문화대혁명의 비극과 민중의 생명력을 토속적 환상과 결합한 '뿌리 찾기 문학(尋根文學)'을 발전시켰으며, 작가 모옌은 소설 《붉은 수수밭(紅高粱家族)》 등을 통해 격동기 중국의 역사를 독창적인 환상 서사로 그려냈다.
2012년 10월 11일 스웨덴 아카데미의 페테르 엥룬드(Peter Englund, 1957-) 상임비서는 "환상적 사실주의(Hallucinatory realism)를 민간 설화, 역사, 현대와 융합시켰다"고 발표하며 중국 작가 모옌(莫言, Mo Yan, 1955-)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공식 선정했다.
중국 국적의 본토 거주 작가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여 중국 문단에 커다란 자긍심을 안겼으며, 체제 순응적이라는 서구의 비판 속에서도 동양적 마술적 사실주의 문학의 독보적 성취를 세계문학의 중심 반열에 확고히 올려놓았다.
[2013년 10월 11일] 시칠리아 해협 난민선 전복 침몰 참사
시리아 내전(Syrian Civil War)의 참상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으나, 안전장비가 전무한 밀입국 조직의 노후 목선 과적 운항으로 대형 해상 조난 참사의 위험이 극에 달해 있었다.
2013년 10월 11일 피난민 400여 명을 태운 선박이 시칠리아 해협(Channel of Sicily) 몰타 인근 해역에서 침수 전복되었으며, 이탈리아와 몰타 해군의 구조 작업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60여 명을 포함해 최소 268명이 비극적으로 수장되었다.
일주일 전 람페두사 참사에 이어 발생한 이 비극은 유럽연합(EU)의 난민 방치에 대한 국제적 공분을 불렀으며, 엔리코 레타(Enrico Letta, 1966-) 이탈리아 총리가 대규모 해상 수색 구조 작전인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을 출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13년 10월 11일] 경상북도 영덕 해역 규모 3.6 지진 발생
한반도 동남부 연안은 양산단층대(梁山斷層帶)와 해저 단층들이 발달해 지진 발생 가능성이 상존했으나, 대형 지진의 빈도가 낮아 연안 해역 감시망과 원자력 발전소의 내진 안전성에 대한 대중적 경각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2013년 10월 11일 새벽 2시 12분경 경상북도 영덕군 동북동쪽 22km 해역 지하 14km 지점에서 규모 3.6의 해저 지진이 발생하여, 영덕과 포항은 물론 대구와 울산 등 영남권 전역에서 창문이 흔들리는 뚜렷한 진동이 감지되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인근 원자력 발전소와 동해안 산업 시설의 내진 안전 점검을 촉발하였으며, 이후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동남권 지진 활동성 연구와 국가 지진 조기 경보 체계 강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4년 10월 11일] 필리핀 올롱가포 제니퍼 라우드 살해 사건
미군과 필리핀군의 연례 합동 훈련이 전개되던 가운데, 미군 방문군지위협정(VFA)의 불평등한 형사 관할권 조항과 군사기지 주둔을 둘러싸고 필리핀 시민사회의 주권 침해 논란과 반미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다.
2014년 10월 11일 밤 필리핀 올롱가포(Olongapo)의 한 모텔에서 미 해병대 제4연대 소속 조셉 스콧 펨벌턴(Joseph Scott Pemberton, 1995-) 일병은, 성매매로 만난 현지 트랜스젠더 여성 제니퍼 라우드(Jennifer Laude, 1988-2014)를 목 졸라 살해하고 변기에 밀어 넣어 익사시켰다.
미군의 잔혹한 증오범죄와 신병 인도를 둘러싼 갈등은 필리핀 전역의 대규모 반미 시위로 번졌으며, 펨벌턴이 복역 중 2020년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1945-) 대통령의 일방적 특사로 석방·추방되면서 필리핀 사법 주권과 성소수자 인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2018년 10월 11일] 러시아 소유스 MS-10 우주선의 발사 실패와 비상 탈출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우주비행사를 수송하던 러시아의 소유스(Soyuz-FG) 로켓은 오랜 기간 안전성을 인정받았으나, 우주 산업계의 제조 공정 관리 부실로 인해 잠재적 결함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2018년 10월 11일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된 소유스 MS-10(Soyuz MS-10)은 이륙 118초 만에 부스터 분리 불량으로 폭발 위기에 처했으나, 알렉세이 오브치닌(Aleksey Ovchinin, 1971-)과 닉 헤이그(Nick Hague, 1975-)는 비상 탈출 시스템을 가동해 무사히 지상에 착륙했다.
35년 만의 소유스 발사 실패 사고 속에서도 승무원 전원이 생환하여 비상 구출 시스템의 신뢰성을 입증하였으며, 러시아 우주 발사체의 전면적 품질 쇄신과 함께 미국의 민간 유인 우주선인 스페이스X 크루 드래곤(Crew Dragon) 도입을 크게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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