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8월 15일 - 파나마의 파나마 시가 세워지다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아리아스 달빌라가 태평양 연안에 파나마 시를 건설하였다. 이 도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이 태평양 쪽에 세운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이다. 대항해 시대 당시 페루 등지에서 약탈한 은과 금을 스페인 본국으로 운송하는 핵심 거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1671년 해적 헨리 모건의 공격으로 도시가 파괴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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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년 8월 15일 -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 수도회인 예수회가 설립되다
스페인의 귀족 출신 수도자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가 동료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몽마르뜨에서 청빈, 정결, 그리고 교황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서약하였다. 이들은 종교개혁 시기 가톨릭교회의 쇄신과 해외 선교를 목적으로 수도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예수회는 전 세계에 걸쳐 학교와 대학을 설립하며 교육과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고, 아시아와 아메리카 등지에서 대규모 해외 선교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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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7년 8월 15일 -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이 세워지다
스페인 탐험가들이 파라과이 강 연안에 도착하여 요새를 축조하면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성모 승천 축일에 도시가 세워져 스페인어로 '승천'을 뜻하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순시온은 남아메리카 남동부 내륙 지역을 개척하고 스페인 세력을 확장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맡았다. 현재 파라과이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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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 8월 15일 - 프랑스의 군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출생
프랑스령 코르시카섬 아작시오에서 가난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 속에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뒤 1804년 황제로 즉위하였다. 유럽 전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탁월한 전술로 영토를 확장하며 나폴레옹 법전을 제정하는 등 근대 법치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러시아 원정 실패와 워털루 전투 패배로 몰락한 뒤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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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8월 15일 - 파나마 운하 완공하다
미국의 주도 아래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인공 수로인 파나마 운하가 완공되었다. 이 운하의 개통으로 선박들은 남아메리카 대륙을 멀리 돌아서 항해할 필요 없이 두 대양을 직접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세계 해상 물류와 무역의 지형을 뒤바꾼 20세기 최고의 토목 공학적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완공 이후 오랫동안 미국의 통제를 받았으나, 1999년 파나마 정부에 완전히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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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8월 15일 - 엘살바도르의 대주교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출생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에서 태어나 가톨릭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1977년 산살바도르 대주교로 임명된 후, 군사 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빈부 격차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약자들의 편에 섰다. 빈민과 억압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다가 1980년 미사 집전 중 암살당하였다. 그의 죽음은 엘살바도르 내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2018년 가톨릭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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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 일본 제국 천황이 항복선언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히로히토 일왕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연합군의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전 세계를 휩쓸었던 제2차 세계 대전이 완전히 막을 내렸다. 한국은 이 날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역사적인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다. 전쟁의 참혹한 상흔을 남긴 채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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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프랑스 페탱 장군 사형선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비시 프랑스 정권을 이끌며 나치 독일 부역 혐의를 받았던앙리 필리프 페탱 장군이 최고 재판소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베르단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으나, 나치 독일에 협력한 반역자로 전락하였다. 당시 프랑스 최고 지도자였던 샤를 드골은 그의 고령과 과거 참전 공헌을 감안하여 무기징역으로 감형하였다. 그는 감형 이후 유폐 생활을 하던 중 요섬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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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8월 15일 - 인도, 자와할랄 네루를 총리로 해 독립하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와 직접 통치를 거친 인도가 오랜 독립 투쟁 끝에 영국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자와할랄 네루가 초대 총리로 취임하여 신생 독립국의 정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역에서 거세게 일어난 탈식민지화 운동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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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다
일제강점기 35년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정확히 3년 만에 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았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취임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광복절이자 건국일로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뜻깊은 기념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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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서울역에서 청량리역에 이르는 수도권 최초의 지하철 노선이 공식 개통되었다. 이와 동시에 국철 구간인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과의 직결 운행을 시작하며 대중교통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급격한 도시화로 늘어나는 교통수요를 분산하고 시민들의 출퇴근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도시 철도망을 구축하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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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 육영수 저격 사건
서울특별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주년 광복절 기념식 행사 도중 재일교포 문세광이 총기를 난사하였다. 이 사건으로 행사장에 참석했던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서거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노린 북한의 지령을 받은 테러 사건으로 밝혀지며 큰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의 엄중한 안보 현실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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