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3일: 한국 야구대표팀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 획득
김경문(Kim Kyung-moon, 1958~ )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중국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Wukesong Baseball Stadium)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강호 쿠바를 3-2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표팀은 예선 풀리그부터 준결승에서 일본을 격파한 경기를 포함해 결승전까지 9전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였다. 특히 결승전 9회 말 1사 만루의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병살타를 유도해 승리를 확정 지은 순간은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극적인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우승은 대한민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으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함과 동시에 KBO 리그의 폭발적인 흥행과 성장을 이끄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날을 기념하여 한국야구위원회(Korea Baseball Organization)는 매년 8월 23일을 '야구의 날'로 제정하였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특수부대원 무장 탈출 사건
인천 앞바다의 무인도 실미도(Silmido)에서 북한 주석궁 침투를 목표로 혹독한 훈련을 받던 공군 2325전대 209파견대(일명 684부대) 대원 24명이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부대를 이탈하였다. 이들은 섬을 탈출하여 인천 송도 해안에 상륙한 뒤 시외버스를 탈취해 서울 청와대로 향하였다. 정부의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따른 침투 작전 취소와 부대 방치, 가혹한 처우에 반발하여 발생한 반란이었다. 대원들은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Yuhan Corporation) 건물 앞에서 군경과 격렬한 총격전을 벌였으며, 대치가 이어지자 버스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하였다. 현장에서 다수의 대원이 숨지고 생존한 4명도 사형 판결을 받아 처형되었다. 사건 직후 군사정권은 이를 무장공비의 난동으로 은폐하려 하였으나 점차 진상이 드러나며 냉전기 비극적 흑역사로 기록되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944년 8월 23일: 일제의 강제동원 악법 '여자정신근로령' 공포
태평양전쟁(Pacific War) 말기 심각한 물자 및 인력 부족에 직면한 일제는 조선총독부(Government-General of Chosen)를 통해 '여자정신근로령(Women's Volunteer Labour Corps Ordinance)'을 전격 공포하였다. 이 칙령은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미혼 여성을 강제로 징용하여 군수공장과 생산 현장의 노동력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조치였다. 일제는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조선의 어린 소녀와 여성들을 미쓰비시중공업(Mitsubishi Heavy Industries) 등의 군수공장이나 비행기 제작소로 강제 연행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였다. 이는 인적 수탈을 정당화한 대표적인 전시 동원 악법이었으며, 광복 후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진상 규명이 지연되어 한일 간의 중대한 역사적 갈등과 상처로 남게 되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944년 8월 23일: 나치 점령 4년 만의 파리 해방 본격화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군(Free French Forces) 제2기갑사단과 미군 연합군이 나치 독일(Nazi Germany)에 점령당해 있던 프랑스 수도 파리(Paris) 시내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파리 시내에서는 이미 8월 19일부터 공산주의자와 공화주의자 등 내부 레지스탕스(Resistance) 세력이 총파업과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 시가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파리 군정장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Dietrich von Choltitz, 1894~1966)에게 주요 교량과 문화유산을 모두 폭파하라는 파괴 명령을 내렸으나, 콜티츠 장군은 이를 거부하였다. 연합군의 입성과 레지스탕스의 활약으로 8월 25일 독일군이 공식 항복하며 파리는 4년간의 가혹한 나치 지배에서 벗어나 감격적인 자유를 되찾았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939년 8월 23일: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 독소불가침조약 체결
모스크바(Moscow)에서 나치 독일의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Joachim von Ribbentrop, 1893~1946)와 소련의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Vyacheslav Molotov, 1890~1986)가 10년 기한의 '독일-소련 불가침조약(Molotov–Ribbentrop Pact)'에 서명하였다. 이념적으로 철천지원수였던 파시즘과 공산주의 정권이 맺은 이 조약은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조약에는 상호 무력 불행사뿐만 아니라 비밀 의정서를 통해 폴란드(Poland)를 동서로 분할 점령하고 발트 3국(Baltic States)과 핀란드, 루마니아 베사라비아에 대한 세력권을 소련에 양도한다는 밀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배후의 안전을 확보한 독일은 조약 체결 불과 9일 만인 9월 1일 폴란드를 전격 침공하였고, 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화인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의 직접적인 발발 도화선이 되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927년 8월 23일: 사코와 반제티 사형 집행
미국 매사추세츠주(State of Massachusetts) 찰스타운 주립교도소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이자 아나키스트 운동가인 니콜라 사코(Nicola Sacco, 1891~1927)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Bartolomeo Vanzetti, 1888~1927)에 대한 전기의자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들은 1920년 매사추세츠주 사우스 브레인트리에서 발생한 제화공장 급여 수송원 살해 강도 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명확한 물증이 없었으며, 편파적인 판사와 배심원단의 반이민 정서 및 적색공포(Red Scare)가 작용한 사법살인이라는 비판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아인슈타인과 버나드 쇼 등 지식인들의 격렬한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사형이 강행되었다. 결국 반세기 후인 1977년 마이클 두카키스(Michael Dukakis, 1933~ )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재판의 불공정성을 공식 인정하고 두 사람의 명예를 공식 복권하였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926년 8월 23일: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 루돌프 발렌티노 사망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를 풍미한 최초의 남성 섹스 심벌이자 슈퍼스타 루돌프 발렌티노(Rudolph Valentino, 1895~1926)가 복막염과 패혈증으로 뉴욕에서 31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사망하였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묵시록의 4기사(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와 <족장(The Sheik)> 등의 작품에서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외모와 강렬한 눈빛 연기로 전 세계 여성 관객들을 열광시키며 '라틴 러버(Latin Lover)'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요절 소식에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이 집단 히스테리에 빠졌으며, 자살하는 팬들이 속출하기도 하였다. 뉴욕에서 엄수된 그의 장례식장에는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어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무성영화 황금기를 상징하는 거대한 대중문화 아이콘의 퇴장이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912년 8월 23일: 뮤지컬 영화의 거장 진 켈리 출생
미국 펜실베이니아주(Commonwealth of Pennsylvania) 피츠버그(Pittsburgh)에서 뮤지컬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무용수이자 영화감독, 배우인 진 켈리(Gene Kelly, 1912~1996)가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우아함 중심의 탭댄스에 역동적인 애슬레틱 댄스와 발레를 결합하여 독창적인 춤 스타일을 확립하였다. 그가 공동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1951)과 영화 역사상 최고의 뮤지컬로 손꼽히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1952)는 혁신적인 야외 촬영과 카메라 워크를 통해 뮤지컬 장르를 진정한 영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비를 맞으며 우산을 들고 행복에 겨워 춤추는 그의 명장면은 대중문화사에 영원히 각인되었으며, 1951년 아카데미 명예상(Academy Honorary Award)을 수상하는 등 영화 예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806년 8월 23일: 전자기학의 기초를 닦은 샤를 오귀스탠 드 쿨롱 사망
프랑스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공학자인 샤를 오귀스탠 드 쿨롱(Charles-Augustin de Coulomb, 1736~1806)이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정밀한 비틀림 저울(Torsion balance)을 발명하여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를 통해 두 점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정전기적 인력과 척력의 크기는 두 전하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전자기학의 기본 법칙인 '쿨롱의 법칙(Coulomb's law)'을 발표하였다. 또한 마찰력과 점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응용역학과 토목공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학문적 공로를 기리기 위해 국제단위계(SI)에서는 전하량의 기본 단위로 '쿨롱(C)'을 제정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현대 전자기학의 초석을 세운 인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769년 8월 23일: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비운의 군주 루이 16세 출생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의 격랑 속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의 국왕 루이 16세(Louis XVI, 1754~1793)가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에서 태어났다. 1774년 즉위한 그는 선량하고 학구적인 성품을 지녔으나 우유부단하였고, 누적된 국가 재정 파탄과 구체제(Ancien Régime)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재정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1789년 삼부회(Estates-General)를 소집하였으나, 이는 부르주아지와 민중이 주도하는 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시도하던 중 1791년 오스트리아로 야반도주를 시도한 '바렌 도피 사건(Flight to Varennes)'으로 국민적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결국 혁명정부에 의해 반역죄로 기소되어 1793년 1월 혁명광장에서 단두대(Guillotine) 처형을 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1305년 8월 23일: 스코틀랜드 독립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 처형
스코틀랜드(Scotland)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 영웅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 1270경~1305)가 런던 스미스필드(Smithfield)에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Edward I, 1239~1307)의 명에 의해 잔혹하게 처형당하였다. 그는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Battle of Stirling Bridge)에서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극복하고 잉글랜드 대군을 궤멸시키며 스코틀랜드의 수호자(Guardian of Scotland)로 추대되었다. 비록 폴커크 전투(Battle of Falkirk)에서 패배한 뒤 은신하였으나 지속적인 저항을 펼치다 스코틀랜드 귀족의 배신으로 체포되었다. 런던으로 압송된 그는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열린 재판에서 국왕 시해와 반역 혐의를 단호히 부인하였으나, 교수형과 거열형 등 극형을 당하였다. 그의 숭고한 죽음은 로버트 1세(Robert I, 1274~1329)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민족 전체를 결집시켜 최종적인 독립을 쟁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634년 8월 23일: 이슬람 제국의 초대 정통 칼리파 아부 바크르 사망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 570경~632)의 가장 절친한 벗이자 최초의 개종자 중 한 명인 아부 바크르(Abu Bakr, 573경~634)가 메디나(Medina)에서 열병으로 타계하였다. 632년 무함마드 사후 그는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인 초대 정통 칼리파(Caliph)로 선출되었다. 취임 직후 아라비아반도 곳곳에서 일어난 배교와 반란을 평정한 '리다 전쟁(Ridda Wars)'을 승리로 이끌며 분열 위기에 처한 이슬람 공동체를 확고하게 재통합하였다. 또한 야마마 전투 이후 전사자 속출로 소실될 위기에 처한 신의 계시를 보존하기 위해 이슬람 경전인 《쿠란(Quran)》의 필사본을 최초로 수집·편찬하는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사후 팽창 정책은 비잔티움 제국(Byzantine Empire)과 사산 제국(Sasanian Empire)으로 뻗어 나가 이슬람 제국의 거대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 클릭












.jpg)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