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1101-1200년) 주요 사건
[1111년 9월 17일] 알폰소 7세의 갈리시아 국왕 대관식
-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우라카 여왕과 아라곤 국왕 알폰소 1세의 정략결혼으로 내전의 전운이 감돌자, 갈리시아 귀족들은 어린 왕자의 정통 권리를 지키고 지역 자치권을 수호하고자 했다.
- 갈리시아의 유력 귀족 페드로 프로일라스 데 트라바(Pedro Fróilaz de Traba, 1075년경-1128년경) 백작과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의 주교 디에고 헬미레스(Diego Gelmírez, 1069년경-1140년)는 만 6세의 어린 알폰소 7세(Alfonso VII, 1105년-1157년)를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갈리시아 국왕(King of Galicia)'으로 공식 즉위시켰다.
- 이는 카스티야 내전에 대항할 독자적 정치 세력의 결집을 알린 사건이었으며, 훗날 알폰소 7세가 전 스페인의 황제로 즉위하여 레콩키스타(Reconquista)를 주도하는 핵심 권력 기반이 되었다.
[1176년 9월 17일] 미리오케팔론 전투와 비잔티움 제국의 참패
- 비잔티움 제국(Byzantine Empire)의 황제 마누엘 1세 콤니노스(Manuel I Komnenos, 1118년-1180년)는 룸 셀주크(Sultanate of Rum)를 격멸하고 아나톨리아 중부 고토를 완전 회복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군을 일으켰다.
- 프리지아의 험준한 산악 협곡인 미리오케팔론(Myriokephalon)을 통과하던 제국군은 술탄 킬리지 아르슬란 2세(Kilij Arslan II, 1155년-1192년)가 이끄는 셀주크 튀르크 매복군의 기습 포위 사격을 받아 공성 무기와 후방 보급대가 궤멸당했다.
-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 비견되는 참패를 당하며 소아시아를 탈환하려던 비잔티움의 마지막 시도가 좌초되었고, 아나톨리아의 튀르크화와 이슬람화가 불가역적으로 굳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4세기(1301-1400년) 주요 사건
[1382년 9월 17일] 마리아의 헝가리 '국왕' 즉위 대관식
- 헝가리와 폴란드를 동군연합으로 통치하던 앙주 가문의 명군 러요시 1세(Louis the Great, 1326년-1382년)가 아들 없이 서거하자, 헝가리 왕국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귀족들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 선왕의 장녀였던 열한 살의 마리아(Mary, Queen of Hungary, 1371년-1395년)는 세케슈페헤르바르 대성당에서 통상적인 왕비(Regina)가 아닌 정식 군주를 의미하는 '국왕(Rex Hungariae)'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 여성 군주의 군림을 거부하던 봉건 귀족들의 저항과 모후의 섭정 갈등 속에 극심한 정국 혼란이 이어졌으나, 남편 지기스문트(Sigismund, 1368년-1437년)와의 공동 통치를 거쳐 룩셈부르크 왕가로 왕권이 승계되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15세기(1401-1500년) 주요 사건
[1462년 9월 17일] 시비에치노 전투와 폴란드군의 튜턴 기사단 격파
- 13년 전쟁(Thirteen Years' War) 중 발트해 포메라니아의 패권을 다투던 폴란드 왕국과 튜턴 기사단(Teutonic Order)은 단치히(그단스크)로 이어지는 핵심 해상 보급로를 장악하기 위해 군사적 충돌을 거듭하고 있었다.
- 폴란드의 명장 표트르 두닌(Piotr Dunin, 1415년경-1484년)이 지휘하는 폴란드 용병 부대는 시비에치노(Świecino) 호수 인근에서 바겐부르크(Wagenburg) 전술을 펼치며 프리츠 라베네크(Fritz Raweneck, 생몰년 미상-1462년)의 기사단 정예 기병대를 궤멸시켰다.
- 튜턴 기사단의 군사령관이 전사하고 주력이 와해되면서 전쟁의 판도가 폴란드 측으로 완전히 기울었으며, 1466년 제2차 토룬 화약(Second Peace of Thorn)을 통해 서프로이센을 병합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16세기(1501-1600년) 주요 사건
[1543년 9월 17일] 미카엘 아그리콜라의 핀란드어 최초 서적 출간
-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 사상이 북유럽으로 확산되면서, 스웨덴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에서도 민중의 모국어로 된 성서와 기독교 교리 교육서 보급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 종교개혁자이자 어학자 미카엘 아그리콜라(Mikael Agricola, 1510년경-1557년)는 스톡홀름에서 라틴어와 키릴 문자를 응용해 핀란드어 철자법을 확립한 알파벳 교본 겸 교리 문답서 《아베체키리아(Abckiria)》를 정식 인쇄·출간하였다.
- 이는 문자 언어로서의 핀란드어가 활자화된 역사상 최초의 문헌으로 기록되었으며, 핀란드 근대 표준 문어의 기틀을 확립하고 훗날 독자적인 핀란드 민족 문화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불멸의 토대가 되었다.
[1577년 9월 17일] 베르주라크 조약 체결과 위그노 전쟁의 일시 평화
- 프랑스 종교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 제6차 내전이 격화되던 중, 국왕 앙리 3세(Henry III, 1551년-1589년)는 급진 가톨릭 동맹(Catholic League)의 왕권 위협과 국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개신교 세력과의 강화를 모색하였다.
- 프랑스 남서부 베르주라크(Bergerac)에서 앙리 3세의 왕실 대표단과 나바라의 앙리가 이끄는 위그노(Huguenots) 대표단은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종교적 공존을 명시한 베르주라크 조약(Treaty of Bergerac)에 정식 서명하였다.
- 이 조약은 푸아티에 칙령으로 이어져 위그노의 신앙 자유를 일부 제한하면서도 보장하여 극단주의를 견제하였으며, 종교적 타협을 통한 왕권 안정을 도모하여 훗날 1598년 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의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17세기(1601-1700년) 주요 사건
[1620년 9월 17일] 체초라 전투 개시와 오스만 제국의 대승
- 몰다비아 공국의 종주권과 코사크 및 타타르 약탈대를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하자,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사이에 전면전의 막이 올랐다.
- 몰다비아 프루트강 유역의 체초라(Cecora) 평원에서 이스켄데르 파샤(İskender Pasha, 생몰년 미상-1620년)가 이끄는 오스만-타타르 연합 대군은 73세의 노장 스타니스와프 주우키에프스키(Stanisław Żółkiewski, 1547년-1620년)의 폴란드군 진지를 맹공격하였다.
- 수적 열세에 몰린 폴란드군이 퇴각 중 참패하고 총사령관 주우키에프스키가 전사하는 비극을 맞았으며, 이에 자극받은 연방이 이듬해 호틴 전투(Battle of Khotyn)에서 결사항전하여 오스만의 북진을 저지하는 발판이 되었다.
[1630년 9월 17일] 북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의 공식 설립
- 잉글랜드 국교회의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존 윈스럽(John Winthrop, 1588년-1649년) 총독과 매사추세츠만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의 청교도 이주민들은 영구 정착을 위한 천혜의 항구 입지를 물색하였다.
- 식민지 평의회는 쇼멋반도(Shawmut Peninsula)의 풍부한 샘물과 방어적 지형을 갖춘 정착촌을 잉글랜드 링컨셔의 고향 지명을 따서 '보스턴(Boston)'으로 명명하는 공식 행정 결의를 단행하였다.
- "언덕 위의 도시"라는 종교적 이상을 품고 출발한 보스턴은 신대륙 상업·교육·해운의 중심지로 급성장하였으며, 훗날 보스턴 차 사건을 비롯해 미국 독립 혁명(American Revolution)을 촉발한 역사의 요람이 되었다.
[1631년 9월 17일] 브라이텐펠트 전투와 구스타브 2세의 신성 로마 제국 격파
- 30년 전쟁(Thirty Years' War) 중 가톨릭 황제군의 마그데부르크 약탈과 잔혹한 초토화 작전으로 개신교 진영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 1594년-1632년)가 독일 본토에 개입하였다.
- 라이프치히 인근 브라이텐펠트(Breitenfeld) 평원에서 구스타브 2세는 유연한 선형 대형과 기동 야포 전술을 구사하여, 무패 행진을 달리던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Johann Tserclaes von Tilly, 1559년-1632년) 백작의 제국 가톨릭 연맹군을 완벽히 분쇄했다.
- 개신교 진영의 완전한 군사적 부활을 알린 결정적 승전이었으며, 스웨덴을 일약 유럽 최강의 군사 강국으로 부상시키고 근대 전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군사사상 일대 혁명으로 평가받았다.
[1658년 9월 17일] 빌라노바 전투와 포르투갈군의 스페인 격퇴
- 60년간 이어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지키려는 포르투갈 복구 전쟁(Portuguese Restoration War) 중, 스페인군은 포르투갈 북부 민호(Minho)강 유역을 침공하여 전선을 압박하였다.
- 빌라노바 데 세르베이라(Vilanova de Cerveira) 인근 요새 지대에서 주앙 멘데스 드 바스콘셀루스(João Mendes de Vasconcelos, 생몰년 미상)가 이끄는 포르투갈 방어군은 강을 건너 공세를 펴던 스페인 침공군을 결사적인 항전 끝에 격퇴하였다.
- 북부 국경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사수함으로써 스페인의 본토 분할 침략 기도를 좌절시켰으며, 이듬해 엘바스 전투(Battle of Elvas)의 대승으로 이어져 포르투갈의 완전한 독립 승인과 브라간사 왕조의 정통성을 다지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1683년 9월 17일]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의 미생물 관찰 서한 발송
- 17세기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이자 박물학자였던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1632년-1723년)은 독자적인 고배율 단일 렌즈 현미경을 제작하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세 세계를 꾸준히 관찰해 왔다.
- 레이우엔훅은 인간의 구강 치석과 고인 빗물 표본에서 살아 움직이는 미소 유기체들을 정밀 스케치와 함께 '극미동물(Animalcules)'이라 명명하고, 관찰 결과를 서술한 서한을 런던 왕립학회(Royal Society)에 공식 발송하였다.
-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생동물(Protozoa)과 박테리아의 존재를 학계에 실증 보고한 사건이었으며, 육안의 한계를 극복하고 근대 미생물학(Microbiology)과 감염병학의 기초를 개척한 위대한 과학적 전환점이 되었다.
18세기(1701-1800년) 주요 사건
[1775년 9월 17일] 생장 요새 포위전과 미국 대륙군의 퀘벡 침공
- 미국 독립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 발발 직후 대륙회의는 영국군의 반격 배후지를 사전 차단하고 북부 식민지를 아군으로 포섭하기 위해 과감한 퀘벡(Quebec) 원정 침공 작전을 전격 승인하였다.
- 리처드 몽고메리(Richard Montgomery, 1738년-1775년) 준장이 지휘하는 미국 대륙군(Continental Army)은 몬트리올의 관문이자 샹플랭호 북쪽의 핵심 방어선인 생장 요새(Fort St. Jean)를 전면 포위하고 공성전을 개시했다.
- 약 50일간의 격전 끝에 요새를 함락하여 몬트리올 점령의 길을 열었으나, 포위전 장기화로 군수 보급이 악화되면서 연말 퀘벡 전투에서 참패하고 캐나다를 병합하려던 대륙군의 전략적 기도가 좌절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1776년 9월 17일] 스페인 제국의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요새 축성
- 18세기 후반 스페인 제국은 북태평양 연안으로 남진하던 러시아와 영국의 세력을 견제하고, 알타 칼리포르니아(Alta California)에 대한 영유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북방 군사 거점 개척에 적극 착수했다.
- 누에바에스파냐(New Spain)의 장교 호세 호아킨 모라가(José Joaquín Moraga, 1745년-1785년) 중위가 이끄는 정착 원정대는 샌프란시스코만 입구의 전략적 고지에 주둔 요새인 프레시디오(Presidio of San Francisco)를 공식 축성하였다.
- 이 요새는 인접한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선교원과 함께 태평양 연안 군사 행정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으며, 멕시코 통치기와 미국령 편입을 거쳐 오늘날 대도시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로 번영하는 역사적 모태가 되었다.
[1778년 9월 17일] 피트 요새 조약 체결과 미국 최초의 원주민 조약
- 미국 독립 전쟁 중 영국군이 오하이오 국경 지대 원주민 부족들을 회유해 후방을 교란하자, 신생 미국 대륙정부는 서부 방어선을 수호하기 위해 유력 부족인 델라웨어족(레나페족)과의 군사 동맹 체결이 시급했다.
- 대륙회의 협상단과 델라웨어족의 수장 화이트 아이즈(White Eyes, 1730년경-1778년) 추장은 오늘날 피츠버그에 위치한 피트 요새(Fort Pitt)에서 상호 불가침 및 미군 주둔 통행을 승인하는 조약에 공식 서명하였다.
- 이는 미국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과 대등한 주권체로서 맺은 역사상 최초의 공식 서면 조약이었으나, 추장의 의문사와 정착민들의 영토 침탈로 인해 조약 조항이 일방적으로 파기되는 비극적인 원주민 수난사의 서막이 되었다.
[1787년 9월 17일] 미국 제헌의회의 헌법 최종 서명과 폐막
- 독립 이후 연합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의 취약성으로 인해 연방 해체 위기와 경제 혼란이 가중되자, 강력한 중앙정부 수립을 위해 1787년 5월부터 필라델피아에서 제헌의회가 소집되어 회의를 진행했다.
- 의장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년-1799년)을 필두로 제임스 매디슨과 벤저민 프랭클린 등 12개 주 대표 39명은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에 모여 최종 제정된 미국 헌법(United States Constitution) 문서에 공식 서명하였다.
- 넉 달에 걸친 타협 끝에 삼권분립과 연방주의 원칙을 명문화한 세계 최초의 근대 성문 헌법이 탄생하였으며, 각 주 비준을 거쳐 연방정부를 출범시킴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국 민주공화정의 항구적 기틀을 완성했다.
[1793년 9월 17일] 페이르스토르트 전투와 프랑스 공화국군의 대승
- 프랑스 혁명 전쟁 중 전개된 피레네 전쟁(War of the Pyrenees)에서, 루이 16세 처형에 반발해 참전한 안토니오 리카르도스(Antonio Ricardos, 1727년-1794년) 장군의 스페인 대군은 국경을 돌파해 루시용 지방을 점령해 들어왔다.
- 프랑스 동피레네 방면군의 루이 마리 튀르로(Louis Marie Turreau, 1756년-1816년) 장군 등은 페르피냥 인근 페이르스토르트(Peyrestortes) 고지에 방어선을 친 스페인군을 향해 과감한 포격과 총검 돌격을 감행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 스페인군의 북진을 결정적으로 저지하고 남부 국경을 사수함으로써 혁명 프랑스 수뇌부의 숨통을 틔워 주었으며, 사기가 오른 공화국군이 이듬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역공세를 펼치는 중요한 군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1794년 9월 17일] 스프리몽 전투와 프랑스의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완제
- 프랑스 혁명 전쟁기 플랑드르 전역(Flanders Campaign)에서 제1차 대프랑스 동맹군을 격파한 혁명군은,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핵심 거점이었던 저지대 가톨릭 영토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총공세에 돌입했다.
- 장바티스트 주르당(Jean-Baptiste Jourdan, 1762년-1833년) 장군 휘하의 프랑스 삼브르-뫼즈군은 벨기에 스프리몽(Sprimont) 인근 우르트강 전선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방어선을 맹렬한 기동전으로 격파하였다.
- 패배한 오스트리아군이 라인강 너머로 총퇴각하면서 프랑스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Austrian Netherlands) 전역을 공식 정복하였으며, 훗날 벨기에의 프랑스 영토 병합과 위성국 수립으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판도 변화를 확정지었다.
19세기(1801-1900년) 주요 사건
1801-1810년 주요 사건
[1809년 9월 17일] 프레드릭스함 조약 체결과 핀란드의 러시아 할양
- 나폴레옹 전쟁 중 러시아 제국의 침공으로 발발한 핀란드 전쟁(Finnish War)에서 스웨덴 왕국이 결정적인 연패를 당하고 국왕 구스타브 4세 아돌프가 쿠데타로 폐위되자, 패전국 스웨덴은 굴욕적인 평화 협상에 나섰다.
- 스웨덴 대표 쿠르트 폰 스테딩크(Curt von Stedingk, 1746년-1837년) 백작과 러시아 외교관들은 핀란드 하미나의 요새에서 전쟁 종식을 선언하는 프레드릭스함 조약(Treaty of Fredrikshamn)에 정식 서명하였다.
- 스웨덴 영토의 3분의 1에 달하던 핀란드 전역이 러시아에 강제 할양되어 자치령인 핀란드 대공국(Grand Duchy of Finland)이 탄생하였으며, 스웨덴 제국주의의 종말과 함께 현대 핀란드 독립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분수령이 되었다.
1841-1850년 주요 사건
[1849년 9월 17일] 해리엇 터브먼의 첫 노예 탈출 시도
- 미국 메릴랜드주의 백인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나 극심한 노동과 학대를 견디던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1822년경-1913년)은, 농장주 사망 후 가족과 생이별한 채 딥사우스로 강제 매각될 위기에 직면했다.
- 자유를 향한 결단을 내린 터브먼은 두 남동생과 함께 야밤을 틈타 농장을 탈출하였으나, 막대한 현상금과 체포 후 보복을 두려워한 남동생들의 극심한 설득에 밀려 첫 번째 탈출 시도를 접고 농장으로 일시 복귀하였다.
- 비록 첫 시도는 좌절되었으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직후 홀로 재탈출에 성공하였으며, 훗날 흑인 노예들을 북부와 캐나다로 탈출시킨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의 전설적인 지도자이자 노예해방운동가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되었다.
1851-1860년 주요 사건
[1859년 9월 17일] 조슈아 노턴의 미국 황제 '노턴 1세' 선포
- 샌프란시스코의 유력 무역상이었으나 쌀 수입 투기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리고 파산한 조슈아 A. 노턴(Joshua A. Norton, 1818년-1880년)은, 파벌 싸움과 부패로 얼룩진 미국 민주주의 정치 제도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
- 노턴은 지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데일리 이브닝 불레틴》 편집국을 방문하여 의회를 해산하고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성명서를 제출하며, 스스로를 '미국의 황제 노턴 1세(Norton I, Emperor of the United States)'로 전격 선포하였다.
- 법적 권한이 없는 기행이었음에도 관용적인 시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독자 지폐를 유통하고 베이 브리지 건설을 예견하는 등 사랑받는 명사가 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 도시 역사의 가장 유쾌하고 독창적인 문화적 전설로 각인되었다.
1861-1870년 주요 사건
[1861년 9월 17일] 파본 전투와 부에노스아이레스국의 승리
- 아르헨티나 내전(Argentine Civil Wars) 중 중앙집권적 부에노스아이레스국(State of Buenos Aires)과 지방 자치를 고수하던 아르헨티나 연방(Argentine Confederation) 간의 해묵은 패권 다툼이 극단적인 무력 충돌로 치달았다.
- 산타페주 파본(Pavón)에서 바르톨로메 미트레(Bartolomé Mitre, 1821년-1906년) 장군이 지휘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보병 부대가 후스토 호세 데 우르키사(Justo José de Urquiza, 1801년-1870년) 장군의 연방군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 끝에 우세를 점하였다.
- 이 전투의 결과로 연방 정권이 사실상 와해되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국가가 항구적으로 통합되어 미트레가 단일 아르헨티나 공화국(Argentine Republic)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1862년 9월 17일] 앤티덤 전투와 미국 남북 전쟁의 분수령
- 미국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중 로버트 E. 리(Robert E. Lee, 1807년-1870년) 장군의 남군이 북부 본토를 침공하자, 워싱턴 방어와 전쟁의 주도권 탈환을 노린 북군의 전면적 요격 작전이 전개되었다.
- 메릴랜드주 샤프스버그 인근 앤티덤(Antietam) 계곡에서 조지 B. 매클렐런(George B. McClellan, 1826년-1885년) 소장의 북군 포토맥군이 남군과 격돌하여, 단 하루 만에 2만 2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남군의 진격을 결사 저지하였다.
- 미국 군사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단일 전투로 남았으며, 북군이 거둔 전술적 승리에 힘입어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년-1865년) 대통령이 노예해방예비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전격 공포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1862년 9월 17일] 앨러게니 병기창 폭발 참사 발생
- 미국 남북 전쟁이 격화되면서 연방 육군의 총탄과 탄약을 전방으로 조달하던 펜실베이니아주 로렌스빌(Lawrenceville)의 앨러게니 병기창(Allegheny Arsenal)은 전시 철야 생산 체제를 무리하게 가동하고 있었다.
- 화약 탄약통을 운반하던 마차 바퀴의 쇠테가 도로의 자갈과 마찰을 일으켜 불꽃이 튀었고, 유출된 화약 가루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연구소와 작업실이 거대한 연쇄 대폭발을 일으켜 여성과 아동 노동자 78명이 즉사하였다.
- 이 사고는 남북 전쟁 기간 중 단일 사건으로 발생한 최악의 민간 산업 참사로 기록되었으며, 연방정부가 군수 공장의 화약 운반 규정과 노동 안전 기준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사법적 계기가 되었다.
1891-1900년 주요 사건
[1894년 9월 17일] 압록강 해전과 일본 연합함대의 북양함대 격파
- 청일전쟁(First Sino-Japanese War) 초기 한반도에 병력과 군수 물자를 수송하던 청나라 북양함대와 황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려는 일본 제국 해군 간에 필연적인 전면 해상 충돌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 압록강(Yalu River) 하구 인근 황해 해상에서 이토 스케유키(Itō Sukeyuki, 1843년-1914년) 중장의 일본 연합함대는 속사포와 기동력을 앞세워 정여창(Ding Ruchang, 1836년-1895년) 제독의 정원·진원함을 비롯한 청국 주력함을 맹폭하였다.
- 청일전쟁 최대 규모의 해전에서 청나라 해상 전력이 사실상 궤멸당하면서 황해의 제해권이 일본으로 완전히 넘어갔으며, 청나라의 대륙 패권이 몰락하고 동아시아 질서가 재편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00년 9월 17일] 마비탁 전투와 필리핀 혁명군의 미군 격퇴
- 필리핀-미국 전쟁(Philippine–American War) 중 미군이 루손섬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게릴라 토벌 작전을 전개하자, 필리핀 혁명군은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미군의 점령 공세를 결사 저지하고자 했다.
- 라구나주 마비탁(Mabitac)에서 후안 카일레스(Juan Cailles, 1871년-1951년) 장군이 이끄는 필리핀 저항군은 진흙탕 길목에 참호를 파고 매복한 뒤, 벤저민 F. 치덤 주니어(Benjamin F. Cheatham Jr., 1867년-1944년) 대령의 미 육군 정규군을 집중 사격으로 격퇴하였다.
- 미군에 20명 이상의 전사자를 안기며 필리핀 독립군이 거둔 몇 안 되는 전술적 대승으로 남았으며, 미군의 우월한 화력 앞에서도 식민 지배에 맞선 필리핀 민중의 끈질긴 저항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였다.
20세기(1901-2000년) 주요 사건
1910-1910년 주요 사건
[1901년 9월 17일] 블러드리버푸르트 전투와 보어군의 기습 승리
- 제2차 보어 전쟁(Second Boer War) 후기 영국군이 초토화 작전과 강제수용소 정책으로 압박을 가해오자, 루이스 보타(Louis Botha, 1862년-1919년) 장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나탈 식민지 재침공을 결행하였다.
- 나탈 국경의 블러드리버푸르트(Blood River Poort)에서 보타가 이끄는 보어군 결사대는 휴버트 고프(Hubert Gough, 1870년-1963년) 소령의 영국 기병 부대를 좁은 협곡으로 유인한 뒤 전광석화 같은 기마 돌격으로 단 20여 분 만에 제압하였다.
- 영국군 포병대와 무기 물자를 대거 노획하고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힌 보어군의 대표적 유격전 승리였으며, 궁지에 몰렸던 보어인들의 항전 사기를 고취하고 영국의 조속한 종전 계획에 일격을 가했다.
[1901년 9월 17일] 엘란즈리버 전투와 영국 제17창기병연대의 피복
- 제2차 보어 전쟁 중 케이프 식민지 내부로 침투한 보어군 지도자 얀 스뮈츠(Jan Smuts, 1870년-1950년) 장군은 영국군의 보급선 차단과 탄약 및 군복 보급품 확보를 위해 필사적인 기동전을 펼치고 있었다.
- 이스턴케이프의 엘란즈리버(Elands River) 계곡 모드폰테인 농장에서 스뮈츠의 보어인 유격대는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영국 육군 제17창기병연대(17th Lancers) C중대를 사방에서 포위 기습하여 궤멸시키고 다수를 생포하였다.
- 보어군은 식량과 무기뿐 아니라 영국군 제복까지 노획하여 추격을 따돌리고 케이프 내륙 깊숙이 진출하였으며, 영국군 수뇌부의 방심을 질타하고 전쟁의 장기화 및 게릴라전의 위력을 각인시킨 교전으로 기록되었다.
[1908년 9월 17일] 라이트 플라이어호 추락과 인류 최초의 비행기 사망 사고
- 라이트 형제는 미국 육군 신호대와의 군용 비행기 납품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버지니아주 포트마이어(Fort Myer)에서 조달 기준을 충족하는 공식 공개 시험 비행을 지속하고 있었다.
-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1871년-1948년)가 조종하고 토머스 셀프리지(Thomas Selfridge, 1882년-1908년) 육군 중위가 동승한 라이트 플라이어(Wright Flyer)호가 비행 중 프로펠러 파손으로 23미터 상공에서 지면으로 곤두박질쳤다.
- 오빌은 중상을 입고 생존했으나 셀프리지 중위는 두개골 골절로 숨져 세계 항공 역사상 동력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었으며, 군용 항공기의 안전장치 보강과 비행 헬멧 도입을 촉발하였다.
1911-1920년 주요 사건
[1914년 9월 17일] 앤드루 피셔의 세 번째 호주 총리 취임
-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조셉 쿡 내각의 양원 해산으로 치러진 호주 연방 총선에서 노동당은 제국 방위 지원과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노동당 당수 앤드루 피셔(Andrew Fisher, 1862년-1928년)는 멜버른 연방의사당에서 총리 취임 선서를 마치고 호주 역사상 최초로 통산 세 번째 총리직(Prime Minister of Australia)에 공식 취임하였다.
- 피셔는 "마지막 한 사람, 마지막 1실링까지 대영제국을 돕겠다"고 천명하며 호주-뉴질랜드 군단(ANZAC)을 창설해 갈리폴리 전선으로 파병하는 등, 전시대 호주의 강력한 국방 체제 구축과 국가적 정체성 형성을 이끌었다.
[1914년 9월 17일]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의 '바다를 향한 경주' 개시
-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에서 벌어진 마른 전투와 엔 전투 이후 연합군과 독일 제국군 양측의 정면 돌파 시도가 모두 좌절되자, 상대방의 노출된 북쪽 측면을 우회 포위하려는 기동전이 불가피해졌다.
- 프랑스의 조제프 조프르(Joseph Joffre, 1852년-1931년) 장군과 독일의 에리히 폰 팔켄하인(Erich von Falkenhayn, 1861년-1922년) 참모총장은 북해 연안을 향해 병력을 급파하며 경쟁적인 연속 우회 작전에 돌입하였다.
- '바다를 향한 경주(Race to the Sea)'로 불린 이 작전은 어느 쪽도 측면을 뚫지 못한 채 스위스 국경에서 북해까지 700km에 달하는 거대한 참호선을 구축하게 만들었으며, 4년간의 지루한 참호전(Trench warfare)을 촉발하였다.
[1916년 9월 17일]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첫 공중전 격추 승리
- 제1차 세계 대전(World War I) 서부 전선에서 항공 정찰과 요격 전술이 고도화되자, 독일 제국 육군 항공대(Luftstreitkräfte)의 명 에이스 오스발트 뵐케(Oswald Boelcke, 1891년-1916년)는 유망한 신예들을 모아 정예 제2전투비행대(Jasta 2)를 창설하였다.
- 프랑스 캉브레(Cambrai) 인근 상공에서 편대원으로 출격한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1892년-1918년) 중위는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F.E.2b 복엽기를 추격해 격추하며 자신의 공식 첫 공중전 승리를 거두었다.
- '붉은 남작(The Red Baron)'이라는 전설적인 별칭으로 불리게 될 불세출의 전투기 조종사가 비상한 날이었으며, 그는 이후 적기 총 80기 격추라는 불멸의 기록을 수립하며 제1차 세계 대전 최고의 공중전 에이스로 전사에 이름을 남겼다.
[1920년 9월 17일]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의 모태 결성
- 20세기 초 미국 중서부를 중심으로 프로 미식축구팀들이 급증했으나, 무분별한 선수 빼가기와 들쭉날쭉한 경기 일정 및 잦은 급여 분쟁으로 인해 리그 차원의 표준 규격과 통합 규제 기구의 창설이 절실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 오하이오주 캔턴(Canton)의 한 자동차 대리점에서 짐 소프(Jim Thorpe, 1887년-1953년)를 비롯한 14개 프로 구단 대표들이 모여 초대 총재를 선출하고, 내셔널 풋볼 리그의 모태인 미국프로미식축구협회(APFA)를 공식 창립하였다.
- 난립하던 프로 미식축구를 단일 운영 규범 아래 통합한 역사적인 시발점이 되었으며, 협회는 1922년 내셔널 풋볼 리그(NFL)로 명칭을 변경한 뒤 오늘날 미국 최고 인기의 거대 프로 스포츠 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놓았다.
1921-1930년 주요 사건
[1924년 9월 17일]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국경수비대(KOP) 창설
- 폴란드-소련 전쟁 종전 이후에도 소련 측 비밀 공작원과 볼셰비키 무장 유격대, 지방 무장 강도단이 폴란드 제2공화국(Second Polish Republic)의 취약한 동부 국경인 크레시(Kresy) 지대를 지속해서 침범하여 치안을 심각하게 교란했다.
-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Władysław Sikorski, 1881년-1943년) 군사부 장관의 주도 아래 폴란드 정부는 훈령을 공포하여, 내무부 관할하에 군사적 특수 훈련을 거친 정예 국경수비대(Border Protection Corps)를 공식 창설하였다.
- 동부 국경 지대의 치안을 안정시키고 소련의 은밀한 무장 침투를 차단하는 전략적 방벽이 되었으며,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의 기습 침공에 맞서 장렬한 지연전을 펼치는 군사적 중추로 활약하였다.
[1928년 9월 17일] 오키초비 허리케인의 플로리다 강타 참사
- 1920년대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의 오키초비호(Lake Okeechobee) 주변은 비옥한 농경지로 각광받으며 정착 인구가 급증했으나, 호수 제방이 토사로 낮게 축조되어 있어 거대한 열대성 폭풍의 해일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였다.
- 푸에르토리코를 휩쓸고 북상한 카테고리 4등급의 오키초비 허리케인(Okeechobee hurricane)이 플로리다 동남부 팜비치에 상륙하며 호수 수위를 폭증시켰고, 둑이 일거에 무너지면서 거대한 흙탕물 속에 2,500명 이상의 주민이 익사하거나 실종되었다.
- 1900년 갤버스턴 참사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파멸적인 자연재해로 기록되었으며, 미 육군 공병단이 호수 주변에 견고한 거대 콘크리트 구조물인 허버트 후버 제방(Herbert Hoover Dike)을 축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30년 9월 17일] 터키군의 아라라트 쿠르드족 반란 완전 진압
- 터키 공화국 정부의 강력한 중앙집권화와 튀르크화 정책에 반발하여, 이흐산 누리(Ihsan Nuri, 1892년-1976년) 장군을 지도자로 한 쿠르드 민족주의 결사체 호이분(Xoybûn)은 아라라트산 일대에서 독립 공화국을 선포하고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 살리흐 오무르타크(Salih Omurtak, 1889년-1954년) 군단장이 지휘하는 터키 육군은 항공기와 대구경 야포를 총동원하여 아라라트(Ararat) 고지의 반군 요새를 완전히 포위 압박한 끝에 잔여 무장 세력을 모두 격멸하고 반란을 공식 평정하였다.
- 쿠르드족의 독자적인 근대 민족 국가 수립 기도가 군사적으로 좌절된 사건이었으며, 터키 정부가 동부 아나톨리아에 대한 확고한 군사적 통제권을 확립하고 소수민족에 대한 강제 이주와 동화 정책을 대폭 강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31-1940년 주요 사건
[1932년 9월 17일] 라우레아노 고메스의 의회 연설과 레티시아 분쟁 격화
- 페루 무장 민간인들이 1922년 살로몬-로사노 조약으로 콜롬비아 영토가 된 아마존강 유역의 국경 항구 도시 레티시아(Leticia)를 기습 점령하자, 양국 간에 영토 회복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인 레티시아 분쟁(Leticia Incident)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 콜롬비아 보수당의 강경파 지도자 라우레아노 고메스(Laureano Gómez, 1889년-1965년) 상원의원은 의회 연단에 올라 "국토 수호를 위해 정쟁을 멈추고 현 자유당 정부를 전폭 지지하자"는 격정적인 명연설을 펼쳐 전국적인 애국주의 결집을 촉발했다.
- 만성적이었던 콜롬비아 정계의 정파 대립을 일거에 종식하고 대규모 전비 증액과 군함 파견 등 전면전 태세를 가속화하였으며, 이듬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중재를 거쳐 콜롬비아가 영토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는 강력한 정치적 동력이 되었다.
[1935년 9월 17일] 나이아가라 협곡 철도의 산사태와 영구 폐선
- 1895년 완공된 나이아가라 협곡 철도(Niagara Gorge Railroad)는 나이아가라 폭포 하류의 깎아지른 절벽 급경사면을 따라 강변을 달리는 유명 관광 전기 철도로, 수십 년간 수많은 여행객에게 절경을 선사하며 번영을 누려왔다.
- 협곡 상층부에서 대규모 암석 붕괴가 일어나 수천 톤의 거대한 낙석이 급경사 철로 위로 쏟아져 내렸고, 복선 궤도와 가공 전차선이 완전히 매몰되는 파괴를 입자 운영 회사는 막대한 복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전면 운행 중단을 선언했다.
-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여파와 자동차 보급으로 이미 쇠락하고 있던 협곡 관광 철도 시대가 영구히 막을 내린 사건이었으며, 오늘날 철로 잔해 터는 자연 하이킹 탐방로로 정비되어 지질학적 자연재해의 현장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1939년 9월 17일] 소련의 폴란드 동부 침공과 분할 점령 개시
-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 간에 체결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Molotov–Ribbentrop Pact)의 비밀 의정서에 따라, 독일군이 폴란드 서부를 침공하여 방어선을 유린하자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8년-1953년)은 동부 분할을 단행하였다.
-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Vyacheslav Molotov, 1890년-1986년)가 폴란드 국가 소멸을 침공 구실로 내세운 직후, 붉은 군대 40여만 명이 선전포고도 없이 국경을 넘어 커즌선(Curzon Line) 동쪽의 폴란드 영토로 전격 진격하였다.
- 양면전쟁에 직면한 폴란드 정부의 국외 망명과 국가적 항전 역량 붕괴를 확정지었으며, 카틴 숲 학살(Katyn massacre)을 비롯한 참혹한 전쟁범죄와 함께 동유럽 전체가 전체주의 강국들의 패권 다툼에 희생되는 비극의 서막을 열었다.
[1939년 9월 17일] 독일 잠수함 U-29의 영국 항공모함 커레이저스 격침
-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대영제국 해군은 대서양 해상 수송로를 보호하고 독일 유보트(U-boat)의 통상 파괴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정규 항공모함을 호위 구축함과 함께 대잠 초계 임무에 적극적으로 투입하였다.
- 아일랜드 남서쪽 해역에서 정찰 비행을 지원하던 중 호위망이 일시적으로 느슨해진 틈을 타, 오토 슈하르트(Otto Schuhart, 1909년-1990년) 대위가 지휘하는 독일 잠수함 U-29가 영국 항공모함 커레이저스(HMS Courageous)를 향해 어뢰 3발을 발사해 명중시켰다.
- 피격된 항공모함이 20분 만에 전복 침몰하며 500여 명의 승조원이 전사하는 참사를 겪었으며, 영국 해군본부가 취약한 대형 항모를 잠수함 수색 작전에서 즉각 전면 철수시키고 선단 호위 교리를 전면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0년 9월 17일] 아돌프 히틀러의 영국 상륙 '바다사자 작전' 무기한 연기
- 프랑스 항복 이후 나치 독일은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대규모 해상 강습 도하 계획인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을 추진했으나, 작전 성공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었던 영국 해협의 절대적 제공권 장악에 심각한 난항을 겪고 있었다.
-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의 최대 승부처였던 9월 15일 대공습의 참패와 점차 거칠어지는 가을철 도버해협의 기상 조건을 보고받은 총통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1945년)는 작전 실행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공식 명령했다.
- 나치 독일의 파죽지세 팽창이 영국 군민의 결사항전에 막혀 최초로 좌절된 중대한 전략적 분수령이었으며, 서부 침공을 보류한 히틀러가 이듬해 소비에트 연방 침공(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방향을 틀게 만든 세계 대전의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1941-1950년 주요 사건
[1941년 9월 17일] 소련 국방위원회의 전면 의무 군사훈련 부활
- 제2차 세계 대전(World War II) 중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붉은 군대가 괴멸적인 인명 손실을 입자, 소비에트 연방은 전선 붕괴를 막고 대규모 예비 병력을 신속히 충원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에 처했다.
-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8년-1953년)이 이끄는 국가방위위원회(GKO)는 법령을 반포하여, 16세부터 50세까지의 모든 남성 시민을 대상으로 일터를 유지한 채 군사 기술을 익히는 총동원 의무 군사훈련(Vsevobuch) 체제를 공식 부활시켰다.
- 이 조치로 1,000만 명에 육박하는 징집 자원이 기초 전투 훈련을 수료하고 적시에 전선으로 투입되었으며, 모스크바 공방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이 인적 소모전을 극복하고 나치를 상대로 총반격을 감행하는 중대한 군사적 밑거름이 되었다.
[1941년 9월 17일] 영국-소련 연합군의 테헤란 입성과 레자 샤 폐위
-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은 소련으로 향하는 핵심 군수 보급로인 페르시아 회랑(Persian Corridor)을 확보하고 친추축국 성향의 이란 왕실을 견제하기 위해 이란 침공(Anglo-Soviet invasion of Iran)을 전격 단행하였다.
- 소련 붉은 군대와 영국군은 양방향에서 테헤란(Tehran) 시내로 진주하여 수도를 완전 장악하였으며, 연합군의 강력한 퇴위 압박에 직면한 국왕 레자 샤 팔라비(Reza Shah Pahlavi, 1878년-1944년)는 황태자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 연합군은 페르시아만을 거치는 대소련 무기 대여 물자 수송로의 안전을 확고히 확보하였으며, 이란이 서방 연합국의 군정 통치 영향권 아래 편입되어 전후 중동의 냉전 구도와 팔라비 2세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1944년 9월 17일] 연합군의 마켓 가든 작전 개시
- 서부 전선에서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연합군은 독일 국경의 강력한 지크프리트선을 우회하여 라인강을 단숨에 도하하고 당해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조기 종결하려는 야심 찬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을 입안하였다.
-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Montgomery, 1887년-1976년) 원수의 지휘 아래 영국·미국 공수부대가 네덜란드 주요 교량에 강하하는 '마켓' 작전과, 브라이언 호록스(Brian Horrocks, 1895년-1985년) 중장의 영국 제30군단(XXX Corps)이 진격을 개시한 '가든' 작전이 동시 발동되었다.
- 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 강습 작전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주둔 독일 SS 기갑사단의 결사항전과 아른헴 교량 확보 실패로 참패로 귀결되었으며, 서유럽 종전이 이듬해 봄으로 지연되고 연합군에 막대한 인명 손실과 뼈아픈 전술적 교훈을 남겼다.
[1944년 9월 17일] 붉은 군대의 탈린 공세 개시
- 1944년 가을 바그라티온 작전 성공 이후 소련군은 발트해 연안을 수복하고 핀란드만을 장악하기 위해, 나치 독일 북부집단군과 친독 에스토니아 부대가 방어선을 치고 있던 에스토니아 본토 해방 작전을 본격화하였다.
- 이반 페듀닌스키(Ivan Fedyuninsky, 1900년-1977년) 장군이 지휘하는 레닌그라드 전선군 산하 제2충격군은 에마이외기강 전선에서 집중 포격을 퍼부으며 수도 진격을 목표로 한 대규모 탈린 공세(Tallinn Offensive)를 개시하였다.
- 소련군은 단 일주일 만에 독일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탈린을 점령하여 북부집단군을 쿠를란트 포위망으로 몰아넣었으나, 에스토니아의 단기 독립 정부를 강제 해체하고 반세기에 걸친 소련의 가혹한 재점령과 병합 체제를 수립하는 비극을 낳았다.
[1944년 9월 17일] 산마리노 전투와 연합군의 고딕선 돌파 작전
- 제2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 전선에서 엄격한 중립을 표방했던 소국 산마리노(San Marino)는 독일 국방군이 연합군의 북진을 차단하기 위한 고딕선(Gothic Line) 거점으로 도시 고지를 무단 점령하면서 원치 않는 전장으로 전락하였다.
- 존 호크스워스(John Hawkesworth, 1893년-1945년) 소장이 이끄는 영국 육군 제46보병사단과 인도군 부대는 티타노산 주변의 독일 제278보병사단 진지를 향해 맹렬한 포격과 함께 산마리노 전투(Battle of San Marino)의 지상 돌격을 감행하였다.
- 나흘간의 격전 끝에 연합군이 독일군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해방시켰으나 역사적인 고대 유적지가 파괴되고 수많은 민간인 피난민이 피해를 입었으며, 연합군이 롬바르디아 평원으로 진출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1948년 9월 17일] 시온주의 무장단체 레히의 폴케 베르나도테 백작 암살
- 제1차 중동전쟁(1948 Arab–Israeli War)이 발발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혈 충돌을 멈추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수만 명을 구출한 인도주의자이자 스웨덴 왕족인 폴케 베르나도테 백작을 수석 중재관으로 파견하였다.
- 예루살렘을 시찰하던 폴케 베르나도테(Folke Bernadotte, 1895년-1948년) 백작은 예루살렘의 국제화와 아랍 난민 복귀를 담은 평화안에 격분한 이츠하크 예제르니츠키(훗날의 샤미르)가 이끄는 시온주의 극우 테러 조직 레히(Lehi) 요원들의 매복 총격을 받아 피살되었다.
-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 직면한 신생 이스라엘 정부는 레히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강제 해산시켰으나, 중동 평화 중재의 핵심 구심점을 잃어버리며 팔레스타인 분쟁이 타협 없는 장기 소모전으로 표류하는 비극적인 선례를 남겼다.
[1948년 9월 17일] 하이데라바드 니잠의 무조건 항복과 인도 연방 통합
- 영국령 인도 분할 독립 당시 이슬람 통치자가 다스리던 데칸고원의 거대 번왕국 하이데라바드(State of Hyderabad)가 독립 노선을 고수하자, 신생 인도 정부는 국가 분열을 막기 위해 전격적인 무력 병합인 폴로 작전(Operation Polo)을 전개했다.
- 인도 기갑 부대의 맹공으로 수도가 포위되자, 통치자 니잠 미르 오스만 알리 칸(Mir Osman Ali Khan, 1886년-1967년)은 패배를 인정하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인도군에 대한 공식 항복과 정전을 전격 선언하였다.
- 200여 년간 이어진 아사프 자 왕조의 독자적 주권이 공식 해체되고 하이데라바드가 인도 연방으로 완전 흡수되었으며, 인도가 국내 최대 번왕국을 병합함으로써 단일 국민국가로서의 영토적 일체성을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49년 9월 17일] 증기선 노로닉 호의 토론토항 화재 참사
- 캐나다 스팀십 라인스(Canada Steamship Lines) 소속의 대형 오대호 호화 여객선 에스에스 노로닉 호(SS Noronic)는 승객과 승무원 690여 명을 태우고 온타리오주 토론토항(Toronto Harbour) 9번 부두에 정박하여 야간 계류 중이었다.
- 새벽 2시경 선내 세탁물 보관실에서 시작된 불길이 목재 내장재를 타고 선체 전체로 급속히 번져나갔으며, 윌리엄 테일러(William Taylor, 생몰년 미상) 선장의 늑장 경보와 협소한 탈출구로 인해 승객 118명 이상이 갇혀 목숨을 잃었다.
- 캐나다 해난 역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사법 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모든 대형 여객선에 방화벽 설치, 난연성 건자재 사용, 자동 화재 감지 스프링클러 의무화 등 국제 선박 안전 기준을 혁명적으로 뜯어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 9월 17일]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공수병 제1육전여단 창설
-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화인민공화국은 광대한 영토의 방위력을 강화하고 대만 상륙 작전 등 현대적 입체 기동전 능력을 갖추기 위해, 소련 군사고문단의 전술 교리와 장비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공수 부대 육성을 서둘렀다.
- 허난성 카이펑(Kaifeng)에서 육군 정예 보병 부대들을 차출·재편하여 왕천한(Wang Chenghan, 생몰년 미상)을 초대 여단장으로 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공수병 제1육전여단(Airborne Corps)'이 공식 창설 명을 하달받고 출범하였다.
- 중국군 사상 최초의 정규 공정(공수) 전문 병과가 탄생한 역사적 시발점이었으며, 이 부대는 훗날 공수군 제15군단으로 확대 개편되어 한반도 전선 참전 대비 및 현대 인민해방군의 핵심 신속대응 전략 타격 전력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1950년 9월 17일] 인도 정부의 이스라엘 독립 주권국가 공식 승인
-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선언 직후 인도는 자국 내 거대한 무슬림 인구의 정서적 반발과 아랍 연맹과의 전략적 외교 유대, 그리고 비동맹 운동 노선을 의식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법적 외교 승인을 2년 넘게 유보해 오고 있었다.
-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1889년-1964년) 인도 총리는 국가 현실주의에 입각한 외교 성명을 발표하여, 기정사실화된 실체적 국가로서의 이스라엘(State of Israel)을 독립 주권국가로 공식 인정한다는 방침을 천명하였다.
- 비록 아랍 국가들과의 마찰을 우려해 전면적인 대사급 공식 수교는 1992년까지 미루어졌으나, 양국 간 영사관 개설과 비공식 대화 창구를 열어 향후 안보 협력 및 방위산업 기술 교류로 발전하는 실리 외교의 중대한 초석을 놓았다.
1961-1970년 주요 사건
[1961년 9월 17일] 시빅 아레나 개장과 최초의 개폐식 돔 구장 탄생
- 20세기 중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Pittsburgh)는 산업 도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문화·예술 및 체육 복합 랜드마크를 구축하기 위한 도시 재생 사업인 '르네상스 1(Renaissance I)'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 데이비드 L. 로런스(David L. Lawrence, 1889년-1966년)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8개 분할 돔 구조를 갖춘 세계 최초의 개폐식 돔 구장 시빅 아레나(Civic Arena)가 공식 개장식을 거행하며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 현대 스포츠 및 공연장 건축사에서 획기적인 개폐식 돔 설계 기술의 상용화를 입증하였으며, NHL 피츠버그 펭귄스의 홈구장 등으로 활용되며 도시 문화 부흥을 견인하는 상징적 기념비로 자리 잡았다.
[1961년 9월 17일]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706편 추락 참사
- 1960년대 초 미국 민간 항공 산업이 제트기와 터보프롭 기종을 도입하며 급성장하던 시기에, 비행 조종 장치와 유압 계통의 기계적 결함을 사전에 탐지하고 예방하는 정비 검증 체계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었다.
-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을 이륙하던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Northwest Orient Airlines) 706편 록히드 L-188 일렉트라 여객기가 보조익 제어 케이블 단선으로 급격히 좌경사되며 지면에 충돌해 탑승자 37명 전원이 사망했다.
- 미국 민간항공국(CAB) 조사를 통해 1차 비행 제어 계통의 기계적 연결 불량과 정비 결함이 규명되었으며, 전 세계 항공 당국이 여객기 비행 조종 케이블 안전 잠금 규찰과 정기 점검 규정을 대폭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5년 9월 17일] 차윈다 전투와 인도·파키스탄 대규모 기갑 격돌
-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Second Indo-Pakistani War) 중 인도는 시알코트(Sialkot) 방면으로 진격하여 파키스탄의 주요 교통 동맥이자 보급로인 대간선도로(Grand Trunk Road)를 차단하고자 대규모 기갑 공세를 감행하였다.
- 차윈다(Chawinda) 철도역 인근 평원에서 인도 육군 제1기갑사단에 맞서 압둘 알리 말리크(Abdul Ali Malik, 1916년-1996년) 준장이 지휘하는 파키스탄 육군 제24보병여단과 M48 패튼 전차대가 격렬한 반격을 펼치며 전선을 사수하였다.
- 제2차 세계 대전 쿠르스크 전투 이후 최대 규모의 기갑 격전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인도의 전략적 돌파 기도를 결정적으로 좌절시켜 전선을 고착화하고 양국이 유엔 정전 협정에 합의하는 직접적인 군사적 계기를 마련했다.
1971-1980년 주요 사건
[1974년 9월 17일] 방글라데시·그레나다·기니비사우의 유엔 가입
- 1970년대 초반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과 카리브해 및 아프리카의 탈식민화 물결 속에서, 오랜 유혈 해방 투쟁이나 협상을 거쳐 주권을 쟁취한 신생 독립국들은 국제사회의 공식적 승인과 외교적 인정이 절실했다.
- 유엔 총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는 제29차 회기 첫날 총회 결의를 통해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Sheikh Mujibur Rahman, 1920년-1975년) 총리의 방글라데시(Bangladesh)와 그레나다, 기니비사우의 정식 회원국 가입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 제3세계 비동맹 진영의 외교적 지평을 크게 넓혔으며, 식민 지배를 벗어난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국제 연합 무대에서 주권 평등을 확보하고 냉전기 다자 외교 질서에 대등한 주체로 참여하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1976년 9월 17일] 나사의 첫 우주왕복선 엔터프라이즈호 공식 공개
- 아폴로 계획 완료 이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회성 로켓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우주 궤도 수송을 일상화하기 위해 재사용이 가능한 유인 우주 비행선 개발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하였다.
- 캘리포니아주 팜데일의 록웰 인터내셔널 조립 공장에서 SF 드라마 《스타 트렉(Star Trek)》 팬들의 서명 청원에 힘입어 명명된 최초의 우주왕복선 시제기 엔터프라이즈호(Space Shuttle Enterprise)가 공식 공개되었다.
- 자체 추진 기관은 없었으나 보잉 747기 상단 분리 활공 시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우주왕복선의 공기역학적 비행 안전성을 입증하였으며, 1981년 컬럼비아호 발사로 이어지는 상용 우주왕복선 시대를 연 위대한 초석이 되었다.
[1978년 9월 17일] 이스라엘·이집트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서명
- 네 차례의 중동전쟁을 겪으며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파탄을 겪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아랍과 유대 진영 간의 뿌리 깊은 군사적 적대를 끝내고 평화 공존을 이루기 위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13일간 합숙 담판을 벌인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1918년-1981년)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 1913년-1992년)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에서 협정문에 최종 서명했다.
-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를 반환하고 이집트가 아랍권 최초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공인하는 1979년 평화조약의 토대를 놓았으며, 이후 중동 외교 안보 역학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20세기 평화 협상의 금자탑이 되었다.
[1980년 9월 17일] 폴란드 전국 자유노조 '연대'의 공식 결성
- 1980년 여름 폴란드 공산주의 정권의 일방적인 육류 가격 인상과 노동 운동가 안나 발렌티노비치의 부당 해고로 인해, 그다인스크의 레닌 조선소를 기점으로 전국적인 총파업과 반체제 저항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 그다인스크에서 모인 전국 36개 지역 파업위원회 대표들은 레흐 바웬사(Lech Wałęsa, 1943년-)를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전국 단위의 독립자치노동조합인 '연대(Solidarity)' 창설을 공식 의결하였다.
- 소련 진영 동구권 역사상 공산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최초의 합법적 자유노조가 탄생한 사건이었으며, 1000만 조합원의 시민 불복종을 통해 1989년 공산 정권을 붕괴시키고 동유럽 민주화 혁명을 이끈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1980년 9월 17일] 니카라과 전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피살
- 40여 년간 니카라과를 철권통치하던 소모사 가문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는, 1979년 산디니스타(FSLN) 혁명으로 축출된 후 친미 군부 정권이 다스리던 파라과이로 망명하여 은신 중이었다.
- 수도 아순시온(Asunción) 시내 대로에서 엔리케 고로리아란 메를로(Enrique Gorriarán Merlo, 1941년-2006년)가 이끄는 좌익 게릴라 암살조가 소모사(Anastasio Somoza Debayle, 1925년-1980년)의 차량에 RPG-7 로켓을 쏘아 폭살하였다.
- '렙타일 작전(Operation Reptile)'으로 불린 이 거사는 중미의 유서 깊은 세습 독재 체제의 완전한 종말을 고하였으며, 라틴아메리카 좌파 무장 단체의 과감한 초국가적 응징 작전 능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1981-1990년 주요 사건
[1983년 9월 17일] 버네사 윌리엄스의 사상 첫 흑인 미스 아메리카 당선
- 1921년 창설된 미스 아메리카(Miss America) 대회는 장기간 백인 여성 중심의 인종차별적 규칙 제7조("참가자는 백인이어야 한다")를 유지하는 등 흑인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높은 진입 장벽을 고수해 왔다.
-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제56회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 결선에서 시러큐스 대학교 연극학과 출신의 버네사 윌리엄스(Vanessa Williams, 1963년-)가 뛰어난 가창력과 당당한 매력으로 심사위원들의 최고점을 받으며 왕관을 차지하였다.
- 62년 대회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미스 아메리카로 등극한 기념비적 사건이었으며, 미국 대중문화계의 백인 중심적 미의 기준과 인종적 편견을 허물고 흑인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격려하는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다.
1991-2000년 주요 사건
[1991년 9월 17일] 남북한 및 발트 3국 등의 유엔 동시 가입
- 냉전 해체와 탈동서 대결의 기류 속에서, 한반도의 남북한과 소련으로부터 막 독립을 승인받은 발트 3국, 그리고 태평양의 도서국들은 국제사회의 공식적 주권 승인과 안보 다변화를 위한 유엔 가입을 추진하였다.
- 제46차 유엔 총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본회의에서 대한민국(South Korea)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North Korea)을 비롯하여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등 7개국의 가입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 남북한이 국제법상 독립된 개별 주권국가로 인정받아 한반도 평화 공존과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소련 붕괴에 따른 탈냉전 다자 질서가 공식 출범했음을 선언한 현대 국제정치사의 거대한 분수령이 되었다.
[1991년 9월 17일] 리눅스 커널 0.01 인터넷 최초 공개
-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의 대학원생이었던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 1969년-)는 고가의 유닉스 운영체제와 교육용 미닉스(MINIX)의 기능적 한계를 극복하고 x86 인텔 프로세서에 최적화된 독자 운영체제를 개발하고자 했다.
- 토르발스는 이날 자신이 작성한 리눅스(Linux)의 초기 커널 소스코드 0.01 버전을 헬싱키 공과대학교의 공개 FTP 서버를 통해 전 세계 컴퓨터 개발자들에게 무료로 공식 배포하였다.
- 공개된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글로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며, 현대 서버, 스마트폰, 클라우드 컴퓨팅 등 전 세계 정보통신 인프라를 지탱하는 핵심 운영체제로 우뚝 서게 되었다.
[1992년 9월 17일] 베를린 미코노스 레스토랑 암살 사건
-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신정 독재 체제에 저항하던 이란 쿠르디스탄 민주당(PDKI)의 지도부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 총회 참석을 계기로 독일 베를린에 결집해 망명 야권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었다.
- 빌머스도르프의 그리스 식당 미코노스(Mykonos)에서 만찬을 하던 중 이란 첩보기관의 사주를 받은 무장 괴한들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하였고, 당 사무총장 사데그 샤라프칸디(Sadegh Sharafkandi, 1938년-1992년)를 비롯한 인사 4명이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 독일 사법부는 이 사건의 배후로 이란 최고지도부의 국가 테러를 공식 지목해 유럽연합(EU)의 대이란 외교관 집단 소환을 촉발하였으며, 국가 주도 초국가적 암살 범죄에 대한 엄격한 법적 단죄의 선례로 남았다.
21세기(2001-2100년) 주요 사건
2001-2010년 주요 사건
[2001년 9월 17일] 뉴욕증권거래소의 9·11 테러 후 거래 재개
- 9월 11일 발생한 미증유의 항공기 연쇄 납치 테러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붕괴되면서, 인접한 미국 금융 자본주의의 심장부 뉴욕 월스트리트 일대의 전력망과 통신망이 전면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래 최장 기간인 나흘간의 휴장을 마친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참석한 개장 종 타종 행사와 함께 주식 거래를 전격 재개하며 금융 시스템의 정상화를 선언하였다.
- 개장 직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사상 최대 낙폭인 684포인트 급락하는 패닉 장세를 겪었으나,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 시장의 복원력을 대내외에 입증하며 미국 경제 재건의 확고한 신호탄이 되었다.
[2001년 9월 1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워싱턴 이슬람 센터 연설
-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국 전역에서 아랍계 미국인과 무슬림 시민들을 향한 맹목적인 적대감과 증오 범죄가 급증하자, 국가 최고지도자 차원의 사회적 분열 수습과 종교 간 화합 메시지가 절실했다.
- 제43대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1946년-)는 워싱턴 D.C.의 워싱턴 이슬람 센터(Islamic Center of Washington)를 전격 방문하여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천명하는 대국민 특별 연설을 발표했다.
- 테러범의 극단주의 범죄와 일반 무슬림을 명확히 구분하여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 확산을 엄중히 경고하였으며, 전시 체제 하에서도 다문화주의와 종교의 자유라는 미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켜낸 명연설로 평가받았다.
[2006년 9월 17일] 알래스카 포피크드산 화산의 1만 년 만의 분화
- 미국 알래스카반도 카트마이 국립공원 북쪽에 위치한 포피크드산(Fourpeaked Mountain)은 플라이스토세 빙하로 덮여 수천 년간 화산 활동이 전혀 감지되지 않아 지질학적으로 완전한 사화산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 산 정상의 두꺼운 빙하를 뚫고 거대한 백색 수증기 및 화산재 기둥이 상공 6,000미터 이상 솟구쳐 오르는 수증기 마그마 폭발이 발생하자, 미국 지질조사국(USGS) 화산관측소는 인근 항공 경보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였다.
- 최소 1만 년 동안 휴면 상태에 머물던 빙저 화산이 전격 재분화한 희귀한 지질학적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알래스카 항공로의 항행 안전망을 점검하고 휴면 화산의 마그마 재활성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결정적 연구 계기를 마련했다.
[2006년 9월 17일] 헝가리 주르차니 총리의 '외쇠드 연설' 유출 파문
- 헝가리 사회당(MSZP)은 심각한 국가 재정 적자와 부채를 은폐한 채 각종 선심성 경제 공약을 남발하여 2006년 봄에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승리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 총선 직후 발라톤외쇠드에서 열린 비공개 당원 집회에서 주르차니 페렌츠(Ferenc Gyurcsány, 1961년-) 총리가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거짓말을 일삼았다"고 실토한 적나라한 음성 녹음 테이프가 공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국에 전격 유출되었다.
- 총리의 기만 행위에 격분한 수만 명의 시민들이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격렬한 퇴진 유혈 시위를 벌였으며, 사회당 정권의 신뢰 붕괴와 함께 오르반 빅토르 우파 정권이 장기 집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11-2020년 주요 사건
[2011년 9월 17일] 뉴욕 주코티 공원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개시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실 금융 대기업 구제금융과 긴축 재정 속에서 양극화가 극심해지자, 캐나다의 반소비주의 단체 애드버스터스(Adbusters)의 제안을 계기로 청년층과 시민 활동가들의 저항 운동이 결집하였다.
- 시위 참가자 1,000여 명은 "우리는 99%다(We are the 99%)"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미국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인근의 주코티 공원(Zuccotti Park)을 점거하고 텐트를 치며 장기 농성 시위에 전격 돌입하였다.
-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주의의 탐욕과 불평등 구조를 세계적 공론장으로 끌어올린 민중 봉기로 기록되었으며, 전 세계 수백 개 주요 도시로 '점령(Occupy)' 시위가 연쇄 확산되어 현대 진보 정치 담론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2013년 9월 17일] 비디오 게임 'GTA 5' 출시 첫날 흥행 신기록
- 록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는 가상 도시 로스 산토스를 무대로 범죄와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 그랜드 테프트 오토 V(Grand Theft Auto V)를 5년간 극비리에 개발해 왔다.
- 플레이스테이션 3와 엑스박스 360 플랫폼으로 전 세계에 공식 출시된 GTA 5는 발매 24시간 만에 8억 달러(한화 약 8,600억 원) 이상의 글로벌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영화와 음반을 통틀어 출시 당일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한 문화 콘텐츠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었으며, 게임 산업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압도하는 21세기 주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정점으로 도약했음을 입증했다.
[2016년 9월 17일] 뉴저지 및 뉴욕 맨해튼 연쇄 폭탄 테러
-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알카에다와 ISIL의 선전물에 경도된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아마드 칸 라하미(Ahmad Khan Rahimi, 1988년-)는 미국 본토의 다중 밀집 시설을 겨냥한 자생적 폭탄 테러를 치밀하게 모의하였다.
- 뉴저지주 시사이드파크(Seaside Park)의 해병대 자선 마라톤 주로에서 파이프 폭탄이 폭발한 데 이어, 저녁 무렵 뉴욕 맨해튼 첼시(Chelsea) 23번가 거리의 쓰레기통에서 압력솥 사제폭탄이 기폭되어 무고한 행인 3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용의자가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으며 추가 연쇄 참사를 막았으나, 대도시를 겨냥한 자생적 '외로운 늑대(Lone wolf)' 테러의 치명성을 여실히 보여주며 미국의 도심 테러 방호 태세를 대폭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 9월 17일] 시리아 지대공 미사일의 러시아 정찰기 오격 격추
- 시리아 내전 중 이스라엘 공군 F-16 전투기 4대가 라타키아(Latakia)의 시리아 군사 시설을 공습하자,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1965년-) 정권의 시리아 방공부대는 요격을 위해 S-200 지대공 미사일을 대거 발사하였다.
- 지중해 상공에서 흐메이밈 공군기지로 귀환 중이던 러시아 항공우주군 소속 일류신 Il-20(Ilyushin Il-20) 전자정찰기가 시리아군의 오발 미사일에 직격당해 추락하였으며, 탑승 중이던 러시아 군인 15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 러시아 국방부는 이스라엘 전투기가 러시아기를 방패막이로 삼아 비극을 유발했다고 맹비난하며 외교적 마찰을 빚었으며, 이후 러시아가 시리아 정권에 최신형 S-300 방공망을 전격 공급하여 레반트 상공의 군사적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켰다.
2021-2030년 주요 사건
[2025년 9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 전략상호방위협정 체결
- 가자 지구 전쟁의 여파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고 안보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양국은 수십 년간 이어온 전통적 군사 안보 협력을 조약에 기반한 집단 안보 체제로 격상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 리야드의 알야마마 궁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1985년-)과 파키스탄 총리 셰바즈 샤리프(Shehbaz Sharif, 1951년-)는 일방에 대한 침략을 양국 모두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는 전략상호방위협정(SMDA)에 공식 서명하였다.
- 걸프 아랍 군주국과 이슬람권 유일의 핵보유국 간에 체결된 역사적인 방위 공약으로 기록되었으며, 서방 주도의 안보 우산 의존도를 낮추고 중동과 남아시아를 잇는 다극화된 신흥 안보 지형을 구축하는 중대한 지정학적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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